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여법수지분/3/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어디인고

通達無我法者 2008. 10. 5. 07:02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어디인고
 
 
須菩提 於意云何 三千大千世界所有微塵 是爲多不 須菩提 言 甚多 世尊 須菩提 諸微塵 如來 說非微塵 是名微塵 如來 說世界非世界 是名世界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삼천대천세계에 있는바 티끌이 많다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사뢰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모든 티끌을 여래가 티끌이 아니라고 말할 새 그 이름이 티끌일 뿐이며, 여래가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고 말할 새 그 이름이 세계일뿐이니라.”

〈보충설명〉 티끌은 단지 흙일뿐이어서 우리에게 번뇌 망상이나 분별을 일으킬 소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티끌이 모여 이루어진 이 세계도 또한 우리에게 번뇌 망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시를 행하면서 相을 남길 때에는 이미 분별이 일어난 것이므로 無情物인 티끌 보다 저속하게 됩니다.

[冶父]南贍部洲 北鬱單越

남섬부주요, 북울단월이로다.

〈보충설명〉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수미산을 기준으로 하여 남쪽에 있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남섬부주이고, 북쪽에 있는 것이 북울단월입니다. 부처님께서 세계를 세계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니까, 야보 스님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무엇입니까?’ 라는 뜻으로 이렇게 고일착하는 것입니다.
세계니 또는 세계가 아니니 할 것도 없이 모두가 한 모습이라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이렇게 고일착하여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는 것입니다.

頭指天脚踏地 饑則飡困則睡 此土西天 西天此土 到處元正便是年 南北東西者是

머리는 하늘을 가리키고 발은 땅을 밟으며,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자도다. 이 땅이 부처의 땅이요, 부처의 땅이 바로 이 땅이로다. 도처의 초하루가 곧 설날이니, 동서남북이 바로 그 자리로다.

〈보충설명〉 부산이 초하루면 서울도 초하루여서 동서남북이 차별 없이 다 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모습의 진리를 깨달으면 대자유의 걸림 없는 살림살이가 통째로 드러납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二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 說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三十二相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는가?”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가히 三十二相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오면, 부처님께서 三十二相은 곧 실제적인 상이 아니라고 설하시니, 그 이름이 三十二相일뿐입니다.”

〈보충설명〉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갖춘 威德의 三十二相도 단지 겉모습일 뿐이니, 그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冶父]借婆衫子拜婆年

할머니의 적삼을 빌려 입고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도다.

〈보충설명〉 수보리가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三十二相으로 부처님을 볼 수 없다고 하니까, 이것은 마치 손자가 할머니 적삼을 입고 세배하는 것처럼 서로 짜고 하는 한통속의 말이라는 뜻입니다.

爾有我亦有 君無我亦無 有無俱不立 相對盧都

네가 있으면 나 또한 있고, 네가 없으면 나 또한 없도다. 이 있고 없음을 모두 쓸어버리고, 서로 마주하여 우두커니 무심히 바라보라.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 布施 若復有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 甚多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 · 선여인이 있어 항하의 모래 수와 같은 몸과 목숨으로 보시한다 해도, 다시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금강경 내지 사구게 등을 받아 지녀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면 그 복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니라.”

〈보충설명〉 목숨으로 보시하는 것은 물질로 보시하는 것보다 훨씬 큰 보시지만 그 것도 결국 유루적인 보시므로 선악의 업이 남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금강경 사구게를 설하는 것 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 가르침은 금강경 전체를 통해 여섯 번이나 반복되는 가르침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