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중아함경(中阿含經)

중아함경 제 26 권

通達無我法者 2008. 1. 2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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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제 26 권

 

 

  동진 계빈삼장 구담 승가제바 한역
  
9. 인품 제 4 ③
  103) 사자후경(師子吼經) 제 7 [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적에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가운데는 제1의 사문(沙門)과 제2 제3 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도(異道 : 外道)는 모든 것이 공(空)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 너희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師子吼)를 하여라. 비구들아, 혹 어떤 이학(異學)이 와서 너희에게 묻기를 '여러분, 그대들은 어떤 행(行)이 있고, 어떤 힘[力]이 있으며, 어떤 지혜가 있어서, 그대들로 하여금 (여기에는 제1의 사문과 제2 제3 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 도는 모든 것이 공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고 말하게 하는가? 그대들은 어떻게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를 하는가?'라고 하거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그 이학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여라.
  '여러분 우리 세존께서는 지식[知]이 있으시고, 견해(見解)가 있으십니다.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서는 네 가지 법을 말씀하셨는데, 이 네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이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제1의 사문과 제2 제3 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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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문 범지는 없다. 이도는 모든 것이 공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
  우리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를 합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여러분, 우리는 스승님을 믿고, 법을 믿고, 계덕(戒德)의 구족(具足)을 믿고, 도를 같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깁니다. 여러분, 우리 세존께서는 지식이 있고 견해가 있으십니다.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서는 이 네 가지 법을 말씀하시고, 이 네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이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여기 제1의 사문과 제2 제3 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도는 모든 것이 공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
  우리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를 합니다.'
  비구들아, 이학들은 혹 다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 우리도 또한 스승님을 믿으니 곧 우리 스승을 말함이요, 법을 믿으니 곧 우리 법을 말하며, 계덕의 구족은 곧 우리 계율을 말하고, 도를 같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니 곧 우리의 도를 같이 하는 출가자와 재가자들을 말합니다. 여러분, 사문 구담과 우리들의 이 두 가지 말에 어느 것이 낫고, 어떤 뜻이 있으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그 이학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라.
  '여러분 구경(究竟)을 하나라고 합니까? 구경을 많다고 합니까?'
  비구들아, 혹 그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한 구경이 있되, 많은 구경은 없습니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욕심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욕심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욕심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욕심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성냄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성냄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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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성냄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성냄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어리석음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어리석음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어리석음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어리석음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애욕이 있고, 집착[受]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지혜가 없고 지혜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지혜가 있고 지혜를 말하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지혜가 있고 지혜를 말하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지혜가 없고 지혜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미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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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있고 다툼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그 이학들을 위하여 응당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러분, 그대들의 말처럼 한 구경이 있다는 것이 옳고, 많은 구경이 있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욕심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욕심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성냄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성냄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어리석음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어리석음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지혜가 있고 지혜를 말하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지혜가 없고 지혜를 말하지 않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한량없는 견해에 의지하면 그는 모든 것에 대해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의 두 가지 견해에 의지한다. 만약 있다는 견해에 의지하면 그는 곧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고, 있다는 견해만 쫓으며, 있다는 견해에 머물러 없다는 견해를 미워하고 비난한다. 만일 없다는 견해에 의지하면 그는 곧 없다는 견해에 집착하고, 없다는 견해만 좇으며, 없다는 견해에 머물러 있다는 견해를 미워하고 비난한다.
  어떤 사문 범지가 인(因)을 모르고 습(習 : 集)을 모르며, 멸(滅)을 모르고 다함[盡]을 모르며, 맛[味]을 모르고 환(患)을 모르며, 출요(出要)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면, 그는 모든 것에 욕심이 있고 성냄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있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으며, 지혜가 없고 지혜를 말하지 않으며,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다. 그는 곧 생 노 병 사를 떠나지 못하고, 또한 시름과 슬픔 울음 걱정 괴로움 번민을 벗어나지 못하며, 괴로움의 끝[苦邊]을 얻지 못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이 두 견해에 대해서 인(因)을 알고 습(習)을 알며, 멸(滅)을 알고 다함[盡]을 알며, 맛을 알고 환을 알며,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는 모든 것에 욕심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고,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지혜가 있고 지혜를 말하며,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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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곧 생 노 병 사를 떠나게 되고, 또한 시름과 슬픔 울음 걱정 괴로움 번민을 벗어나게 되어,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느니라.
