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장아함경(長阿含經)

불설장아함경 제12권

通達無我法者 2008. 1. 26. 16:09
[388 / 740] 쪽
  

불설장아함경 제12권

 

 

  후진 홍시 연간에 불타야사ㆍ축불념 공역
  
[제2분] ⑦
  17. 청정경(淸淨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가비라국) 면기(緬祇)1)에 있는 우바새의 동산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에 있는 우바새의 동산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이 때 사미(沙彌) 주나(周那)2)는 파파(波波)3)국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마친 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가유라위국 면기에 있는 동산의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아난에게 아뢰었다.
  국에서 여름 안거(安居)를 마친 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가유라위국 면기에 있는 동산의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서 아난에게 아뢰었다.
  “저 파파성 안에 살던 니건자(尼乾子)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제자들이 두 파로 갈라져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서로 맞대고 헐뜯고 욕하면서 상하가 따로 없이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며 그 지견(知見)을 다투어 '나는 이것을 알 수 있지만 너는 이것을 알 수 없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이며, 뒤바뀌고 어지러이 얽혀 어떤 일정한 법칙도 없이 서로 '내가 하는 말은 옳고 네가 하는 말은 그르다. 너에게 의심이 있거든 마땅히 내게 물으라'고 합니다.
  대덕(大德) 아난이여, 그때 니건자를 섬기던 저 나라 사람들은 이 다투고
  
1) 면기(緬祇, Vedha)는 성읍의 이름이다.
2) 주나(周那, Cunda)는 순타(純陀)로도 쓴다.
3) 파파(波波, Pv)는 왕사성 부근에 있던 말라족(末羅族)의 도성이다.
[389 / 740] 쪽
  있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난이 주나 사미에게 말했다.
  “우리들이 세존께 알려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 너와 함께 나아가 이 사실을 세존께 아뢰리라. 만일 세존께서 어떤 가르침이 계시거든 우리는 다 같이 받들어 행하자.”
  그 때 사미 주나는 아난의 말을 듣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그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이 사미 주나가 파파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친 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이곳에 와 제 발에 절하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파국에 살던 니건자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 제자들이 두 파로 갈라져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맞대고 헐뜯고 욕하면서 상하가 따로 없이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며 저들의 지견을 주장하여 '나는 이것을 알 수 있는데 너는 이것을 알 수 없다. 내 행은 참되고 바른데 너는 삿된 소견을 가지고 있다'고 말들 합니다. 앞의 것을 뒤에 붙이고 뒤의 것을 앞에 붙이며, 뒤바뀐 소견으로 어지러이 얽혀 어떤 일정한 법칙도 없이 '내 말은 옳고 네 말은 그르다. 너는 의심나는 것이 있거든 내게 물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니건자를 섬기던 저 파파국 백성들은 이 다툼을 듣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주나 사미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나야, 저 그른 법에서는 들을 만한 것이 없다. 그것은 삼야삼불(三耶三佛)4)의 말씀이 아니다. 마치 썩은 탑에는 색칠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저들에게 스승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다 삿된 소견을 품고 있고, 또 그들에게 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다 참되고 바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들을 만한 것이 못되고, 그 법으로는 번뇌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이 아니어서, 마치 썩은 탑에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4) samm-sambuddha이다. 정변지(正遍知)ㆍ정등각(正等覺)이라는 뜻이다. 또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번역하기도 한다.
[390 / 740] 쪽
  저 모든 제자들이 그 법을 따르지 않고 삿된 소견을 버리고 바른 소견을 행하려고 할 때에 주나여,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제자에게 말하기를 '여러분, 그대들 스승의 법은 바른 것이어서 마땅히 그 법을 행할 만한데 왜 버리느냐?'라고 말한다고 하자. 그 때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이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도(道)를 잃어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에게 비록 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진정(眞正)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이 진정하여 듣고 행할만하며 또 번뇌를 벗어나게 한다면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일 것이니, 마치 새로운 탑에는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다. 그러나 저 모든 제자들이 이 법 가운데 있어서 부지런히 닦지도 않고 성취하지도 못해 평등한 도를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들에게 와서 '여러분, 그대들 스승의 법은 바른 법이다. 마땅히 그 법을 행해야 하겠거늘 왜 그것을 버리고 삿된 소견으로 들어가려 하느냐?'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제자가 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그 두 사람은 함께 진정한 도를 보아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은 진정(眞正)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주나에게 말씀하셨다.
  “주나야, 저들에게 스승이 있다지만 그들은 다 삿된 소견을 품었고, 또 법이 있다지만 그것은 다 진정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 법은 들을 만한 것이 못되고 또 그것은 번뇌를 벗어나게 하지 못하며 삼야삼불의 말씀도 아니니, 마치 썩은 탑에는 색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성취하고 그 행을 순종하여 모든 삿된 소견을 일으켰을 때에 주나야,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네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네가 행하는 것도 옳다. 이제 이처럼 그것을 부지런히 수행하면, 너는 반드시 현재에서 도과(道果)를 성취하리라'라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제자도 그 말을 믿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함께 도를 잃고 무량한 죄를 받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이 진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나야, 만일 그 스승의 소견이 삿되지 않고 그 법이 진정하여 들을 만하며 또 번뇌를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법이라면 그것은 삼야삼불의 말씀일 것이니,
[391 / 740] 쪽
  마치 새로운 탑에는 색칠하기 쉬운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그 가르침을 성취하고 수순(隨順)하며 수행하여 바른 소견을 내려고 할 때에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제자에게 와서 '네 스승의 법은 바르고 네가 행하는 것도 옳다. 이제 이처럼 부지런히 수행하니 너는 반드시 현재에서 도과를 성취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 말을 들은 제자도 그 말을 믿는다면 그들 두 사람은 다 바른 소견으로서 무량한 복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법은 진정하기 때문이다.
  주나야, 혹 어떤 도사(導師)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을 생기게 하고, 혹 어떤 도사는 세상에 나와 그 제자의 근심을 없애 준다.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생기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주나야, 도사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成道)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은 구족하고 범행(梵行)이 청정하며 여실한 진요(眞要)인데 이를 잘 펴서 나타내 주지도 못하고 도사가 어느새 멸도(滅度)에 든다고 하자. 그 때 그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어 모두들 근심에 잠겨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우리 스승은 새로이 세상에 나와 성도한 지 오래지 않지만,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했으며 여실한 진요였다. 끝내 펴서 나타내 주지도 못하고 이제 도사께서 갑자기 멸도에 드셨으니, 우리 제자들은 수행할 수가 없구나.'
  이것을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없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도사가 세상에 나왔는데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하며 여실한 진요이다. 그리하여 그 법을 널리 편 뒤에야 도사가 바야흐로 멸도에 든다고 하자. 그러면 그 제자들은 모두 수행할 수 있어 근심하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스승은 세상에 나와 성도한 지 오래지 않지만 그 법은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했으며 여실한 진요이다. 그리고 널리 펴신 후에야 도사께서는 멸도하시어 우리 제자들이 모두 수행할 수 있게 하셨다.'
  주나야, 이것이 도사가 세상에 나와 그 제자에게 근심이 없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시 주나에게 말씀하셨다.
  “지(支)5)가 성취된 범행에 대해 말해주리라. 이른바 도사가 세상에 나왔다가 집을 떠난 지 오래지 않고 그 이름이 널리 퍼지지 않았으면 이것을 범행지
  
