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대승정종분/5/진리에 명합하여 주와 객을 끊어라

通達無我法者 2008. 9. 30. 16:28

 

 

[圭峰]四
何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卽非菩薩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곧 보살이라 할 수 없느니라.

<보충설명> 나와 남을 구분 짓고, 구제했다는 상을 남긴다면 이것은 보살의 마음이 아니고 전도된 마음입니다. 名相이 남아 있으면 세세생생에 걸친 습기가 처처에 걸리고 진리의 문을 바로 열지 못하게 합니다. 상이 없는 마음, 이것이 바로 전도되지 않은 마음인 불전도심(不顚倒心)입니다.

[說]悲化含生入無餘 智冥眞際絶能所 見有可度 卽乖眞 我人不生 名菩薩
자비로서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무여열반에 들게 하고, 지혜로서 그윽히 진리에 명합하여 주와 객을 끊어야 하리라. 가히 제도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곧 진리에 어긋나고, 아상과 인상이 생기지 않아야 보살이라 이름 하리라.

論 云遠離依止身見衆生等相 故 無着 云已斷我見 得自行平等相故 信解自他平等 顯示降伏心中攝散時 衆生想 亦不轉 如彼爾炎住故
천친론에 이르길, “의지해 머무르는 공간에서 자신의 몸과, 견해와, 중생 등의 상을 멀리 여의었다.” 하였다. 고로 무착도 “이미 我見(자신의 견해)이 끊어져서 스스로 平等相을 얻은 까닭에 자타(自他)의 평등함을 믿고 이해하고, 마음을 항복받는 가운데 산란한 마음을 섭수할 때 중생이라는 생각도 또한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저 근본지에 머무르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보충설명> 爾炎: 梵語의 音譯으로서 근본지, 지혜의 어머니라는 뜻을 지님. 아집에 가려지기 이전에 이미 갖추고 있는 우리의 반야지.

[六祖]衆生 佛性 本無有異 緣有四相 不入無餘涅槃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迷 卽佛 是衆生 悟 卽衆生 是佛 迷人 恃有財寶學問族姓 輕慢一切人 名我相 雖行仁義禮智信 而意高自負 不行普敬 言我解行仁義禮智信 不合敬爾 名人相 好事 歸已 惡事 施人 名衆生相 對境取捨分別 名壽者相 是謂凡夫四相 修行人 亦有四相 心有能所 輕慢衆生 名我相 自恃持戒 輕破戒者 名人相 厭三塗苦 願生諸天 是衆生相 心愛長年 而動修福業 諸執不忘 是壽者相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중생과 불성이 본래 다름이 없건마는 다만 사상(四相)이 있음을 반연해서 무여열반에 들지 못하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다. 미혹하면 곧 부처가 중생이요, 깨달으면 곧 중생이 부처다. 미혹한 사람이 재물과 학식과 족벌이 있음을 과시하여 모든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아상(我相)이라 이름하고, 비록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행하나 거만하게 자부하여 널리 공경을 행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내가 인의예지신을 잘 알고 실천한다’ 라고 말하면 공경에 맞지 않으니 인상(人相)이라 이름하고, 좋은 일은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나쁜 일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이름하고, 경계에 부딪칠 때 취사(取捨), 분별(分別)하는 것을 수자상(壽者相)이라 이름하니, 이것이 말하자면 범부의 四相이다. 수행하는 사람도 또한 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능소(能所)가 있어서 중생을 가벼이 여기면 아상이라 이름하고, 스스로 계를 지키는 것을 과시하여 파계(破戒)한 이를 가벼이 여기면 인상이라 이름하며, 삼악도(三途→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꺼려서 하늘에 나기를 발원하면 중생상이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복업(福業)을 닦고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수자상이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다.

