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능엄경(楞嚴經)

능엄경 강의 2 / 송찬우 교수

通達無我法者 2007. 11. 28. 10:19
능엄경 강의 2

○ 삼관수행(三觀修行)의 실체적 모습

이상에서 삼관수행을 통해서 닦아야 할 실체적 대상으로서 삼공여래장심을 밝혔으므로 여기에선 다시 삼관수행의 다른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서술하기로 한다.
앞에서 이미 밝힌 일진법계여래장심 자체는 광대한 지혜광명의 의미를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혜[智]라고도 한다. 그 지혜는 여래장심 자체와 상즉관계에서 일어나는 지혜이므로 적멸한 여래장심 자체의 이치를 다시 관조하므로 자체의 이치와 그 이치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지혜는 하나로 일여(一如)하다. 이같은 이치는 모든 상대적 분별이나 명상(名相)을 떠나 있으므로 근원적인 일심의 이치는 끝내 언어적인 설명으로 제시할 순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진심과 망심이 화합한 생멸문의 차별적인 측면에서 망심을 돌이켜 진심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수행방편을 세 겹으로 시설하게 된다.
여래장성 자체의 측면, 즉 일심진여문(一心眞如門)에선 지혜로 그 자체인 이치를 절대홀로 관조하므로 단지 관(觀)이라고만 명칭할 뿐이다. 그러나 수행형식에선 생멸망상(生滅妄相)의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밝히기 때문에 관상(觀相), 즉 수행의 차별상이라고 한다. 우선 수행관문의 차별적 모습을 보기로 한다.

1. 사마타 공관(空觀)

첫째 사마타를 공관으로 부르는 이유는 일진법계여래장심의 자체엔 생멸상이 본래 없으며, 역시 수행의 모습도 따로 있지 않다. 여래장심의 자체는 이처럼 절대평등이건만 중생이 최초 일념망상으로 이를 깨닫지 못함으로 인해 근본무명(根本無明)이 있게 되었다.
이 무명 때문에 곧바로 삼세육추(三細六?)와 사대육근(四大六根)의 갖가지 법이 생기(生起)하였다. 그러므로 이같은 모든 현상 번뇌법은 우리의 일심을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허망한 무명망상의 모습으로 떠올랐으므로 그것은 본래적으로 실체가 없으며, 단지 일심의 모습일 뿐이다[萬法唯識]

여래장심 자체는 원만하고 분명하여 일체 번뇌의 차별상을 떠났다. 그것은 마치 마니보주 가운데 빛깔이 본래 없는 이치와도 같다. 이처럼 그 자체는 바로 진공이기 때문에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하며, 그 진공 속에 떠오른 색은 있다해도 그 안에 실체의 색법으로 따로 있지를 않기 때문에 색불이공(色不異空)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여래장성 근본자체를 진공(眞空)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수행관찰하는 마음가짐을 공관(空觀)이라고 한다.

2. 삼마발제 불공관(不空觀)

위에서 이미 언급했던 데로 우리의 내적인 근신(根身)과 외적인 기계(器界), 이 모든 법들은 우리의 일심을 떠나지 않았다. 이처럼 장심의 자체는 진공으로서 원만하고 분명하고 청정하여 본래적으로 법계에 두루 충만한 상태에서 망상분별의 인연을 따라 갖가지로 다른 생멸상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일체의 모든 현상법은 진공일심 자체를 근본으로 하여 허다한 허망한 분별의 모습으로 떠올랐으므로, 그것은 현재 있는 그 자체에서 허깨비처럼 진실하지 않은 가유(假有)일 뿐이다.
이는 마치 마니보주 가운데 모든 색상이 분명히 나타나 보주 전체가 그 속에 나타난 차별적 색상과 둘이 아닌 하나로 상즉관계를 이룬 것과도 같다. 이처럼 서로 다른 색상과 하나의 이치로 상측하였기 때문에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고, 따라서 그 진공은 색상을 떠난 따로의 진공이 아니기 때문에 공불이색(空佛異色)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 자체는 절대진공이면서 동시에 차별의 모습이 불공(不空)이라고 하는데 이같이 수행관찰하는 마음가짐을 불공관(不空觀)이라고 한다.