5) aga이고 지분(支分)ㆍ부분(部分)이라는 뜻이다. 송ㆍ원ㆍ명 3본에는 '지(枝)'자로 되어 있다.
[392 / 740] 쪽
  (梵行支)를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이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으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이고 그 이름 또한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모든 제자가 아직 그 훈계와 가르침을 받지 못하여 범행을 구족하지 못하고 안락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아직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아직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異論)이 일어났을 때 법답게 가서 그것을 없애지 못하고 아직 변화를 부리지 못하며 신통을 증득하지 못했다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이고 그 이름도 널리 퍼져 모든 제자들이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을 구족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이미 자기의 이익을 거두었고 또 법을 받아 분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 능히 법답게 가서 그것을 없애고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하였다면, 이것을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 또한 오래이고 그 이름이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모든 비구니가 그 교훈을 받지 못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지 못하며, 자기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법을 받아 널리 펴서 연설하지 못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 능히 법으로써 실답게 멸하지 못하고 변화가 없어 신통을 증득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주나야, 도사가 세상에 나와 집을 떠난 지도 오래이고 이름도 널리 퍼졌으며, 모든 비구니가 다 그 교훈을 받아 범행을 구족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러 자기의 이익을 거두며, 또한 능히 법을 받아 분별하고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나면 능히 법답게 멸하며,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하였다면, 이를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라 한다. 주나야, 모든 우바새ㆍ우바이가 널리 범행을 닦고 나아가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함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주나야,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지 않고 그 명성[名聞]이 없으며 이양(利
[393 / 740] 쪽
  養)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고 명성과 이양이 다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으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성과 이양이 다 구족하더라도 모든 비구가 명성과 이양을 구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하지 못한 것이다. 만일 도사가 세상에 있어 명성과 이양이 구족하여 줄어듦이 없고 모든 비구 대중도 또한 그것을 구족하면 그것은 범행지가 구족한 것이다. 비구니 대중들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주나야, 나는 집을 떠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이름도 널리 퍼졌으며 나의 모든 비구들은 이미 나의 가르침을 받았고 안온한 곳에 이르렀으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얻었고 또 능히 배운 법을 남을 위하여 연설하며 이론이 일어났을 때에는 능히 법답게 멸하고 변화가 구족하며 신통을 증득하였다.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도 또한 그러하다. 주나야, 나는 그로서 널리 범행을 유포하고, 나아가 변화가 구족하고 신통을 증득하였다. 주나야, 일체 세간의 모든 도사 중에 그 명성과 이양을 얻은 것이 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과 같은 이는 보지 못했다. 주나야, 모든 세간의 온갖 무리들 중에 그 명성과 이양이 나의 무리와 같은 자들은 보지 못했다.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 어떤 것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인가? 일체의 범행을 청정히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 이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울두람자(鬱頭藍子)6)가 대중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가 대중들 가운데서 이렇게 말했다.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것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는가? 마치 칼은 볼 수 있어도 칼날은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범부의 무식한 말로 비유를 들어 그렇게 말한 것이다. 주나야, 만일 바르게 말하고자 한다면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 무엇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가? 네가 바로
  
6) Uddaka Rmaputta로 부처님께서 처음 출가하여 도를 배웠던 두 선인(仙人) 가운데 한 사람이다.
[394 / 740] 쪽
  일체 범행을 청정하게 구족하여 두루 펴서 나타내 보여 흘러 퍼지게 해야 한다고 말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볼 수 없는 것이니라. 주나야, 저 인과가 계속되는 법[相續法]은 구족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지만, 인과가 계속되지 않는 법은 구족하여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주나야, 모든 법 범행(梵行)은 비유하면 낙(酪)과 소(酥) 가운데 제호와 같은 것이니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법 가운데서 몸소 스스로 증명을 얻었다. 이른바 4념처(念處)ㆍ4신족(神足)ㆍ4의단(意斷)ㆍ4선(禪)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와 현성의 여덟 가지 도(道)가 그것이다. 너희들은 다 함께 화합하고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하니라. 여래의 정법에 대하여 마땅히 스스로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어 마치고 나서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자리에서 말하기를 '저 사람이 말한 구절은 옳지 않고 그 뜻도 옳지 않다'고 말하거든 비구들은 그런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여러분,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것이 낫고 어느 것이 못한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내 글귀는 이러하고 내 뜻은 이러하다. 너의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그래서 너의 글귀가 낫고 너의 뜻도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할 때 또한 그것을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하여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바른 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어 마치고 나서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어 말하기를 '저 사람이 말한 글귀는 바르지 못하다. 그러나 그 뜻은 바르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395 / 740] 쪽
  '어떤가? 비구여,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너의 글귀는 이러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내 글귀는 이러하고 네 글귀는 이러하다. 네 글귀가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다 함께 화합할 것이요, 서로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를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고 나서 만일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다가 '저 사람이 말한 글귀는 바르지만 뜻은 바르지 않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어떤가? 비구여, 내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그 때 그 비구는 대답하리라.
  '나의 뜻은 이러하고 너의 뜻은 이러하다. 너의 뜻이 낫다.'
  그 비구가 이렇게 말더라도, 또한 그것을 옳다고도 말하지 말고 그르다고도 말하지 말라. 마땅히 그 비구를 충고하고 꾸짖어 그치게 하고 또 마땅히 함께 바른 것을 찾도록 하라. 이렇게 비구는 다 함께 화합하여 싸우지 말라. 동일한 스승의 제자는 물과 젖처럼 동일한 것이다. 여래의 정법 가운데서 마땅히 스스로를 불태워 유쾌하고 안락함을 얻어야 한다. 안락을 얻고 나서 또 어떤 비구가 설법하는 도중에 다른 비구가 있다가 '저 사람의 말은 글귀도 바르고 뜻도 또한 바르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더라도 비구는 그 말을 듣고 그르다고 하지 말고 마땅히 그를 칭찬해 말하라.
  '네 말이 옳다, 네 말이 옳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12부경(部經)에 대하여 몸소 진리를 깨닫고 마땅히 널리 유포해야 한다. 12부경이란 첫째는 관경(貫經), 둘째는 기야경(祇夜經), 셋째는 수기경(受記經), 넷째는 게경(偈經), 다섯째는 법구경(法句經),
[396 / 740] 쪽
  여섯째는 상응경(相應經), 일곱째는 본연경(本緣經), 여덟째는 천본경(天本經), 아홉째는 광경(廣經), 열째는 미증유경(未曾有經), 열한째는 비유경(譬喩經), 열두째는 대교경(大敎經)이다. 마땅히 이것을 잘 받아 지니고 헤아려 관찰하고 널리 펴서 분포하라.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옷은 혹은 무덤 사이의 옷, 혹은 장자의 옷, 혹은 추하고 천한 옷이다. 이 옷들은 추위와 더위, 모기나 등에를 막기에 충분하고 몸뚱이를 가리기에 넉넉하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음식은 빌어온 음식이거나 혹은 거사의 음식이니 이 음식이면 스스로 족하다. 몸이 괴롭고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 이 음식을 허락한 것이니 족한 줄 알면 그만인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주처(住處)는 혹은 나무 밑에 있거나 혹은 한 데 있으며, 혹은 방 안에 있거나 혹은 누각 위에 있으며, 혹은 굴 속에 있고 혹은 그 밖의 여러 곳에 있다. 이 주처들은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 모기와 등에를 막기에 족하며 한적하고 피곤할 때 쉴 곳이 된다. 모든 비구들이여, 내가 제정한 약은 대소변ㆍ소유(酥油)ㆍ흑밀(黑蜜)ㆍ석밀(石蜜) 등이니 이런 약이면 스스로 족하다. 혹은 몸에 고통이 생기고 온갖 병이 닥쳐와 마침내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 이 약을 허락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혹 어떤 외도(外道) 범지가 와서 '사문 석자(釋子)는 온갖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긴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이렇게 대답하라.
  '그대들은 (사문 석자는 온갖 즐거움으로 스스로 즐긴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는 것 중에 여래께서 꾸짖는 것이 있고, 즐거움을 스스로 즐기는 것 중에 여래께서 칭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외도 범지가 다시 '구담은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꾸짖는가?'라고 묻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라.
  '5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면 애착을 가질 수 있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되며 귀가 소리를 듣고, 코가
[397 / 740] 쪽
  냄새를 맡고, 혀가 맛을 맛보고, 몸이 촉감을 느끼고 나면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된다. 여러분, 바로 이 5욕의 인연이 희락(喜樂)을 일으킨다. 이런 것들은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꾸짖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이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몰래 도둑질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범행(梵行)을 범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바른 행이 아닌 이교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과 같은 경우로서 이것을 여래께서는 꾸짖으신다.'
  모든 비구여, 여래께서는 사람들이 다섯 가지 욕망의 공덕을 탐내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꾸짖으신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나서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되며, 귀는 소리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혀는 맛을 알고, 몸은 촉감을 느끼고 나서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한 것으로 여겨 사람들이 탐내고 집착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즐거움이라지만 사문 석자에게 이러한 즐거움은 없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중생을 죽이고 이를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공공연하게 도둑질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범행을 범하고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게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방탕한 짓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다. 마치 어떤 사람은 이교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사문 석자에겐 그러한 즐거움은 없는 것과 같
 
