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법화경(法華經)

제 14장 안락행품(安樂行品)(1)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0:05

제 14장

안락행품(安樂行品)(1)


그때, 가르침의 아들인 문수사리 보살 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여러 구법자들은 참으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부처님을 존경하고
순종하기 때문에 큰 서원을 세우기를, ‘부처님께서 멸도하신 뒤의 험악한 세상[後惡世]에서,
이 법화경을 수호하며 읽고 외워서 배우고, 남에게 전하여 주겠습니다.’ 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큰 뜻을 세운 초심의 구법자들이 뒤의 험악한 세상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에
어떻게 하여야 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문수사리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이 큰 뜻을 가진 구법자가 뒤의 험악한 세상에서 이 법화경을 설하려면,
기필코 다음 네 가지의 수행방법을 익혀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느니라.

첫째, 구법자로서의 행동과 교제하는 대상, 또는 범위를 배워 익혀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에
비로소 중생을 위하여 널리 설하여야 한다.

문수사리여, 무엇이 큰 뜻을 세운 구법자로서의 행동인가 하면, 항상 어떠한 모욕과 박해에도 성내지
않고 참고 견디며, 온순하고 고운 마음씨로 고집을 버리고 바른 이치에 따라야 하며, 침착성 있게
행동하되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또 모든 사물은 본래 공(空 = 수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관찰하되, 이것에 집착하고 분별하여
사물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며, 그렇지만 모든 사물은 꼭 생겨나야 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므로
그 개별적인 특징도 인정하여야 하는 것이니, 있다, 없다 하는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해서 행동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것이 큰 뜻을 세운 구법자로서의 행동이라고 하느니라.

그러면 어떠한 것이 큰 뜻을 세운 구법자들의 교제하는 대상이며 범위인가 하면,
우선 높은 지위나 권세가 있는 국왕, 왕자, 대신, 관청의 장을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된다.

또 여러 가지의 이교도[外道]와 바라문교의 수행자와 자이나교를 믿는 니건자[尼健者]와
세속적인 문필가나 시와 노래를 짓는 사람과 타종교의 글을 쓰는 사람과 유물론적 쾌락주의자인
로가야타[路伽耶陀]와 무당이나 점장이 등, 주문(呪文)의 신봉자인 역로가야타(逆路伽耶陀)의
사람들과도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투기꾼이나 사기꾼과 주먹을 서로 휘두르는 경기, 씨름 및 힘 자랑 등과 광대, 마술사처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도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막되어먹은 인간인 전다라와 돼지, 양, 닭, 개를 기르는 사람이나, 사냥꾼이나 고기잡이하는 등,
자기의 생활을 위하여 악업을 쌓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과도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혹시 이와 같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법을 듣고자 하면 친절하게 설하여 주어라.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오직 큰 자비심만 가지고 설하여야 하며, 마음에 어떤 이익을 바라고 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 오직 자기만 구제 받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고 있는, 성문의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과도 가까이 해서는 아니 되며, 또 이들에게 가르침에 대해 질문하지도 말아야 하며,
또 승방이나 경행하는 장소나 강단 안에서도 그들과 대등한 교제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만일 가르침을 들으려고 찾아오는 때에는, 상대방과 경우에 따라 가르침을 설하여 주되,
마음에 어떤 이익을 바라고 설하여서는 아니 된다.

