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수행법 강의·남회근 선생

제1강/어떻게 이 강의가 시작되었나

通達無我法者 2007. 11. 30. 18:10

제 1 강

 

어떻게 이 강의가 시작되었나

 

먼저 이번에 강의를 하게 된 인연부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불법을 배우거나 선(禪), 또는 타좌(打坐)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 기회에 가부좌를 하고 들으면 훨씬 더 좋을 겁니다.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가를 떠나 먼저 두 다리부터 단련시킨 다음 다시 말합시다.

이제 방금 이야기한 이 강의의 인연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올해 정우러, 오랜 친구인 소(蕭)선생1)이 저를 찾았는데, 떠나면서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선 열아홉에 출가하여 최후로 고개를 들어 새벽 별을 보고 도를 깨쳤는데,

그가 깨친 것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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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기서 소선생이란 소천석(蕭天石: 1909~1986)선생을 말한다. 소선생은 남회근 선생과는

1942년 33세 때 처음 만나 2년 뒤 함께 고승 대덕을 참방하기도 했으며, 이후 평생에 걸쳐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소선생은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도교 쪽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1956년 48세 때 처음 출간하여 이후 20여 년에 걸쳐 17집까지 발간한

[도장정화(道藏精華)]는 그가 남긴 많은 저작 중에서도 역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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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겠지만, 오랫동안 불교를 연구해 온

소선생이 이렇게 물었으니 분명 심상치 않은 문제였을 겁니다.

경전과 전기의 기록에 의하면 석가모니부처님은 태어날 때부터 일반인과 다른 자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수없이 많은 겁(劫)을 통해 쌓은 수행 덕에,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각종 상서로운 모습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왕위를 뿌리치고 출가하여 12년 동안 구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12년'이란 기간에 주의해야 합니다.

대부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초점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수행한 '12년'이란 기간에 있습니다.

당시 인도에는 각종 각파의 수행법이 있었는데, 이들 수행법은 석가모니부처님 이전부터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야 불법을 배우면서 동쪽으로 가서 이 선생을 만나고 서쪽으로 가서 저 선생에게

인사하며, 여기서 몇 마디 저기서 몇 마디 얻어듣곤 하지만, 석가모니부처님께선

이렇게 산만한 방법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번 마음을 다해 배웠고, 배워야 할 공부라면

모두 배워 익혔습니다.

그런 뒤에야, 그것이 도(道)가 아니며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 여겼습니다.

스스로 눈 덮힌 혹한의 산 위에서 6년간이나 고생을 한 뒤에야, 고행 또한 도(道)가 아님을 알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 후 갠지스강변 보리수 아래에서 타좌하고는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2)을

이루지 못하면 여기서 죽겠노라 발원하여, 마침내 새벽 별을 보고 도를 깨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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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의역(意譯).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더 이상 가는 것이 없는 최고로

    바르고 원만한 부처님의 마음 또는 지혜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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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부분은 여러분이 모두 아는 내용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는 것은 여러분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12년 동안 무엇을 했으며, 또 어떻게 수행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잔기를 버면서, 그가 무상정(無想定)3)을 3년간 배운 뒤에 결국

"옳은 것이 아님을 알고 버렸다"(知非卽捨)는 사실만 알뿐, 그가 12년간이나 성실히 수행한

사실에 대해서는 소홀히 넘겨버리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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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든 심상(心想)을 완전히 없앤 선정(禪定)으로, 이를 닦으면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난다고

    하여 무상정이라 한다. 범부(凡夫)나 외도(外道)가 무상(無想)의 상태를 참된 깨달음으로

    잘못 알고 닦는 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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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 번 말해 봅시다. 무엇이 '무상정'인가요? 이것이 인도의 고법(古法)으로, 세계 각지에

모두 더 있는 겁니다. 바로 수도인들이 배워 이르고자 하는 '망상이 없는 경지'입니다.

만약 우리가 타좌4)를 한다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우스갯소리지만 다음 두 가지 사람이라면 가능합니다.

하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이 두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어떤 사람도 도달할 수 없습니다. 얼마전 벨기에 학생과 상(想)

-불상(不想)의 문제를 토론하면서도, 역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3년간 무상정을 배운 후 그것이

도가 아님을 알고 버렸다는 말을 했습니다. 결코 닦아서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닦아 이룬 후 버렸습니다. 도(道)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불경의 문자는 아주 간략해서, 우리는 쉽게 그것을 간과해 버릴 수 있습니다.

