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43. 사치스럽고 포악한 주지 / 혁휴암(奕休艤)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0:24
 

 

 

43. 사치스럽고 포악한 주지 / 혁휴암(奕休艤)


혁휴암(奕休艤)은 양주(揚州) 사람이다. 젊은시절, 회전(淮甸), 연경, 오대산 등지를 돌아다니다가 흉년을 만나 상선을 얻어 타고 명주(明州)에 왔다가 천동사의 객승이 되었다. 낡고 헤진 승복을 입고 하루 한 끼 먹으면서 밤을 새워 정진하니, 옛 스님의 의젓한 풍채가 있었다.

봉화(奉化) 상설두사(上雪竇寺)에 주지자리가 비어 대중이 글을 올려 주지가 되어달라고 청하니, 혁휴암은 흔쾌히 수락하고 삿갓 하나만을 들고 그곳으로 갔다. 그러나 방장실에 앉아 돈과 양곡을 관장한 지 일 년이 못되어 지난날 하던 것이 모두 바뀌었다. 허수룩하게 낡은 승복은 이제 가벼운 털옷으로 바뀌었고, 지난 날 하던 한 끼 공양은 이제 진수성찬으로 널려졌다. 그리고 좌우 사람들이 자그마한 계율이라도 범하기만 하여도 성을 내며 스스로 일어나 몽둥이로 때리고 그가 땅에 엎어지면 다시 직성이 풀릴 때까지 실컷 주먹질 발길질을 해댔다. 이윽고 사원의 진귀한 물건들을 모조리 긁어다가 은성(鄞城) 민가를 사들여 암자로 바꾸고 그곳에 살면서 날마다 재산 불리는 일만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죽림사(竹林寺) 승려들과 가옥관계로 관청에 소송이 제기되어 부정이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옥중에서 죽고 말았다. 요즘 불문에서 선을 가장하여 명예를 바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욕을 끼치는 자들이 어찌 혁휴암 한 사람에 그치겠는가.

시전(詩傳)에 의하면, 처음엔 잘하지 않는 자가 없지만 끝마무리를 잘짓는 사람은 적다고 하였으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속담에 의하면, 사람에겐 닦아서 얻을 수 있는 복이 있고 연장하여 얻을 수 있는 수명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일세(一世)만을 가지고 이 속담을 논한다면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삼세(三世)로 확실하게 논한다면 그 근원은 알 수 있겠지만 그 변화는 통달할 수 없다. 변화란 일세가 삼세를 포괄할 수 있고, 삼세가 일세에 실현될 수도 있는 것으로서 삼세인과와 일세인과가 시간적으로 멀고 가까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일심에서 짓고 받는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세상 사람 가운데 선행을 하는 자가 도리어 미천하거나 요절하고, 악을 자행하는 자가 도리어 복받고 장수를 누리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전생에 많은 선을 행한 자가 현세에 비록 악한 일을 하였다 해도 현세의 악이 전생의 선을 이기지 못한 까닭에 복을 받고 오래 사는 것이며, 전생에 많은 악을 행한 자는 비록 현세에 선을 행하였다 하지만 현세의 선행이 전생의 악을 이기지 못한 까닭에 비천하고 요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세의 선악과 대한 과보 또한 내생(來生)에 있는 법이다. 혹시 전생의 선행이나 악행이 그리 무겁지 않아서 현세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많다면 미천함과 요절은 복과 장수로 변하고, 복과 장수는 미천함과 요절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변화에 통달하여 삼세인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고, 일심이 짓고 받는다는 이치에 어두워 현세의 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