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63/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9. 5. 10:59
시중 63 

 

14-40 산승의 말도 취하지 말라

大德

若如是達得하면

免被他凡聖名礙니라

儞一念心

祇向空拳指上生實解하며

根境法中虛捏怪하야

自輕而退屈言하되

我是凡夫

他是聖人이라하니

禿屢生이여

有甚死急하야

披他師子皮하야

却作野干鳴

“큰스님들이여!

만약 이와 같이 통달한다면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이름에 구애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빈주먹 속에서 무엇인가 있다는 생각을 낸다.

또 육근과 육진의 법에서 공연히 없는 것을 만들어 내어 괴이한 짓을 하여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고 뒷걸음질 치면서

‘나는 범부고 저분은 성인이시다.’라고 한다.

이 머리 깍은 바보들아! 무엇이 그리 다급하여 사자의 가죽을 쓰고 여우의 울음소리를 내는가?”

 

강의 ; 모든 존재는 공이다.

삼라만상과 천지만물도 모두가 공이다.

남녀노소 성인 범부 부처 조사 보살 나한 모두가 공이다.

무엇이든 모두 실제로 있는 것처럼 보일뿐이다.

왜 없으면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연기(緣起)로 인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있으면서 공인가?

연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지 하나에서부터 삼천대천세계에 이르기까지 연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세균이나 미물곤충이나 사람에 이르기까지 역시 연기로 존재한다.

이와 같이 알면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이름에 하등 구애될 것이 없다.

칭찬과 비난에도 하등 구애될 것이 없다.

모함하고 음해하는 것에도 하등 마음 흔들릴 것이 없다.

영광도 오욕도 하등 마음 쓸 일이 아니다.

태평무사다.

배울 것도 없고 할 일도 없는 한가한 도인은 거짓도 진실도 선도 악도 찾지 않는다.

大丈夫漢

不作丈夫氣息하야

自家屋裏物

不肯信하고

祇麽向外覓하야

上他古人閒名句하야

倚陰博陽하야

不能特達이라

逢境便緣하며

逢塵便執하야

觸處惑起하야

自無准定이로다

道流

莫取山僧說處하라

何故

說無憑據하야

一期間圖畫虛空이요

如彩畫像等喩니라

“대장부 사나이가 장부의 기개를 펴지 못하고 자기 집안의 보물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단지 바깥으로만 찾아다닌다.

옛사람들이 만든 부질없는 명칭과 문구에만 사로잡혀 이리저리 이 말에 의지하고 저 말에 의지하여 분명하게 통달하지 못한다.

경계를 만나면 곧 거기에 반연한다.

육진을 만나면 곧 또 집착한다.

닿는 곳마다 미혹을 일으켜서 스스로 정해진 기준이 없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산승이 말하는 것도 취하지 말라.

왜냐? 내말에도 아무런 근거와 의지할 데가 없다.

잠깐 허공에 대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또 남이 그린 그림이나 형상에 채색을 입히는 것과 같다.”

 

강의 ; 천번 만번 부르짖는 말이지만 모든 문제의 해결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행복도 평화도 물론 자기 자신에게 있다.

우리들 자신은 무한한 능력과 영원한 생명 그 자체다.

어떤 부귀와 영화와 명예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

자신의 이와 같은 보물 창고를 버리고 어디를 헤매는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으로 찾아 헤맨들 무엇을 얻겠는가?

부질없는 문자상에서 이리 저리 헤아려 본들 무엇이 나오겠는가?

설사 어록 중에서 왕이라고 일컫는 임제스님의 말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고 경전과 어록을 똥 닦는 휴지로 취급하는 더없이 높고 높은 소리를 토해 놓은 것이라 하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임제스님의 말씀도 취하지 말라.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역시 똥 닦는 휴지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 육진 경계에 끄달리지 말라.

설사 불보살이 와서 방광(放光)을 하고 자신을 업어주고 예배하고 하더라도 그것은 역시 육진경계에 불과하다.

사람들을 더욱 미혹하게 할 뿐이다.

자신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위진인이 있다.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서 자유자재로 드나든다.

부디 수처작주하라.

어떤 상황이 앞에 나타나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자신을 지키라.

이것이 진짜 불교다.

죽은 뒤에도 잊어서는 안 될 임제문중의 인천안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