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선사, 불감(佛鍵)선사의 말씀
원오선사의 말씀
1
사람이라면 누구인들 허물어 없겠는가만, 허물을 고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큰 장점은 없으니, 예로부터 모두가 허물을 고쳐 훌륭하게 되는 것을 칭찬하였지 허물이 아예 없는 것을 찬미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일을 해나가는 데에서 허물과 착오가 많은 것은 바보든 수재든 모두 면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허물을 고쳐 착한 쪽으로 옮겨갈 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허물을 덮고 잘못을 꾸미는 경우가 많다. 착한 쪽으로 옮겨간 사람은 그 덕이 날로 새로와지는데 그런 사람을 군자(君子)라 부르며, 과오를 꾸미는 사람은 그 악이 더욱 드러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을 소인(小人)이라 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의로움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보통 사람의 감정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착한 것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는 것은 현덕(賢德)이 숭상하는 바이다.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언어의 밖에서 서로를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원오는 말하였다.
선사(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장로(長老)가 되어 도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자도 있으며 세력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자도 있다. 이는 마치 난새, 붕새가 날면 모든 새들이 우러르나 호랑이가 지나가면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는 것과도 같다” 하셨다.
이는 감동시키고 복종시키는 것은 하나이지만 그 품격의 정도를 나누면 실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음을 말한다.
3
원오가 융장주(隆藏主) 1)에게 말하였다.
총림을 다스리고 싶어하면서도 대중의 마음을 얻는데 힘쓰지 않는다면, 총림을 다스릴 수 없다.
인심을 얻는 데에만 힘쓰고 아랫사람 대접에 소홀하면, 인심을 얻지 못한다.
아랫사람 대접하는 데에만 급급해서 훌륭하고 훌륭하지 못한 자를 분별하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된다.
어질고 어질지 못함을 분별하는 데 힘쓰면서도 자기 허물에 대해 언급하는 자는 미워하고 순종하는 자만을 좋아한다면, 어진 자와 어질지 못한 자를 분별하지 못한다.
어질고 지혜로운 인재는, 누가 자기의 단점을 헐뜯든지 또 누가 자기를 따르든지에 관계없이, 오직 도를 따를 뿐이다. 그리하여 인심을 얻어 총림을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4
원오는 말하였다.
주지는 대중의 지혜로써 지혜를 삼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한 물건이라도 그 실정을 다하지 못하였는지 또 일 하나라도 이치에 맞지 않았는지를 향상 염려하고, 부지런히 노덕(老德)을 방문하고 납자들을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치에 타당한가만을 물으면 될 뿐, 어찌 일의 규모를 따지겠는가? 아치에 맞다면 소비가 크다 해도 결행하여 무엇이 손상되겠으며, 일이 잘못이라면 용도가 작다 해도 그를 제거하여 무엇이 해롭겠는가.
작은 것은 큰 것의 점진이며, 은미한 것은 현저한 것의 싹이다.
그 때문에 훌륭한 사람은 시초부터 조심하고, 성인은 조심하는 마음을 간직한다.
졸졸 흐르는 물을 막지 않으면 끝내 뽕밭이 바다로 변하고, 작은 불꽃을 끄지 않으면 마침내 큰 평원을 태워버리게 된다. 물줄기와 불길이 커져 재앙이 되고 나면 구하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작은 일을 조심하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에 누를 끼친다” 하였는데,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5
원오가 원포대(元布袋)2)에게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장로라는 직책을 맡은 자로서 부처님의 교화를 돕고 선양하려면, 항상 이익으로 구제하려는 마음가짐을 생각해야 한다. 이를 실천하면서도 뽐내는 마음이 없다면, 그 미치는 곳은 넓고 구제받는 대상이 많아진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자기를 뽐내고 능력을 과시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요행을 바라는 생각과 어질지 못한 마음이 얼어난다.
6
원오가 묘희(妙喜)에게 말하였다.
