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밀린다판하(Milindapanha)

Ⅰ. 미린다팡하 해제 - 9. 대승불교 흥기와의 관계 10. 본서의 특색...

通達無我法者 2008. 10. 20. 11:32

 

 

      Ⅰ. 미린다팡하 해제
      
           9. 대승불교 흥기와의 관계
      
        어떤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서기전 150 년의 두 사람의 문답이라기보다, 그것이 사실이었더라도 그 당시는 기록되지 않았을 것에 틀림없다. (인도에서 문헌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 전후라 한다) 그러나 일반 지식인의 뇌리에는 그 두 사람의 문답이 기억 속에 전해 갔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 기억도 희미해 간다. 그래서 기록에 남겨 놓으려고 한 것이 백년은 훨씬 지나서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기원전 50 년경이 된다. 그리이스인이 인도로부터 자취를 감춘 것은, 서기전 80 년에서 기원에 이르는 사이로, 그리이스문화가 실제로 인도에 꽃을 피운 것은 백년 뒤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이스풍의 불교미술, 소위 간다라 미술이 나온 것은 서기 전후 경부터이다. 대개 그러한 풍조(風潮) 속에서 밀린다왕문경 이 쓰여 졌음에 틀림없다. 또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처음에는 아마 그리이스 식민지인 서북인도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이 동쪽 마가다지방으로 전해져 파알리어로 고쳐진 다음 그것이 증강 부가되어 시일론에 전해지고, 곧 시일론에서 버마와 타이 등 나라로 전해졌다고 한다. 또 다른 학자는 이 성전의 고층 부분은 혼합 산스크리트로 쓰여 진 것으로 추정하고, 그 성립을 서기 전 1 세기 내지 서기 후 1 세기로 잡고 있다. 서기를 전후한 시대는 꼭 대승불교가 흥기하는 시대이다. 이 시대를, 우리들이 고고학적 유품(考古學的遺品)·미술품, 비명(碑銘), 그 밖의 문헌을 근거로 구명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곤란이 따른다. 또 이 시대의 전통불교 여러 파에 대한 연구도 불명확한 점이 아주 많다. 그러한 사정에서 이 밀린다왕문경 은 하나의 유력한 문헌으로, 당시의 양상을 잘 밝혀 준다. 대승불교가 일어나자 이때까지의 전통적 보수적 불교는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것이 아니다. 인도에서 병존(倂存)하고 있는 전통불교에 대하여, 여러 파의 교단 사정이라던가 교단인의 실천이란 것이 밀린다왕문경을 통해서 분명해졌다고 할 것이다.
      10. 본서의 특색
        ―석존 입멸 후 교단의 소원― 밀린다왕문경의 특색을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보고 싶다. 제 1은 석존이 입멸한 후 불교교단을 어떻게 지켜 후세에 전해갈 것인가라는 교단의 불교 호지(護持) 정신이 얼마나 강렬했는가를 쉽게 엿볼 수 있다. 결국 전에는 역사적 실재(實在)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설한 석존이 이 시대에는 먼 옛날 사람이 되었다기보다 손이 닿지 않는 최고 인격자로 신격화(神格化)되고 절대화된 존재로 나타나 있었다. 그같이 신격화되고 절대화된 부처님에게 귀의해서 그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교단을 지켜 나가려는 것이므로, 상당한 결의(決意)가 없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가자의 입장이 강조된다. 이리하여, 출가자 우위라 해도, 그것은 출가자에 대하여 출가자로서의 자각을 재촉함과 동시 한편으로 교단을 지키는 재가신자에 대해서도 출가자를 보호하여 출가자의 실천, 수행을 도우면서, 그들 재가신자도 출가자와 동일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출가자 우위라 해서 출가자만이 위대하며, 또 깨달음의 경지에도 출가자만이 이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교단을 지킨다는 것은, 부처님의 교법대로 실천한다는 의미에서는 출가자가 우위이어야 한다. 그러나 출가자를 그 같은 우위에 있게 하는 지지자들은 누군가하면 일반 재가 불교신자여야 한다. 그들 신자는 출가자와 동일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요컨대 출가자는 출가자로 생활하고 재가신자는 재가신자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생활하는 분야는 다를지언정 양자는 똑같은 궁극 목적을 이룰 수 있다고, 밀린다왕문경 은 역설한다. 그러면 이러한 설법을 정면으로 펴고 있는 문헌이 또 있을까? 