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당(後唐) 정변(貞辨 : 863~935)스님은 중산(中山) 사람이다. 스님은 각고의 정진을 하면서 피를 뽑아 경전을 쓰기도 하였다. 이 때 병주(幷州)에서는 외부 승려를 용납하지 않았으므로 스님은 들판 밖으로 나가서 옛 무덤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무제(武帝)가 사냥놀이를 하고 있을 때 스님은 무덤에서 나왔다가 깃발이며, 말, 수레들을 보고는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제는 스님을 사로잡아 그 까닭을 묻고 무덤 속을 조사해 보니, 풀로 만든 방석과 책상, 벼루, 소초(疏鈔)만이 널려져 있을 뿐이었다. 무제는 스님을 왕부(王府)에 들어오게 하고 공양하였으며, 관태후(管太后)도 깊이 우러러 존중하였는데, 스님은 마침내 태후께 호소하며 말하였다.
“본래 이 몸은 불법 배우는 것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왕궁에 오래도록 머무는 것은 마치 수갑을 차고 있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그가 자유롭게 살도록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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