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48.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맹세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57
 

 

 

48.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맹세


원대(元代)에 복건 도운사(都運司) 모(某)씨의 생일날, 서리(胥吏)인 주청(周淸)이 생일잔치를 마련했는데 상 위에 쇠고기가 있었다. 이에 도운사는 급히 쇠고기를 치우게 한 후 여러 손님에게 천천히 설명하였다.

”내 젊은 시절 외가의 아우 아무개와 함께 한 백정집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막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에 그 백정은 왼손에는 칼을 들고 오른손에는 송아지가 있는 암소 한 마리를 끌고와 처마 기둥에 묶고서 그 앞에 칼을 놓고 떠나가자 송아지가 갑자기 칼을 입에 물고 채소밭으로 달려가 발로 땅을 파헤치고 칼을 묻어버렸습니다. 백정이 돌아와 칼이 보이지 않자 화를 내기에 그 까닭을 말해 주었더니, 그는 칼을 찾은 후 문턱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탄식을 하다가 그 칼로 자기의 머리를 깎고 처자를 버린 채 출가하여 불법을 배웠는데, 지금 그가 어디에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후 외가 동생이 벼슬차 강서지방으로 부임하는 길에 배를 타고 황하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황량한 강기슭에서 쉬게 되었는데 건너편에 어슴프레하게 큰 집이 한채 보였습니다. 그 저택은 높고 넓었으며 엄숙하고 반듯하게 정돈되어 마치 제왕의 거실 같았습니다. 이에 강기슭을 올라가 저택으로 다가가 문지기에게 이곳이 뭐하는 곳이냐고 공손히 묻자, 이곳은 관청인데 구경하고 싶다면 들어와도 막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문안으로 들어가 보니, 큰 의관에 긴 허리띠로 단장한 사람이 정청(正廳)에 반듯이 앉아 있기에 그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습니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서울에서 왔다 하고, 이곳이 무슨 관아냐고 물으니 이곳은 천하태을뢰산(天下太乙牢山)으로 여기에서는 소 백정만 전문적으로 다스리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웃집에 살던 백정 황씨네 넷째아들이 죽은 지 열흘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곳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있다 하기에 그를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황씨네 넷째는 목칼을 덮어 쓰고 쇠고랑에 묶인 채 끌려오다가 우리 외동생을 보자 깜짝 놀라서, 그대가 어찌하여 이곳까지 왔냐고 묻기에 임지로 부임하던 중 우연찮게 이곳에 들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그대의 죄를 벗겨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죄가 너무 무거워 벗어날 길이 없지만 관리께서 부임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권하여 120마리의 소를 죽이지 않으면 죄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이 끝나자 고개를 돌려보니 그 저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외가동생은 이때부터 사람들에게 소를 잡지 말도록 권했는데 그가 말한 수효를 모두 채우던 날 밤 황씨네 넷째가 외가동생을 찾아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저는 관리께서 소를 죽이지 말도록 권한 은덕으로 이미 죄값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만일 집에 전하실 서신이 있으시면 제가 가져다 드리겠으나 다만 문 안에 던져줄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외동생은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집을 들러 내 옷을 빨리 보내라고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는데 두 달이 지나자 과연 임지에 옷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많은 손님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쇠고기를 먹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