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여법수지분/2/무설 가운데 하늘땅 진동하는 진리 있으니

通達無我法者 2008. 10. 5. 06:55

 

 

무설 가운데 하늘땅 진동하는 진리 있으니
 
 
<사진설명>덕민 스님은 “여래는 진리 그 자체이므로 부처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一手擡一手 左邊吹右邊拍 無絃彈出無生樂 不屬宮商律調新 知音知後徒名邈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리고, 왼쪽에서 퉁소 불고 오른쪽에서 박수를 치도다. 줄 없는 거문고에 모습 끊긴 무생(無生)의 음악을 연주해야 세속의 음계(音階)에 속하지 않고 가락이 고르며 싱그러울 것이니, 음률을 알았다고 해버리면 아득히 멀어지는 것이로다.

〈보충설명〉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려도 두 손이 모두 내 몸에 속하는 한 모습입니다. 왼쪽에서 퉁소불고 오른쪽에서 박수를 치더라도 함께 어울리는 한 모습입니다. 반야바라밀이라 하든지 반야바라밀이 아니라고 하든지 진리에서는 모두 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반야바라밀을 독송할 때에도 세속의 소리를 벗어난 진공의 마음으로 독송해야 하는데, 그 반야바라밀이란 이름을 알았다고 하면 이미 이름에 집착하는 것이며 능소(能所)를 나눈 것이기 때문에 진리에서는 십만팔천리나 멀어지는 것입니다.

[說]般若卽非般若 一擡一 左吹右拍 擡吹拍 善則善矣 尙非好手 無絃琴上 彈出無生曲子 始可名爲好手 若是無生曲子 不屬擡與吹拍 雖然不屬彼宮商 格調淸新別宮商 此曲 從來 和者稀 子期之聽 尙茫然
반야가 곧 반야가 아님이여! 한 손은 들고 한 손은 내리고 왼쪽은 퉁소 불고 오른쪽은 박수치는 것이로다. 잘한다면 곧 잘한다고 하겠으나 오히려 좋은 솜씨가 아니니, 줄 없는 거문고에서 무생곡(無生曲)을 연주해야 비로소 좋은 솜씨라 이름 할 것이로다. 만일 무생곡이라면 손들고 손 내리며 퉁소 불고 박수치는 데에 속하지 않으니, 비록 세속의 음계에는 속하지 않으나 격조가 청정하고 싱그러워 특별한 음률이 되도다. 이 곡은 종래로 화답하는 자가 희귀하니, 종자기가 듣는다 하여도 오히려 아득히 멀도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有所說法不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來無所說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겠는가?”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설한 바 법이 없습니다.”

〈보충설명〉 “여래가 설한 바 법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무득무설분에서도 나오고 여기에서도 되풀이하여 나옵니다. 여래는 진리 그 자체이므로 부처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진리는 설할 바 대상도 아닙니다.

[說]佛稱空生善解空 果能知佛本無言 然雖如是 自從阿難結集來 名句文身 差別言詞 布在方策 溢于西乾 盈于東震 至于今 黃面老子 若都無說 如是法藏 夫誰說來 須信道 有言 皆成謗 無言 亦不容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공(空)을 잘 이해한다고 칭찬하신대로, 수보리는 과연 부처님이 본래 말씀이 없었음을 능히 알았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아난의 결집 이래로 법문의 명구와 차별의 말씀들이 여러 책자에 포함되어 인도에도 넘쳐나고 중국에도 꽉 차서 지금에 이르렀는데, 황면노자가 하나도 설한 것이 없다면 이와 같은 법장(法藏)은 누가 설해 왔는가? 모름지기 믿을만하게 말하라. 말씀이 있었다 해도 모두 부처님을 비방하는 말이 되고, 말씀이 없었다 해도 또한 용납되지 못하리라.

[冶父]低聲低聲
조용 조용하라.

〈보충설명〉 진리를 설한 적이 없다고 해서 정말로 하나도 설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무설(無說) 가운데에 하늘과 땅이 진동하는 설함이 있습니다. 야보스님은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목소리를 낮추라는 착어를 내린 것입니다.

[說]佛無所說 是則固是 無言 亦非佛本心 故 云低聲低聲 又莫謂一向無所說 人天耳裡 鬧浩浩 鬧浩浩 伏請 低聲低聲
부처님께서 설한 바가 없음이여! 이는 곧 진실로 옳으나 무언(無言)도 또한 부처님의 본심이 아니다. 그러므로 ‘조용 조용하라’ 고 하였다. 또한 일방적으로 설한 바가 없다고도 말하지 말라. 인간과 천상의 귀에는 시끄럽도록 울려 퍼진다. 시끄럽도록 울려 퍼짐이여! 엎드려 청하노니, 조용 조용하라!

入草求人不奈何 利刀斫了手摩 雖然出入無迹 紋彩全彰見也
풀숲에 들어가서 사람을 찾을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 날카로운 칼로 베고 손으로 뒤져야 하도다. 비록 출입에 종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문채가 찬란함을 보았는가?

〈보충설명〉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문자를 모두 베어내야 하는데 중생들은 언어문자에 들어가서 헤맵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설한 바 법이 없다고 하여 그 것에 집착해 버리면 온 세계에 가득히 빛나는 설법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주에 충만하고 천상과 인간의 귀에 가득 찬 반야바라밀의 설법은 언어문자를 통해서 언어문자를 초월할 때에 비로소 바르게 알게 됩니다.

고전 맛보기

石壕吏 - 杜甫
暮投石壕村 有吏夜捉人
老翁踰墻走 老婦出門看
날 저물어 석호 촌에 투숙하니 관리는 밤마다 사람을 잡아가네.
할아버지 담 넘어 달아나고 할머니는 문 열고 나와 보네.

吏呼一何怒 婦啼一何苦
聽婦前致詞 三男城戍
관리는 호통 치며 화를 내고, 할머니는 울면서 괴로워하네.
할머니가 애통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세 아들이 업성의 보초로 갔다오”.

一男附書至 二男新戰死
存者且偸生 死者長已矣
“한 아들은 편지를 보냈지만, 두 아들은 또 다른 전쟁에서 죽었다오.
살아 있는 사람은 막막해도 살겠지만, 죽은 사람은 영영 끝이잖소?”

室中更無人 惟有乳下孫
孫有母未去 出入無完裙
“방 안에는 남자라곤 하나 없고 오로지 젖먹이 손자만 있을 뿐,
손자에겐 어미 아직 있으나 출입할 치마조차 온전한 것 없다오”.

老力雖衰 請從吏夜歸
急應河陽役 猶得備晨炊
“늙은 내 몸 힘은 비록 쇠약하나, 나리 따라 이 밤에 가려하오.
급한 대로 하양(낙양)의 역사(役事)에 응한다면 아침밥은 지을 수 있으리다”.

夜久語聲絶 如聞泣幽咽
天明登前途 獨與老翁別
밤이 깊자 할머니의 말소리는 끊기고, 울음 삼킨 흐느낌 만 들리네.
날이 밝아 떠날 길에 오르며, 할아버지하고만 작별하네.

〈보충설명〉
1. ‘석호리’는 두보가 안록산의 난 당시에, 지금의 하남성에 있는 석호촌이란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생략된 언어로 고발한 詩인데, 백성의 애달픔을 관조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면서 읊은 것입니다.
2. 幽咽- 숨을 죽이고 울음을 삼키며 뱃속의 오장육부가 오열하는 것.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