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3. 불법이 폐지되자 상복을 입다〔法滅縗絰〕 수(隋)나라 영유(靈裕)스님은 후주(後周) 세종(世宗)의 폐불(廢佛)을 보고 비감(悲感)을 못 이겨 상복을 입고 머리에 삼으로 엮은 띠를 두르고는 마치 부모상을 당한 듯이 하였다. 도반(道伴)을 이끌고 밤에는 불법의 이치〔正理〕를 담론하고 낮에는 속서(俗書)를 읽으면서 어둡고 메마른 데에 몸을 숨..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9장) 2. 험난한 일을 모두 경험하다〔備經險難〕 진(晋)나라 담무갈(曇無竭)스님은 법현(法顯)스님 등이 몸소 부처님의 나라를 답사했다는 말을 듣고 느낀 바 있어, 법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을 잊으리라고 맹세하였다. 그리하여 영초(永初) 원년(420)에 담랑(曇朗). 승맹(僧猛)스님 등 25명의 도반을 모아가지고 장안(長安)을 출발하였다. 서쪽으로 유사(..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9장) 어렵고 힘든 행〔艱苦之行〕- 1. 노비구의 두타행〔年老頭陀〕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대가섭존자(大迦葉尊者)는 두타행(頭陀行 : 청빈한 수행)을 전일하게 닦으면서 늙도록 쉬지 않는구나." 부처님은 대가섭존자가 자꾸 쇠잔해지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오랫동안 각고의 수행을 해왔으니 좀 편히 지내도록 하라." 그러나 가섭이 고행..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총 평 총 평 어떤 사람이 물었다. "세존(世尊)께서는 정각(正覺)을 이루자마자 화엄경을 연설하시었으며, 어떤 사미는 7살에 경전을 강의하기도 하였으니, 반드시 여러 해를 은둔해야 한다면 중생 교화는 어찌해야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옛사람의 그윽히 은거함이 유독 세속을 잊었을 뿐 아니라, 도가 높아..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8장)10. 폐사에 은거하다〔廢寺隱居〕 원(元)나라 세우(世愚 : 1301~1370)스님은 구주(衢州) 서안현(西安縣) 사람으로 포납(布衲)과 중봉(中峯). 단애(斷崖) 등 모든 큰스님을 참례하였다. 그 후 지암(止巖)스님에게 법을 얻고 서안(西安) 오석산 (烏石山)의 폐사로 들어가 띠집을 짓고 살면서 6년이나 그림자가 산문을 벗어나질 않았다. 명성이 조..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8장) 9. 법을 소중히 여기고 산에 은둔하다〔重法隱山〕 원(元)나라 법문(法聞 : 1260~1367)스님은 7세에 출가하였다. 그 뒤 온공(溫公)에게 「법화경(法華經)」, 「반야경(般若經)」, 「유식론(唯識論)」, 「인명론(因明論)」과 「사분율(四分律)」을 배웠다. 온공(溫公)이 스님에게 말하기를, “책임은 무거운데 길이 멀다. 널리 전파하기를 부탁한다.” 라고 하..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8장) 8. 여덟 번 초청했으나 가지 않다〔八請不赴〕 송(宋)의 분양 무덕(汾陽無德)스님은 여덟 차례에 걸쳐 70명의 스님들의 청을 받았으나 결코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양양(襄陽) 백마사(白馬寺)에서 한가히 지내며 분수(汾水) 주변에 사는 사부대중 천여명을 물리쳤으나 끊임없이 간곡하게 청하자 그들의 바램에 응하였다. 그리하여 종풍(宗風)을 크게 ..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8장) 7. 깊은 산에 오랫동안 거처하다〔久處深山〕 송(宋)나라 무문 총(無聞聰)스님은 크게 깨달은 뒤 홀로 광주(光州)의 산속으로 들어가 6년을 지내고, 육안주(陸安州) 심산에서 6년, 다시 광주에 와서 3년을 지냈다. 이처럼 산중에서 홀로 지내며 좌선하기를 모두 17년 하고서야 세상에 나왔다. 찬탄하노라. 홀로 지내며 홀로 앉기를 깨달은 뒤에 했던 ..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8장) 6. 여러 해를 문닫고 지내다〔歷年閉戶〕 송(宋)나라 운개 수지(雲蓋守智)스님은 원우(元祐) 6년(1091)에 서당(西堂)으로 물러나더니 문을 닫은 채 30년을 지냈다.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8장) 5. 일마다 인연에 따르다〔事皆緣起〕 당(唐)의 신정 인(神鼎諲)스님은 예주(豫州) 사람으로 분양(汾陽)스님과 나란히 명성을 날렸다. 젊은 나이에 남악(南嶽)에서 20년 동안 은둔하였고, 또 20년을 주지로 지내고서야 개당설법(開堂設法)을 하였다. 그러나 주위에서 빚어지는 인연을 따른 것이지 실로 자기 뜻은 아니었다.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