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隋)의 보안(普安 : 530~609)스님은 서울 경양(涇陽) 사람으로 후주(後周)의 세종(世宗)이 불법을 탄압하자 종남산(終南山) 편재곡(楩梓谷)에 은거하였다. 몸을 돌보지 않고 고행을 하였는데, 혹은 풀밭에서 몸을 드러내놓고 모기들에게 피를 보시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널린 시체 사이에 누워 있으면서 호랑이나 표범에게 보시하기도 하였다.
이 때 나라에서는 스님 한 명 잡아오는 데 비단 10필을 현상금으로 내린다 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 스님을 잡으러 찾아오자 스님은 기꺼이 그를 위로하고 깨우쳐 주며 이렇게 말하였다.
"가난에 쪼들린 그대 모습을 보고, 마침 내 몸을 주려던 참이었다네."
그리고는 그를 위해 음식을 차려주고 함께 서울로 들어갔다.
황제가 말하기를,
"나라 법이 각박하여 승려를 민간에 허락하지 않는데도, 그대가 오히려 민간의 딱한 처지를 도왔구료. 승려를 산중에서마저 살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면 쫓아낸들 어디로 가겠는가?" 라고 하며 스님을 산으로 들어가도록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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