3. 선나 중도관(中道觀)

일체의 차별상이 적멸한 자체일심을 의지하여 다시 그 안에 떠오른 일체의 제법을 분명하게 관조하므로 그들 모든 차별적 제법은 현재 있는 그 자체에서 진공과 하나로 적멸이다. 적멸이기 때문에 공(空)이라 하고, 동시에 현상의 차별상이 분명히 적멸의 이치임을 관조하는 지혜작용이 일어나므로 이를 불공(不空)이라고 한다.
이는 마치 마니보주와 그 속에 떠오른 색상은 따로의 차별적 색상도 아니고 별개의 보주가 아님과도 같다. 이를 진공이면서 진공이 아닌 공불공(空不空)이라고 한다.
이 경지는 따로의 진공으로서 고요한 모습도 아니고 따로의 지혜로서의 관조도 아니다. 고요와 관조는 여여평등(如如平等)하여 유일한 일심(唯一眞心)의 이치일 뿐이다.
그 마음은 담연(湛然)하여 생멸을 따라 요동하지 않으므로 상대적인 긍정과 부정, 이 모두를 떠났다. 따라서 언어도단이고 심행처멸(言語道斷 心行處滅)이다. 그러므로 마음 마음이 선후피차의 상대적 간격없이 원만한 깨달음의 세계로 임의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데 이와 같이 수행관찰하는 마음가짐을 중도관(中道觀)이라고 한다.

此經十卷準常有三分
○謂一序分序說法之因由故
○二正宗分正示一經之宗體故
○三流通分冀流傳於終古故

이 경전 십권을 세 분야로 분류한다.
○ 첫째는 序分인데 이는 설법한 인유를 설하기 때문이며,
○ 두번째는 正宗分인데, 이는 이 경전의 본론을 보이기 때문이며,
○ 세번째는 流通分인데, 이는 이 경전이 영원토록 유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入經先列序分

▩初通序

如是我聞. 一時佛在室羅筏城祇桓精舍.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皆是無漏大阿羅漢. 佛子住持. 善超諸有. 能於國土成就威儀. 從佛轉輪妙堪遺囑. 嚴淨毗尼弘範三界. 應身無量度脫衆生. 拔濟未來越諸塵累. 其名曰. 大智舍利弗 摩訶目건連 摩訶拘치羅 富樓那彌多羅尼子 須菩提 優波尼沙陀等. 而爲上首. 復有無量벽支無學. 幷其初心同來佛所

본경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서분부터 나열한다.

▩ 1. 능엄법회를 펴게 된 동기를 통론적으로 서술하다.

진여의 이치에서 하시는 능엄경 설법 모두를 나 아난은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부처님과 제자의 마음이 하나로 일치할 때 부처님은 실라벌성 기원정사에 계셨다.
이 법문은 나 홀로만이 아니라 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도 함께 들었다.

