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경계는 본래 공(空)이어서
실체가 없으므로
유(有)라고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유의 상대적 개념인
무(無)라 할 수도 없다.
유다 무다 하는 것은
망념으로 만들어낸
차별적 경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의 두 극단을 여읜
중도(中道)의 정견으로 관(觀)해야
실상을 신해(信解)할 수 있게 된다.
중도의 실상(實相)이란
실은 무상(無相)이다.
일심(一心)의 경지에서는 자아를
비롯한 일체의 경계가 무상이며
이 무상을 신해하는 것을
실상을 본다고 말한다.
곧 보는 나가 있고
보이는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보는 마음(見分:능견상)과
보이는 마음(相分:경계상)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무상 가운데서
온갖 선법(善法)을 닦고
법신을 증득하고자 정진하는 사람을
보살 이라 하며
대승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삼고 있다.
모든 수행자의 목표는
이 보살의 삶이며
정토신앙 역시
보살이 활동하는 국토를
확보하도록 이끌고 있다.
-무량수경종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