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133

通達無我法者 2011. 3. 3. 00:17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호흡은 일어남과 꺼짐과 쉼이라는 세 가지의 과정으로 계속됩니다.

처음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호흡의 일어남 하나만을 알아차립니다.

얼마간 이렇게 알아차린 뒤에 꺼짐 하나만을 알아차립니다.

그런 뒤에 한꺼번에 일어남과 꺼짐을 모두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호흡을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게 되면,

마지막에는 자연스럽게 일어남, 꺼짐, 쉼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쉼은 움직임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알아차림을 놓치기가 쉬어서

더 집중을 집중해야 하며, 이때 망상과 졸음에 빠지기 쉽니다.


호흡의 전 과정을 충분히 알아차려서 집중력이 생기고, 알아차리는 힘이 생기면

처음부터 일어남, 꺼짐, 쉼을 알아차릴 수도 습니다.


처음에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면서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하면

의외로 호흡이 일어나지 않아 알아차리기가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이 호흡을 알아차리려고 하면

몸이 긴장을 해서 알아차리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평소에 몸이 긴장을 해도 호흡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호흡이 아닌 다른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몸에 다른 느낌을 알아차리면, 차츰 호흡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호흡을 대상으로 알아차릴 때에는 먼저 코, 가슴, 배중에서

움직임이 크고 분명하여 알아차리기에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코에서 알아차리는 호흡은 콧구멍 입구에 마음을 집중하고,

코로 들어가는 바람과 나오는 바람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


가슴이나 배에서 일어나고 꺼지는 호흡을 알아차리려면 부풀고 수축하는

그 바람의 요소를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뒤에 차츰 밀고 당기는 느낌, 단단하고 부드러운 느낌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다가 호흡이 미세해져서 알아차리기가 어려울 때에는

몸의 일부에서 일어나는 작은 움직임을 알아차려도 좋습니다.


수행을 하면서 차츰 집중력이 생기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호흡을 전면에서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계속

19장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시간에 말씀드린 볼 때와 마찬가지로

듣거나, 냄새 맡거나, 맛볼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유신견이 붙지 못하도록 하고

집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요약을 하자면,

수행자는 먼저 대상을 알아차릴 때 모양의 특성을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대상에 마음을 보내서 대상에 마음을 머물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대상의 모양을 붙잡는 것입니다.

대상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알아차림을 지속하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그럼 차츰 다음 단계의 특성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아는 것입니다.


처음에 모양의 특성에서 차츰 고유한 특성을 알면 노력의 힘이 좋아지고

알아차림의 힘이 커지며, 집중의 힘까지 생깁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지혜의 힘도 커집니다.

그렇게 되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아는 힘이 비로소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몸에서는 지수화풍의 4대요소가 보입니다.

그리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도 보이고

관용과 자애와 지혜의 마음도 보입니다.


이처럼 먼저 대상의 특성을 알아차리면서 대상에 마음을 머물게 하여

고요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게 되면 차츰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보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고유한 특성이란 관련된 현상의 특수하고 특별한 현상을 말합니다.

여기서부터 관념이 아닌 실재이며, 여기서부터 사마타 수행이 아닌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입니다.


고유한 특성은 예를 들면, 호흡의 부품과 꺼짐이나,

몸의 단단함과 부드러움이나, 차가움과 뜨거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법의 성품을 보기 시작하여 지혜가 차츰 성숙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대상의 고유한 특성을 알아차리면 차츰 다음단계의 지혜가 생깁니다.

이것이 조건지어진 특성입니다.


이 조건지어진 특성이란 대상이 가지고 있는 진실로서의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입니다.

이 때 수행자는 한 단계의 높은 집중력을 얻어 대상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보는 힘이 생깁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을 할 때 대상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때나 시작과 중간과 끝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대상의 전 과정을 보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항상 조건이 성숙되어서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상의 일어나는 현상과 지속되는 현상과 소멸하는 현상을

비로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처음부터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이 단계에 와야 보는 힘이 생겨서 비로소 시작과 중간과 끝을

모두 지켜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알아차림을 지속하면

조건지어진 특성다음에 일반적 특성을 알게 됩니다. 

일반적 특성이란 존재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특성인

바로 무상, 고, 무아를 아는 것입니다.


