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제8장) 4. 나무꾼과 목동 속에 자취를 뒤섞다〔混迹樵牧〕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8:18
 

   당(唐)나라 보원(普願 : 748~834)스님은 정주(鄭州) 신정(新鄭) 사람이다.   대외산(大隈山) 대혜(大慧)스님을 의지하여 수업하였고, 강서(江西) 마조(馬祖大師)스님에게 법을 얻었다.   훌륭한 도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잘난 점을 숨기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처럼 처신하였다.

   정원(貞元) 10년(794)에 지양(池陽) 남전산(南泉山)에 지팡이를 걸어놓고 도롱이와 삿갓 차림으로 소를 먹였다.   나무꾼과 목동에 뒤섞여 산을 깎아 밭을 일구며 산에서 30년을 내려오지 않았다.

   태화(太和) 연중(827~835)에 지양태수가 선사(宣使)인 육공(陸公), 호군(護軍)인 유공(劉公)과 함께 법석을 열어달라고 굳이 청하여 이로써 도화(道化)가 크게 펴졌으며 호를 남전고불(南泉古佛)이라 했다.

 

   찬탄하노라.

 

   혜원(慧遠)스님 그림자는

   여산에서 40년을 벗어나질 않았고

   왕노사〔南泉普願〕의 발걸음도

   남전산을 30년이나 내려오질 않았으니

   이는 모두 옛사람의 꿋꿋한 절개이다.

   그러나 모두 뜻을 체득한 후의 일이지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출가한 사람이 생사대사를 밝히지 못했다면

   천리를 멀다 말고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어리석음을 지키며

   부질없이 앉아서 스스로 좋은 기회를 잃는가.

   조주(趙州)스님은 80세에도 행각하였고

   설봉(雪峯)스님은 투자산(投子山)에 세 번, 동산(洞山)에 아홉 번을 올랐다.

   어리석게 은둔하는 사람을 위해서 감히 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