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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뼈대 - 칼라마경의 가르침

通達無我法者 2007. 7. 4. 17:29

― 칼라마경 ― (부처님께서 자유로운 탐구를 권하신 헌장)

Kaalaama Sutta (The Buddha's Charter of Free Inquiry)

 

소마 스님 영역

현음 스님 옮김

 

(The Whee Publication No.8)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Sri Lanka

 

머 리 말

 

부처님께서 칼라마인들(Kaalaamas)에게 주신 교훈인 칼라마경(Kaalaama Sutta) 은 의문이 일어날 때는 자유롭게 탐구해보도록 권장하신 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경의 참뜻은 광신, 완고함, 독단, 편협함을 벗어난 가르침을 드러내 보이는데 있다. 불법(Dhamma)이 깨달음으로 가는 모든 단계에서 신중히 검토해보는 자세를 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지혜는 완전한 이(아라한)의 청정함에 도달함으로써 완성되는데, 그 지혜를 닦아나가는 수행과정은 내면적인 것들 ― 눈과 눈에 보이는 대상,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음과 마음의 대상들(생각들)을 검토하고 분석하는 작업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모든 현상은 불법의 영역 속에서 바르게 이해되어야 하므로 통찰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 경에서 통찰력은 나쁜 방법은 버리고 좋은 방법은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음에 나오는 인용구들에서 보면, 조건 지어진 상태 (주1)와 아라한의 경지를 아는 기준으로 통찰력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칼라마경과 다음 인용구에서 볼 수 있는 검토의 방법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식" (주2)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들이 기본으로 삼는 정신자세는 이치에 맞는 사고라면 으레껏 갖추고 있는 속성인 것이다. 더구나 지혜는 그와 같은 사고의 결과인 통찰력과 이해력으로 구성되는 것이므로 비판적인 검토와 분석이 바른 안목을 계발하는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명백하다.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점검되거나 영향받지 않은 채 갑작스레 나타날 수 있는 지혜나 안목이 어디 있겠는가?

 

진리를 찾는 구도자들이 따라야 할 원칙을 제시해주고 사물판단의 기준을 담고 있는 이 칼라마경은 부처님 가르침의 뼈대부분에 속한다.

 

또 이 경 속에 설해진 네 가지의 안식(安息) (주3) 은 일상적인 인식을 넘어선 문제들의 경우, 어떤 범위까지 판단을 보류할 수 있는가를 정해주고 있다. 또 이 안식들을 대하면 우리가 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반드시 윤회나 인과응보를 믿어서가 아니라,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극복을 통해 얻어지는 정신적 행복 때문임을 알게 된다.

 

"벗 사비타여,

믿음을 떠나서, 좋아함을 떠나서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을 떠나서, 그럴싸한 추리를 떠나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을 떠나서, 나는 이것을 알고 이것을 본다. `태어남에 의해서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상응부 , 인연편, 대품 제8경】(주4) "

 

비구들이여,

여기에 한 비구가 눈으로 사물을 보고서 마음속에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있으면 `내 마음속에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있구나.' 라고 알고, 마음속에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없으면 `내 마음속에 탐욕·분노·어리석음이 없구나.' 라고 안다.

 

비구들이여,

이런 것들이 믿음을 통해, 좋아함을 통해,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진리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를 통해,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을 통해서, 경험되어야 할 것들이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시여!"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이런 것들은 지혜로써 보고 알아야 될 것들이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시여!"

 

"비구들이여,

한 비구가 `나는 이제 더이상 다른 몸을 받지 않고, 청정한 삶[梵行]을 이루었으며 해야 할 일을 마쳐서 또 다시 지금과 같은 상태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안다.'라고 깨달음을 선포하는 것 역시 믿음을 통해, 좋아함을 통해,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를 통해,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상응부 ,육처편, 신고품 제8경] 구도의 마음, 자유 ― 칼라마경 ―

(부처님께서 자유로운 탐구를 권하신 헌장)

 

케사푸타의 칼라마인들, 부처님을 뵈러가다.

 

1.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큰 비구 승단과 함께 코살라(Kosala)에서 유행(流行)을 하시면서 칼라마인들(Kaalaamas)이 사는 케사푸타(Kesaputta)라고 하는 마을에 들르셨다. 케사푸타의 칼라마인들은 다음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석가족의 아들 사문 고타마 존자가 코살라에서 유행하시다가 케사푸타에 이르셨다. 그리고 저 세존 고타마에 대한 좋은 명성이 이와 같이 퍼지고 있다.

