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宋)의 설두 중현(雪竇 重顯 : 980~1052)스님은 지문 조공(智門祚公)에게 법을 얻었다.
한번은 스님이 절동(浙東). 절서(浙西) 두 지방에 유람하려 하자, 학사(學士)인 증공(曾公)이 말하였다.
“영은산(靈隱山)은 천하의 명승지이며 그 곳 산선사(珊禪師)는 나의 친구입니다.
그리고는 편지를 써서 중현(重顯)스님을 추천하여 주었다.
스님은 영은산에 이르러 3년간을 대중 가운데 숨어 살았다.
얼마쯤 지나서 증공이 절서 지방에 명(命)이 있어 갔던 길에 영은산으로 중현스님을 방문하였는데,
대중 가운데는 아는 이가 없었다.
그 때에 대중이 천여 명이나 살았으므로 관리를 시켜 승적을 모두 뒤지게 하였다.
마침내 중현스님을 찾아내어 지난날 주었던 추천서에 대해 묻자, 스님이 소매 속에서 이를 내어 놓았는데 봉함(封緘)이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스님이 말하였다.
“공의 뜻은 갸륵합니다. 그러나 행각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구하는 것이 따로 없는데 감히 추천이나 영달을 바라겠습니까?”
증공은 크게 웃었고, 산선사(珊禪師)는 이로써 중현스님을 기이하게 여겼다.
찬탄하노라.
요즈음 사람들은
귀한 벼슬아치의 편지를 얻으면
귀한 구슬을 얻은 듯 여기며
밤낮으로 써주기를 구한다.
이는 설두스님의 가풍을 들어보지 못해서이리라.
나는 설두스님이 염창(拈唱)한 종승(宗乘)이
번갯불이 걷히듯 우뢰가 진동하듯 하며
덕산(德山), 임제(臨濟)의 모든 노숙(老宿)들에
양보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더니
그의 평생을 상고해 보니
그 그릇과 도량이 원래 범상치 않았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자신부터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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