[398 / 740] 쪽
  다.
  만일 어떤 외도 범지가 '사문 구담은 어떤 즐거움을 즐기는 것을 칭찬하시는가?' 하고 묻거든 모든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라.
  '여러분, 5욕의 공덕은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나아가 마음이 법진(法塵)을 알고 나면 사랑할 만하고 즐길 만하여 사람들이 탐착하는 것이다. 여러분, 5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한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일부러 중생을 죽이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마땅히 빨리 멸해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공공연하게 도둑질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범행을 범하고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일부러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방탕한 짓을 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어떤 사람은 외도의 고행을 행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은 빨리 없애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탐욕을 여의고 다시 악을 여의어 각(覺)과 관(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각(覺)과 관(觀)을 없애고 안으로 기뻐 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는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이 있는 제2선에 들어간다면, 그런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기쁨을 버리고 사(捨)에 들어가 스스로 몸의 즐거움을 알고 성현이 구하는 바인 호념일심(護念一心)의 제3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즐거움도 다하고 괴로움도 다하며, 걱정과 기쁨은 이미 다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護: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에 들어간다면 그러한 즐거움은 부처님께서 칭찬하시는 것이다.'
  만일 어떤 외도 범지가 '너희들은 그 즐거움에서 얼마만한 공덕의 과(果)
[399 / 740] 쪽
  를 구하느냐?'고 묻거든 마땅히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이 즐거움에는 7과(果)의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현세에서 도증(道證)을 이루는 것이다. 만일 현세에서 이루지 못하면 목숨을 마칠 때 도증을 이루는 것이요, 만일 목숨을 마칠 때에도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5하결(下結)을 다해 중유의 단계에서 반열반(般涅槃)에 들거나 다른 세계에 태어나서 반열반에 들거나 그 곳에서 수행하여 반열반에 들거나 수행하지 않고도 반열반에 들거나 가장 위의 세계인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에서 반열반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 즐거움의 일곱 가지 공덕이다. 여러분, 만일 배우는 위치[學地]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安穩處)를 구하는데 아직 5개(蓋)를 없애지 못했다고 하자.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탐욕개(貪欲蓋)ㆍ진에개(瞋恚蓋)ㆍ수면개(睡眠蓋)ㆍ도희개(掉戱蓋)ㆍ의개(疑蓋)가 그것이다. 저 배우는 위치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면서 아직 5개를 없애지 못했고 4념처(念處)를 정근하지 않고 7각의(覺意)를 정근하지 않는다면 상인(上人)의 법과 현성의 지혜를 늘려서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하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 학지에 있는 비구가 위로 안온처를 구하고자 하여 능히 탐욕개ㆍ진에개ㆍ수면개ㆍ도희개ㆍ의개 등 5개를 없애고 또 4념처를 정근하고 7각의를 여실히 수행한다고 하자. 그런 사람이 상인의 법과 현성의 지혜를 늘려서 알고자 하고 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 혹 어떤 비구는 번뇌가 다한 아라한으로서 해야 할 일을 이미 다하고 무거운 짐을 버리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有)7)의 번뇌를 다하며,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여 9사(事)를 행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아홉 가지인가? 첫째는 살생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간음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거짓말하지 않으며, 다섯째는 도(道)를 버리지 않는 것이요, 여섯째는 욕심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일곱째는 성냄을 따르지 않는 것이요, 여덟째는 두려움을 따르지 않는 것이며, 아홉째는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번뇌가 다한 아라한이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치고 무
  
7) 3유(有) 즉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를 말한다.
[400 / 740] 쪽
  거운 짐을 버리며 스스로 자기의 이익을 거두고 모든 유(有)의 번뇌를 다하며 바른 지혜로써 해탈하여 9사(事)를 멀리 떠난다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외도 범지가 '사문 석자(釋子)에겐 머무르지 않는 법[不住法]이 있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여러분, (사문 석자에겐 머무르지 않는 법이 있다)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사문 석자의 법은 영원히 머물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마치 문지방은 항상 머물러 있고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사문 석자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들의 법은 항상 머물러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
  또 어떤 외도 범지는 '사문 구담은 과거 세상의 일을 다 알지만 미래의 일은 모른다'고 말한다. 그 이학(異學) 범지는 지혜도 다르고 지혜로 보는 관점도 또한 다르며 그의 말은 허망하다. 여래는 과거 세상의 일을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알고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미래 세상에 대해서도 도지(道智)8)로써 안다. 그러나 만일 과거 세상의 일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하고 즐거워할 것이 못되며 이익될 것이 없으면 부처는 곧 기억하지 않는다. 혹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는 하나 즐거워할 것이 못되고 이익될 것이 없으면 부처는 또한 기억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기도 하나, 이익되는 바가 없으면 부처는 또한 기억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며 또 이익되는 바도 있으면 여래는 그것을 다 알고 기억한다. 미래와 현재도 또한 그러하다.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대하여 제 때에 말하고[時語], 진실하게 말하며[實語], 뜻대로 말하고[義語], 이익되게 말하고[利語], 법에 맞게 말하고[法語], 계율에 맞게 말하는[律語] 자로서 거짓이 없다.
  로써 안다. 그러나 만일 과거 세상의 일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하고 즐거워할 것이 못되며 이익될 것이 없으면 부처는 곧 기억하지 않는다. 혹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는 하나 즐거워할 것이 못되고 이익될 것이 없으면 부처는 또한 기억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기도 하나, 이익되는 바가 없으면 부처는 또한 기억하지 않는다. 만일 과거의 일이 진실하기도 하고 즐거워할 만하며 또 이익되는 바도 있으면 여래는 그것을 다 알고 기억한다. 미래와 현재도 또한 그러하다. 여래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대하여 제 때에 말하고[時語], 진실하게 말하며[實語], 뜻대로 말하고[義語], 이익되게 말하고[利語], 법에 맞게 말하고[法語], 계율에 맞게 말하는[律語] 자로서 거짓이 없다.
  부처가 최정각(最正覺)을 이룬 최초의 밤부터 최후의 밤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한 말은 모두 진실한 것[如實]이다. 그러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또한 여래의 말은 사실과 같고 사실이 그의 말과 같으므로 여래라 이름한다. 어떤 이유로 등정각(等正覺)이라 이름하는가? 부처로서 알고 보아야 할 것, 멸해야 할 것, 깨달아야 할 것을 부처는 다 깨달아 안다. 그러므로 등정각이라 이
  