 

 '그 분 세존께선 바로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으신 분[正等覺者 또는 正編知]이시며, 지혜와 실천이 구족하신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으신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으신 분[覺者] 세존이시다. 세존께서는 이 세간의 모든 중생들 즉, 마라들(maaras), 범천들, 축생들, 사문들, 바라문들, 천신들 및 인간들에게 당신 스스로 직접 깨달아 분명히 파악하신 것을 널리 알리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아라한을 뵙는 것은 실로 훌륭한 일이다.'

 

2.그래서 케사푸타의 칼라마인들은 세존께서 머물고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그 곳에 도착하자 어떤 사람은 세존께 경의를 표하고 한쪽 편에 앉았고, 어떤 사람은 세존께 인사드리고 진심에서 우러난 깊이 새겨둘 말씀을 나누고 한쪽 편에 앉았고, 어떤 사람은 세존께 합장 공경을 하고서 한쪽 편에 앉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과 가문을 밝히고서 한쪽 편에 앉았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한쪽 편에 앉았다.

 

케사푸타의 칼라마인들,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하다.

 

3.한쪽 편에 앉은 케사푸타의 칼라마인들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존자이시여,

케사푸타에는 사문과 바라문들이 찾아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만을 드러내어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론들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헐뜯으며 멸시하고 갈갈이 찢어 놓습니다.

 

존자이시여,

또 다른 사문과 바라문들이 케사푸타에 옵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이론만을 드러내어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론들에 대해서는 비난하고 헐뜯으며 멸시하고 갈갈이 찢어 놓습니다.

 

존자이시여,

우리는 `이들 존경하는 사문과 바라문들 가운데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의심을 갖게 되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버림의 기준

 

4."칼라마인들이여,

그대들이 의심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대하면 그대들의 마음속에 혼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대 칼라마인들여,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전통이 그러하다고 해서, 소문이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에 의한 것이라 해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능력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그대 칼라마인들이여,

스스로 `이들은 나쁜 것이고, 이들은 비난받을 일이며, 이들은 지혜로운 이에게 책망받을 일이고, 이들이 행해져 그대로 가면 해롭고 괴롭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탐욕, 분노, 어리석음

 

5."어떻게 생각하는가, 칼라마인들이여.

사람의 마음속에 탐욕이 일어나면 그것이 그에게 이로움이 되겠는가 해로움이 되겠는가?"

"해롭습니다. 존자이시여!" "

 

칼라마인들이여,

이 사람은 탐욕에 빠져 정신이 그에 압도되고 정복되었기에 생명체를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갖고, 남의 여자에게로 가고, 거짓을 말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마저도 그렇게 만들고 만다. 이런 사람에게는 해로움과 괴로움이 오래 가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이시여!"

 

6."어떻게 생각하는가, 칼라마인들이여.

사람의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면 그것이 그에게 이로움이 되겠는가 해로움이 되겠는가?"

"해롭습니다. 존자이시여!"

 

"칼라마인들이여,

이 사람은 분노에 빠져 정신이 그에 압도되고 정복되었기에 생명체를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갖고, 남의 여자에게로 가고, 거짓을 말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마저도 그렇게 만들고 만다. 이런 사람에게는 해로움과 괴로움이 오래 가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이시여!"

 

7."어떻게 생각하는가, 칼라마인들이여.

사람의 마음속에 어리석음이 일어나면 그것이 그에게 이로움이 되겠는가 해로움이 되겠는가?"

"해롭습니다. 존자이시여!"

 

"칼라마인들이여,

이 사람은 어리석음에 빠져 정신이 그에 압도되고 정복되었기에 생명체를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갖고, 남의 여자에게로 가고, 거짓을 말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마저도 그렇게 만들고 만다. 이런 사람에게는 해로움과 괴로움이 오래 가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이시여!"

 

8."어떻게 생각하는가, 칼라마인들이여.

이들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나쁜 것입니다. 존자이시여!"

 

"비난받을 일인가, 그렇지 않을 일인가?"

"비난받을 일입니다. 존자이시여!"

 

"지혜로운 이에 의해 책망받을 일인가, 칭찬받을 일인가?"

"책망받을 일입니다. 존자이시여!"

 

"행해져 그대로 가면 해롭고 괴롭게 되는가, 아닌가? 그대들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존자이시여, 행해져 그대로 가면 해롭고 괴롭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9."칼라마인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전통이 그러하다고 해서, 소문에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에 의한 것이라 해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능력 때문에,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고."

 

받아들이는 기준

 

10."그대 칼라마인들이여,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전통이 그러하다고 해서, 소문에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에 의한 것이라 해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능력 때문에,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그대 칼라마인들이여,

스스로 `이들은 좋은 것이고, 이들은 비난받지 않을 것이고, 이들은 지혜로운 이에 의해 칭찬받을 일이고, 이들이 행해져 그대로 가면 이롭고 행복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대 칼라마인들이여, 그대로 받아들여 살도록 하라."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없음

 

11."어떻게 생각하는가, 칼라마인들이여.

