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제5장)10. 벌을 받으면서도 속이지 않다〔受罰不欺〕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7:08

 

 

 송〔趙宋〕의 도해(道楷 : 1043~1118)스님은 기수(沂水) 사람이다.   법을 체득한 뒤 동상(洞上)의 가풍을 크게 드날렸다.   숭녕(崇寧 1102~1106) 연간에 동경(東京) 정인사(淨因寺)에 주지로 임명되었고, 대관(大觀 : 1107~1110) 연간에는 천녕사(天寧寺)로 옮겼다.   임금께서 자의(紫衣)를 하사하고 정조선사(定照禪師)라는 호를 내리자 글〔表文〕을 올려 사양하고 받질 않았다.

   임금께서는 다시 개봉부윤(開封府尹)인 이효수(李孝壽)로 하여금 몸소 조정에서 훌륭한 사람에게 포상하려는 의도를 설명하게 하였으나, 스님은 확고하게 뜻을 바꾸지 않았다.   임금이 진노하여 관리에게 체포하라 분부하자, 그 관리는 스님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스님에게 질문하기를,

   "장로(長老)께서 마르고 초췌하시니 병이 있으신지요?"

하자, 대답하였다.

   "병은 없다."

   "병이 있다 말씀하시면 법으로 벌을 면할 수 있읍니다."

   "어찌 감히 병이라 속여 죄에 대한 꾸짖음을 면하기를 구하겠는가?"

   관리는 크게 한숨을 쉬며 드디어 벌을 받게 하였다.   스님의 몸에 죄목을 먹으로 써서 치주(淄州)로 귀양을 보내게 되었는데, 보는 사람들마다 눈물을 흘렸으나 스님은 몸과 마음이 태연자약하였다.

   치주에 이르자 셋방을 내어 거처하였는데 학자들이 더욱 가까이 하였다.   그 이듬해 칙명으로 석방되자 부용호(芙蓉湖)에 암자를 짓고 지내었다.

 

   찬탄하노라.

 

   영화로움이 왔는데도 사양함은

   사람으로서 하기 어려우며

   이를 거절하여 벌이 내렸는데도

   벌을 받을지언정 속이지 않았으니

   가장 어려운 일이라 하지 않겠는가?

   충신들을 기록한 열전 가운데서도

   이런 경우는 보기 드무니

   이를 기록하여 세상 사문들을 일깨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