8) 도지(道智, mrgaja)는 깨달음으로 생기는 지혜를 말한다.
[401 / 740] 쪽
  름한다.
  또 어떤 외도 범지는 이렇게 말한다.
  '세간은 영원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세간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영원한 것도 아니요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邊]이 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것은 목숨이고 이것은 몸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이것은 목숨도 아니요 몸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402 / 740] 쪽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목숨이 다르고 몸이 다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목숨이 다른 것도 아니요 몸이 다른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기도 하고 마치지 않기도 한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하다.'
  혹은 또 말한다.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이러한 모든 소견이 있는데 이것을 본생본견(本生本見)이라 이름한다. 이제 너를 위하여 기록한다. 이른바 '이 세상은 영원하다. 나아가 여래는 마치는 것도 아니요 마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그 밖의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는 것은 본견본생(本見本生)인데 너를 위해 기록한다.
  이른바 미견미생(未見未生)9)도 나는 또 기록하리니 어떤 것이 내가 기록하는 미견미생인가?
  도 나는 또 기록하리니 어떤 것이 내가 기록하는 미견미생인가?
  '색(色)이 나[我]인데 생각[想]을 좇아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색이 없는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
  
9) 2본에는 '말견말생(末見末生)'으로 되어 있다. 앞의 '본견본생(本見本生)'과 대비해 볼 때 '말견말생(末見末生)'이 옳을 듯하다.
[403 / 740] 쪽
  다. 또 색이 있기도 하고 또 색이 없기도 한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끝이 있다, 나는 끝이 없다, 나는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나는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즐거움이 있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즐거움이 없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나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한 생각[想]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갖가지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적은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무량한 생각이 나인데 생각을 좇아 마침이 있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이것이 삿된 소견의 본견본생10)으로써 내가 기록하는 것이다.
  으로써 내가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나아가 무량한 생각[想]이 곧 나이다.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저 사문 바라문들은 또 이러한 주장과 이러한 소견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라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라.
  '너는 참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데, 어찌하여 이 세상은 영원하며 그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하는가? 그러한 말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런 모든 소견 가운데에는 모두 번뇌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치로써 미루어 볼 때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는 나와 짝할 이가 없다. 하물며 나를 뛰어 넘으려고 하는 자이겠는가?'
  이 모든 삿된 소견은 한낱 말만 있을 뿐 함께 의논하기에는 적당치 않다. 나아가 '무량한 생각이 나[我]이다'라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10) 맥락으로 보아 원문의 '본견본생(本見本生)'은 '말견말생(末見末生)'으로 해야 옳다.
[404 / 740] 쪽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런 말을 한다.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어떤 사문 바라문은 말한다.
  '이 세간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한다.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
  혹은 또 말한다.
  '저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갑자기 생긴 것이다.'
  저 사문 바라문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모두 촉(觸)의 인연을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만일 촉의 인연을 떠나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왜냐 하면 6입(入)을 말미암기 때문에 촉이 생기고, 촉을 말미암기 때문에 수(受)가 생기고, 수를 말미암기 때문에 애(愛)가 생기고, 애를 말미암기 때문에 취(取)가 생기고, 취를 말미암기 때문에 유(有)가 생기고, 유를 말미암기 때문에 생(生)이 생기고, 생을 말미암기 때문에 노(老)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의 걱정[患] 덩어리가 있는 것이다. 만일 6입이 없으면 촉이 없고, 촉이 없으면 수가 없고, 수가 없으면 애가 없고, 애가 없으면 취가 없고, 취가 없으면 유가 없고, 유가 없으면 생이 없고, 생이 없으면 노ㆍ사ㆍ우ㆍ비ㆍ고ㆍ뇌의 큰 걱정덩어리 음집(陰集)이 없을 것이다. 또 '이 세간은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하고, 또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또 '이 세간은 저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갑자기 생긴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 촉을 말미암아 있는 것으로서 촉이 없으면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러한 모든 삿되고 나쁜 소견을 없애려 하거든 4념처(念處)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아라. 어떤 것이 비구가 모든 악을 없애려고 4념처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는 것인가? 비구들아, 내신신관(內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기억하여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
[405 / 740] 쪽
  는 것이요. 또 외신신관(外身身觀)을 부지런히 닦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기억하고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며, 또 내외신신관(內外身身觀)을 기억하고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는 것이다. 수(受)ㆍ의(意)ㆍ법(法)을 관(觀)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모든 악법을 멸하기 위해 4념처를 세 가지 수행법으로 닦는 것이다.
  또 8해탈(解脫)이 있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색(色)을 색으로 관(觀)하는 것이 첫 번째 해탈이요, 마음 속에 색(色)에 대한 생각11)을 가지고 밖으로 색을 관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정(淨)해탈은 세 번째 해탈이요, 색이라는 생각을 초월하여 상대할 만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며,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머무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버리고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르는 것은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멸진정(滅盡定)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을 가지고 밖으로 색을 관하는 것이 두 번째 해탈이며, 정(淨)해탈은 세 번째 해탈이요, 색이라는 생각을 초월하여 상대할 만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공처(空處)에 머무르는 것이 네 번째 해탈이며, 공처를 버리고 식처(識處)에 머무르는 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요, 식처를 버리고 불용처(不用處)에 머무르는 것은 여섯 번째 해탈이며, 불용처를 버리고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에 머무르는 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요, 멸진정(滅盡定)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그 때 아난이 세존의 뒤에서 부채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하고 있다가 곧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며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은 청정하고 미묘하기 제일입니다. 마땅히 뭐라 이름하고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을 청정(淸淨)이라 이름하나니, 너는 마땅히 청정하게 이것을 지녀야 한다.”
  아난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8. 자환희경(自歡喜經)1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11) 색욕(色欲)을 탐하는 생각이다.
12) 송(宋) 시대 법현(法賢)이 한역한 『불설신불공덕경(佛說信佛功德經)』이 있다. 또 참고 경문으로는 『잡아함경』 제18권 497번째 소경이 있다.
[406 / 740] 쪽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란타성(那爛陀城)의 파파리암바(波波利菴婆)숲에서 큰 비구 대중 1,2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장로 사리불(舍利弗)이 고요한 곳에서 잠자코 혼자 생각하였다.
  '나는 마음으로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사문 바라문으로서 지혜와 신족(神足), 공덕과 도력이 여래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과 같은 분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사리불은 고요한 방에서 일어나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아까 고요한 방에서 잠자코 혼자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사문 바라문으로서 그 지혜와 신족, 공덕과 도력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같은 이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네가 능히 부처 앞에서 그러한 말을 할 줄 아는구나. 너는 한결같이 간직하고 있던 말을 바로 사자처럼 외쳤도다. 어느 사문 바라문도 너에게 미칠 자가 없다. 어떤가? 사리불아, 너는 과거 모든 부처님들 마음 속 생각과 그 부처님들께서 지녔던 그러한 계(戒)와 그러한 법과 그러한 지혜와 그러한 해탈과 그러한 해탈의 집[堂]에 대해 아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어떤가? 사리불아, 너는 미래 모든 부처님들의 마음 속 생각과 지니실 그러한 계와 그러한 법과 그러한 지혜와 그러한 해탈과 그러한 해탈의 집에 대하여 아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어떤가? 사리불아, 이제 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마음 속 생각과 지니고 있는 그러한 계와 그러한 법과 그러한 지혜와 그러한 해탈과 그러한 해탈의 집에 대하여 너는 아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모릅니다.”
[407 / 740] 쪽
  부처님께서 또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 등의 마음 속 생각을 너는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결정코 그런 생각을 가지며 무슨 일 때문에 그런 생각을 내어 한결같이 굳게 지니고, 또 사자처럼 외쳐대는가? 다른 사문 바라문이 만일 '나는 결정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사문 바라문으로서 지혜와 신족, 공덕과 도력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같은 이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는 너의 말을 들으면 반드시 너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반적인 법은 저도 능히 알고 있습니다. 여래께서는 저를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그것은 갈수록 고상하고 갈수록 미묘합니다. 더러운 법[黑法]과 깨끗한 법[白法], 인연이 있는 법[緣法]과 인연이 없는 법[無緣法], 비춤이 있는 법[照法]과 비춤이 없는 법[無照法]을 말씀하셨는데, 여래의 설법은 갈수록 고상하고 갈수록 미묘합니다. 저는 그 법을 듣고 하나하나의 법을 알았으며 그 법을 끝까지 다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믿고, 여래의 법은 잘 분별된 것임을 믿으며, 여래께서 모든 괴로움을 멸하는 일을 성취하였음을 믿습니다. 모든 선법(善法) 가운데서 이것이 최상입니다. 세존의 지혜는 남김이 없고 신통도 남김이 없어 모든 세간에 있는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세존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제법(制法)이 그것입니다. 제법이란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신족(神足)ㆍ4선(禪)ㆍ5근(根)ㆍ5력(力)ㆍ7각의(覺意)ㆍ8현성도(賢聖道)를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더 없이 훌륭한 제어하는 법이며, 더없이 지혜롭고, 더없이 신통하여 모든 세간에 있는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세존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입(入)을 제어하는 것[制諸入]입니다. 모든 입(入)이란 눈과 빛깔,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뜻과 법을 말합니다. 과거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도 또
 