문수사리여, 또 큰 뜻을 세운 구법자는 남녀간의 관계에 특히 주의하여야 하는 바, 여인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 있어 그 여인으로 하여금 음욕을 품도록 하는 태도를 취하여서는 아니 되며, 또 여인과 자주
만나기를 원하는 마음도 삼가야 한다. 만일 남의 집에 들어갔을 경우에도, 소녀와 처녀 그리고 과부와
지껄이는 것은 옳지 않으며, 또한 태어날 때부터 불능인 자, 반 달만 불능인 자, 양근이 서로 투기하여
불능한 자, 정 불능 또는 변 불능인 자, 독충에게 물렸거나 잘려서 불능인 자 등,
다섯 가지 불완전한 남자[五種不男]와도 가까이 지내는 것도 피해야 한다.
그리고 혼자서 남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 만일 부득이한 경우에는 들어갈 대부터 나올 때까지
오직 부처님과 함께 있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여인에게 가르침을 설할 기회가 있을지라도, 이빨이 보이도록 웃어서는 아니 되며,
가슴이 드러나 보이는 옷차림을 하여서도 아니 된다. 비록 가르침을 설하기 위한 경우일지라도,
너무 허물없이 친해진다는 것은 옳지 않을진대, 하물며 그 밖의 다른 일이야 더욱 그러하다 할 것이다.

나이 어린 제자나 아직 득도하지 못한 사미[沙彌]나, 예쁜 아이를 신변에 가까이 두는 것은 좋지 못하며,
그런 아이들과 한 스승 아래서 함께 배우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항상 좌선하기를 좋아하여 조용한 곳에서 정신을 통일하는 데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문수사리여, 이것이 큰 뜻을 세운 초심의 구법자가 지켜야 할 구법자로서의 교제하는 대상,
또는 그 범위이니라.
또, 큰 뜻을 세운 구법자들이여, 이 세상의 일체의 현상에 대해 그 진실한 모습을 꿰뚫어볼 때에,
그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공(空)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느니라.
그것이 일체의 현상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니라. 즉, 인간의 착각에 바탕을 두고 거꾸로
보지 않는 진실한 모습이니라. 우리들의 눈으로 보는 현상의 세계에서는, 사물이 움직이고 있다든가,
쇠퇴해 가며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의 세계에 있어서의
그와 같은 변동은 일체 없고 마치 진공과 같아 고전적인 실재성이 없는 것이니라.

이 실상은 말로써 설명되거나 표현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어떤 것으로부터 생한 것도 아니고
어디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없는 곳에서 불쑥 솟아난 것도 아니니라.
그러므로 그 자체는 이름도 없고 그 자체의 모습도 없으며, 실재이기는 하지만 고정된 실재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니라. 그리고 이 실상은 한량이 없어 헤아릴 수가 없으며 어디까지는 있고,
그밖에는 없다 하는 것처럼 끝이 있는 존재가 아니고, 어떤 것에 의해 가로막히는 일이나
방해받는다고 하는 부자유성이 전혀 없으며, 이 우주에 두루 가득하게 있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현실에 있어 우리들의 주위에 있는 사물을 어찌 생각하여야 할 것인가 하면,
첫째로 어떤 원인이 어떤 조건을 만나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임을 깨닫는 것이요,
둘째로 그것은 인류의 오랜 역사 동안에 걸쳐 만들어진 착각의 습성에 의해,
실상을 휘어 꺾어서 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나는, ‘항상 자진하여 그 사물 속에 있는 실상을 보아라’ 하고 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뜻을 세운 구법자의 두 번째의 교제하는 대상과 범위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그 뜻을 거듭 펴시고자 하여 시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구법자가 뒤의 험악한 세상에서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 이 법화경 설하려면,
보살로서의 행동과 교제 범위를 알아야 한다.

권세 있는 국왕이나 국왕의 아들이며, 대신과 관청의 장, 흉한 놀음하는 이와 전다라와 이교도와
그리고 바라문의 수행자들을 멀리하고, 또한 깨닫지 않고서도 깨달은 체하는 사람들과 소승의 삼장에
탐착하는 학자들과 파계한 비구니들과 이름뿐인 아라한들, 잘 웃으며 희롱하는 그 모든 비구니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며, 깊이 오욕에 탐착하여 제 몸 열반 구하려는 이러한 우바이도 모두 친근치
말 것이니, 이런 사람일지라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찾아와서 구법자한테 이르러서 부처님의 길 묻거들랑,
구법자는 반드시 거리낌 없는 마음으로 바라는 이익 품지 않고 그들 위해 설법하라.

