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성철스님] 선림보훈집(禪林寶訓集) - 만암도안(萬華道顔) 스님의 말씀

通達無我法者 2007. 11. 23. 16:48

만암도안(萬華道顔) 스님의 말씀

1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묘희선사(先師)가 지난날 경산(徑山)에 머물 때 야참(夜參)하는 차에 다른 몇 종풍(宗風)을 지지하는 논조를 펴다가 조동 종지(費洞宗旨)에 미쳐서는 그칠 줄 몰랐다.
다음달 음수좌(音首座)가 선사에게 말하였다.
"세간을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원래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종교의 가르침[宗敎]을 진작하려 한다면 시기를 따라 폐단을 바로잡을 수는 있을지언정 당장 보아 통쾌하다고 해서 다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님께서 지난날 납자시절이라 해도 다른 종지(宗旨)를 허망하게 해서는 아니 되거늘 하물며 보화왕좌(寶華王座)에 올라 선지식이라 일컬어지는 지금의 경우이겠읍니까."
선사는 변명하였다.
"그저 하룻저녁 지나가는 말일뿐이었네."
그러자 수좌가 다시 말하였다.
"성현의 학문은 천성에 근본하였읍니다. 이렇게 경솔하게 해서야 되겠읍니까."
선사는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으나 수좌는 그래도 말을 그치지 않았다.

2
만암스님은 말하였다. 선사가 형양(衝陽)에 귀양 가자 현시자(賢待者)가 깎아내리는 말을 적어서 큰방 앞에 걸어보였다. 그러자 납자들은 부모를 잃은 듯 눈물을 흘리고 근심스런 탄식을 하면서 안절부절하니 음수좌가 대중방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인생의 화환(福愚)이란 구차하게 면하지 못한다. 가령 묘희스님이 평생을 아녀자처럼 아랫자리에 매달려 있으면서 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같은 날은 없었으리라. 더구나 옛 성인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여기에 그치지 않으니 그대들은 무엇이 괴로와 슬퍼하는 옛날 자명(慧明)과 낭야(  )와 곡천(谷泉)과 대우(大愚)스님이 도반이 되어 분양(汾陽)선사를 참례하러 기는데, 마침 서북지방에서 전쟁을 하였으므로 하다 못해 옷을 바꿔 입고 대열에 끼어서라도 갔었다. 그런데 지금 경산과 형양은 멀지 않고 길은 막힘이 없으며 산천도 험하지 않다. 묘희스님 보기를 원한다면 다시 무엇이 어렵겠는가"
이 말로 온 대중이 잠잠하더니 다음날 줄지어 떠나 버렸다.

3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선사(先師)께서 매양(梅陽)현으로 오신 일을 가지고 더러 이런저런 말이 있자 음수화가 한마디 하였다.
"대체로 사람을 평가하려면 허물 있는 가운데서 장점을 찾아야 된다. 어찌 허물이 없는 데서 단점만을 꼬집어내려 하는가, 그의 마음은 살피지 않고 자취만 가지고 의심한다면 실로 무엇으로써 총림의 공론을 맞춰 주겠는가.
더구나 묘희스님의 도덕과 재주는 천성에서 나왔으며 뜻을 세워 일을 주도함에는 의로움을 따를 뿐이다. 그의 도량은 일반 사람보다 뛰어난데, 지금 하늘이 그를 억제하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니 뒷날 그가 불교 집안의 복이 될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듣고 나서는 사람들이 다시는 이러니저러니 하지 않게 되었다.

4
음수좌가 만암스님에게 말하였다. 선지식이라 불리우는 자는 마음을 씻어내야 하며, 지극한 공정(公正)으로 사방에서 오는 납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사이에 도덕과 인의를 지닌 자가 있으면 원수처럼 틈이 있다 해도 반드시 써주어야 하며, 간사하고 음흉한 자라면 개인적으로 은혜가 있다 해도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 그리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저마다 지켜야할 바를 알아 일심동체가 되게 하면 총림은 안정되리라.