[408 / 740] 쪽
  한 이 입(入)을 제어하셨으니 이른바 눈과 빛깔에서부터 나아가 뜻과 법까지의 일입니다. 미래의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도 또한 이 입을 제어하시리니 이른바 눈과 빛깔에서부터 나아가 뜻과 법까지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도 또한 이 입을 제어하시니 이른바 눈과 빛깔에서부터 나아가 뜻과 법까지의 일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 이보다 능가할 것은 없습니다.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세존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태에 들어감을 아는 것[識入胎]입니다. 태에 들어감[入胎]이란, 첫째는 저 자신도 모르게 태에 들어가 저 자신도 모르게 태에 머물다가 저 자신도 모르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둘째는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들어갔다가 저 자신도 모르게 태에 머물고 저 자신도 모르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셋째는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들어갔다가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머물다가 저 자신도 모르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넷째는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들어가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머물다가 저 자신이 알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중에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들어가 저 자신이 알고 태에 머물다가 저 자신이 알고 태어나는 것이 태에 들어감에 있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도(道)입니다. 이른바 도란, 모든 사문 바라문이 갖가지 방편으로써 정혜의삼매(定慧意三昧)에 들어가고, 삼매의 마음을 따라 염각의(念覺意)를 닦을 때 욕(欲)에 의지하고 이(離)에 의지하며, 멸진(滅盡)을 의지하고 출요(出要)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정진각의(精進覺意)ㆍ희각의(喜覺意)ㆍ의각의(猗覺意)ㆍ정각의(定覺意)ㆍ사각의(捨覺意)도 욕에 의지하고 이에 의지하며 멸진에 의지하고 출요에 의지합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409 / 740] 쪽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멸(滅)입니다. 멸함에 있어서 고생스럽게 멸하고 더디게 얻는 것[苦滅遲得]은 두 가지 다 비루한 것이요, 고생스럽게 멸하나 빨리 얻는 것[苦滅速得]은 고생스러움만이 비루한 것이요, 즐겁게 멸하고 더디게 얻는 것[樂滅遲得]은 오직 더딤만이 비루한 것이요, 즐겁게 멸하고 빨리 얻는 것[樂滅速得]이라도 널리 구제하지 못하면 널리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루하다고 합니다. 지금의 여래께서는 즐겁게 멸하고 빨리 얻으셨으며 또한 널리 구제하셨기에 더 나아가 하늘과 사람들도 그 신통 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의 설법은 미묘하기가 제일가는 것이어서 아래로 여자까지도 또한 능히 받아 지녀 유루(有漏)를 다하고 무루(無漏)를 이루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 세계에서 몸소 이렇게 깨닫습니다.
  '생사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다해 마쳤으니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으리라.'
  이것이 여래께서 말씀하신 위없는 멸(滅)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가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말씀이 청정한 것입니다. 말씀이 청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존께서는 모든 사문 바라문에게 무익하고 허망한 말을 하지 않으며, 말하되 이기기를 바라지 않고 또 편을 들지도 않습니다. 하시는 말씀은 부드럽고 시기를 놓치지 않으며 말을 헛되게 내뱉지 않으시니 이것이 말씀이 청정하다는 것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견정(見定)입니다. 견정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문과 바라문은 여러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머리에서 발까지 관(觀)하고 발에서 머리까
[410 / 740] 쪽
  지 관합니다. 그리하여 '피부의 안팎에는 다만 부정한 머리털ㆍ털ㆍ손톱ㆍ발톱과 간ㆍ허파ㆍ창자ㆍ밥통ㆍ지라ㆍ콩팥 등 5장(臟)과 땀ㆍ기름ㆍ뼈골ㆍ골ㆍ똥ㆍ오줌ㆍ콧물ㆍ눈물의 냄새나고 더러운 것만 있다'고 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견정입니다.
  또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피부와 살 등 바깥에 있는 모든 부정한 것을 없애고 오직 백골과 이빨을 관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견정입니다.
  또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피부와 살 등 바깥의 부정한 것과 백골까지도 없애고 오직 심식(心識)이 어디에 머무는가를 관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금세에도 있고, 후세에도 있다. 금세에도 끊어지지 않고, 후세에도 끊어지지 않는다. 금세에도 해탈하지 못하고 후세에도 해탈하지 못한다'고 관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견정입니다.
  또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피부와 살 등 바깥의 모든 부정한 것을 없애고 또 백골도 없애고 다시 거듭 식(識)을 관찰합니다. 그리하여 '식은 후세에 있고 금세에는 있지 않다. 금세에는 끊어지지만 후세에는 끊어지지 않는다. 금세에는 해탈하지만 후세에는 해탈하지 못한다'고 관합니다. 이것이 네 번째 견정입니다.
  또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피부와 살 등 바깥의 부정한 것을 없애고 또 백골도 없애고 다시 거듭 식을 관합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금세에도 있지 않고 후세에도 있지 않다. 두 시기에 모두 끊고 두 시기에 모두 해탈한다'고 관합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견정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상법(常法)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법이란 무엇인가?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세간의 20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을 기억해 알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411 / 740] 쪽
  '이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내가 기억하고 인식함[憶識]을 말미암아 이 성겁과 패겁이 있는 줄을 안다. 그 밖의 과거는 나는 모른다. 미래의 성겁과 패겁(敗劫)도 나는 또한 모른다.'
  이 사람은 언제나 무지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첫 번째 상법(常法:세상은 영원하다고 보는 법)입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40성겁과 패겁을 기억해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기억하고 인식함을 말미암아 성겁과 패겁을 안다. 그러나 나는 능히 과거의 성겁과 패겁은 알지만 미래의 성겁과 패겁은 모른다.'
  이처럼 처음을 안다고는 말하지만 마지막을 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무지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두 번째 상법입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80성겁과 패겁을 기억해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다른 것은 거짓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기억하고 인식함을 말미암아 성겁과 패겁이 있는 줄을 안다. 다시 과거의 성겁과 패겁도 알고 또 미래의 성겁과 패겁도 나는 다 안다.'
  이 사람은 언제나 무지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세간은 항상 존재한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거짓이다.'
  이것이 세 번째 상법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모든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관찰입니다. 관찰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문 바라문은 생각[想]으로써 관찰하고는 '저 사람의 마음은
[412 / 740] 쪽
  어떻고, 이 사람의 마음은 어떻다'고 말합니다. 그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할 때 혹은 거짓되고 혹은 진실한데, 이것을 첫 번째 관찰이라 합니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생각으로서 관찰하지 않고 혹은 하늘이나 귀신의 말을 듣고 그에게 말합니다.
  '네 마음은 이렇고, 네 마음은 이렇다.'
  이것도 또한 혹은 진실하기도 하고 혹은 거짓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관찰입니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생각으로써 관찰하지도 않고 또 모든 하늘이나 귀신의 말도 듣지 않으며, 스스로 자기 몸을 관찰하고 또 남의 말을 듣고는 그에게 말합니다.
  '네 마음은 이렇고, 네 마음은 이렇다.'
  이것도 또한 혹은 진실하기도 하고 혹은 거짓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관찰입니다.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생각으로써 관찰하지도 않고, 또 모든 하늘이나 귀신의 말도 듣지도 않으며 스스로를 관하거나 남을 관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각(覺)과 관(觀)을 모두 없앤 뒤 정의삼매에 들어 다른 이의 마음을 관찰하고는 그에게 말합니다.
  '네 마음은 이렇고, 네 마음은 이렇다.'
  이러한 관찰은 곧 진실한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관찰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이른바 교계(敎誡)입니다. 교계란, 혹 때로 어떤 사람은 교계를 어기지 않고 유루(有漏)를 다하며 무루(無漏)를 이루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 세계에서 이렇게 몸소 증명을 얻습니다.
  '나는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해야 할 일을 다해 마쳐 뒷세상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
  이것을 첫 번째 교계라고 합니다. 혹은 때로 어떤 사람은 교계를 어기지
[413 / 740] 쪽