그들 모두는 무루의 무애해탈도(無碍解脫道)를 증득한 대아라한(大阿羅漢)이였는데, 부처님 설법을 듣고 새롭게 탄생하였으므로 부처종자를 감당하고 계승하는 불자(佛子)의 위치에 안주하여, 그 책임을 잃지 않고 지니면서 생사인과(生死因果) 잊지 못하는 모든 삼계이십오유(三界二十五有)의 생사인연의 속박을 훌륭하게 초월하였다. 따라서 모든 삼계국토에서 존중받고 본받을 위의(威儀)를 성취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들 대아라한들은 계정혜삼학(戒定慧三學) 가운데서 정학(定學)을 성취하여 자리덕(自利德)을 성취하였다.
다시 그들은 부처님의 규범을 따라 법문 전수하는 일을 도우면서 부처님의 지혜를 오묘하게 통달하고 부처님 사업을 감당하여, 그 법을 후대까지 전수함으로써 중생들이 교화되도록 부탁하는 혜학(慧學)까지 성취하여 광대한 이타덕(利他德)까지를 행하였다.
그들은 다시 섭율의계(攝律儀戒)와 섭선법계(攝善法戒)로써 신구의삼업(身口意三業)을 근엄하고 청정하게 함으로써 자리의 덕을 행하고 다시 섭중생계(攝衆生戒)까지 실천함으로써 삼계에 크게 통하는 사범(師範)이 되어 이타의 덕을 갖춤으로써 계학(戒學)까지를 성취하였다.
이처럼 삼학(三學)과 이리(二利)의 덕을 갖추곤 한량없는 분신(分身)으로 감응하면서 현재의 중생들이 번뇌의 강을 건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궁한 미래의 중생들까지도 생사고륜에서 구제하여 끝내 모든 번뇌의 속박을 초월하게 하였다.
그들 이름을 나열해 본다면 대지사리불과 마하목건련과 마하구치라와 부루나미다라니자와 수보리와 우바니사타 등이었는데, 그들이 천이백대중 가운데서 상좌수령(上座首領)이였다.
다시 연각승(緣覺乘)인 한량없는 벽지불(?支佛)과 성문승(聲聞乘)인 무학(無學)과 인연관법(因緣觀法)을 수행하여 최초로 출세간의 마음을 일으킨 자까지 동시에 부처님 처소로 찾아왔다.

▩二別序

屬諸比丘休夏自恣. 十方菩薩咨決心疑. 欽奉慈嚴將求密義. 卽時如來敷座宴安. 爲諸會中宣示深奧. 法筵淸衆得未曾有. 迦陵仙音편十方界. 恒沙菩薩來聚道場. 文殊師利而爲上首. 時波斯匿王爲其父王諱日營齋. 請佛宮掖. 自迎如來. 廣設珍羞無上妙味. 兼復親延諸大菩薩. 城中復有長者居士同時飯僧. 佇佛來應. 佛칙文殊分領菩薩及阿羅漢應諸齋主. 唯有阿難先受別請. 遠遊未還不遑僧次. 旣無上座及阿도黎. 途中獨歸. 其日無供. 卽時阿難執持應器. 於所遊城次第循乞. 心中初求最後檀越以爲齋主. 無問淨穢刹利尊姓及전陀羅. 方行等慈不擇微賤. 發意圓成一切衆生無量功德. 阿難已知如來世尊訶須菩提及大迦葉. 爲阿羅漢心不均平. 欽仰如來. 開闡無遮. 度諸疑謗. 經彼城隍. 徐步郭門. 嚴整威儀. 肅恭齋法. 爾時阿難因乞食次經歷음室. 遭大幻術摩登伽女. 以娑毗迦羅先梵天呪攝入음席. 음躬撫摩將毁戒體. 如來知彼음術所加. 齋畢施歸. 王及大臣長者居士俱來隨佛願聞法要. 於時世尊頂放百寶無畏光明. 光中出生千葉寶蓮. 有佛化身結跏趺坐宣說神呪. 칙文殊師利將呪往護. 惡呪消滅. 提장阿難及摩登伽歸來佛所.

▩ 2. 이 경전을 펴게 된 동기를 따로 서술하다.