또 이렇게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주지된 자라면 누구인들 법도와 질서가 반듯한 총림을 세우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총림을 진작시키는 자가 드문 이유는 도덕을 잊고 인의를 폐지하며 법도를 버리고 개인의 감정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불교가 사들어 가는 것을 진정 염려한다면, 자기를 바르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훌륭한 사람을 선발하여 돕게 하며, 덕망 있는 분을 권장하고 소인을 멀리 해야 한다. 절약 근검을 자신부터 실천하고 덕과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시자와 소임자로 채용된 사람들이 덕있는 자를 모시고 아첨하는 자는 멀리할 줄을 알게 되며, 치졸한 비방과 편당(偏黨)하는 혼란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마조(馬祖), 백장(百丈)스님과도 짝이 될 수 있고, 임제(臨濟), 덕산(德山)스님의 경지에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5
음수좌가 말하였다.
옛날 성인은 재앙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하늘은 어찌 이 못난 놈을 버리시는가" 하고 탄식하였다.
범문자(泡文子)는 말하기를 "성인만이 안팎에 환란이 없을 수 있으니 스스로가 성인이 아니고서야 바깥이 편안하면 반드시 마음이 근심스럽다" 하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어질고 총명한 이는 환란을 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애초부터 조심하여 이를 스스로 방지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살아가면서 약간의 근심과 수고로움이 있다 해도 반드시 진정한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재앙, 근심, 비방, 모욕은 이마 요순(堯舜) 같은 성인이라 해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니, 더구나 그 나머지 경우이겠는가.

6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요즈음 총림을 살펴보면 성숙된 인재가 아예 없다. 몇 백 군데를 가보아도, 아무개가 주지가 되고 대중이 짝이 되어 법왕(法王)의 자리에 의거하여 주장자와 불자(佛子)를 세우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었다. 법담을 나누긴 하나 경론을 섭렵하지 않았으므로 노련하게 성숙된 사람이 없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다.
세간을 벗어나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부처를 대신해 교화를 드날리려 하면서, 마음을 밝히고 근본을 알아 깨달음과 실천〔行•解〕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일을 해내겠는가.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망령되게 제왕이라 자칭하다가 죽음을 스스로 초래하는 것과도 같다. 더구나 법왕을 어떻게 망령되게 훔치려 하는가.
아-아, 부처님 가신 지가 더욱 멀어지자 ‘수료학,*게송을 지어 부르며 사견을 내는 무리들이 자기 멋대로하며 옛 성인의 가르침을 날로 침체시키니, 내가 말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마침 일 없이 지내는 터라 교풍(敎風)을 매우 해치는 한두 가지 사례를 진술하였다. 이를 총림에 유포하여 선배들은 조심스럽게 큰 법 걸머지려는 마음이 살얼음판을 지나듯, 칼날 위를 달리듯하여 명예나 이익에 구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후학에게 알리고자 한다.
나를 인정해 주는 자에게도, 나를 허물하는 자에게도 나는 변론하지 않으리라.

7
만암스님은 말하였다.
옛 사람은 상당(上堂)하여 우선적으로 불법의 요점을 제시하고 대중에게 자세히 물으면, 납자는 나와서 더 설명해 주기를 청하였으니 드디어 문답형식의 법문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운(韻)도 안맞는 4구게(四句偈)를 옛 법도를 무시한 채 멋대로지어 놓고 도리어 조화(釣話 .법에 대해 거량하는 말)라 하고 또 한 사람이 대중 앞에 불쑥 나서서 옛시 한수를 높은 소리로 읊조리며 도리어 매진(罵陳 .의심을 결단해 주는 진술)이라 부르고 있으니 치졸하고 속되어 비통해 할 만한 일이다.
선배들은 생사의 큰 일을 염두에 두고 대중과 마주하여 의심을 결단하였으며 이윽고 뜻을 밝히고 나서는 생멸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았다.

8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명성높은 큰스님이 절에 이르면 주지는 좌석에 올라 겸손하게 인사하고 높은 지위를 굽혀 낮은 데로 나아가야 한다. 더욱 정중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내려와 수좌대중(首座大衆)과 함께 법좌(法座)에 오르시기를 청하고 법요(法要) 듣기를 바라야 한다.
요즈음은 서로를 부추기면서 옛 사람의 공안(公案)을 들어다가 대중들에게 비판하게 하고는 그를 시험한다고들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절대로 이런 마음을 싹트게 하지 말라.
옛 성인께서는 법을 위하여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 함께 교풍을 세워 서로가 주고 받으며 법이 오랫동안 머물게 하였다. 생멸하는 마음으로 이런 악한 생각 일으키는 것을 어찌 용납하려 했겠는가. 예의는 겸손이 위주가 되니 깊이 생각해야 한다.

