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30송(唯識三十頌)

유식30송-23/혜거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10. 8. 14:38
제 23 송
 
卽依此三性 立彼三無性  즉의차삼성 입피삼무성
故佛密意說 一切法無性  고불밀의설 일체법무성

곧 이 3성(三性 :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에 의지하여 상(相), 생(生), 승의(勝義)라고 하는 3무성(三無性)이 성립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밀의(密意)로 설하시기를 일체법이 무성(無性)이라 하신 것이다.
 
(해 설)
이 송은 본래 자성이 없음을 확고히 드러낸 송이다. 중생이 나[我]라고 여기는 심식이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인데 이 3성의 시작이 경계를 의지하여 생기하는 의타기성이기 때문에 마음이란 경계가 없으면 일어나지 않으므로 본 송에 3무성이라 하여 본무자성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마치 부싯돌이 부딪쳐야 불이 일어나듯 마음도 경계에 의해 일어나므로 3성의 마음이 본래 없다 한 것이다. 경계에 의해 마음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아 경계에 부동하고 계탁분별하지 않으면 원성실성이 되어 청정무구한 진여법성을 이루거니와 본래 없는 마음이 경계에 의해 일어난 것을 집착하여 내 마음이라 하고 사량하고 헤아리면 이것이 곧 변계소집성이 되어 윤회의 씨가 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3무성이라면 마음은 왜 존재하는가. 그 근원을 규명해 보면 부싯돌이 부딪치지 않으면 불이 존재하지 않지만 부싯돌이 부딪치므로 불이 일어나듯 마음은 본래 나고 멸함이 없으나 인연에 의해 생하고 인연에 의해 멸하므로 연생연멸인 것이다.

자성에 생멸이 없는 것을 본무자성(本無自性)이라 하고 연생연멸하는 마음을 집착하고 계산하는 마음을 변계소집성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와 같이 3성의 소이연(所以然)이 연(緣)이요, 연(緣)은 실(實)이 아니므로 3무성임을 깨달음으로써 마음의 집착을 끊을 수 있고 경계에 부동할 수 있는 것이다.

3구의 밀의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으니 하나는 부처님의 설법이 의미가 깊어 참된 뜻이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밀의라 하고 둘째는 부처님의 뜻이 심히 깊어서 입지하지 못한 수행자가 헤아려 알 수 없기 때문에 밀의라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밀의로 설하셨다고 한 것은 경계에 의해 마음이 생기하고, 생기한 마음을 계산하여 집착하고, 생기한 마음을 계산하여 집착하지 않는 3성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마음의 실(實)인 줄로 착각하여 집착하는 범부중생을 위하여 3성이 모두 무자성임을 설하시어 일체만법의 성상(性相)이 모두 공(空)임을 드러내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3성을 세워 마음의 생처(生處)를 설하시고 3무성을 세워 3성에 대한 집착을 파해 주신 것이니 이것이 곧 밀의에 해당된다 하겠다.

다시 말해 부처님께서 마음의 주처를 3성으로써 밝히시고 범부가 곡해하여 제법의 자성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할까 염려하셔서 3성의 자리가 본래 무성(無性)임을 설하시어 제법의 성상(性相)이 모두 공(空)임을 드러내 주신 것이다. 무성의 자리는 집착할래야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을 파할래야 파할 것이 없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영원불멸의 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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