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13. 가사와 법호를 받지 않다〔不受衣號〕 당(唐)나라 전부(全付 : 881~946)스님은 오군(吳郡) 곤산(崑山) 사람으로, 어느날 남탑용(南塔涌)스님을 뵙고 심지(心地)를 밝힌 바 있다. 그 뒤에 청화선원(淸化禪院)에 머물자, 전당(錢唐)의 충헌왕(忠憲王)이 사신을 보내어 자가사(紫袈裟)를 하사하였다. 이에 진부스님은 소장(疏章)을 올리고 애써 사양..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12. 속인의 초대에는 가지 않다〔不赴俗莚〕 당(唐)나라 도광(韜光)스님은 영은산(靈隱山) 서쪽 봉우리에 띠집을 짓고 살았다. 자사(刺史)인 백거이(白居易)가 음식을 갖추어 놓고 그를 맞으려 하자, 스님은 게송으로만 답례하고 가지 않았다. 그가 답한 시 중에, 석장을 짚고 감히 성시(城市)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놀란 꾀꼬리가 화려한 누각에서 ..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11. 위험을 무릅쓰고 스님을 구하다〔冒死納僧〕 당(唐)의 법충(法冲)스님은 농서(隴西) 성기(成紀)사람이다. 정관(貞觀 : 627~649) 초에 개인적으로 출가하는 자는 극형(極刑)에 처한다는 칙령이 있었다. 이때 역양산(嶧陽山)으로 많은 스님들이 도망와서 난을 피하였는데 식량이 다 떨어졌다. 법충스님이 주(州)의 지사에게 나아가 ..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10. 조서가 이르러도 일어나지 않다〔詔至不起〕 당(唐)나라 나융(懶融 : 594~657)스님은 금릉(金陵) 우수산(牛首山)에 은거하고 있었다. 황제가 그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알현하라고 불렀다. 사신이 가자 스님은 땅바닥에 앉아서 쇠똥에 불을 지펴놓고 주워 온 토란을 구워 먹고 있었는데, 추위로 콧물이 턱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자께서 ..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 9. 세 번이나 조서를 내려도 가지 않다〔三詔不赴〕 당(唐)의 분주(汾州) 무업(無業 : 760~821)스님은 섬서(陝西) 옹주(雍州) 사람이다. 목종(穆宗)이 좌가승록(左街僧錄)인 영부(靈阜)스님에게 영을 내려 조서를 가지고 무업스님에게 가서 그를 일어나게 하라 하였다. 스님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빈도가 무슨 덕으로 임금을 여러번 번거롭게 하겠는가. 그..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 8. 차라리 죽을지언정 일어나지 않다〔寧死不起〕 당(唐)나라 선종의 4조(四祖)인 도신(道信 : 580~651)스님은 황매산(黃梅山)에서 30여 년을 머물렀다. 정관(貞觀 : 627~649)연간에 태종이 3번이나 조서를 내려 장안으로 오라 하였으나 번번이 병을 핑계하고 거절하였다. 황제는 사자에게 칙명을 내리기를, “다시 일어나지 않거든 그의 머리를 베어 오라.” ..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 7. 조정에서 여러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다〔屢徵不就〕 당(唐)나라 때 자장(慈藏)은 신라국(新羅國) 사람이다. 그윽산 수행의 덕이 높아 모든 사람들이 믿고 존경하였으므로 왕이 여러 차례 대궐로 불렀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왕은 크게 노하여 대신에게 이번에도 나오지 않으면 왕명을 거역하는 죄로 목을 베어 오라고 명령했다. 칼을 가지고 ..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 6. 도적에게 길을 안내하지 않다〔不引賊路〕 수(隋)나라 도열(道悅)스님은 형주(荊州) 사람으로 항상「반야경(般若經)」을 지송(持頌)하며 옥천사(玉泉寺)에 살았다. 주찬(朱粲)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가 절에 들어와 양식을 빼앗고 또 사람을 해치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자 주찬의 무리는 스님을 놓아주..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 5. 귀한 사람과 결속하여 노닐지 않다〔不結貴遊〕 양(梁)나라 지흔(智欣 : 446~506)스님은 단양(丹陽) 사람인데, 경전의 의미를 깊이 연구한 학승으로 유명하였다. 영명(永明) 말년(485), 태자가 때때로 동전(東田)에 행차하여 자주 절에 왔다. 스님은 그럴 때마다 병을 핑계하여 종산(鍾山)에서 마음 넉넉하게 지냈다. 이렇듯이 스님은 홀로 한가히 지낼 뿐, ..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
(제7장) 4. 어가를 맞이하지도 전송하지도 않다〔駕不迎送〕 제(齊)나라 승조(僧稠)스님은 문선제(文宣帝)가 우위군(羽衛軍)을 거느리고 절에 이를 때마다 작은 방에 편안히 앉아서 결코 영접하거나 전송하질 않았다. 제자들이 간언(諫言)을 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옛날에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는 일곱 걸음을 걸어 나가 왕을 영접하고 그로 인해 7년 후에 복이..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2008.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