9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요즈음 사대부, 감사(監司), 군수(郡守)가 산에 들어와 처소를 잡으면 다음날 시자(侍者)로 하여금 장노에게 “오늘은 특별히 아무개 관리가 법회에 오르겠읍니다.” 하고 아뢰게 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 한 마디는 세번쯤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예로부터 방책(方冊) 가운데 실린 이름이 모두가 선지식을 찾아온 사대부이긴 하나, 이 때 주지는 그들이 참례하는 마당에 속인으로서 불법을 보호하는 방법만을 대략 거론하여 산문(山門)의 본의를 빛나게 하였다. 이렇게 집안 사람이 집안 일 한두 마디를 담박하게 하여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경한 마음을 내게 하였던 것이다.
곽공보(郭公輔)와 양차공(楊次公)이 백운(百雲)스님을 방문하고, 소동파(蘇東波)와 황태사(黃太史)가 불인(佛印)스님을 뵌 경우가 모두 이런 본보기이다. 어찌 유별나게 망령을 떨어 식견있는 자들에게 비웃음을 사겠는가

10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옛사람은 선방에 들어오면 먼저 패(牌)를 걸어 놓고 각각 생사의 큰일을 위해 힘차게 찾아와 결택(決擇)을 구하게 하였는데, 요즈음은 늙었거나 병들었거나를 묻지 않고 모조리 와서 극진한 공경을 바치게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사향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향기가 나기 마련인데 하필 일률적으로 몰아붙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 이로 인해 공연히 예의 따지는 절차조목만 생겨나 손님 쪽이나 주인 쪽이나 편치 않으니 주지라면 의당 이를 생각해야 하리라.

11
반암스님이 말하였다.
초조달마(初租達磨)스님께서는 의발(衣鉢)과 법을 둘 다 전하였는데 육조 혜능스님에 이르러는 의발은 전하지 않고 깨달음과 수행방법이 이 도리에 계합한 자만을 기준으로 하여 대대로 가업(家業)을 삼았다. 이로부터 조사의 도는 더욱 빛나고 자손은 점점 번성하였다. 육조 대감(六祖大鑑) 스님의 후예로는 석두(石頭)스님과 마조(馬祖)스님이 다 적손(嫡孫)으로서 반야다라(般若多罷)스님의 예언에 적중하였으니, 즉, “요컨대 아손(兒孫)의 다리를 빌려 걷겠구나.”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말이다.
두 대사(大士)의 현묘한 말이 천하에 퍼져 은밀한 깨달음에 가만히 계합한 자들이 더러더러 있게 되었고 법을 이어받은 자가 많아지자 가문을 독차지하려는 풍조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조계(曹溪)의 원류가 다섯 파로 나뉘었으나 마치 모나고 둥근 그릇에 물이 담길지라도 물 자체는 변함없는 경우와 같아서 각각 아름다운 명성이 드날리며 자기의 책임을 힘써 실천하였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나 명령 하나가 온 납자들에게 미쳐 총림이 물끓듯 하였는데 이는 구차하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로부터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은미하고 그윽한 도를 천양하기도 하고 혹은 부정하고 혹은 긍정하면서 설법을 했는데, 그 말 자체는 마치 나무로 끓인 국이나 무쇠로 지은 밥과 같이 아무 맛도 없었으므로 후배들이 이를 씹어보고 염고(括古)라고 불렸다.
그러한 게송은 분양(汾陽)스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서두(雪竇)에 이르러서는 변론이 유창하고 종지는 밝게 드러나 훌륭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후세에 게를 짓는 자들은 설두를 부지런히 쫓아가기는 하나 도는 되돌아보지도 않고 문체를 아름답게 하는 데만 힘을 쏟아 후학들로 하여금 혼순(渾淳)하고 완전한 옛사람의 종지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아-아, 나는 총림에 노닐면서 선배들을 보고서 옛사람의 어록이 아니면 보질 않고 백장의 호령이 아니면 행하질 않으니, 내 이런 태도가 어찌 복고적인 성향때문만이겠는가. 요즈음 사람들에게서는 본받을 만한 점이 없기 때문이다.
원컨대 지혜로운 자라면 말 밖에서 내 뜻을 알아내야 하리라.

12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요즈음 편견으로 집착하기 좋아하는 납자들을 종종보게 된다. 그들은 세상물정 모르고 경솔하게 약속을 해대다가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에게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하면서 순종하면 좋다 하고 거슬리면 멀리한다.
설사 반쯤, 아니 온전한 분별이 있는 자라 해도 이런 악습에 가리워지면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되도록 성취한 것이 없는 수가 많다.

