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부할 곳은 무위복승분입니다. 무위복승분의 핵심내용은 무루복이 유루복보다 훨씬 더 수승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값진 물건으로 보시하더라도 그 것은 유위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결국 유루복을 짓는 것입니다. 유루복은 허공처럼 탕탕 비운 마음에 찌꺼기를 남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진정한 복이 못됩니다.
그 반면 금강경 사구게를 수지하는 것은 마음을 탕탕 비운 무위의 행이기 때문에 무루복을 짓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우리가 행하는 유루보시를 外財布施와 內財布施로 나눕니다. 외재보시는 칠보(七寶)와 같은 값진 재물로 남에게 이익을 주는 보시이고, 내재보시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남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공부할 무위복승분에는 아무리 많은 외재보시도 금강경 사구게를 수지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가르침이 전개되며, 나중에 공부할 지경공덕분에는 아무리 고귀한 내재보시라도 금강경 사구게를 투득하여 지혜가 열리는 것보다 못하다는 가르침이 전개됩니다.
앞의 장엄정토분에서는, 오랜 수행공덕으로 수미산처럼 몸이 커진 보신불이라 하여도 그 것은 외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참다운 진리의 몸이라 할 수 없고, 또 겉으로 꾸며지는 불사는 유위적이기 때문에 진정한 정엄정토가 아니므로 우리가 이미 갖추고 있는 청정심을 되찾는 것이 참된 장엄정토라고 강조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앞에서 그렇게 금강경 설법의 주춧돌을 세워주시고, 그 후 여기에서 금강경 사구게를 수지 독송하는 공덕이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수승하다고 우리에게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須菩提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須菩提 言 甚多 世尊 但諸恒河 尙多無數 何況其沙
“수보리여! 항하 가운데의 모래만큼 많은 수의 항하가 있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모든 항하의 모래가 어찌 많다고 하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모든 항하도 오히려 많아서 셀 수 없는데 어찌 하물며 모래알이겠습니까?”
[冶父]前三三 後三三 앞에도 삼삼(三三), 뒤에도 삼삼이로다.
〈보충설명1〉 중국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수, 또는 말이 끊어진 자리를 數字로 표현할 때 ‘전삼삼 후삼삼’이라고 합니다. ‘전삼삼 후삼삼’이라는 표현을 통해 수 개념이 끊어져야 비로소 우리의 본분이 드러나게 됩니다.
一二三四數河沙 沙等恒河數更多 算盡目前無一法 方能靜處薩婆訶
하나 둘 셋 넷~ 항하의 모래를 헤아림이여! 모래알 숫자만큼 항하가 있으니 더더욱 많도다. 셈을 다해서 눈앞에 한 숫자도 없어야, 바야흐로 그 것이 고요한 ‘살바야’도다.
〈보충설명〉 아무리 큰 숫자라도 하나에서 시작합니다. 항하의 모래알이 아무리 많더라도 하나하나 모여서 이루어 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흩어지면 결국 없어지게 됩니다. 모래알이 아무리 많아도 다 없어지고 텅 비어있을 때, 그 모습이 바로 살바야입니다. ‘살바야’는 일체지(一切智)라고 한역하는데, 일체의 지혜를 성취한 것을 말합니다.
須菩提 我今實言 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得福 多不 須菩提 言 甚多 世尊 佛 告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수보리여! 내가 이제 진리대로 그대에게 말하리니,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항하의 모래 숫자만큼 많은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로써 가득 채워 보시한다면 얻을 복이 많겠는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 가운데의 사구게 등을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해 설한다면 이 복덕이 이전의 복덕보다 더욱 수승하리라.”
〈보충설명〉 사구게의 수지공덕이 칠보의 보시보다 훨씬 더 수승하다고 가르치려고 항하의 모래를 언급하신 것입니다. 여리실견분에서는 일체의 모습은 허망한 것이니 相이 없는 모습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고, 정신희유분에서는 사과(四果)의 성인들도 法相이라든가 非法相을 취하지 않는다고 가르쳤고, 장엄정토분에서는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고 가르침으로써 공(空)사상의 기초가 다져지니까 무위복승분에 이르러 금강경의 사구게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강조하신 것입니다.
[六祖]布施七寶 得三界富貴報 講說大乘經典 令諸聞者 生大智慧 成無上道 當知受持福德 勝前七寶福德也
칠보를 보시하는 것은 삼계의 부귀의 과보를 받는 것이요, 대승 경전을 강설하는 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지혜를 내어서 위없는 도를 성취케 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라. 사구게를 받아 지닌 복덕이 앞의 칠보를 보시한 복덕보다 수승하니라.
[冶父]眞鍮 不換金
진짜 놋쇠지만 금하고는 바꿀 수 없다.
〈보충설명〉 칠보로 보시하는 것(→진짜 놋쇠)과 금강경 사구게를 수지 독송하는 것(→금)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入海算沙徒費力 區區未免走紅塵 爭如運出家珍寶 枯木生花別是春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센다면 단지 힘만 허비하는 것이라서, 열심히 하더라도 티끌 세상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어찌 자기 집 보배를 꺼내 고목에 꽃을 피워 특별한 봄을 만드는 것과 같겠는가?
〈보충설명〉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그 것은 남의 돈을 세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의 돈을 세는 것은 나의 富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와 같이 아무리 많은 칠보로 보시하더라도 그 것은 유루복으로서 찌꺼기를 남기는 일이므로 열반과는 상관없이 중생계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것보다는 금강경 사구게를 마음속에 지녀서 영혼의 고목에 꽃을 피워 영원한 봄을 마중하는 것이 더 소중한 일입니다.
선시 맛보기
초여름이면 버들 솜이 많이 날립니다. 버들 솜은 한문으로 유서(柳絮)라고 하며 예로부터 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버드나무는 강가에서 많이 자라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강을 사이에 두고 헤어지는 석별의 정을 표시하는 것으로 곧잘 상징됩니다. 또, 나무의 본체에서 떨어져 나와 종횡무진 날아다니므로 아무런 속박도 없는 자유로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송인(送人) - 정지상 (고려)
雨歇長堤草色多
비개인 강뚝에 풀 빛깔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
그대 떠난 남포엔 슬픈 노래 울리네
大洞江水何時盡
대동강 강물이 언제나 마를까
別淚年年添綠
해마다 이별의 눈물로 물결이 넘치는데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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