상당 1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
住三聖嗣法小師慧然集
진주 임제혜조선사 어록
삼성사에 사는 법을 이은 소사(小師) 혜연(慧然)이 수집함
강의 ; 임제록은 진주에 있는 삼성사의 임제스님의 높은 제자 혜연스님이 편찬하였다.
스승의 어록을 편찬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스승에 버금가는 도안(道眼)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며, 스승의 법을 이은 사람이어야 한다.
법을 이었다는 사법(嗣法)이라는 말이 그를 증명한다.
소사(小師)란 스승 앞에서 자신을 겸양하여 소승, 부족한 제자 등의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법을 설하면 그것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 꼭 있어야한다. 근년의 큰스님들도 그런 일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제자가 있는 분들은 돌아가신 후에도 더욱 빛을 발한다.
후대의 사람들에게는 임제스님 보다 못하지 않는 일로 평가 된다.
그러므로 혜연스님은 당연히 임제스님 버금가는 분이다.
상당(上堂)
강의 ; 임제록에 실려 있는 내용을 그 형식에 맞추어 분류하면 서문(序文)·상당(上堂)·시중(示衆)· 감변(勘辨)·행록(行錄)·탑기(塔記) 이렇게 여섯 종류가 된다.
상당이란 선지식이 특정한 날에 법상에 높이 올라 설법하는 것을 말한다.
결제나 해제나 그 외의 의미 있는 날에 총림에서 행해진다.
그르므로 법문의 내용도 가장 격이 높다.
시중이나 만참(晩參), 소참(小參) 같은 경우의 법문은 대종장이 행한 법문이라도 상당법어와는 그 격이 다르다.
법상에 높이 올라가서 법문을 할 때는 상당법문이 되므로 반드시 상당법문답게 종지(宗旨)·종풍(宗風)을 거량해야한다.
1-1 전쟁의 시작
府主王常侍가 與諸官으로 請師陞座하니 師上堂云, 山僧今日에 事不獲已하야 曲順人情하야 方登此座하나 若約祖宗門下하야 稱揚大事인댄 直是開口不得이라 無儞措足處니라 山僧此日에 以常侍堅請이니 那隱綱宗이리오 還有作家戰將하야 直下展陣開旗麽아 對衆證據看하라
하북부의 부주 왕상시가 여러 관료들과 더불어 임제스님께 법상에 오르시기를 청하니 스님이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산승이 오늘 어쩔 수 없이 인정에 따라서 겨우 이 자리에 올랐으나 만일 조사들이 면면히 이어온 전통에 입각하여 큰일을 드날려 본다면 곧 바로 입을 열수가 없다.
또 그대들이 발붙일 곳도 없다. 그
런대 산승에게 오늘 왕상시가 간곡히 청하니 어찌 근본종지를 숨길 수 있겠는가.
여기에 이름 난 장군[作家]이 있다면 곧 바로 진을 펼치고 깃발을 열어서 대중들에게 그 증거를 보여라.”
강의 ; 먼저 글의 단락을 나누고 번호를 붙인 것은 뜻을 더욱 잘 파악하자고 임의로 나눈 것이다.
매 단락마다 담긴 뜻을 요약해서 그 제목을 붙인 것도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다른 길로 흐르게 하지는 않았는가 해서 좀 염려가 된다.
부주는 하북부의 지방장관이다.
우리로 치면 도지사 정도에 해당한다.
상시(常侍)라는 말도 관직의 이름으로서 항상 왕의 좌우에 있으면서 국사를 의논하는 직책이다.
부주이면서 상시라는 벼슬을 지낸 사람이니 외호(外護)인연으로서는 법을 펴기에 손색이 없다.
자고로 선지식이 한 지역에서 법을 펴는 데는,
외호인연뿐만 아니라 토지인연, 납자인연, 단월인연, 도(道)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임제스님은 이 왕상시로 해서 당신의 법을 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법이란 언어나 사량으로 표현할 일이 아니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부처님이나 조사님의 본마음은 더욱 아니다.
하지만 간청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좀 흠이 되는 부담을 안고라도 어쩔 수 없이 언어로 거량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마치 굽은 화살로도 원숭이를 쏘아 맞히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내가 먼저 무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일대사인연을 거론함에 있어서는 스승도 입을 열 수가 없고 학인도 발붙일 곳이 없다.
더구나 임제록의 안목은 언어도단하고 심행처멸한 자리다.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라도 혹 이 자리에 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풍을 드날릴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거든 어디 한번 나와서 진을 펼치고 깃발을 열어서 그 솜씨를 보여라.
목숨을 걸고 한바탕 겨뤄보자.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걸 맞는 전쟁의 용어를 써서 법거량을 하고자 한다.
매우 살벌하고 긴장감이 도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퍽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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