[傅大士]空生 初請問 善逝 應機酬 先答云何住 次敎如是修 胎生卯濕化 咸令悲智收 若起衆生見 還同着相求
공생(수보리)이 처음 물음을 청하매 선서(부처님)께서 근기에 맞추어 응답하시니, 먼저 어디에 머무를지에 대해 답하시고 다음으로 ‘이와 같이 수행하라’(→뒤에 이어지는 묘행무주분)‘고 가르치도다. 태란습화(胎卵濕化) 모두를 자비와 지혜로 거두게 하시니, 만일 중생이라는 견해를 일으킨다면 도리어 상에 집착하여 진리를 구함과 같으리라.

[冶父]頂天立地 鼻直眼橫
이마는 하늘을 이고 있으며 두발은 땅을 딛고 서 있고, 코는 수직이요 눈은 가로로 뜨고 있도다.

<보충설명>사상(四相)이 없는 것을 보살이라고 하니까, 야보스님은 닦는다는 것에 집착할 까봐 이렇게 법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란 본래 머리는 하늘로 향해 있고, 발은 땅을 딛고 서있으며, 코는 수직으로 세워져 있고, 눈은 가로로 뜨고 있는 것처럼 이미 다 온전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說]從一法界 形分九類 形形 皆具一法界 所以 一一頭指天 脚踏地 一一鼻直向下垂 眼橫在上方
한 법계로부터 형상이 아홉 가지 종류로 나뉘었으니, 각각의 형상이 모두 한 법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낱낱모두가 머리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리는 땅을 밟으며, 코는 아래를 향해 수직으로 드리워져 있고, 눈은 가로로 열려 얼굴 위에 있다.

堂堂大道 赫赫分明 人人本具 箇箇圓成 祇因差一念 現出萬般形
당당한 대도(大道)여! 타오르는 불꽃처럼 밝고도 분명하도다. 사람마다 본래 갖추었고 낱낱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도다. 다만 한 생각 그르침으로 만 가지 형상이 현출되도다.

[說]堂堂大道 廓周沙界 赫赫分明 光呑萬像 人人本具 着衣喫飯 彈指揚眉 不要別人 介介圓成 折旋俯仰 歆伸謦咳 不借他力 只因云云 春色 無高下 花枝自短長 自短長 也不妨 九類同居一法界 紫羅帳裏撒眞珠 雖然如是 若但伊麽商量 盡十方世界 都盧是無孔鐵鎚 畜生 求作畜生 餓鬼 永作餓鬼 無有一介 發眞歸源 旣然如是 畢竟作麽生 風和 花織地 雲淨 月滿天
당당한 대도여! 恒沙法界에 확 트여 두루 하고, 불타듯 분명함이여! 광명이 萬像을 삼켰도다.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음이여! 옷 입고 밥 먹는 것, 손가락 튕기고 눈썹 움직이는 것에 따로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니며, 낱낱이 원만함을 이룸이여! 오무렸다 펴고, 굽어봤다 우러러 보며, 하품과 기지개, 기침과 천식이 다른 힘을 빌리지 않는 것이로다. ‘只因---’ 云云은 봄 빛깔 나툼에 고하(高下)가 없지만 꽃가지는 스스로 장단(長短)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스스로 장단이 있음이여! 또한 방해롭지 않으니, 구류중생이 한 법계에 함께 어울려 있음이 자주 빛 비단 보자기 속에 眞珠를 흩어놓은 것과 같도다. 비록 이와 같으나 오로지 이렇게만 헤아린다면 온 시방세계가 한갓 구멍 없는 쇳덩이 같아서 축생(畜生)은 영원히 축생으로 태어나고 아귀(餓鬼)는 영원히 아귀로 태어나서 하나도 진리를 발하여 근원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이와 같다면 필경 어찌해야 하는가? 바람이 온화하면 낙화(落花)가 땅을 수놓고 구름이 맑으면 달이 하늘에 가득 차도다.

<보충설명> 본분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일상생활 모두가 부처님의 방광하는 모습입니다. 이를 넓게 살피면 개나 고양이의 거동도 모두 부처님의 방광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본분의 입장에서만 살피면 단단한 쇠뭉치처럼 경직되어 버립니다. 현실로 나와서 보살도를 실천해야 風月이 읊어지는 것입니다.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