  혹 어떤 사문 범지는 집착[受]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욕심에의 집착[欲受]을 끊으라고 말하지만 계에의 집착[戒受] 견해에의 집착[見受] 나에의 집착[我受]을 끊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범지는 3처(三處 : 戒受 見受 我受)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느니라.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욕심[欲]에의 집착과 계[戒]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말하지만, 견해에의 집착과 나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범지는 2처(處)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느니라.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욕심에의 집착 계에의 집착 견해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말하지만 나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범지는 1처(處)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느니라.
  이러한 법(法)과 율(律)에 있어서는 혹 스승을 믿더라도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니요, 제1이 아니다. 만약 법을 믿더라도 또한 바른 것이 아니요, 제1이 아니다. 혹 계덕(戒德)을 구족하더라도 또한 바른 것이 아니요, 제1이 아니다. 도를 같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더라도 또한 바른 것이 아니요, 제1이 아니다.
  만일 어떤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면 그는 무소착(無所著) 등정각(等正覺) 명행성위(明行成爲)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도법어(道法御) 천인사(天人師) 불중우(佛衆祐)라 불린다. 그는 집착을 끊을 것을 말씀하시고, 현법(現法)에서 모든 집착을 끊을 것을 말씀하시며, 욕심에의 집착 계에의 집착 견해에의 집착 나에의 집착을 끊을 것을 말씀하신다. 이 4집착은 무엇을 인(因)하고 무엇을 습(習)하며, 무엇을 좇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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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 이 네 가지 집착은 무명(無明)을 인으로 하고 무명을 습으로 하며, 무명을 좇아 나고 무명을 근본으로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명(無明)이 이미 다하고 명(明)이 이미 생겼다면 그는 곧 그로부터 다시는 욕심에의 집착 계에의 집착 견해에의 집착 나에의 집착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집착을 가지지 않은 뒤에는 곧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은 뒤에는 곧 인연을 끊어 반드시 반열반(般涅槃)을 얻는다. 그리하여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이러한 법과 율에 있어서는 만일 스승을 믿으면 그것은 바른 것이요, 그것은 제1이다. 만일 법을 믿으면 그것은 바른 것이요, 그것은 제1이다. 만일 계덕을 구족하면 그것은 바른 것이요, 그것은 제1이다. 만일 도(道)를 같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면 그것은 바른 것이요, 그것은 제1이다.(그러므로 너희들은 이렇게 말하라.)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행(行)이 있고 이런 힘[力]이 있으며, 이런 지혜[智]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여기 제1의 사문과 제2 제3 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도(異道)는 모든 것이 공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를 합니다.' "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사자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690자이다.]
  
  104) 우담바라경(優曇婆邏經)1) 제 8 [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成)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伽蘭哆園)에 머무셨다. 그 때 어떤 한 거사가 있었는데 이름을 실의(實
  
1)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 니구타범지경(尼拘梵志經) 』과 『장아함경(長阿含經) 』의 8번째 소경인 「산타나경(散陀那經)」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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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意)라고 하였다. 그는 이른 아침에 왕사성에서 나와, 부처님께 나아가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고자 하다가 실의거사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선 부처님께 가는 것을 그만두자. 세존께는 여러 비구들과 혹 연좌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우담바라(優曇婆邏)숲에 있는 이학(異學)들의 동산으로 가자.'
