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제7장)17.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버리다〔棄書不拆〕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8:04

 

 

 

송(宋)나라 무녕(武寧)의 혜안(慧安)스님은 원통 수(圓通秀)스님과 함께 철벽 같은 마음으로 천의(天衣)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혜안스님은 무녕(武寧)의 황폐한 마을 부서진 사원에서 외롭게 30여 년을 지냈고, 원통스님은 조서에 응하여 법운사(法雲寺)에 거처하였는데 그 위광(威光)이 매우 빛났다.   하루는 원통스님이 편지로 혜안스님을 초청코자 했으나 스님은 이를 뜯어보지도 않고 버렸다.   시자가 그 까닭을 묻자 스님이 말하였다.

  "나는 처음 원통스님에게 빼어난 기운이 있으리라 여겼는데 지금에야 그의 어리석음을 알겠다.   출가한 사람이라면 무덤 사이나 숲 아래서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일대사를 결판내야 한다.   그런데 까닭없이 팔방으로 통하는 번화한 거리에 큰 집을 지어놓고 수백명의 한가한 놈들을 기르고 있구나.   이는 참으로 눈뜨고 침상에 오줌을 싸는 격이니, 내가 무엇 때문에 다시 그를 대하겠는가?"

 

   찬탄하노라.

 

   원통스님은 대중이 많았고

   혜안스님은 홀로 있었으나

   이는 서로의 입장을 바꾸면 모두가 그러했으리라.

   혜안스님이 원통스님을 비난하고 꾸짖었던 것은

   세상의 완악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이 모여 있는 것을

   경책하였을 뿐이다.

   미루어 보건대

   그나마 한가한 놈을 기르는 것은 그래도 옳다 할지라도

   요즈음에 길러지는 것들은 부질없이 바쁜 놈들이니

   하물며 무엇을 말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