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47. 머리를 깎다가 사리를 얻다 / 서천축 판적달(板的達)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56
 

 

 

47. 머리를 깎다가 사리를 얻다 / 서천축 판적달(板的達)스님


서천축국(西天竺國)의 큰스님 판적달(板的達)은 선정(禪定)을 굳게 닦으시고 아울러 계율까지 잘 지켰다. 세 벌 옷과 바리때 하나만을 몸에 지닐 뿐이었고, 시주를 얻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세상살이에는 그저 담담하였다. 홍무(洪武) 7년(1374) 남경(南京)에 도착할 즈음, 황제는 관리에게 명하여 천계사(天界寺), 장산사(山寺)의 주지와 함께 남경 여러 사찰의 승려를 인솔하여 교외에 나아가 맞이하고 깃발과 향과 꽃으로 그를 인도하여 대궐로 모셔오도록 하였다. 황제를 알현하자 황제는 기뻐하시고 깊은 총애와 후한 하사품을 전하였으며 장산사에 유숙하게 하고 사신을 보내 자주 문안을 드렸다. 그해 겨울 황제는 친히 고명(誥命)을 지어 도장을 새겨주고 그에게 선세선사(善世禪師)라는 법호를 내렸다.

당시 나는 천계사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금단(金壇)의 이발사 장생(蔣生)이 스님의 머리를 깎아 머리털을 쟁반에다 받아 놓았다. 처음 머리를 깎아 쟁반에 놓자 낭랑한 소리가 울리니 시자승이 재빠르게 덥쳐갔다. 다음번에 깎은 머리털은 장생 스스로 가져갔는데 그 속에 둥글고 깨끗한, 콩알 만한 사리 한 알이 있었다. 나머지 머리카락은 구경하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모두 가져갔는데 사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당시 모두 세 알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장생이 얻은 사리만을 보았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선세스님의 시자승이 나에게 말하기를,

이런 일은 우리 스승에게 항상 있는 일이지만 세상에 자랑거리가 될까 두려워 머리를 잘 깎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홍무(洪武) 9년(1376) 가을, 선세스님은 황제의 명으로 절강좌성(浙江左省)으로 내려와 육왕사의 사리탑과 보타관세음(寶陀觀世音)의 시현(示現)을 위해 예배하였다. 두 곳에서 매우 특이한 상서로운 빛과 모습이 나타났으며, 스님은 두 곳에서 모두 게송을 읊었는데 다 범자(梵字)로 씌어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