  이에 실의 거사는 곧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으로 갔다. 그 때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에는 무에(無恚)라 이름하는 한 이학이 있었는데, 그는 그들 가운데서 존경을 받아 이학들의 스승이 되었고, 대중들의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을 항복받아 5백 이학들은 그를 추종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그는 대중 가운데서 요란스럽게 높고 큰 음성으로 조론(鳥論) 어론(語論) 왕론(王論) 적론(賊論) 투쟁론(鬪諍論) 음식론(飮食論) 의피론(衣被論) 부녀론(婦女論) 동녀론(童女論) 음녀론(淫女論) 세속론(世俗論) 비도론(非道論) 해론(海論) 국론(國論)을 설하였다. 이와 같이 갖가지 조론 등을 설하며 모두 그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 때 이학 무에는 멀리서 실의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그 대중들에게 분부하여 조용하게 하였다.
  "여러분, 그대들은 떠들지 말라. 잠자코 있기를 즐기고 잠자코 있으면서 제각기 몸을 단속하라. 왜냐 하면 실의 거사가 오기 때문이니, 그는 사문 구담의 제자다. 또 그는 사문 구담의 제자로서 이름과 덕이 높고 훌륭하여 우두머리로 존중할 만하고, 집에 머무는 거사로서 왕사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제1로 칠 것이다. 그는 말하지 않기를 즐기고 잠자코 있으면서 스스로 단속하니, 만일 그가 이 대중이 잠자코 있는 줄을 알면 그는 기꺼이 여기로 올 것이다."
  이에 이학 무에는 대중을 잠자코 있게 하고 자기도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실의 거사는 이학 무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문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실의 거사는 말하였다.
  "무에여, 우리 불 세존께서는 일 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계시고,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또한 사람도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불 세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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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그와 같이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계시고,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멀리 떠난 곳에 계시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고 안온하고 쾌락하십니다. 불 세존께서 하루 낮 하룻밤 동 안 법회를 소집해 함께하신다 해도 오늘 그대와 그대의 권속들이 한 것과는 애초에 같지 않습니다."
  이에 이학 무에가 말하였다.
  "거사여, 그만 두시오. 그대가 어떻게 알 수 있겠소? 사문 구담의 공허한 지혜의 해탈이라면 족히 말할 것도 없소. 혹 서로 맞는가[相應] 하면 서로 맞지 않으며, 혹은 따르는가 하면 따르지 않소. 저 사문 구담은 가장자리[邊]로 가서 가장자리에 이르고, 가장자리를 즐겨하여 가장자리에 이르며, 가장자리에 머물러 가장자리에 이르는데, 마치 애꾸눈 소가 변지(邊地)에서 먹이를 먹을 때 가장자리로 가서 가장자리에 이르고, 가장자리를 즐겨하여 가장자리에 이르며, 가장자리에 머물러 가장자리에 이르는 것과 같이 저 사문 구담도 또한 그와 같소. 거사여, 만일 저 사문 구담이 이 대중들에게 온다면 나는 한마디 말로 그를 쳐부수어 마치 빈 병을 놀리듯 할 것이오. 그리고 그에게 애꾸눈 소의 비유를 말할 것이오."
  이에 이학 무에는 자기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사문 구담이 혹 이 대중 가운데 오더라도, 만일 반드시 오더라도 그대들은 공경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합장하지 말고 앉기를 청하지도 말라, 미리 한자리를 남겨 두었다가 그가 여기에 오거든 이렇게 말하라.
  '구담이여, 자리가 있다. 앉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 "
  그 때 세존께서는 연좌하고 계시다가 사람의 귀보다 훨씬 나은 청정한 하늘귀[天耳]로써 실의 거사가 이학 무에와 나눈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해질녘에 곧 연좌에서 일어나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으로 가셨다. 이학 무에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찬탄하여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오랫동안 여기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원컨대 이 자리에 앉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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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제 약속을 어기는구나.'
  세존께서는 그런 줄 아시고도 곧바로 자리에 앉으셨다. 이학 무에는 곧 세존과 서로 문안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무에여, 전에 실의 거사와 무슨 일을 의논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모여 앉았는가?"
  이학 무에는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사문 구담은 어떤 법이 있어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가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안온을 얻게 하며, 그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깨끗이 닦고, 또 남을 위하여 설명하는가?'
  구담이시여, 전에 실의 거사와 이런 일을 의논하였고 이 일로 말미암아 여기 모여 앉았습니다."