보통 출가자만의 일을 말하고, 아무쪼록 재가신자는 출가자에게 보시를 올려 예배 공양만 하면 된다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이 성전은 출가자 우위를 표면에 내세우면서, 재가신자와 출가수행자가 궁극목적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구별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인도 상좌부(上座部) 불교교단이 세존이 입멸한 후 교단으로서, 어떻게 석존의 불교를 지키고 후세에 전할 것인가 라는, 영법구주(令法久住)이 높은 이념과 비원(悲願)을 들고 있다. 밀린다왕문경을 편찬한 불교학자가 누군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학자에 의해 승·속(僧·俗) 공통의 원이란 것이 증광 부과된 부분 안에서 분명히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제 2의 특색으로, 당시 불교교단 안에서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던 중요한 테마, 이를테면 심리론(心理論), 선악업보론(善惡業報論), 윤회론(輪廻論), 해탈 열반론(解脫·涅槃論), 수도론(修道論), 아라한론(阿羅漢論), 불신론(佛身論), 재가자론(在家者論)등이 이 대론을 통해 모두 논급되어 있음이다. 그러므로 이 성전을 읽음으로서 서기 전후에 있어 불교교단의 관심사가 일괄해 표시되어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런데, 북전불교(北傳佛敎)의 아비달마(阿毘達磨)등 논서 에서는 위의 심리론 이나 수도론 같은 의론(議論)이 아주 난해하게 되어 있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성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그 논서(論書)가 한역이라는 이유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본서의 대론에서는, 날카로운 질문과 교묘한 해답에 의해 아주 선명하게 문제점이 해명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의 우리들은 적어도 아비달마의 아주 귀찮은 논서를 읽느니보다 밀린다 왕과 나아가세나 장로의 대론서를 읽는 것이 훨씬 손쉽다.
      11. 우리들의 의문을 소중히 하자.
        우리는 어릴 적부터 서구적인 교양을 몸에 익혀 왔으므로, 그리이스인 왕의 질문이 실은 우리들 자신의 질문인 것처럼 생각되는 점이 아주 많다. 이를테면 석존은 아라한의 깨달음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 일반 수행자도 석존과 똑같은 깨달음을 얻으면 아라한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아라한 이라든가 부처님이라 불리는 분들은, 심신이 다 같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걸림(障碍)이 없는 궁극의 경지를 지니고 있으므로 범인(凡人)들처럼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나 상해에서 오는 고통은 없을 것이라고, 밀린다 왕은 솔직하게 질문하고 있다. 이는 우리들도 보통 생각하는 것이다. 신격화되고 절대화된 석존에 대하여, 그리이스인왕은 석존도 원래 인간이 아닌가하는 의식에서, 당시 교단인이 갖고 있는 불타관에 예리한 메스를 대어 의문점을 해명해 가려고 하는 것이다. 거기서 나아가세나 장로는 왕의 질문에 대해, 당시 교단 안에서 설해지고 있던 해석, 설명을 끌어내온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도저히 통하지 않으므로, 밀린다대왕이 이해할 수 있는 해답에 대하여 아주 고심한다. 우리는 장로가 고심하는 모습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잘 엿볼 수 있다. 오늘날 불교인들은 일반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고도 조금도 고심할 줄 모른다. 고심은커녕 도리어 빠져 나갈 길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옛날 불교학에서는 이 빠져 나가는 길을 회통(會通)이라 했다. 또, 그런 것은 경전에 없다는 등으로 피해버린다. 실은 그들의 소박한 질문이 기본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을 터이므로, 불교인들은 상대방의 질문을 자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와 함께 해답해 가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여기 불교의 실천적 성격이 있는 것이다. 옛날 조사(祖師)들은 모두 그렇게 노력해 온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인들은 선인들이 남긴 문헌에만 의지하여 자기 자신의 해답을 얻는 데 마음 쓰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역시 불교는 그 시대의 산 현실(現實)에 대한 해답을 항상 지녀야 한다. 그 해답들의 집적(集積)이 불교문헌이 되어 불교를 살아 있게 해 왔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