불교의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비상(非想)', 즉 우리의

습관적인 사상(思想)5)의 경계가 아니며, '비비상(非非想)', 즉 사상(思想)이 아니라

억지로 표현해 보자면 일종의 영감(靈感), 일종의 사상(思想)을 초월한 영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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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을 다스려 정(定)에 드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흔히 좌선(坐禪)이라고도 한다.

5) 여기서 말하는 사상(思想)은 우리가 흔히 문학 사상이니 철학 사상이니 할 때 사용하는

    '사상'이 아니라 불교 전문용어다. 불교에서는 상(想)과 사(思)를 나누어 거친 것, 뇌파가

    빨리 뛰는 것을 상(想)이라 부르며, 잠이 들 듯 말 듯한, 상(想)이 없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아직 작용하고 있는 그런 미세한 상태를 사(思)라고 말한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제26강 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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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초월명상'이란 것도 있지만, 사실 이것 역시 아직은 '비비상'이 아닙니다.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과 '무상정(無想定)'의 정(定)은 완전히 다릅니다.6)

무상정은 "사상(思想)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것이지만, 비상(非想)은 "사상(思想)이 전혀 없는"

것이긴 해도, 무상정처럼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비상비비상정'은 지각도 없고 영감도 없는 그런 공부가 아닙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수련법으로 표방되던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3년 동안에  이 경계에 도달했으나

그것이 도가 아님을 알고 버린 것입니다. 불경이나 전기에서 언급한 부처님의 수련 경과 중

이 두부분 역시 아주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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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비상비비상정'은 33천(天) 중 제일 꼭대기인 무색계의 제4천(天)에 해당하는 선정을 말한다.

    이 선정은 지극히 고요하고 미묘한데, 이미 조잡한 상(想)이 사라져 버렸기에 비상(非想)이라 했으며,

    그렇긴 해도 미세한 상(想)은 아직 남아있기에 비비상(非非想)이라 했다.

    이에 반해 무상정은 33천(天) 중 24천인 무상천(無想天)의 선정으로서, 외도(外道)에 속하는 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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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수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이 두 수련 방법 자체가 세계상의 수도

없이 많은 수련 방법을 모두 개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도를 배우기 이전에 이미 수학이나 무술 및 문학 등의 영역에서 최고의 경계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출가 후에는 다시 위의 법문 두 가지를 배워 완성했지만, 그것이 궁극의 도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런 경계에 이를 수만 있다면, 날마다 까딱 않고 앉아 있기만 해도 됩니다.

설사 도를 얻지 못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도를 깨친 것 같아서, 모두들 제자가 되겠다고

귀의해 올 겁니다(모두 웃음).

여러분이 유의해야 할 것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위의 두 가지 역시 도가 아닌 것을 알았을때,

당시로서는 더 이상의 스승을 찾을 수 없어 혼자서 설산을 찾아 고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루에 마른 과일 하나만 먹고 견뎠습니다. 당연히 배가 고팠겠지요.

아마도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가 이렇게 고행한 것은 진리를 찾기 의해서였습니다.

그러나 6년 후에는 고행 역시 도가 아님을 알고 곧 하산해 버렸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갠지스강 유역에 도착했을 때, 양치는 여자가 그에게 질 좋은 치즈 하나를

공양했습니다.

이로써 부친이 파견하여 자신을 항시 따라다니던 5명의 청년을 떨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더 이상의 수행을 포기했다고 판단했던 겁니다.

이들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녹야원에서 제일 먼저 제도한 대제자들입니다.

당시 일반인들은 그가 도를 포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가인이라면 마땅히 고행으로 수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주위 사람들이 그를 떠난 겁니다. 그러나 역기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가 영양을 섭취하고 체력을 회복한 후에야 비로소 별을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항시 출가인들에게 권유합니다. 특히 건강과 영양에 주의해야 한다고요.

건강한 신체가 없으면 도를 닦아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엄연한 사실입니다.

신체의 건강과 영양이 수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하나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영양을 취해 체력을 회복한 뒤에야 비로소 갠지스강을 건너 보리수

아래까지 도착할 수있었습니다.

당시 그로서는 더 이상 가르침을 청할 밝은 스승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밖에 의지할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리수 아래에 이르러 타좌하고는 발원했습니다.

이런 간단한 몇 구절을 자칫 소홀히 지나치기 쉽습니다.

언뜻 보면 다 이해한 것 같지만, 깊이 체험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의 당시 발원은 새로운

종교적 지평을 연 장엄한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이번에 도를 이루지 못하면 바로 여기서

목숨을 다하겠다는 맹세였습니다. 그의 구도는 이처럼 철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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