  실의 거사는 그의 말을 듣고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이학 무에는 이상하게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 면전에서 세존을 속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이미 아시고서 곧 말씀하셨다.
  "무에여, 내 법은 매우 깊고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여, 깨닫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보기도 어렵고 얻기도 어렵다. 곧 내 제자를 가르치면 제자는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깨끗이 닦고, 또한 남을 위하여 설명하느니라. 무에여, 만일 그대의 스승이 옳다고 하는 바를 네가 이해하지 못하고, 그 행을 미워하거든 너는 그것을 내게 물으라. 내 반드시 잘 대답하여 네가 마음으로 옳다고 여기게 하리라."
  이에 소란스럽던 이학 무리들은 같은 음성으로 함께 크게 외쳤다.
  "사문 구담께서는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시며, 큰 여의족[大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大威德]이 있으며, 큰 복[大福]이 있고 큰 위신[大威神]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능히 자기의 종교를 버리고 남의 종교로써, 사람들의 질문에 따라 대답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학 무에는 자기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분부한 뒤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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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담이시여,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해야 할 행은 어떻게 하면 구족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구족할 수 없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어떤 사문 범지는 옷이 없는 알몸으로 혹은 손으로 옷을 삼거나, 나뭇잎으로 옷을 삼거나, 구슬로 옷을 삼는다. 혹 병으로 물을 뜨지 않거나, 바가지로 물을 뜨지 않기도 하며, 무기로 뺏은 음식을 먹지 않고 속여서 얻은 음식을 먹지 않으며, 청하지 않는 데는 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지도 않는다. 와서 존경하기를 구하지 않고 존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존경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만일 두 사람이 먹으면 그 가운데서 먹지 않고, 아기 밴 집의 음식을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의 음식을 먹지 않고, 만일 집에 똥파리가 날아오면 곧 먹지 않는다. 물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나쁜 물을 마시지 않으며, 혹 도무지 마실 것이 없으면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 입을 먹고는 한 입으로 만족하고, 혹은 2 3 4 내지 일곱 입을 먹고는 일곱 입으로 만족하며, 혹은 한 번 얻어 먹고는 한 번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혹은 2 3 4 내지 일곱 번 얻어 먹고는 일곱 번 얻는 것으로 만족한다. 혹은 하루에 한 번 먹고는 한 번으로 만족하고, 혹은 2 3 4 5 6 7일이나 보름 한 달에 한 번 먹고는 한 번으로 만족한다.
  채소를 먹거나 피[稗子]를 먹으며, 혹은 기장을 먹고 잡보리를 먹으며, 두두라식(頭頭邏食)을 먹고 거친 밥을 먹는다. 혹은 일 없는 곳으로 가서 일 없이 한가하게 지내며 풀뿌리를 먹거나 혹은 열매를 먹되, 저절로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누더기를 입고 털옷을 입으며 두사옷[頭舍衣]을 입고 털두사옷[毛頭舍衣]을 입으며, 성한 가죽 옷[全皮]을 입거나 헤어진 가죽 옷[穿皮]을 입으며, 혹은 완전히 헤어진 가죽 옷[全穿皮]을 입는다.
  머리를 흩트리거나 머리를 땋기도 하고 흩트리고 땋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깎거나 수염을 깎고 수염과 머리를 모두 깎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뽑거나 수염을 뽑고 머리와 수염을 모두 뽑기도 한다.
  혹은 꼿꼿이 서서 앉지 아니하고 혹은 앉은걸음을 익히며, 혹은 가시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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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워 가시로 평상을 삼고 혹은 열매에 누워 열매로 평상을 삼는다.
  혹은 물을 섬겨 밤낮으로 손으로 긷고, 혹은 불을 섬겨 그날부터 계속해 태우며, 혹은 해와 달의 존우대덕(尊祐大德)을 섬겨 그것을 향하여 합장한다. 이런 따위로써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번거롭고 답답한 행을 배운다. 무에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이렇게 하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구족했다 하겠는가, 구족하지 못했다 하겠는가?"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그렇게 한다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이로써 구족하였고, 구족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다고 말하리라."
