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第一心
我皆令入無餘涅槃 而滅度之
내가 이제 모든 중생을 무여열반에 들게 해서 적멸의 세계로 인도 하리라.
<보충설명1>무여열반은 조금만큼의 찌꺼기도 남지 않고 일체의 번뇌 망상이 모두 사라진 완전한 열반으로서 아무런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모두 이 완전한 열반의 환희 상태에 있음을 알고 손뼉을 쳤고 육조 스님은 恒淸淨으로 무여열반의 상태를 말씀했습니다.
<보충설명2>구류중생을 절대 평등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바로 광대한 마음이고, 구류중생을 모두 제도해서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열반의 모습으로 인도하겠다는 보살의 마음이 바로 제일의 마음입니다. 또, 모든 중생을 제도하되, 제도했다는 한 생각마저도 갖지 않는 마음이 항상스런 마음입니다.
卽無住處涅槃 不共二乘 故云第一 無着 云何故 願此不可得義 生所攝故 又云卯濕 無想有頂 則不能 云何普入 有三因緣 一 難處生者 待時故 二 非難處生 未成熟者 成熟之故 三 已成熟者 解脫之故
곧, 머무르는 곳 없는 열반(無住處涅槃)은 二乘(성문, 연각)과 같지 않으므로 제일이라 한 것이다. 무착이 이르길 “무슨 까닭으로 이 가히 얻을 수 없는 뜻에 원력(→구류중생을 모두 제도한다는 원력)을 세우는가? 모든 중생은 평등한 법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하였으며, 또 이르길 “난생, 습생과 무상천, 정거천의 중생은 법을 듣기 어렵거늘, 어찌 널리 열반에 들게 하는가? 세 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니, 첫째는 불도의 수행이 어려운 곳에 태어난 중생은 시절인연을 기다려주기 때문이요, 둘째는 법을 들을 수 있는 곳(非難處)에 태어나 아직 불법에 미숙한 중생은 성숙시켜주기 때문이요, 셋째는 이미 성숙한 중생은 해탈에 들게 하기 때문이니라.” 하였다.
<보충설명1> 성문, 연각의 이승(二乘)은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원력이 없기 때문에 무여열반이 될 수 없다는 것이 ‘不共二乘’입니다.
<보충설명2> 다른 성현의 가르침과 달리 불교는 구류중생이 모두 절대평등의 한 법계에 속해 있으면서 반야를 본래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제도 받지 못할 중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질로 구성된 우리 몸에 깃들어 있는 불성, 일상생활 곳곳에서 시시각각 먹고 자고 움직이는 일체의 행위 가운데 깃들어 있는 마음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으로 승화되어 대변됨으로써 무한한 도의 바탕을 알게 됩니다.
{六祖}卯生者 迷性也 胎生者 習性也 濕生者 隨邪性也 化生者 見趣性也 迷故 造諸業 習故 常流轉 隨邪 心不定 見趣 多淪墜 起心修心 妄見是非 內不契無相之理 名爲有色 內心守直 不行恭敬供養 但見直心是佛 不脩福慧 名爲無色 不了中道 眼見耳聞 心想思惟 愛着法相 口說佛行 心不依行 名爲有想 迷人 坐禪 一向除妄 不學慈悲喜捨智慧方便 猶如木石 無有作用 名爲無想 不着二法想故 名若非有想 求理心在故 名若非無想 煩惱萬差 皆是垢心 身形無數 摠名衆生
난생은 미혹한 성품의 중생이요, 태생은 업(業)을 익혀 사는 성품의 중생이요, 습생은 삿됨을 따르는 성품의 중생이요, 화생은 나아갈 곳을 보는 성품의 중생이다. 미혹한 까닭에 모든 업을 짓고, 습기(習氣)로 행하는 까닭에 항상 육도(六道)에 유전(流轉)하며, 삿됨을 따르므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며, 견취로서 다분히 나쁜 갈래에 빠지고 떨어진다. 마음을 일으켜서 마음을 닦되 망령되이 시비하고 내면으로 무상(無相)의 이치에 계합하지 못하면 유색(有色)이라 이름하고, 내심으로는 바른 이치를 지키되 공경과 공양을 행하지 않고 다만 바른 마음이 부처라고 주장하면서도 복과 지혜를 닦지 않으면 무색(無色)이라 이름하고, 중도(中道)를 요달하지 못하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따지고 사유하여 법상에 집착하면서 입으로는 부처님 행실을 설하되 마음으로는 행하지 않음을 유상(有想)이라 이름하고, 미혹한 사람이 좌선하며 한결같이 망상은 제거하지만 자비희사와 지혜방편을 배우지 않아서 오히려 목석(木石)처럼 깨달음의 작용(→불사)이 없는 것을 무상(無想)이라 이름하고, 無有의 두 가지 법상(法想)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비유상(非有想)이라 이름하고, 이치를 구하는 마음을 따로 갖기 때문에 비무상(非無想)이라 이름 붙일 수 있으니, 번뇌의 다소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 때 묻은 마음이요, 몸의 형태는 무수하나 모두 중생이라 이름한다.