13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이르는 총림마다 삿된 말이 불길 같다. 즉 “계율을 지키거나 정혜(定慧)를 익힐 필요도 없으며 도덕을 닦고 탐욕을 버려 무엇하겠는가.”라고들 말한다.
거기다가 「유마경」과 「원각경」을 인용하여 증거를 대면서 탐진치살도음망(貪瞋痴殺盜淫妄)을 청정한 수행〔梵行〕이라 찬탄하기도 한다. 아-아. 이 말이 어찌 오늘의 총림에만 해로움을 끼치겠는가. 참으로 불법 만세의 병통이다.
또 번뇌에 꽉 얽혀 있는 범부는 탐하고 성내는 애욕과 나다 너다〔人我〕 하는 어리석음〔無明〕이 생각 생각에 마주함이 마치 솥의 끓는 물과도 같으니 무슨 수로 식히겠는가.
옛 성인께서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있으리라는 것을 크게 생각하시어 드디어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시설하여 이러한 폐단을 되돌이키기를 바랐던 것이다.
지금의 후학들은 계율을 지키지도, 정혜를 익히지도 않고, 도는 닦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지식만을 늘리고 억지 변론이나 하면서 세속으로 끌려들어가 잡아당겨도 되돌아올 줄 모른다. 이것이 내가 말한 ‘만세의 병통’이다.
바른 발심〔正因〕으로 수행하는 고상한 납자라면 생사를 한번에 결판내야 하니, 성신(誠信)을 간직하여 이런 무리들에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말은 믿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극약을 먹고 싼 똥이나 독사가 마신 불과 같으니, 보거나 들어서도 안 되는데 하물며 먹어서야 되겠는가. 그 물이 사람을 죽이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식견이 있는 자라면 자연히 그를 멀리해야 하리라.”

14
만암스님은 말하였다.
초당스님의 제자 중에 유일하게 산당(山堂)스님이 옛사람의 풍모를 간직했을 뿐이다. 황룡사에 살 때, 공적인 일을 맡아 주관하려면 반드시 용모를 가다듬고 방장실(方文室)에 나아가 분부를 받은 뒤에야 차를 달이는 예의를 갖추었다. 이런 태도는 시종 변함이 없었다.
지은상좌(智恩上座)라는 이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금(金) 두닢〔錢}을 내놓은 일이 있었다. 이를 이틀이 지나도 찾지 못하였는데 재시자(才侍者)가 청소를 하다가 이를 주워 습유패(拾遺牌)에 걸어 놓자 온 대중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법을 주관하는 자가 청정하여 윗사람이 하는 것을 아랫사람이 본받았기 때문이다.

15
만암스님은 근검 절약하여 소참(小參)에 보설(普說)을 하면서 공양을 하게 되었다. 납자들 사이에 나름대로 이를 문제삼는 자가 있자 스님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아침에 고량진미를 먹고도 저녁에는 거친 음식을 싫어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대들이 생사의 큰일을 생각하여 도(道)의 궁극을 깨달으려 하였다면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성인과 멀어진 지가 아득한데 어찌 조석으로 탐하고 즐기는 것을 일삼아서야 되겠느냐.”
만암스님은 천성이 어질고 후하며 자기 처신에는 청렴하였다. 평소에 법문을 하면 말은 간결하나 의미는 치밀하였고, 널리 배우고 열심히 익혀 철저히 도리를 따져나갔으며, 구차하게 중단하거나 허망하게 남의 논리를 따르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과 고금을 평론하면 마치 자신이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닌 듯하여 듣는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떤 납자가 만암스님을 두고 한 말이 있다.
“세월이 다하도록 참선하는 것이 하룻동안 스님의 답론을 듣고 체득하는 것만 못하다.”

16
만암스님이 변수좌(辮首座)에게 말하였다.
“요즈음 참선하는 사람들은 절의를 소소하게 여기고 염치를 차리지 않으므로 사대부들이 천박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대도 뒷날 이렇게 되는 것을 면치 못한다면 벌레와 한가지일 것이다. 항상 법도에 맞게 수행할지언정 권세와 이익을 쫓느라 남의 안색이나 살펴 아첨하지 말며, 생사나 재앙은 일체 그대로 맡겨 둔다면 마구니 세계를 벗어나지 않은 채 부처님 세계로 바로 들어가리라.

*부처님 당시에 어떤 외도들은 “백년을 살면서 수료학을 보지 못한 이는 하루를살더라도 그것을 본 이만 못하다〔若人生百歲 不見水潦鶴 不如生-日而得賭見之〕” 하는 게송을 외우고 다녔다 한다. 「아육왕전(阿育王傳)」

*「유마경」에는 말하기를 “대승보살(大乘菩薩)은 사창가에 들어가 애욕의 허물을 보이면서 처자를 두고도 항상 범행(梵行)을 닦는다” 하였고, 「원각경」에서는 ‘일체의 장애가 바로 구경각(究竟覺)이며, 내지는 모든 계정혜와 음란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 그대로 범행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