  않고 5하결(下結)을 없애 저 세상에서 멸도(滅度)하고 이 세상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두 번째 교계라 합니다. 때로 어떤 사람은 교계를 어기지 않고 3결(結)을 없애 간음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斯陀含)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와 멸도를 취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교계입니다. 혹은 때로 어떤 사람은 교계를 어기지 않고 3결을 없애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이 세상에 일곱 번 왕복한 뒤에는 반드시 도과(道果)를 얻고 나쁜 세계[惡趣]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교계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남을 위해 설법하여 계율을 청정히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계율을 청정히 지키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문 바라문은 그 말이 진실하여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스스로 공경하고 엄숙하며, 잠을 없애고 간사하고 아첨하지 않으며 입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길흉을 예언하지 않고, 남에게서 들은 것을 내 말이라 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 이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좌선(坐禪)으로 지혜를 닦아 걸림없는 변재(辯才)가 있으며, 생각을 오로지해 어지럽지 않고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습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바로 해탈의 지혜입니다. 이른바 염송ㆍ해탈의 지혜란 무엇인가? 세존께서는 다른 인연으로 말미암아 속으로 스스로 생각해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수다원(須陀洹), 이 사람은 사다함(斯陀含), 이 사람은 아나함(阿那含), 이 사람은 아라한(阿羅漢)이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하겠습니까?
[414 / 740] 쪽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스스로 숙명을 아는 지증(智證)입니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定意三昧)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스스로 과거 1생, 2생, 나아가 백천 생과 성겁(成劫)과 패겁(敗劫)의 무수한 세상 일들을 다 기억합니다. 이와 같이 무수한 세상에서 '나는 어디에 태어났었고 이름은 무엇이었으며, 종족과 성은 무엇이었고 수명은 얼마였으며, 음식은 어떠했고 고락은 어떠했는가'를 기억합니다. 또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에 났다는 등 여러 가지 현상들을 다 기억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전생의 무수한 겁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여 밤낮으로 항상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때는 색(色)이 있었고 이 때는 무색(無色)이었으며, 이 때는 상(想)이 있었고 이 때는 무상(無想)이었으며, 또 이 때는 비무상(非無想)이었다'고 모두 기억하고 모두 압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나고자 하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바로 천안지(天眼智)입니다. 천안지란 무엇인가? 모든 사문 바라문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정의삼매에 들어 삼매의 마음을 따라 모든 중생을 관찰하고 죽은 사람ㆍ산 사람ㆍ좋은 몸ㆍ나쁜 몸ㆍ좋은 세계ㆍ나쁜 세계와 혹은 잘나고 혹은 추한 것을 그 소행을 따라 다 보고 다 압니다. 혹 어떤 중생은 몸의 악행ㆍ입의 악행ㆍ뜻의 악행을 성취하고 현성을 비방하며 삿되고 거꾸로 된 소견을 믿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3악도에 떨어집니다. 또 어떤 중생은 몸으로 착한 일을 행하고 입으로 착한 말을 하며 뜻으로 착한 생각을 하고 현성을 비방하지 않으며 소견이 바르고 믿음으로 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천상이나 인간 세계에 태어납니다. 이들은 깨끗한 천안(天眼)으로 모든 중생을 관하여 이러한 사실을 여실히 알고 봅니다. 이 법은 위없는 법으로서 더 이상 지혜로운 것이 없고 더 이상 신통한 것도 없어 모든 세간의 사문 바라문 중에 여래와 같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그보다 더 뛰어난 이이겠습니까?
  여래의 설법에는 또 뛰어난 것이 있으니 바로 신족증(神足證)입니다. 신족증이란 모든 사문 바라문이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정의삼매에 들어가 삼매의
[415 / 740] 쪽
  마음을 따라 무수한 신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능히 한 몸을 변화시켜 무수한 몸이 되기도 하고 무수한 몸을 합해 한 몸을 만들기도 하며 돌 벽에도 걸림이 없습니다. 허공에서 결가부좌하는 것은 마치 나는 새와 같고, 땅 속으로 출입하는 것이 마치 물에서와 같으며, 땅에서처럼 물 위를 걷고, 몸으로 연기와 불꽃을 내뿜는 것은 불더미와 같으며, 손으로 해를 만지고 선 채로 범천에 오릅니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문 바라문이 이 신족을 칭찬하면 마땅히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 신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신족은 비루하고 하열(下劣)한 범부나 행할 일이지 현성들이 닦아 익힐 것은 못된다.'
  만일 비구가 모든 세간에 있어서 사랑스런 색(色)에 물들지 않고 이것을 떠나 정당한 것을 행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현성의 신족이라 합니다. 좋아하지 않는 색에도 미워하지 않고 이런 것을 떠나 정당하게 행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현성의 신족이라 합니다. 모든 세간에 있어서 사랑스러운 색이나 사랑스럽지 않는 색, 두 가지를 다 버리고 평등한 마음을 지켜 생각을 오로지해 잊지 않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현성의 신족이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세존께서 용맹히 정진하고 큰 지혜와 지각(知覺)이 있어 제일의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에 등각(等覺)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제 탐욕을 좋아하지 않고 비천한 범부들이 익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또 부지런히 애써 모든 고뇌를 받지도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만일 악한 법을 없애고 각(覺)도 있고 관도 있으며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에 노닐고 싶으면, 곧 악한 법을 없애고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면서 떠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에 노닙니다. 2선ㆍ3선ㆍ4선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용맹하게 정진하고 큰 지혜와 지각이 있으며 제일의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에 등각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외도(外道) 이학(異學)들이 너를 찾아와 '과거의 사문 바라문 중에 사문 구담과 같은 자가 있었느냐?'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가 다시 '미래의 사문 바라문 중에 사문 구담과 같은 자가 있겠느냐?' 하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가 다시 '현재의 사문 바라문 중에 사
[416 / 740] 쪽
  문 구담과 같은 자가 있느냐?'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과거의 사문 바라문 중에 부처님과 같은 자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만일 '미래의 사문 바라문 중에 부처님과 같은 자가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현재의 사문 바라문 중에 부처님과 같은 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없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저 외도 범지가 만일 다시 '너는 무슨 까닭으로 혹은 있다 하고 혹은 없다 하는가?' 하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사리불이 대답했다.
  “저는 마땅히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과거의 삼야삼불(三耶三佛)은 여래와 동등하였고, 미래의 삼야삼불도 여래와 동등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친히 부처님에게서 (현재에 여래와 동등한 삼야삼불이 존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씀을 직접 들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들은 대로 법에 의거하고 법에 따라 이렇게 대답하면 허물이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답은 법에 의거하고 법을 따른 것으로서 틀림이 없다. 왜냐 하면 과거의 삼야삼불은 나와 동등하였고, 미래의 삼야삼불도 나와 동등할 것이나, 현재에 두 부처가 세상에 나타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때 존자 울다이(鬱陀夷)가 세존의 뒤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울다이야, 너는 세존이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는 것[少欲知足]을 관해야 한다. 지금 내게는 큰 신력이 있고 큰 위덕이 있지만 나는 욕심이 없고 만족할 줄 알며 탐욕 속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울다이야, 만일 다른 사문 바라문이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애써 한 법이라도 얻는다면 그는 깃발을 세우고 사방에 널리 알리면서 말하리라.
  '여래께서는 지금 욕심이 없고 만족할 줄 아신다. 이제 여래의 욕심이 없고
[417 / 740] 쪽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살펴보면, 여래께서는 큰 신력이 있고 큰 위덕이 있지만 그것을 욕심대로 사용하지 않으신다.'”
  그 때에 존자 울다이가 옷을 바로잡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며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손을 모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처럼 욕심이 없고 만족할 줄 아시는 분은 드뭅니다. 세존께서는 큰 신력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시지만 그것을 욕심대로 쓰지 않으십니다. 만일 다른 사문 바라문이 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애써 한 법이라도 얻는다면 그는 곧 깃발을 세우고 사방에 널리 알리며 말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지금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신다.'
  사리불은, 마땅히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해 자주 이 법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들이 만일 불ㆍ법ㆍ승과 도(道)에 대하여 의심이 있다면 이 가르침을 듣고 다시는 의심의 그물에 휩싸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 세존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해 자주 이 법을 설명하라. 왜냐 하면 그들이 불ㆍ법ㆍ승과 또 도에 대하여 의심이 있다면 너의 설명을 듣고 반드시 깨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후 사리불은 자주 모든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위해 설법하고, 스스로 청정하기 때문에『청정경(淸淨經)』이라고 이름했다. 그 때 사리불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환희하며 받들어 행했다.
  