그 때는 마침 모든 비구들이 여름안거를 끝내고 사흘 간 서로의 허물을 자유롭게 지적하고 경책하는 자자일(自恣日)이였다. 그 자리는 성문?벽지불승만 모두 운집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방의 보살까지도 그들 마음속에 있는 의심을 부처님께 자문하고 결단하려고 자애롭고 근엄하신 부처님 모습을 공경히 받들면서 밀인료의경(密因了義經)의 의미를 구하려 하였다.
즉시에 여래께선 자리를 펴고 고요하고 편안하게 앉으사 자자대중(自恣大衆)을 위하여 심오한 법을 선양하시니 자자법석의 청정한 대중들은 미증유의 법문을 듣게 되었다.
그때 부처님의 가릉빈가의 소리와 같이 오묘한 설법음성이 시방세계까지 두루 울려 퍼지자 그 음성을 멀리서 들은 항하사와 같이 많은 보살대중까지 그 자자의식을 행하는 도량으로 모여들었는데, 여기에서는 문수사리보살이 상수였다.
자자법회가 이미 끝났을 때 파사익왕은 그의 선대부왕을 위해 제삿날에 제(齋)를 베풀고 궁전 안으로 부처님을 초청하였다.
대왕은 직접 여래를 영접하고 위없이 오묘한 맛을 지닌 진기한 음식을 빠짐없이 준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다시 모든 대보살들까지 직접 맞이하였다.
그 실라벌성 안에는 다시 장자(長者)와 거사(居士)들이 왕과 동시에 스님들게 공양을 올리려 하면서 부처님이 그들에게 오시기를 기다렸다.
부처님은 문수보살에게 명령하여 보살대중과 아라한대중을 나누어 거느리고 가 거사와 장자의 공양에 따로 응하라 하였다. 그들 대중 가운데서 오직 아난만은 자자일에 앞서 따로의 초청을 받아 멀리 길을 떠나 아직 되돌아오지 못하였으므로 공양에 참석하는 스님들과 함께할 겨를이 없었다.
아난은 홀로 길을 떠났으므로 그의 행동거지를 근엄하게 해주는 상좌(上座)스님과 잘못된 실수를 방지해 주는 궤범사(軌範師)가 없이 홀로 되돌아오는 길이였다.
그 날은 부처님과 대중들 모두가 성안으로 제를 받으러 떠났으므로 기원정사엔 공양이 없었다. 즉시에 아난은 발우를 지니고 평소 거닐었던 성안에서 부처님이 제정하신 법도를 따라 차례로 걸식을 하되 아직 공양을 올리지 않은 최후로 발심한 신도들 최초로 구하여 그를 그날의 제주(齋主)로 삼으리라 마음먹었다.
따라서 신분이 청정하거나 존귀한 왕족이나 더럽고 하천한 전다라를 분별하지 않고 평등한 자비를 행하려 하였으므로 미천한 신분도 가리지 않고 공양을 받으리라 하였다. 아난의 이러한 뜻은 일체중생에게 한량없는 공덕을 평등하게 이루게 하리라 하는 의도에서였다.
왜냐하면 금속여래세존(金粟世尊)께서 수보리는 부자는 공양하기 쉽다 하여 가난한 사람은 버리고 가섭은 가난한 자에게 복을 심게 하기 위해 부자를 버린 이 모두를 꾸짖기를 “너희들은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당도하였는데도 그 마음이 빈부의 차별에 치우침이 없는 평등한 마음을 쓰지 못하구나”라고 말씀하셨던 일을 아난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이 막힘없이 자유자재하신 법으로 가난과 부자의 차별에 치우친 데 따른 모든 이의 의심과 비방을 제도하신 여래의 가르침을 공경히 우러르는 마음으로 실라벌성 모퉁이를 돌아 느린 걸음으로 성곽문을 지나면서 위의를 근엄하게 하여 제법(齋法)을 엄숙하고 공순하게 행하였다.
이처럼 아난은 걸식을 행하면서 음난한 여인의 집앞을 지나다가 큰 환술(幻術)을 쓰는 마등가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은 환술인 사비가라선범천주로 아난을 홀려 방으로 들어가 그의 음란한 몸으로 아난의 청정한 계체(戒體)를 어루만지고 애무하면서 파계시키려 하였다.
여래께선 아난이 음난한 술법에 걸렸음을 말없는 가운데 아시고 제가 끝나자 즉시 그 자리에서 설법을 하지 않은 체 바로 기원정사로 되돌아 오셨다.
그곳에서 법문을 듣지 못한 왕과 장자와 거사들도 동시에 부처님을 따라 기원정사로 함께 와 법문의 요점을 듣기를 원했다.
그때 세존께선 정수리[表如來藏本覺理體]에서 모든 보배로 장엄[表慈悲解脫德攝受衆生]하여 두려움 없는[表威得神通力折伏衆生] 광명[表始覺妙智]을 놓으셨다.[表由本覺理體起始覺智用] 그 광명 속에선 천 잎으로 된 보배연꽃이 출현하였으며[表由始覺智用廣修萬行因心] 그 가운데서 화신불(化身佛)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表由因心而證果覺] 능엄신주(神呪)를 선설하셨다.[表由果覺起大用化度衆生]
세존께선 문수사리보살에게 명령하여 연꽃 속의 화신불이 선설하신 신주를 받들고 가서 음실에 빠진 아난을 보호하라 하였다. 이로 인해 마등가가 행한 악한 주문의 능력이 소멸하자, 아난과 마등가 여인을 함께 이끌고 부처님 처소로 되돌아 왔다.