사람의 마음속에 탐욕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이로움이 되겠는가 해로움이 되겠는가?"

"이롭습니다. 존자이시여!"

 

"칼라마인들이여,

이 사람은 탐욕에 빠지지 않고 정신이 그에 압도되거나 정복되지 않아서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은 갖지 않으며, 남의 여자에게로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마저도 그렇게 인도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로움과 행복이 오래 가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이시여!"

 

12."어떻게 생각하는가, 칼라마인들이여.

사람의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이로움이 되겠는가, 해로움이 되겠는가?"

"이롭습니다. 존자이시여!"

 

"칼라마인들이여,

이 사람은 분노에 빠지지 않고, 정신이 그에 압도되거나 정복되지 않아서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으며, 남의 여자에게로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마저도 그렇게 인도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로움과 행복이 오래 가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이시여!"

 

 13."어떻게 생각하는가, 칼라마인들이여.

사람의 마음속에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이로움이 되겠는가, 해로움이 되겠는가?" "이롭습니다. 존자이시여!"

 

"칼라마인들이여,

이 사람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정신이 그에 압도되거나 정복되지 않아서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으며, 남의 여자에게로 가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마저도 그렇게 인도한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로움과 행복이 오래 가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존자이시여!"

 

14."어떻게 생각하는가, 칼라마인들이여. 이들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좋은 것입니다. 존자이시여!"

 

"비난받을 일인가, 그렇지 않을 일인가?"

"비난받지 않을 일입니다. 존자이시여!"

 

"책망받을 일인가, 칭찬받을 일인가?"

"칭찬받을 일입니다. 존자이시여!"

 

"행해져 그대로 가면 행복하게 되는가, 아닌가? 그대들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존자이시여, 행해져 그대로 가면 이롭고 행복하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생각됩니다."

 

15."칼라만인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거듭 들어서 얻어진 지식이라 해서, 전통이 그러하다고 해서, 소문에 그렇다고 해서,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 원칙에 의한 것이라 해서, 그럴싸한 추리에 의한 것이라 해서, 곰곰이 궁리해낸 견해이기에 그것에 대해 갖게 되는 편견 때문에, 다른 사람의 그럴듯한 능력 때문에,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

 

그대 칼라마인들이여,

스스로 `이들은 좋은 것이고, 이들은 비난받지 않을 일이고, 이들은 칭찬받을 일이고, 이들이 행해져 그대로 가면 이롭고 행복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대 칼라마인들이여, 그대로 받아들여 살도록 하라."

 

네 가지 고귀한 삶

 

16."칼라마인들이여,

이와 같이 탐욕을 여의고 분노를 여의고 또 어리석음을 벗어나 올바로 알고 깨어 있는 그런 성스러운 제자는 자애의 마음[慈]으로 세상의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산다.

 

이와 같이 두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세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네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고 산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분노나 원한이 없이 위대하고 고귀한 한량없는 자애의 마음으로써 이 세상 곳곳을 가득 채우고 산다. 거기에는 온갖 중생들이 살고 있기에."

 

 "칼라마인들이여,

이와 같이 탐욕을 여의고 분노를 여의고 또 어리석음을 벗어나 올바로 알고 깨어 있는 그런 성스러운 제자는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悲]으로써 세상의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산다.

 

이와 같이 두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세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네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고 산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분노나 원한이 없이 위대하고 고귀한 한량없는 더불어 아파하는 마음으로써 이 세상 곳곳을 가득 채우고 산다. 거기에는 온갖 중생들이 살고 있기에."

 

"칼라마인들이여,

이와 같이 탐욕을 여의고 분노를 여의고 또 어리석음을 벗어나 올바로 알고 깨어 있는 성스러운 제자는 함께 기뻐하는 마음[喜]으로써 세상의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산다.

 

이와 같이 두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세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네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고 산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분노나 원한이 없이 위대하고 고귀한 한량없는 함께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이 세상 곳곳을 가득 채우고 산다. 거기에는 온갖 중생들이 살고 있기에."

 

"칼라마인들이여,

이와 같이 탐욕을 여의고 분노를 여의고 또 어리석음을 벗어나 올바로 알고 깨어 있는 그런 성스러운 제자는 평온한 마음[捨]으로써 세상의 한 방향을 가득 채우고 산다.