  이학 무에가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저를 위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淸苦行者)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있고 욕심을 생각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있고 욕심을 생각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고, 해의 정기를 빨아먹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고 해의 정기를 빨아먹으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잘난 체하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곧 얽매여 집착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잘난 체하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곧 얽매여 집착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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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자신은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수행은 청고(淸苦)하며,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수행은 청고(淸苦)하며,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질투하여 이렇게 말한다.
  '무엇하러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질투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무엇하러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말한다.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으며 항상 뿌리종자 줄기종자 열매종자 마디종자 씨종자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暴雨)처럼 오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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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들을 못 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말한다.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 줄기종자 열매종자 마디종자 씨종자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오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 견디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그러면 진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과 두려움 무서움 은밀한 행동 의심 명예의 상실 탐욕 방일이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과 두려움 무서움 은밀한 행동 명예의 상실 탐욕 방일이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見取) 난위(難爲)를 내어 뜻에 절제가 없으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인데 통용되지 못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 변견 사견 견취 난위를 내고 뜻에 절제가 없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인데 통용되지 못하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 말하지 않는 원결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있고, 제 부끄러움과 남 부끄러움이 없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 말하지 않는 원결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있고, 제 부끄러움과 남 부끄러움이 없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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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을 하여 나쁜 계를 구족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을 하여 나쁜 계를 구족하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正念]과 바른 지혜[正智]가 없고 나쁜 슬기[惡慧]가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고 나쁜 슬기가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에여, 나는 다시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가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도 말하리라."
  이학 무에가 다시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없고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없고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지 않고 해의 기운을 먹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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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고 해의 기운을 먹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잘난 체하지 않으며, 이 청고행자는 고행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잘난 체하지 않으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행은 청정한 수행이고,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행은 청정한 수행이고,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무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질투하여 '무엇 때문에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질투하여 '무엇 때문에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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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 줄기종자 열매종자 마디종자 씨종자 따위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오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고도 이 사문 범지를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 줄기종자 열매종자 마디종자 씨종자 따위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오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 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거나 은밀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의심하거나 명예를 잃지 않고, 탐욕을 내거나 방일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거나 은밀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의심하거나 명예를 잃지 않고, 탐욕을 내거나 방일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見取)를 내지 않고,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뜻에 절제가 있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이라 통용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 변견 사견 견취를 내지 않고,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뜻에 절제가 있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이라 통용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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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 얽매임 말하지 않는 원한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없고 제 부끄러움과 남 부끄러움이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 얽매임 말하지 않는 원한 아낌 질투 아첨 속임이 없고, 제 부끄러움과 남 부끄러움이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을 하지 않고 나쁜 계를 갖추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 추한 말 꾸밈말을 하지 않고 나쁜 계를 갖추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나쁜 슬기가 없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나쁜 슬기가 없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하느니라.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학(異學) 무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학 무에가 물었다.
  "구담이시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도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제일이 될 수 없고 진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두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껍질[皮]을 얻고, 마디[節]를 얻는 것이니라."
  이학 무에가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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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담이시여, 어떻게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겉껍질을 얻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무에여, 여기 혹 어떤 사문 범지는 4행을 행한다.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그는 이 4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도 잘난 체하지 않고, 자애로움[慈]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1방(方)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 3 4방(方)과 4유(維) 상 하를 다 가득 채우고, 자애로움[慈]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悲]과 기뻐함[喜]도 또한 그러하다. 평정함[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무에여,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이렇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겉껍질[表皮]을 얻을 수 있겠는가?"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이렇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겉껍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어떻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마디를 얻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어떤 사문 범지는 4행을 행하나니,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그는 이 4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도 잘난 체하지 않는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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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行)이 있고 상모(相貌)가 있어 한량없는 과거의 경력(經歷)을 기억하나니, 혹은 '1생 2생 백 생 천 생과 성겁(成劫) 패겁(敗劫)과 한량없는 성패겁 동안 그 중생의 이름은 아무개였고, 옛날에 나는 일찍이 거기서 나서 이러한 성과 이러한 이름으로써 이렇게 태어나고 이런 음식을 먹었으며, 이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이렇게 오래 살았으며, 이렇게 오래 머물렀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으며, 여기서 죽어 저기 태어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 태어났다'는 것을 알며, '나는 거기에 태어나서도 이러한 성과 이러한 이름으로써 이렇게 태어나고 이렇게 먹었으며, 이렇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이렇게 오래 살았으며, 이렇게 오래 머물렀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고 기억한다. 무에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렇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마디를 얻겠는가?"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이렇게 하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도 마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어떻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어떤 사문 범지는 4행을 행하나니,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그는 이 4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 잘난 체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이 중생들의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왕래하는 것을 보고, 이 중생들은 그 지은 업을 따른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본다.
