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64/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9. 5. 11:10
 

 

 

시중 64

14-41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잃을 것이다

道流

莫將佛爲究竟하라

我見猶如厠孔이요

菩薩羅漢

盡是枷鎖

縛人底物이니

所以

文殊仗劍하야

殺於瞿曇하며

鴦掘持刀하야

害於釋氏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부처를 최고의 경지라고 여기지 말라.

나에게는 그것이 마치 화장실의 변기와 같은 것이다.

보살과 나한은 모두 다 목에다 씌우는 칼과 발을 묶는 족쇄와 같이 사람을 결박하는 물건들이다.

그러므로 문수는 긴 칼을 비껴들고 부처님을 죽이려 했고,

앙굴리마라는 단도를 가지고  석가모니를 해치려 한 것이다.”

 

강의 ; 강강(剛强)한 말세의 사람들에게는 역시 강강한 처방이 필요하다.

면역성이 강해지면 그만치 고단위 약을 써야 듣는다.

제발 부처니 보살이니 조사니 하는 성스러운 모습과 그 명칭에서 벗어나라.

부처란 무엇인가?

마치 화장실의 변기와 같은 것이다.

보살과 아라한은 또 무엇인가?

모두 죄인의 목에다 씌우는 칼과 발을 묶는 족쇄와 같은 것이다.

그러니 부처가 있는 곳에는 머물지 말고 부처가 없는 곳에는 급히 지나가라.

별로 좋은 물건이 아니다.

문수보살과 앙굴리마라가 할 일이 없어서 그와 같은 짓을 했겠는가?

모두가 경계에 집착하여 자신의 보물 창고를 잊어버린 불쌍한 사람들의 눈을 열어주기 위하여 노파심절로 한 일이다.

우리들의 마음에 일체 허상이 다 사라지기를 바라고 한 일이다.

이렇게 강강한 처방으로도 듣지 않는 병이라면 임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道流

無佛可得이니

乃至三乘五性

圓頓敎迹

皆是一期藥病相治

並無實法이니라

設有라도

皆是相似表顯路布

文字差排하야

且如是說이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부처란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삼승과 오성과 원돈교의 자취마저도 모두다 그때그때의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이지 고정된 실다운 법이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말로 표현하는 길거리의 광고 게시판이다.

문자를 알맞게 배열해 놓은 것이다.

임시로 이와 같이 이야기 해 본 것일 뿐이다.”

 

강의 ; 불교에는 입만 열면 부처님, 보살님, 성문, 연각, 아라한, 도인, 선지식, 큰스님,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 등등 별의별 명칭을 다 말한다.

그리고 경전만 펼치면 그러한 명칭들이 있다.

그러나 부처니 보살이니 하는 말도 모두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표현하는 말에 불과하다.

병에 따라 시설하는 약방문일 뿐이다.

혹은 길거리에 내걸린 광고문에 불과하다.

만일 실재로 있는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오직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 하나를 두고 별의별 이름을 다 붙인 것이다.

진정 부처를 좋아하는가?

부처란 다만 부처를 좋아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외에는 달리 아무 것도 없다.

그 사람도 실은 부득이 해서 하는 말이다.

그렇게 알아야 한다.

그와 같은 명칭을 일컫는 그 사람마저 부득이해서 말 할 뿐인데 여타의 것이야 말해 무엇 하랴.

그래서 필자는 불교에서 굳이 사상을 말하라면 인불사상(人佛思想)이라고 하고 있다.

사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에게 하듯 사람에게 그렇게 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이다. 평화도 행복도 거기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보든 현재 이대로 부처가 아니라고 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혹자는 보통 삶은 부처로써의 효용이 없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말이다.

보통 사람 그대로가 완전무결한 부처인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라.

사람이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부처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아프면 아파하고 기쁘면 기뻐하고 슬프면 슬퍼한다.

순간순간이 부처의 삶이다.

참으로 신묘하다.

불가사의하다.

매일 매일 천금을 드려서 잔치를 해야 할 일이다.

매일 매일 최고의 파티를 열어야 한다.

사람이 산다는 일이 이렇게 감동적일수가 없다. 

道流

有一般禿子하야

便向裏許著功하야

擬求出世之法하니

錯了也

若人求佛하면

是人失佛이요

若人求道하면

是人失道

若人求祖하면

是人失祖니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어떤 머리 깍은 사람들이 있어서 곧 그러한 것에 공을 드려서 출세간법을 구하려고 한다.

그것은 잘못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처를 구한다면 그 사람은 부처를 잃을 것이고,

만약 도를 구한다면 도를 잃을 것이며, 만약 조사를 구하다면 조사를 잃을 것이다.”

강의 ; 자신이 부처인데 다시 부처를 구한다면 이미 있는 부처를 잃게 된다.

자신이 그대로 도인데 다시 도를 구한다면 이미 있는 도를 잃게 된다.

자신이 조사인데 다시 조사를 구한다면 이미 있는 조사를 잃게 된다.

물로써 물을 씻으려는 것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쓰려는 일이다.

오히려 멀어질 뿐이다.

공연히 쓸데없는 문자에 이끌려 긁어 부스럼을 내고 있다.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하나 더 올려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