 

이와 같이 두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세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네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고 산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분노나 원한이 없이 위대하고 고귀한 한량없는 평온한 마음으로서 이 세상 곳곳을 가득 채우고 산다. 거기에는 온갖 중생들이 살고 있기에."

 

네 가지 안식(安息)

 

17."칼라마인들이여,

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증오가 없고 원한이 없으며 티없이 청정한 마음을 가져서 바로 지금 여기 (주4) 의 삶에서 네 가지 안식이 얻어진다.

 

`가령 저 세상(내생)이 있고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죽은 후 육신이 흩어졌을 때 나는 지복을 누리는 선도(善道), 즉 천상세계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얻는 첫번째 안식이다.

 

`가령 저 세상이 없고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 해도 지금 여기 바로 이 세상에서의 증오와 원한을 여의고 나는 스스로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킨다.' 이것이 그가 얻는 두번째 안식이다.

 

`가령 악행을 한 사람은 악한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하자. 그러나 나는 그 누구에게도 악행을 할 생각을 품지 않았으니, 악행을 하지 않은 나에게 어찌 괴로움이 미칠쏘냐.' 이것이 그가 얻는 세번째 안식이다.

 

`가령 악행을 한 사람이 악한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 해도 나는 어떤 경우라도 스스로 청정해졌음을 안다.' 이것이 그가 얻는 네번째 안식이다.

 

칼라마인들이여,

이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증오가 없고 원한이 없으며 티없이 청정한 마음을 가져서 바로 지금 여기의 삶에서 네 가지 안식이 얻어진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잘 가신 이[善逝]여! 존자이시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그와 같이 증오가 없고 원한이 없으며 티없이 청정한 마음을 가져서 바로 지금 여기의 삶에서 네 가지 안식이 얻어집니다.

 

 `가령 저 세상(내생)이 있고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죽은 후 육신이 흩어졌을 때, 나는 지복을 누리는 선도 즉, 천상세계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얻는 첫번째 안식입니다.

 

`가령 저 세상이 없고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가 없다고 하자. 그렇다 해도 지금 여기 바로 이 세상에서 증오와 원한을 여의고 나는 스스로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킨다.' 이것이 그가 얻는 두번째 안식입니다.

 

`가령 악행을 한 사람은 악한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하자. 그러나 나는 그 누구에게도 악행을 할 생각을 품지 않았으니, 악행을 하지 않은 나에게 어찌 괴로움이 미칠쏘냐.' 이것이 그가 얻는 세번째 안식입니다.

 

 `가령 악행을 한 사람이 악한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나는 어떤 경우라도 스스로 청정해졌음을 안다. '이것이 그가 얻는 네번째 안식입니다.

 

 존자이시여, 그 성스러운 제자는 그와 같이 증오가 없고 원한이 없으며 티없이 청정한 마음을 가져서 바로 지금 여기의 삶에서 네 가지 안식이 얻어집니다."

 

칼라마인들이 붓다에게 존경심을 표함

 

"훌륭하십니다. 존자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존자이시여!"

 

"존자이시여,

거꾸로 된 것을 바로 놓는 것과 같이, 가려진 것을 드러내는 것과 같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리키는 것과 같이, 어두운 곳에 등불을 가져와 `눈 있는 자는 사물을 보라'는 것과 같이, 이렇게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하셨습니다.

 

존자이시여,

여기 우리들은 부처님께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며, 또 비구 승단에 귀의합니다.

 

존자이시여,

오늘부터 당신을 생명의 귀의처로 삼은 우리들을 부디 제자로 받아주소서!"

 

― 「증지부」, Ⅲ, 대품 65경 ―

 

 

1) 조건지어진 상태 ; 무명(無明)에서 비롯된 갈애(渴愛)에 얽매어 끝없이 고통받는 상태, 곧 중생 삶.

2)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식 : 존재를 왜곡시켜보지 않고 참모습대로 파악하는 앎. 如實知.

3) 안식(安息) : 呼吸, 出息, 安息 등의 의미를 지닌 assaasa의 역어. 본문에서는 탐·진·치를 여의어

    청정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갖추게 되는 흔들림 없는 안온함을 가리킨다.  

4) 지금 여기 : 넓은 뜻으로는 먼 하늘나라의 신이나, 과거의 전통 또는 미래의 생에서 삶의 가치의

    기준을 구하지 않고, 현재 이곳에서의 자신의 행위와 그 인과적 의미에서 오로지 전 진리성을 찾는

    불교의 독특한 입장을 집약하며, 또 협의로는 실수행 면에 있어서 과거의 추억이나 미래의 기대 등

    일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오로지 현재 이 순간에 전념하고자 하는 정념 공부의 특성을 지칭

    하는 용어로 경에서 자주 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