  19. 대회경(大會經)1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13) 경의 이역경으로는 송 시대 법천(法天)이 한역한 『불설대삼마야경(佛說大三摩惹經)』이 있고, 참고 경문으로는 『별역잡아함경』 제5권 105번째 소경과 『잡아함경』 제44권 1,176번째 소경이 있다.
 
[418 / 740] 쪽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시제국(釋翅提國)의 가유(迦維) 숲에서 큰 비구 대중 5백 명과 함께 계셨는데, 그들은 다 아라한이었다. 또 시방의 모든 신묘(神妙)한 천인(天人)들도 모두 모여 와서 여래와 비구들에게 예경하였다.
  이 때 4정거천(淨居天)14)은 곧 천상에서 각각 스스로 생각하면서 말했다.
  은 곧 천상에서 각각 스스로 생각하면서 말했다.
  '지금 세존께서는 석시제국에 있는 가유 숲에서 큰 비구 대중 5백 명과 함께 계시는데, 그들은 다 아라한이다. 또 시방의 모든 신묘한 천인들도 다 모여 와서 여래와 비구들에게 예경하였다. 우리도 이제 저기 세존에게 함께 가서 각각 게송으로써 여래를 찬양하자.'
  그 때 4정거천은 역사(力士)가 팔을 굽혔다 펼 만큼 짧은 시간에 그 하늘에서 사라져 석시제국에 있는 가유 숲에 이르렀다. 4정거천은 머리를 부처님의 발에 대어 예배하고 한쪽에 섰다. 그 때 한 정거천이 곧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써 찬탄했다.
  
  오늘 이 대중들의 모임에
  모든 천신들 두루 모였네.
  모두 다 법을 위해 왔으니
  더할 나위 없는 대중들께 예경하리라.
  
  이 게송을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 때 다른 한 정거천이 또 게송을 지어 말했다.
  
  비구들은 온갖 더러움 보고
  단정한 마음으로 스스로 방호(防護)하네.
  탐욕은 바다가 강물을 삼키듯 하니
  지자(智者)는 모든 감관[根] 보호한다네.
  
  이 게송을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 때 다른 한 정거천도 게송을 지어
  
14)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한 성인들이 태어나는 곳으로 색계 제4선천이다.
[419 / 740] 쪽
  말했다.
  