  '만일 이 중생들이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로써 삿된 견해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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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만일 이 중생이 몸의 묘행과 입과 뜻의 묘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로써 바른 견해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태어나리라.'
  무에여, 네 뜻에는 어떠한가? 이렇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도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겠는가?"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그렇습니다.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구담이시여, 어떻습니까?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사문 구담의 제자들은 사문 구담에 의지해 범행을 행하는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무에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으로 말미암아 증험을 얻기 때문에 내 제자들이 나를 의지해 범행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무에여, 그것과는 다른 최상(最上) 최묘(最妙) 최승(最勝)이 있어서 그들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의지해 범행을 행하느니라."
  이에 들뜨고 소란스럽던 이학의 무리들이 높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들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사문 구담의 제자들은 사문 구담을 의지해 범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때 이학 무에는, 스스로 자신의 대중들에게 명령하여 잠자코 있게 한 다음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다시 다른 최상 최묘 최승이 있어서 그들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사문 구담의 제자는 사문 구담을 의지해 범행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에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무에여, 만일 여래(如來) 무소착(無所著) 등정각(等正覺) 명행성위(明行成爲)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도법어(道法御) 천인사(天人師) 불중우(佛衆祐)의 명호를 가진 분이 세상에 나오면 그는 5개(蓋)의 마음의 더러움[心穢]과 슬기의 쇠약함을 버리고, 욕심을 여의고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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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미 이렇게 정한 마음[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번뇌가 없으며, 부드럽고 유연하게 잘 머물러 동요하지 않는 마음[不動心]을 증득하고, 누진지(漏盡智)의 신통으로 나아가 그것을 증득한다. 그는 이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苦習]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苦滅]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한 이 누(漏)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누의 발생을 알며, 이 누의 소멸을 알고, 이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보아 욕루(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무에여, 이것이 '다시 다른 최상 최묘 최승이 있어서 그들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의지해 범행을 행한다'는 것이니라."
  이에 실의 거사는 말하였다.
  "무에여, 세존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대는 이제 한 마디 말로 쳐부수어 빈 병을 놀리듯 하고, 애꾸눈 소가 변두리에서 먹이를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해보시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이학 무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진실로 그렇게 말하였는가?"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무에여, 너는 일찍이 장로 구학(舊學)에게서 이런 사실을 들은 적이 있는가?
  '과거의 여래(如來) 무소착(無所著) 등정각(等正覺)께서는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셨다. 또 모든 불 세존께서도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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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곳에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신다.'
  그분들은 멀리 떠난 곳에 계시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고 안온하고 쾌락하시며, 너나 너의 권속들과 같은 집회는 애초에 하루 낮 하룻밤도 함께하시지 않았느니라."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저는 일찍이 장로 구학에게서 '과거의 여래 무소착 등정각께서는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셨고, 모든 불 세존께서도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연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멀리 떠난 곳에 계시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고 안온하고 쾌락하시며, 저나 저의 권속들과 같은 집회에는 애초에 하루 낮 하룻밤 동안도 함께하시지 않았습니다."
