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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죽음 기쁜 환생, 티벳사자의 서를 통한 깨달음의 길"- 툴쿠 퇸돕 -

通達無我法者 2007. 3. 25. 02:30

 

 

환생하기

 

바르도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다른 몸과 정체성을 갖고 환생할 것이다. 바르도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이 우리의 카르마와 정신적 감정적 성향, 그리고 영적인 성취에 달린 것처럼 그것과 똑같은 요소들이 환생한 다음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바르도에서 우리의 참본성, 이른바 우리의 본질적인 의식을 인식할 수있다. 사실 삶의 네 과정 모두에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그 깨달음을 유지한다면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망상의 순환속에서 환생하지 않고 영원히 자유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으려면 오랜 세월 수행에 헌신해야 한다. 주말마다 종교 모임에 참석하거나 몇 년 동안 날마다 잠시 짬을 내서 명상을 한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다. 높은 성취를 이룬 명상가들 , 높은 차원의 영적인 수행을 한 스승들은 일단 깨달음에 이르고 나면 과거의 카르마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해 환생을 결정할 수 있다. 그들의 습관적인 카르마의 사슬은 끊어지거나 초월될 것이다. 그들에게 현상의 사물들 즉, 현상세계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단지 그들 마음의 특성이 투영된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깨달음을 열망한다면 그리고, 영적인 길을 꾸준히 걸어간다면 어느 날 우리 역시 그 목표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성취를 이룬 명상가들이 가는 길은 위대한 영적인 업적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과거의 카르마의 인과관계에 따라서 삼사라의 존재가 가야 하는 여섯 윤회 세계 중 하나에서 환생해야 한다. (이것은 6장에서 자세히 설명될 것이다.)

 

  영적인 훈련을 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사람들은 행복한 세계에서 건강한 미래의 삶을 누릴 것이다. 우리가 평화롭고, 친절하고, 지혜롭고, 타인을 보살피거나 도와주었다면, 이와 더불어 말과 행동을 통해 올바로 수행했다면, 우리는 평화롭고, 즐겁고, 유익한 존재들이 사는 세계에서 기쁘게 환생할 것이다. 이생에서 정토를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믿는 수행을 했다면, 우리는 자신이 키운 정신적인 습관 덕분에 정토에서 태어날 것이다. 이런 정토는 깨달은 상태에 있는 궁극 적인 정토는 아니지만 무한한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분명한 정토일 것이다. 우리는 기쁨이 넘치는 세상을 몸소 체험할 뿐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정토의 축복을 무한히 발산할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카르마 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그것은 행복한 카르마의 순환이 될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의 길을 따라갈 수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여겨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우리의 마음이 분노와 탐욕, 무지에 빠져 있었다면, 우리는 그 결과로 지옥처럼 끔찍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행의 네 과정을 부정적인 마음으로 거쳐 갈 때 우리는 마치 모든 걸 어둡게 보이게 하는 색안경을 낀 것처럼 참담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환경은 사라지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두렵고 끔찍한 모습과 소리, 경험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살면서 키워온 정신 상태의 결과로써 우리의 의식 속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일어날 것이다.

 

  스스로 인정하든 안 하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날마다 그것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보통 그것은 무의식적인 과정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이렇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현대 문명이 부추기는 사악한 감정과 이기심, 욕망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일을 그만두고 지금 당장 자신의 삶을 바꾸기 시작해야 한다. 다행히 여전히 인간의 몸을 갖고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그렇게 해야 한다. 일단 이 세상을 떠나면 카르마가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카르마는 우리를 다시 태어나도록 밀어붙일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영적인 진보가 불가능한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고통과 혼란 속에서 탄생과 죽음, 환생의 끝없는 순환을 반복할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사후에 여행을 하거나 경험하는 지옥이나 정토는 저기 어딘가에 있는 세계가 아니다. 사후에 다른 세계에서 경험하는 쾌락이나 고통은 단지 우리들 자신의 카르마의 반영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습관적으로 우리가 마음에 새겨 놓은 일들을 꿈속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다. 카르마의 결과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은 계속되는 삶에서 우리가 축적하고 강화한 성향으로, 사후에 우리로 하여금 행복과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 마음이 만든 이 경험들 또한 다른 곳이 아닌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우리의 미래를 바꾸고 개선 시킬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언제나 물질과 환경의 법칙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사후에 우리의 마음은 외부적인 제약을 덜 받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자신이 키운 뿌리 깊은 정신적 성향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의 삶과 죽음, 죽음 뒤의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가진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가능한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 우리가 흔히 그렇듯이 영적인 진보를 위한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고 이생의 고통을 견뎌나갈 수 있다. 정신적인 혼란, 고통스런 감정에서 생겨난 카르마, 그리고 외부적인 상황이 우리 미래의 목적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행복을 누릴 가능성은 없어질 것이다.