모든 행동거지에서 그 시초와 마무리를 삼가 조심해야 한다. 시작을 잘한 사람은 반드시 마무리도 훌륭하게 하니, 마무리 단계도 시작할 때처럼 조심하면 그르치는 일이 없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애석하다, 저고리를 만들다 말고 문득 치마를 짓기 시작하니, 백리 길이 구십 리에서 반이 되었구나” 하였다. 이는 모두가 시작만 있고 마무리가 없음을 탄식한 말이다.
그러므로 시경(詩經)에서는 “어디에든 처음이야 다 있지만 능히 마무리를 짓는 경우는 드물구나” 하였던 것이다.
지난 날 회당노숙(晦堂老叔)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황벽승(黃檗勝)3)화상도 처음에는 기특한 납자였다. 다만 만년에 잘못되었을 뿐이다. 그 처음만 본다면 어찌 훌륭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7
원오가 불감(佛鑑)4)에게 말하였다.
백운(白雲) 노스님께서는 모든 일에 반드시 옛 법도를 상고하셨는데,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 법도를 상고하지 않은 일은 법(法)답지 못하다고 한다. 나는 옛 성인들의 언행을 많이 배움으로써 드디어는 그 분들의 뜻(志)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옛것이라고 해서 좋아한 것만은 아니다. 다만 지금 사람들에게서는 본받을 만한 없기 때문이다.”
선사께서 매양 “백운 노스님은 옛것만 고집할 뿐, 시대의 변화를 모른다”고 말씀하시자, 노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옛 도를 변질시켜 원칙을 뒤집는 것이 바로 요즈음 사람의 커다란 병통이다. 나는 끝까지 이런 짓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불감(佛鍵)선사의 말씀
1
불감근화상이 태평사(太平寺)에서 지해사(智海寺)로 옮겨가게 되었다. 군수인 증원례(曾元體)가 이 말을 듣고 “주지 후임으로 누가 마땅하겠읍니까?” 하자, 불감이 병수좌(昞首座)5)을 천거하였다.
증공이 그를 한번 뵙고 싶어하자 불감이 말하였다.
“병수좌는 사람됨이 강직하여 세속과는 생각이 멀어 아무것도 좋아하는 것이 없소. 간청해도 들어주지 않을까 염려스러운데 어찌 스스로 오려 하겠는가.”
증공이 굳이 그를 맞이하려 하자 병수좌는 “이야말로 먼저 그 몸(스승의 체모)을 보고 난뒤에 장로를 맡긴다 하는 것이구나” 하고는 끝내 피하여 사공산(司空山)으로 도망해 버렸다.
증공이 불감을 뒤돌아보며 “과연 부모만큼 자식을 아는 사람이 없읍니다” 하고는 곧바로 모든 산에 명령을 보내어 다시 병수좌를 굳이 청하니 그가 마지못해 응하였다.
2
불감이 순 불등(詢佛燈)6)에게 말하였다.
고상한 인재는 명예와 지위를 영화롭게 여기지 않으며, 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는다. 은혜를 받으면 자기의 힘을 다 바치고 이익을 보고서 정성을 다하는 것은 모두 보통 이하의 사람이나 하는 짓들이다.
3
불감이 병수좌에게 말하였다.
일반에서 장로라 불리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무엇 하나라도 좋아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나라도 좋아하는 것이 있게 되면 외물(外物)의 해침을 당한다.
기호를 즐기는 것을 좋아하면 탐내고 아끼는 마음이 생기고, 다른 고장을 좋아하면 분주하게 달리는 생각이 일어난다. 순종하기를 좋아하면 아부하고 고인(高人)에게 영합하며, 승부를 좋아하면 너와 나라는 대립이 산처럼 높아지며, 각박하게 재물 모으기를 좋아하면 탄식과 원성을 사게 된다.
이를 총체적으로 궁구해 본다면 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萬法)이 스스로 끊어진다.