  "무에여, 너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저 세존처럼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 혹은 높은 바위에 있으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자. 그는 멀리 떠난 곳에 있으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저 사문 구담의 정각(正覺)의 도를 배우자.' "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제가 만일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한 마디 말로써 쳐부수어 빈 병을 놀리듯 할 것이고, 애꾸눈 소가 변두리에서 먹이를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할 것이다'라는 이런 말을 다시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무에여, 나에게는 지금 선과 서로 잘 상응하는 법이 있느니라. 그것은 저 해탈하는 글귀로서 능히 증험을 얻나니, 여래는 이로써 스스로 두려움이 없다고 일컫느니라. 모든 비구들은 내 제자가 된 뒤로는 아첨이 없고 속이지 않으며, 질박하고 정직하여 거짓이 없고, 내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반드시 구경의 지혜[究意智]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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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구담은 스승이 되기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스승을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구담은 제자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제자를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구담은 공양을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공양은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구담은 칭찬과 명예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칭찬과 명예를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만일 내게 선과 서로 잘 상응하는 법과 이런 저런 해탈하는 글귀가 있다면 능히 증험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저 사문 구담은 나를 침탈하고 나를 멸망시키는 자이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법을 너에게 돌리리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니라."
  이에 대중들은 잠자코 있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마왕에게 제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실의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대중들이 잠자코 있는 것을 보아라.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마왕에게 제압되었기 때문이다. 마왕은 저 이학의 대중들로 하여금 '나는 사문 구담이 수행한 범행을 시험해 보리라'고 생각하는 자가 한 명도 없게 하였다."
  세존께서는 이미 아시고 나서 실의 거사를 위하여 설법하시어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셨다.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한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실의 거사의 팔을 잡고 신족(神足)으로써 날아 허공을 타고 가버리셨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실의 거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우담바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5,898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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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 원경(願經) 제 9 [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어떤 한 비구가 멀리 떠나 혼자서 고요하고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 연좌하여 생각에 잠겼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나를 위로하여 나와 말씀하셨고, 나를 위해 설법하셨다. 나는 구족계(具足戒)를 받고서 선(禪)을 중단하지 말고 비고 고요한 곳[空靜處] 에서 관행(觀行)을 성취하자.'
  이에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해질 녘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그 비구가 오는 것을 보시고 그 비구로 인하여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세존께서는 나를 위로하여 나와 말씀하셨고, 나를 위해 설법하셨다. 나는 구족계를 받고서 선을 중단하지 말고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내게는 친족이 있다. 그들이 나로 인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나는 구족계를 받고서 선을 중단하지 말고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내게 의복 음식 침구 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베푸는 자는 이 보시로 말미암아 큰 공덕이 있고 큰 광명이 있으며, 큰 과보가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굶주림과 갈증, 추위와 더위, 모기와 등에, 벼룩과 이, 바람과 햇볕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또한 능히 참으며, 몸에 병이 들어 몹시 괴로워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이 모든 즐겁지 않은 일도 다 능히 참으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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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즐겁지 않은 일을 견디고, 만일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은 끝내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두려움을 견디고, 만일 두려움이 생기더라도 마음은 끝내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내게 만일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 곧 욕심의 생각[欲念] 성냄의 생각[恚念] 해침의 생각[害念]이 생기더라도 마음은 이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에 끝내 집착하지 않으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까지 증득해 성취하여 노닐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3결(結)이 이미 다하여 수다원을 증득하였다. 이제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정각(正覺)으로 나아가며, 최대 일곱 번까지 몸을 받아 천상과 인간을 일곱 번 왕래한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苦邊]을 증득하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3결이 이미 다하고 음욕 성냄 어리석음이 엷어져 사다함[一往來]을 얻었다. 이제 천상과 인간을 한 번 왕래한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증득하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5하분결(下分結)이 이미 다하였으니, 그 곳에 태어나서 곧 반열반에 들고 물러나지 않는 법[不退法]을 증득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쉬어 해탈하고, 색(色)을 여의어 색(色) 없음을 정해진 그 형상대로의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지혜로 관찰하여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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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漏)를 끊고, 누를 안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여의족(如意足) 천이지(天耳智) 타심지(他心智) 숙명지(宿命智) 생사지(生死智)가 있고, 모든 누(漏)가 다한 무루(無漏)를 증득하였으며, 심해탈(心解脫) 혜해탈(慧解脫)을 증득해 현재에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고 서원을 세워야 하느니라."
