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나라 도광(韜光)스님은 영은산(靈隱山) 서쪽 봉우리에 띠집을 짓고 살았다.
자사(刺史)인 백거이(白居易)가 음식을 갖추어 놓고 그를 맞으려 하자,
스님은 게송으로만 답례하고 가지 않았다.
그가 답한 시 중에,
석장을 짚고 감히 성시(城市)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놀란 꾀꼬리가 화려한 누각에서 지저귀는 것을 염려해서라네
하는 귀절이 있으니, 그의 고상한 경지가 이와 같았다.
찬탄하노라.
일찍이 고덕(古德)이 조정에 있는 귀한 사람의 연회에 초청된것을 거절하여 읊은 게송에 이런 귀절이 있다.
어제는 오늘 가겠다 기약하였더니
문을 나서 지팡이에 기대어 다시 생각해 보네.
승려는 산골짜기에 거처함이 합당하며
나라 선비의 잔치에 감은 마땅치 않네.
이는 도광스님의 고상한 경지와 앞뒤를 가릴 수 없으니 같은 바퀴자국에서 나온 듯하다.
아, 이 두 게송은 납자라면 아침 저녁으로 한 번씩 읊조려야 옳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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