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제7장)14. 하사한 가사를 끝내 사양하다〔力辭賜紫〕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7:59

 

 

 

  오대(五代) 시대의 항초(恒超 : 877~949)스님은 범양(范陽)사람으로, 개원사(開元寺)에 머물면서 경론을 20 여 년이나 강론하였다.   

그 동안에 고을의 목사(牧使)와 사신들이 저마다 명함을 디밀며 뵙고자 하였으나,

스님은 대부분 동자에게 명함을 거두라 하며 직접 만난 사람이 퍽 드물었다.   

이때에 군수 이공(李公)이 조정에 아뢰고 자의(紫依)를 하사하려 하자,

이를 시(詩)로써 사양하였는데,

 

   맹세코 경론을 전수하다 죽을지언정

   명리에 오염되어 살지는 않겠노라.

 

라는 귀절이 있었다.   

이공이 다시 다른 사람을 시켜 권명하였으나,

스님은 확고한 그 뜻을 결코 바꾸지 않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다시 오면 나는 저 노룡(盧龍)땅 변방 밖에 있으리라.”

 

   상국영왕(相國瀛王)인 풍공(馮公)도 그의 명성을 듣고 편지를 보내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자 항초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빈도가 일찍 부모를 버리고 뜻을 극복하며 수행한 이유는 본디 미륵보살께서 이름을 알아주시옵기를 기약한 것이지, 헛되이 조정의 재상들에게 전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헛된 명예와 들뜬 이익에 마음을 머물도록 하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풍공은 그를 더욱 존중하여 조정에 표문(表文)을 올리고 억지로 자의(紫依)를 하사하였다.    

스님이 돌아가시던 날에는 천악(天樂)이 허공에 가득하였는데,

이는 그가 도솔천에 환생한 분명한 증거이리라.

 

   찬탄하노라.

 

   황금빛 가사를 몸에 두르고

   재상의 문전에서 사교하는 일은

   범부나 깊이 원하면서

   그것을 얻지 못할까 염려할 뿐이다.

   전부, 항초 두 스님께서는

   두 번 네 번 굳게 사양하면서

   자신을 더럽히는 일인 양 여겼다.

   맑은 바람 천고(千古)에 부니

   진실로 불길같이 치닫는 마음을 식히고

   명리에 취한 눈을 깨웠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