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1.참선(參禪)의 바른 길 - 2)행법(行法)의 간택(簡擇)

通達無我法者 2007. 4. 4. 08:16

청화큰스님 법어집/정통선의 향훈 

 

 

 

                       행법(行法)의 간택(簡擇)

 


   대체로 참선(參禪)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시 본원(本願) 즉, 근본서원

이 앞서야 합니다.

   참선에 대해서 상당히 연구한 분도 정작, 공부할 때는 참선법에 대해서 혼

동을 느낍니다. 또, 세간이나 또는 여러 종파에서 수행하는 법에 관해서 하

도 말씀들이 많고 정보가 많으니까 혼미를 느껴서 갈팡질팡합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오늘 모이신 분들은 혼미하지 않고서 그 본체를 드러내는, 우주의

목적 의식 즉, 부처님의 본뜻과 우리가 계합(契合)하는 법을 먼저 마음에

간직하셔야 합니다.

   그것 무엇인고 하면 실상관(實相觀) 입니다.

   보통은 참선하는 법으로 위대한 법사가 어떠한 문제를 제시하면은 그 법

문을 가지고서 계속 의심을 합니다. 이번에 조선일보에 효봉대선사의 열반

상이 나왔습니다만 거기에 보면, 효봉선사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임종 순

간 숨을 거둘 때까지 "무, 무, 무" 라고 하셨다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조

주무자(趙州無字)라 하는 즉 "무()" 라는 화두(話頭)를 의심을 하신 것이

지요. 이러한 방법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해서 위대

한 도인들이 많이 배출 되셨습니다.

   그러나, 참선하는 방법은 이러한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반야심경(般若

心經)이나 또는 금강경(金剛經)에서 말씀한 오온개공관(五蘊皆空觀)이라,

"우리 몸이나 마음이나 또는 일체 중생이 모두가 다 바로 보면은 본래로 텅

비었다" 고 관찰하는 법도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분 가운데는 금강경을 하루에 몇 번씩 외우는 분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시는 분들은 주로 공관(空觀) 즉, 천지우주가 바로 보면 텅 비

었다 하는 제법개공관(諸法皆空觀)이라, 제법이 다 비었다고 관찰하는 법

을 취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것만이 최상의 길은 아닙니다.

   또 어떤 법은 부처님을 흠모하고 불성(佛性)을 참구(參究) 할 때에 "저 서

산에 지는 해를 봐라" 합니다. 불교말로 하면 일상관(日想觀)이지요. 이런

법도 역시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좋은 관찰방법입니다.

   우리 본래 자성(自性)이, 우리 본래 생명이 바로 불성(佛性)이거니, 뉘엿

뉘엿 서산에 지는 장엄스러운 태양을 바라보며, 바라고 애쓰고 거기에다 마

음을 딱 모으고 닦아나가면은, 원래 마음이 부처거니, 차근차근 산란스러운

마음은 사라지고 불성으로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법문은 "극락세계의 땅을 봐라" 고도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어째서 하필이면 땅을 보라고 했는가 하지만 이것은 보통 우리 눈으로 보는

이런 땅이 아니라, 광명이 빛나고 투명 찬란한 극락세계의 땅 입니다. 이것

을 또 애쓰고 보아나가면 우리 번뇌가 차근차근 녹아져서 정작, 찬란스러운

우주와 광명으로 빛나는 극락세계를 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도 역시 우

리가 공부하는 한 방법입니다.

   또는, 어떠한 문제를 의심하는 즉, "무()" 라 하는 화두를 의심하는 공부

또는 "판때기 이빨에 털 나온다" 는 판치생모(板齒生毛)라는 화두를 의심하

는 공부와 같은 그런 문제의식 공부도 굉장히 길이 많고 여러갈래가 있습니

다. 허나 이런 법 모두가 다 성불(成佛)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현대화하는 지극히 어려운 때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무슨 문제를 분석적으로 국부적으로 하나만 취하면, 반드시 반정립

(反定立)으로 우리한테 어떤 부정적인 것이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는

일체 문화를 종합하는 시대의 추세이기에 수행법도 그런 방식으로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 어려운 말씀입니다마는 이런 것은 앞으로 두고두고 알아두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굳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현대란 사회는 그냥

그렁저렁 공부할 때가 아닙니다. 굉장히 복잡한 학문도 여러 가지로 많이

있고 또 지식의 범람 가운데 있어놔서, 이런 시대에는 가장 합리적이고 보

편적인 행법(行法)을 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만 보는 것이 옳다" 또는 "화두만 의심하는 것이 옳다" 해서 어떤 특

정적인 것으로만 고집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잘 안 통합니다. 지금 천주교

신부들이 초빙해간 우리 스님네들이 참선법을 어떻게 지도하는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어떠한 특정적인 하나의 방법만 고집스럽게 지도한

다고 하면 문제가 큽니다. 참선의 본질과는 십만팔천리나 어긋나고마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