[要義]
석가여래께서 사십구년간 계법(戒法)을 연설하신 이유는 출가수행하여 생사법을 벗어나려면 모든 법보다 계법이 최우선으로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처님께선 유교경(遺敎經)에서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엔 계법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 때문에 아난이 음란한 여인의 집을 만난 천박한 일로써 이 경전을 일으키게 된 동기를 삼았을 것이다.
법화경에선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간에 출현하셨다”하였는데, 이는 일진법계여래장청정심(一眞法界如來藏淸淨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마음은 모든 부처와 중생이 평등하게 부여받고 공유하였건만 단지 중생들은 이를 미혹하였을 뿐이다. 때문에 여래께선 특별히 세간에 출현하시어 모든 중생들에게 청정한 마음의 이치[佛知見]를 개시(開示)하고 그들로 하여금 오입(悟入)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부처님 사업 가운데서 이 일이야말로 최대로 큰 일이다.
중생들도 모든 부처님과 동일하게 이 마음을 부여받았는데도 항상 생사윤회에 부침하면서 영겁토록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모든 이유는 단지 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첫째 가는 이유이다.
따라서 생사의 세계 속에서 유독 진실한 마음과 상대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도 역시 이 하나의 애욕이 가장 큰 일이다. 이것이 모든 생사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지금 망상의 애욕을 되돌이켜 여래장 청정한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 가려한다면 반드시 우선적으로 생사의 근본인 애욕부터 그 뿌리를 뽑아야만 한다. 때문에 이 경전에선 음욕을 끊는 일을 최우선에 두었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세간의 생사와 출세간의 무생(無生)이 음심을 끊느냐 끊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육도중생이 생사부침을 반복하는 것도 음욕의 망상 때문이며, 삼악도에서 극심한 고통을 부르는 것도 음욕의 습기가 그 원인이다.
뿐만 아니라 선정(禪定)을 수행하는 수행인도 음욕 때문에 익힌 선정이 파괴되어 끝내는 마군권속으로 타락한다고 한다. 음욕은 이처럼 그 해독이 극심하다. 그러므로 음욕은 중생과 수행인 모두를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굳센 문빗장이고, 중생을 삼계에서 길이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감옥이며, 열반의 편안한 집을 파괴하는 흉악한 도구이다.
이처럼 번뇌 가운데서도 음욕의 습기가 가장 맹렬하고 그 뿌리가 깊숙하므로 세존께선 우선적으로 정수리에서 보배광명을 놓아 그 가운데서 무위화신불(無爲化身佛)이 설하신 비밀심주(秘密心呪)로써 아난과 마등가의 음욕을 비추고, 문수의 큰 지혜로써 그를 구제하게 하셨다.
이 경전은 이치[理]론 여래장성을 개시(開示)하고 수행[行]으론 삼관대정(三觀大定)을 의지했으며, 가르침[敎]은 원돈교(圓頓敎)에 속한다.
그렇다면 문수보살이 신주를 받들고 가서 그들을 구제한 이유는 이 경전 전체에서 설해진 삼관대정의 실체인 여래장심을 보이려함 때문이다.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애욕은 생사의 근본이고, 능엄삼관대정은 성불의 근본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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