  이에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지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고요한 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고, 수행하기를 부지런히 힘써 마음에 방일함이 없었다. 고요한 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고 수행하기를 부지런히 힘써 마음에 방일함이 없었기 때문에, 족성자(族姓子)들처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워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치고는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었다. 그리하여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되었다. 그 존자는 법을 안 뒤에는 아라하(阿羅訶 : 아라한)가 되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원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865자이다.]
  
  106) 상경(想經)2) 제 10 [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2)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불설낙상경(佛說樂想經)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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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사문 범지가 땅에 대해 '땅은 곧 신(神)이다, 땅은 신의 소유[神所]이다, 신은 땅의 소유[地所]이다'라는 땅에 대한 생각[地想]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가 '땅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린다면 그는 곧 땅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이와같이 물 불 바람 신 하늘 생주(生主) 범천(梵天) 무번천(無煩天) 무열천(無熱天)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그가 깨끗함[淨]에 대해 '깨끗함은 곧 신이다, 깨끗함은 신의 소유이다, 신은 깨끗함의 소유이다'라는 깨끗함에 대한 생각[淨想]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가 '깨끗함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린다면 그는 곧 깨끗함을 알지 못하게 된다. 무량공처(無量空處) 무량식처(無量識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일(一) 별(別) 약간(若干) 견(見) 문(聞) 식(識) 지(知)에 대해 뜻의 생각하는 바[意所念]와 뜻의 헤아리는 바[意所思]를 관찰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게 된다. 그가 일체(一切)에 대해서 '일체는 곧 신(神)이다, 일체는 신의 소유이다, 신은 일체의 소유이다'라는 일체에 대한 생각[一切想]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가 '일체는 곧 신이다'라고 헤아린다면 그는 곧 일체를 알지 못하게 된다.
  어떤 사문 범지가 땅에 대해서 곧 '땅은 신이 아니요, 땅은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땅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땅을 안다고 하자. 그가 '땅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는 곧 땅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물 불 바람 신 하늘 생주 범천 무번천 무열천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그가 깨끗함에 대해서 곧 '깨끗함은 신이 아니요, 깨끗함은 신의 소유도 아니며, 신은 깨끗함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깨끗함을 안다고 하자. 그가 '깨끗함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는 곧 깨끗함을 알게 된다. 무량공처 무량식처 무소유처 비유상비무상처와 일(一) 별(別) 약간(若干) 견(見) 문(聞) 식(識) 지(知)에 대해 뜻의 생각하는 바와 뜻의 헤아리는 바를 관찰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게 된다. 그가 일체에 대해서 곧 '일체는 신이 아니요, 일체는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일체가 아니다'라고 일체를 안다고 하자. 그가 '일체는 곧 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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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는 곧 일체를 알게 된다.
  나는 땅에 대해서 곧 '땅은 신이 아니요, 땅은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땅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땅을 알고 있다. 나는 '땅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으므로 나는 곧 땅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물 불 바람 신 하늘 생주 범천 무번천 무열천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나는 깨끗함에 대해서도 곧 '깨끗함은 신이 아니요, 깨끗함은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깨끗함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깨끗함을 안다. 나는 '깨끗함은 곧 신이다'고 헤아리지 않으므로 나는 곧 깨끗함을 안다. 무량공처 무량식처 무소유처 비유상비무상처와 일(一) 별(別) 약간(若干) 견(見) 문(聞) 식(識) 지(知)에 대해 뜻의 생각하는 바와 뜻의 헤아리는 바를 관찰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게 된다. 나는 일체에 대해서도 곧 '일체는 신이 아니요, 일체는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일체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일체를 안다. 나는 '일체는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으므로 나는 곧 일체를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상경에 수록되어 있는 경문의 글자 수는 526자이다. 『중아함경 』 제26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8,979자이고, 「인품(因品)」에 수록되어 있는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25,056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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