일반적 특성을 보편적 특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든 대상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 특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위빠사나의 통찰지혜가 나야

비로소 열반의 이르러 도과를 성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처음에 모양의 특성을 아는 것으로 시작하여

다음의 고유한 특성을 알 때까지 수행을 계속해야 하며,

다시 조건지어진 특성을 알아서 일반적 특성을 알 때까지

계속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일반적 특성인 무상 고 무아를 알았다고 해서 수행을 졸업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에는 졸업이 없습니다. 수행은 사는 날까지 계속해야 하는 생활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윤회를 끝내는 지고의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자의 이익을 위하여 분명하게 설명하자면

이미 사라져버린 먼저 있던 마음은 무상(無常)이고,

그 즉시 다음에 따라오는 마음은 알아차리는 마음으로, 도(道)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무상에 이어 도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라진 마음은 변화하며,

연속하는 두 순간에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무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라진 마음을 뒤따라오는 도의 마음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뒤따라오는 마음은 위빠사나의 정견, 즉 위빠사나의 도입니다.

따라서 무상과 도, 무상과 도로 이렇게 반복되는 연속하는 현상들이 있을 뿐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모든 현상은 하나같이 일어나서 사라집니다.

그 중에 마음이 일어나서 사라지는 것은 무상이고,

다시 이것을 아는 마음이 바로 도입니다.

그러므로 일어나서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것이 무상과 도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궁극적으로 이것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도(道)에 의하여 열반이라는 과(果)를 얻습니다.


중요한 점은 위빠사나 수행 중에 먼저 있는 무상과 다음에 따라오는 도가

동시적으로 연이어 계속되어 무상과 도 사이에

번뇌가 스며들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사라진 마음을 놓치지 않고 즉시 알아차려서

먼저 있던 마음이 이미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무상이라는 것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또한 다음에 즉시 따라오는 마음을 도(道)라고 하는 이유는

먼저 있던 마음이 이미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아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라져서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사라짐을 아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동안 수행자에게 적절하거나 부적절한,

혹은 바람직하거나 바람직하지 못한 온갖 종류의 마음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들 또한 수행의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수행자는 어쨌든 이러한 마음의 흐트러짐에 대하여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이들을 단지 수행의 대상으로만 여겨야 합니다.


오늘 법문을 듣고 여러분들은 이 법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냥 아는 만큼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대한 이런 법문을 들을 기회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법에 여섯 가지 덕목 중에는 ‘와서 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빨리어로는 에히 빠시꼬 라고 합니다.


법은 모든 이들이 와서 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법은 일어남과 사라짐의 현상인 무상의 법이 쉴 새 없이

계속되는 것을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법의 여섯 가지 덕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법이 잘 설해져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지체하지 않습니다.

와서 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반으로 이끌어줍니다.

현명한 사람에 의해 직접 체험이 됩니다.


이상이 여섯 가지 법의 덕목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러한 법은 왜 나타났는가요?

왜 이러한 대상이 생겼습니까?


그렇습니다. 와서 보라고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타난 법을 보지 않고 화를 내거나 욕심을 부립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을 한다는 것은 와서 보라고 나타난 법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때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켜서는 안 됩니다.

단지 그것이 원인과 결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냥 원인과 결과로 나타난 것을

‘나타났네!’ 하고 그대로 알아차려야하겠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동안 알아차림을 놓치는 순간이 거의 없으면

이제 수행자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어남과 사라짐 사이에 어떤 불결한 번뇌도 들어오지 않는 단계가 뒤따라옵니다.


이제 수행자는 번뇌의 족쇄가 산산이 부서진 단계에 이르게 되어

첫 번째 도인 수다원의 도를 성취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아직 수다원을 얻지 못했지만 이처럼 수다원의 도가 멀지 않은 상태를

쫄라 쏘따빠나 라고 하는데 이것은 작은 수다원이라는 말입니다.

아직 수다원의 도과를 성취하지 못하여 열반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바른 수행자의 길을 살아간다면 그는 작은 수다원이 된 것입니다.


이 작은 수다원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 작은 수다원이 될 수 있는 정신적 상태를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알아차리고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앞에서 이끌고,

수행할 때는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을 균형 있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앞에서 이끌고,

수행할 때는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이 조화를 이루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혜가 뒤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생긴 지혜는 앞에서 믿음과 함께 수행을 이끕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성숙될 때, 우리는 관용과 자애와 지혜를 가지게 되고,

이러한 관용과 자애와 지혜가 스스로 수행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더 열심히 정진하게 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리고 지금이나 지금이후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우리가 불행하기를 원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행복해야 합니다.

그 행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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