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10월8일 신라문화제의 일환으로 경주 불국사에서 열린 영산대재에 참석한 덕민 스님.
是故 須菩提 諸菩薩摩訶薩 應如是生淸淨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 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이런 까닭으로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낼지니, 색(色)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며, 마땅히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내며,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하니라.”
〈보충설명〉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장엄정토분에서의 ‘應無所住而生其心’은 육조 혜능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조사를 깨달음으로 인도한 四句偈에 속합니다. 시비분별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고 육근과 육진의 경계를 모두 탕탕하게 비운 그 청정한 마음이 우리의 진실된 마음이고 자연스런 모습이면서 그 것이 곧 장엄정토인 것입니다. 법문을 듣기 전에,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가 다 같이 허공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定에 들었던 無漏의 그 마음이 바로 ‘應無所住而生其心’인 것입니다. 장엄정토는, 마치 학의 이마에 붉은 점이 없더라도 모자람이 없는 것처럼, 본래부터 청정하고 원만한 우리의 본분자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국토 건설을 발원하고 佛事를 지으며 사찰을 단청하는 것과 같은 有爲의 장엄은, 마치 모자람이 조금도 없지만 학의 이마에 붉은 점을 수놓는 것처럼, 본분을 돋보이게 하는 풍류입니다.
[說]不須空然遂風波 當在滅定應諸根 是可謂暗中有明 又無所住者 了無內外 中虛無物 如鑑空衡平 而不以善惡是非 介於胸中也 生其心者 以無住之心 應之於事 而不爲物累也 孔夫子 云 君子之於天下也 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 此 言心無所倚 而當事以義也 當事以義則必不爲物累矣 不爲物累則必不失其宜矣 聖人 時異而道同 語異而相須 於斯 可見也已 謝氏 於無適莫註中 引經此句 以爲猖狂自恣 而卒得罪於聖人 何其言之不審 至於如是之甚耶 昔者 盧能 於五祖忍大師處 聞說此經 到此 心花頓發 得傳衣盂 爲第六祖 自爾 五葉 結果 芬芳天下 故知只此一句 出生無盡人天師也 鳴呼 謝氏 何將管見 擬謗蒼蒼乎
모름지기 텅 비워서 바람과 물결을 쫓지 않고 마땅히 멸정(滅定)에 머물러 모든 바깥 경계에 응할지니, 이것이 가히 어둠 가운데에 밝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머무른 바 없다’ 라는 것은 내외(內外)도 없고 마음속도 텅 비어 물질이 다 떨어져 나간 것이 마치 거울이 텅 비어 있는 것과 같고 저울이 물건을 달기 전에 평형을 유지하는 것과 같아서 선악(善惡) 시비(是非)를 가슴 속에 두지 않는 것이다. ‘그 마음을 낸다’라는 것은 머무름이 없는 마음으로 일상생활에 응하지만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이르길, “군자는 천하에 이르러 옳다는 것(→適)에 집착함도 없고, 옳지 않은 것(→莫)에 대한 집착도 없어서 바른 이치(→義)와 더불어 나란히 한다(→比)”고 하였다. 이것은 마음에 치우치는 바 없이 일상생활에 대해 바른 이치(義理)로써 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일상생활에 대하여 바른 이치로써 응한다면 반드시 사물에 累될 것이 없으며(→可, 不可에 대해 국집하지 않으므로), 또 사물에 누될 것이 없다면 반드시 진리에 마땅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성인이 태어나는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도(道)는 같고, 말은 다르지만 서로 보완하고 돕는 것을 이 대목에서 가히 알 수가 있다. 謝氏는 공자의 ‘무적막(無適莫)’에 대해 주(註)를 달면서 금강경의 이 구절을 인용하여 ‘미치고 방자한 말로 마침내 성인에게 죄를 저질렀다’ 하였는데, 어찌 그 말을 신중히 살피지 않고 註 달기가 이처럼 심한 데까지 이르렀는가? 옛날에 혜능은 五祖 홍인대사의 처소에서 금강경 설법을 듣고 이 偈에 이르러 마음의 진리 꽃이 몰록 피어나서 의발(衣鉢)을 전수 받아 六祖가 되었다. 이로부터 다섯 잎이 열매를 맺어 천하에 향기를 드날리니, 다만 이 일구(一句)로 다함없는 인천(人天)의 스승을 배출해 냈음을 알아야 한다. 안타깝도다! 사씨여! 어찌 좁은 소견으로 푸른 하늘을 의심하고 비방하는가?
〈보충설명〉 부처님의 ‘應無所住 而生其心’에 견줄 수 있는 공자의 가르침은 ‘時中’입니다. ‘時中’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이치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천하에 이르러 옳고 그르다는 집착이 없이 사물을 대하면 모든 사람의 주장을 망가뜨리지 않으므로 도둑의 무리에서조차도 통하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冶父]退後退後 看看 頑石 動也
뒤로 물러나 조심조심하라. 완고한 돌이 움직인다.
〈보충설명〉 頑石은 생명이 없는 돌을 말합니다. 應無所住而生其心의 첫 마음 내기가 쉽지 않으므로 그 어려움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山堂靜夜坐無言 寂寂寥寥本自然 何事西風動林野 一聲寒長天
산자락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았으니 적적요요하여 본래 자연스런 한 모습이로다. 어찌 가을바람이 숲을 움직여, 한 소리 차가운 기러기 울음이 먼 하늘에 나르는가?
〈보충설명〉 앞의 두 구절은 응무소주(應無所住), 뒷 구절은 이생기심(而生其心)의 詩的 표현입니다.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