과부와 처녀들과, 사내 아닌 여러 남자, 모두 다 친근 말고 정도 주지 말 것이며 도살하는 칼잡이와
사냥꾼과 어부들로서, 이익 위해 죽이는 이들 친근치 말 것이며, 살코기 팔아 먹고 살며,
여색 팔아 살아가는 이와 같은 사람들도 모두 다 친근 말며 위험한 힘 자랑이나 가지가지 놀음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며, 음탕한 여자들과도 모두 친근치 말 것이며 남이 볼 수 없는 곳에서 홀로 여인 위해
설법 말고, 만일 피치 못할 경우, 웃고 농담 말 것이며 마을에서 탁발할 때는 비구 하나 데려가고,
만일 비구 없으면 일심으로 부처님 생각하라.

이것을 이름으로 구법자로서의 행동이며 교제 범위라 하노니, 이 두 가지 마음가짐으로 안락하게
설하여라.

또 성문, 연각, 보살의 가르침과 세간의 법, 출세간의 법, 모든 현상 있다?없다 사로잡히지 말 것이며,
이건 남자 저건 여자 분별치 말 것이며 모든 현상, 깨닫고?알고?본 것인 체 하지 말며, 일체의 현상은
본래 공이라서 고정된 실체 아니므로 변치 않는 것 없거니와 또한 일어남도 멸함도 없나니,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이런 깨달음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착각하여 여러 사물 있다, 없다, 실재이다, 비실재이다, 생한다, 생하지 않는다 분별하지만,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그 마음 잘 다스리어 수미산처럼 흔들림 없이 편안하게 머무르며
모든 사물 꿰뚫어보면, 실재하는 것 하나 없고 마치 허공 같아 고정된 것 없으며, 생하는 것 아니며
나온 것도 아니며, 변하거나 쇠퇴하는 것도 아니며 항상 존재하는 하나의 모습이니,
이것이 교제 범위이다.

만일 어떤 비구 내가 멸도한 뒤에 있어, 행동과 교제 범위 지키는 이 있다면,
이 법화경 설할 적에 비겁하게 약한 마음 하나 없으리라.

구법자는 어느 때든지 고요한 집에 들어가서 바른 기억 불러 일으켜 참 뜻을 명상하고,
명상에서 일어나면 여러 국왕과 왕자들과 신하들과 국민이며, 바라문들 위하여서,
참 뜻을 알기 쉽게 이 가르침 설한다면, 그 마음 편안하여 망설이지 않으리라.

문수사리여, 이것이 구법자로서의 지녀야 할 첫 번째의 마음가짐이니, 뒤의 세상에서 이 마음 가지고서
법화경 설하여라.』

“또 문수사리여, 여래가 멸도한 뒤의 바른 가르침이 쇠퇴하는 말법의 세상에서 이 법화경을 설하려거든,
마음의 행법을 잘 지켜 안락하게 설하여라.

입으로 가르침을 설할 때나 또는 경전을 읽을 때나, 즐겨 남의 허물을 파헤치거나 경전의 허물을
들추어내어서 말하지 말라. 또 가르침을 설하는 다른 법사들을 경멸해서는 아니 되며,
또 다른 사람의 좋고 나쁜 장단점을 비판해서도 아니 된다.

성문의 사람들이 가진 허물을 그 이름 들어 말하지 말고, 그렇다고 좋은 점도 말하지 말라.
그리고 또 그들을 혐오하거나 적대심을 가지지 말라.

이와 같이 편안한 마음으로 법을 설하는 길을 닦아 자기 것으로 한다면, 이 가르침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그 뜻을 거역하지 않고 순수하게 들을 것이며, 혹 어려운 질문을 받더라도 소승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대답하지 말고 오직 대승의 가르침에 의해 자세히 설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는 평등상과 차별상을 뚜렷이 밝히는 지혜인, 일체종지를 얻도록
인도하여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