 

- 우리는 삼사라에서 순환하는 일반적인 존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를 얻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우리가 평화롭고, 기쁘고, 유익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결과로 적어도 한동안은 더욱 행복하고 건강한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 또는 덧없는 순환을 반복하는 삶의 삼사라를 초월하여 궁극적인 평화와 기쁨이 지속되는 상태, 즉 니르바나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은 절대적 진리를 깨달았을 때에만 성취할 수 있으며, 명상에 전념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며,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 그것에 이를 수 있다.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모든 발걸음이 바라던 목표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명상과 수행을 주로 아미타불과 그의 극락정토의 기도서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붓다와 정토에 관한 기도서 또한 이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것과 비슷하지만 불교 신앙에 포함되지 않은 기도조차도 효험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축복의 원천에 관해 규칙적으로 명상함으로써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축복의 원천' 이라는 말은 보호와 축복의 원천이 되는 모든 기도와 숭배, 안식의 대상들을 의미한다. 축복의 원천은 붓다, 보살, 성인, 현인 또는 위대한 스승처럼 높은 차원에 있고, 내면적이며 진정한 근원이면 무엇이나 될 수 있다. 그것이 긍정적인 성격을 갖고 있거나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면 어떤 정신적인 대상도 강력한 축복의 원천이 될 것이다. 조력자뿐 아니라 임종자와 고인은 기도와 명상, 의식을 도와주는 수단으로써 축복의 원천에 의지해야 한다. 사실 궁극적인 축복의 원천은 우리들 자신 속에 있다. 우리 모두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잠재력을 깨달기까지는 우리는 자신의 촉복 받은 본성과 성격을 자각하기 위해 외부적인 축복의 원천에 의지해야 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아미타불의 염불처럼 축복의 원천이 되는 기도문을 되풀이해서 암송하는 것은 붓다의 축복을 받는 대중적인 방법이다. 아미타불은 자신의 이름을 간절하게 부르는 모든 중생을 구원하겠노라고 서약했다. "엄마!" 라는 외침을 듣자마자 아이 곁으로 쏜살 같이 달려가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한번은 내 동료가 위대한 명상 스승인 유콕 차탈와에게 티베트 불교 닝마파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자 수행인 "족첸" 에 대해 가르침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족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차탈와는 이렇게 말했다.

 

 " 그대는 먼저 날마다 1백 번씩 아미타불에게 염불을 외워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것을 2백번, 3백번, 으로 계속 늘려나가라. 계속해서 더 많이 염불을 외운다면, 그대가 무엇을 하든 자신의 호흡속에 붓다의 이름이 머물고, 마음으로 붓다의 존재를 느낄 때가 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대가 세상을 떠날 때 붓다의 이름과 그 존재를 느끼면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지난날 쌓아놓은 공덕과 붓다가 내린 축복, 그리고 그대의 헌신적인 자세 덕분에 자신이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대의 미래는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다. 그대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의 원천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 아닌가!"  

 

비록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몇 년 뒤에 나는 이 말이 얼마나 심오하고 의미가 있는 지를 이해할수 있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모든걸 붓다와 정토로 보는 훈련을 한다면, 바르도에서 부정적인 모습과 소리, 느낌을 만나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긍정적인 현상으로 변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마치 악몽을 꾸는 것과 같다. 악몽을 꿈과 환상으로 인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즉시 그것을 무력하게 만들어 공격자들을 햇살 속의 안개처럼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바르도에서 만나는 무서운 것들을 하나의 환상이나 정토로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은 힘을 잃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무서운 죽음의 왕은 깨달음의 지혜와 사랑의 천사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이 닥치기 전에 즉, 지금 당장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날마다 그것도 여러 차례 수행한다면 결정적인 순간이 닥칠 때 조금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위 제목의 책을 읽고 발췌한 글을 아미타 카페에서 옮겨 왔습니다)

 

 

 

 

지은이 툴쿠 퇸돕 린포체 -

존경 받는 작가이자 스승인 툴쿠 퇸돕 린포체는 동 티베트에서 태어나 유명한 도둡첸 수도원에서 공부했다. 1958년 인도에 정착해서 대학에서 여러해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80년 하버드 대학의 방문연구자로 미국으로 건너가 20여 년 동안 메사추세츠 주의 케임브리지에 살면서 붓다야나 재단의 후원 아래 티베트 불교, 특히 닝마파의 가르침을 번역하고 저술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가 쓴 다른 책들 중에는 열일곱 나라의 언어로 출판된 <마음을 치유하는 힘> 과 열두 나라의 언어로 출판된 <무한한 치유> 가 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