평생을 통해 얻은 것 중에 그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니 그대는 마땅히 힘써 후학을 바로잡아야 하리라.
4
불감은 말하였다.
선사께서는 근검절약하여 발우 주머니 하나와 신 주머니 하나를 백번, 천번이나 꿰매었는데도 차마 버리지 못하셨다. 선사께서 일찌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두 가지 물건이 서로 따르매 관문(關門)을 벗어난 지가 겨우 오십여 년 밖에 안 되었다. 어떻게 도중에 이를 버리겠는가?”
하루는 천남(泉南)에 사는 오상좌(悟上座)라는 이가 갈포(褐布)7)로 만든 옷을 보내면서, “이를 해외에서 얻었읍니다. 겨울에 입으면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합니다” 하였다. 이에 선사께서는 “내게는 추우면 땔감과 종이 이불이 있고 무더우면 솔바람이 있다. 이를 쌓아두어 어디에다 쓰겠는가?” 라고 말씀하고는 끝내 물리치셨다.
5
불감은 말하였다.
선사께서 진정(眞淨)이 입적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신위(神位)를 모시고 공양을 준비하여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슬피 통곡하더니, 탄식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드문 인재였다. 도(道)의 근저를 볼 뿐 지엽은 찾지 않았으니, 애석하다, 이런 사람이 일찍 죽다니!
그의 도를 계승할 만한 이가 있다는 소문을 아직 듣지 못하였으나, 이로부터 강서(江西)의 총림이 쓸쓸하겠구나.”
6
불감은 말하였다.
선사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운 노스님은 평소에 마음이 관대하여 막힘이 없었다. 어떤 일이 의리에 합당한지를 살펴보고 과연 할 만한 것이다싶으면 열심히 몸소 나서서 솔선하였다. 그는 또한 인격과 재능을 갖춘 사람을 이끌어주기를 좋아하였으며, 이해타산으로 영합했다 갈라섰다 하는 구차한 짓은 좋아하지 않고 그저 초연한 마음으로 종일토록 우뚝하게 걸상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응시자(凝侍者)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지키며 가난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은 납자의 본분이니, 빈부득실 때문에 지키던 것에서 변심하는 자와는 도를 논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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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융장주(隆藏主) : 평강부(平江府) 호구(虎丘)의 소륭(紹隆)선사를 이른다. 원오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이다.
2) 원포대(元布袋) : 태주(太州)에 있는 호국사(護國寺) 차암(比庵)의 경원(景元)선사를 말한다. 원오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이다.
3) 황벽승(黃檗勝) : 서주(瑞州) 황벽산(黃檗山)의 유승(惟勝)선사을 말한다. 황룡남(黃龍南)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2세 법손이다.
4) 불감(佛鑑) : 사주(舒州) 태평사(太平寺)의 불감혜근(佛鑑慧動)선사를 말한다. 오조 법연(法演)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4세 법손이다.
5) 병수좌(昞首座) : 소주(韶州) 남화산(南華山)의 지병(智晩)선사를 말한다. 사람됨이 근엄하여 그때에 ‘강철 같은 병수좌(昞鐵面)’이라 불렸다. 불감근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이다.
6) 순 불등(詢佛燈) : 절강성(浙江省) 호주부(湖州府) 안길주(安吉州)에 있는 하산불등사(何山佛燈寺)의 수순(守詢)선사를 말한다. 불감근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이다.
7) 갈포(褐布) : 얼음쥐, 불쥐의 털로 짠 옷을 말한다. 얼음쥐는 북방의 백척이나 되는 얼음 밑에서 사는데 털의 킬이는 몇 치 정도로 모포를 짤 수 있다. 또 불쥐는 불에 들어가도 타져 않는다고 하며 털의 길이는 한 자쯤으로 이른바 화완포(火浣布)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 두 가지 털을 합하여 모포를 짜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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