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제6장) 4. 자비와 공경으로 보시를 행하다〔悲敬行施〕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7:15

 

 

 

수(隋)나라 영유(靈裕 : 518~605)스님은 정주(定州) 거록(鉅鹿) 사람으로 15세에 조군(趙郡) 응각사(應覺寺)에 출가하였는데 경론에 널리 통하여 명성이 온 나라에 자자하였다.   그의 보시행은 자비와 공경을 함께 하였으니, 가사(袈裟)로 은혜를 보답한 것이 천 벌도 넘었으며, 병을 앓아 치료받고자 하는 자들에게 베풀어 준 약도 계산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맛 좋은 음식을 얻었다 하면 반드시 먼저 스님께 공양하였고, 길을 막는 축생에게도 일찌기 꾸짖거나 침을 뱉지 않았다.   나아가서는 어린아이를 책망하고 대중을 훈계하는 일에서도 자기를 지칭할 때는 아무개라고 이름을 쓰고, 상대방에겐 인자(仁者)라는 존칭을 쓰며, 간절하고 뼈아프게 타일렀으므로 듣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