如來 大悲普化 皆令得入無餘涅槃也 而滅度之者 如來 指示三界九地衆生 各有涅槃妙心 令自悟入無餘 無餘者 無習氣煩惱也 涅槃者 圓滿淸淨義 滅盡一切習氣 令永不生 方契此也 度者 渡生死大海也 佛心 平等 普願與一切衆生 同入圓滿淸淨無餘涅槃 同渡生死大海 同諸佛所證也 有人 雖悟雖脩 作有所得心者 却生我相 名爲法我 除盡法我 方名滅度也
여래께서 큰 자비로 널리 교화하여 모두를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 멸도(滅度)하라는 것은, 여래께서 삼계의 구류중생이 각각 열반묘심이 있어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무여열반에 깨달아 들어가게 함을 가르쳐 보이심이니, 무여란 것은 습기(習氣)와 번뇌가 끊어진 것이다. 열반이란 원만과 청정의 뜻이니 일체의 습기를 다 제거하여 영원히 다시 생하지 않게 하여야 바야흐로 열반에 계합하는 것이다. 도(度)는 생사(生死)대해(大海)를 건너는 것이니, 불심이 평등하므로 널리 일체중생과 더불어 원만청정의 무여열반에 들어서 함께 생사대해를 건너 제불(諸佛)의 증득한 바와 똑같이 되려는 원력을 세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비록 깨닫고 비록 닦으나, 얻는 바가 있다는 마음(有所得心→ 어떤 것을 바라거나 노리는 것이 있음)을 짓는 자는 도리어 아상(我相)을 내는 것이니 이름하여 법아(法我)라 한다. 법아를 모두 제거해야 바야흐로 멸도라고 이름할 수가 있다.
{圭峰}三 常心
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實無衆生得滅度者
이와 같이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을 멸도 하되, 실로 한 중생도 멸도 한다는 흔적조차 없느니라.
一 性空故 二 同體故 論 云自身滅度 無異衆生 三 本寂故 四 無念故 五 法界故
(常心이 되는 이유는,) 첫째 성품이 공(空)한 까닭이요, 둘째 나와 중생이 동체(同體)인 까닭이니 반야론에 이르길 ‘자신의 멸도가 중생의 멸도와 다름이 없다’라고 하였다. 셋째는 본래 고요한 까닭이요, 넷째는 무념(無念)인 까닭이요, 다섯째는 법계(法界)인 까닭이다.
{六祖}如是者 指前法也 滅度者 大解脫也 大解脫者 煩惱及習氣 一切諸業障 滅盡 更無有餘 是名大解脫 無量無數無邊衆生 元各自有一切煩惱貪嗔惡業 若不斷除 終不得解脫 故言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 一切迷人 悟得自性 始知佛 不見自相 不有自智 何曾度衆生 祇爲凡夫 不見自本心 不識佛意 執着諸相 不達無爲之理 我人不除 是名衆生 若離此病 實無衆生 得滅度者 故 言妄心無處卽菩提 生死涅槃 本平等 又何滅度之有
여시(如是)는 앞의 법을 가리킨 것이다. 멸도(滅度)는 대해탈이니, 대해탈은 번뇌 및 습기와 일체의 모든 업장이 다 없어져서 다시 찌꺼기가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대해탈인 것이다. 무량무수무변중생이 원래 제각기 일체의 번뇌와 탐진치와 악업을 스스로 지니고 있으니 만약 끊어 없애지 못하면 마침내 해탈할 수 없기 때문에 ‘여시멸도무량무수무변중생(如是滅度無量無數無邊衆生)’이라 하신 것이다.
일체의 미혹한 사람이 자성을 깨달으면, 부처님이 자신의 상을 내세우지도 않고 자신의 지혜도 있다하지 않았음을 비로소 알지니 어찌 일찍이 중생을 제도한다 하겠는가. 다만 범부가 자신의 본심을 보지 못하며 부처님의 뜻도 알지 못하고 모든 상(相)에 집착하여 무위(無爲)의 진리를 요달하지 못한 채 아상, 인상을 제거하지 못하므로 중생이라 이름하니, 만약에 이 병을 여의면 실제로 중생이 멸도를 얻음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망령된 마음이 없는 곳이 곧 보리며 생사열반이 본래 평등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또 어찌 멸도라는 분별상이 존재하겠는가.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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