  번뇌의 가시 끊고 애욕의 구덩이 고르며
  또 무명의 해자 메우고
  홀로 청정한 도량에 노니나니
  좋은 코끼리 길들인 것 같구나.
  
  이 게송을 마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 때 다른 한 정거천도 게송을 지어 말했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모든 사람들
  끝내 나쁜 세계엔 떨어지지 않나니
  이 세계의 인간 형상 버리고
  하늘의 청정한 몸을 받으리
  
  그 때 4정거천이 이 게송을 마치자 세존께서는 그것을 인가(印可)하셨고, 그들은 부처님의 발에 절하고 부처님을 세 번 돈 뒤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모든 하늘이 다 모였구나. 이제 모든 하늘이 다 모였구나. 시방의 모든 신묘한 천인 중에 여기 와서 여래와 비구들에게 예배하고 뵙지 않는 이는 없구나. 모든 비구들이여, 과거의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들께도 또한 모든 하늘이 모인 것이 나에게 모인 것과 같았다. 미래의 모든 여래ㆍ지진ㆍ등정각들께 모든 하늘이 모이는 것도 오늘 나에게 모인 것과 같을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여, 지금 모든 하늘이 많이 모였고 시방의 모든 신묘한 천인들도 모두 와서 여래와 비구들에게 예배하고 뵈었다. 마땅히 그 이름을 일컫고 그들을 위해 게송을 노래하리니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대지와 산 골짜기를 의지하여
  숨어서 살아가는 무서운 신들
[420 / 740] 쪽
  몸에는 새하얀 옷을 입고
  깨끗하고 깔끔하여 더러움 없네.
  
  하늘 사람들 이 말을 듣고
  모두 범천(梵天)으로 돌아갔네.
  내 이제 그 이름 일컬으리니
  차례차례로 틀림 없으리.
  
  모든 하늘 무리 이제 다 왔으니
  비구들이여, 너희들 마땅히 알라.
  이 세간 범부의 지혜로써는
  백 가운데 하나도 보지 못하리.
  7만이나 되는 귀신의 무리들
  어떻게 다 볼 수 있으리오.
  
  혹 10만의 귀신들을 본다 해도
  한끝조차도 볼 수 없거늘
  어떻게 천하에 가득한
  그 모든 귀신을 볼 수 있으랴.
  
  7천 종의 지신(地神)이 있었고 얼마간의 열차(悅叉)15)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족과 모양과 색상과 명칭이 있었는데 기쁜 마음을 품고 비구들이 있는 숲으로 왔다. 그 때 설산(雪山)의 신(神)은 6천의 귀신과 얼마간의 열차를 거느렸는데 그들은 모두 신족과 모양과 색상과 명칭이 있었다. 그들도 기쁜 마음을 품고 비구들이 있는 숲으로 왔다. 어떤 사라신(舍羅神)은 3천의 귀신과 얼마간의 열차를 거느렸는데 그들은 다 신족과 모양과 색상과 명칭이 있었다. 그들도 기쁜 마음을 품고 비구들이 있는 숲으로 왔다. 이들 1만 6천
  
15) 팔리어 yakkha의 음역어이다. 또한 야차(野叉)ㆍ약차(藥叉)라고도 한다.
[421 / 740] 쪽
  명의 귀신과 얼마간의 열차는 모두 신족과 모양과 색상과 명칭을 가졌는데 환희로운 마음을 품고 비구들이 있는 숲으로 왔다.
  또 비파밀신(毘波蜜神)은 마국(馬國)에 있으면서 5백 귀신을 거느렸는데 그들은 다 신족과 위덕이 있었다. 또 금비라신(金毘羅神)은 왕사성(王舍城)의 비부라산(毘富羅山)에 살고 있었으며 무수한 귀신을 거느리고 와서 공경스럽게 빙 둘러 있었다.
  또 동방의 제두뢰타천왕(提頭賴吒天王)은 건답화신(乾沓★神:건달바신)을 거느렸는데 큰 위덕이 있었고, 그 91명의 아들도 또한 인다라(因陀羅)라고 이름하며 큰 신력이 있었다. 남방의 비루륵(毘樓勒)천왕은 모든 용왕을 거느렸는데 큰 위덕이 있었고, 그 91명의 아들도 또한 인다라라고 이름하며 큰 신력이 있었다. 서방의 비루박차(毘樓博叉)천왕은 모든 구반다(鳩槃茶) 귀신을 거느렸는데 큰 위력이 있었고, 그 91명의 아들도 또한 인다라라 이름하며 큰 신력이 있었다. 북방천왕의 이름은 비사문(毘舍門)으로서 모든 열차를 거느렸는데 큰 위덕이 있었고, 그 91명의 아들도 또한 인다라라 이름하며 큰 신력이 있었다. 이 4천왕은 세상을 보호하는 자로서 큰 위덕이 있었는데, 몸으로 광명을 놓으며 가유 숲으로 찾아 왔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들의 허깨비 같고 거짓되며 허망한 마음을 항복받고자 주문(呪文)을 외우셨다.
  
  마구루라 마구루라 비루라 비루라 뎐타나가마세티 가니연두 니연두 파나
  摩拘樓羅 摩拘樓羅 毗樓羅 毗樓羅 ★陀那加摩世致 迦尼延豆 尼延豆 波那
  로 오호노노 주 뎨바소모 마두라 지다라시나 건답파 나라주 자니사 시하
  攎 嗚呼奴奴 主 提婆蘇暮 摩頭羅 支多羅斯那 乾沓波 那羅主 闍尼沙 尸呵
  모련타라 비파미다라 수진타라 나려니하 두부루 수지바차바
  無蓮陀羅 鼻波蜜多羅 樹塵陀羅 那閭尼呵 斗浮樓 輸支婆迹婆
  
  이렇게 모든 왕과 건답파(乾畓婆) 및 나찰(羅刹)은 다 신족과 모양과 색상이 있었는데, 그들은 기쁜 마음을 품고 비구들의 숲으로 왔다. 그 때 세존께서 다시 주문을 외우셨다.
  
[422 / 740] 쪽
  아혜 나타슬 나두 비샤리 사하 대차사바뎨 뎨두뢰타 뎨바 사하 야리야 가
  阿醯 那陀瑟 那頭 毗舍離 沙呵 帶叉蛇婆提 提頭賴吒 帝婆 沙呵 若利耶 加
  비라사바나가 아타가마 천뎨가 이라바타 마하나가 비마나가다 타가타예
  毗羅攝波那伽 阿陀伽摩 天提伽 伊羅婆陀 摩呵那伽 毗摩那伽多 陀伽陀餘
  나가라자 파하사하 차기뎨 바뎨라뎨 바뎨라뎨 비매대�촉 비하사바녜 아
  那伽羅闍 婆呵沙呵 叉奇提 婆提羅帝 婆提羅帝 毗枚大迹閦 毗呵四婆嚀 阿
  바바사 짇다라 속카니나 구사다 아바유 나가라졔 아사 수바라 살뎨노아가
  婆婆四 質多羅 速和尼那 求四多 阿婆由 那伽羅除 阿四 修跋羅 薩帝奴阿伽
  
  붇다셰 실라녜 바야 우라두바연루 수반누불도 사라누 가류루
  佛陀灑 失羅嚀 婆耶 憂羅頭婆延樓 素槃★佛頭 舍羅★ 伽類樓
  
  그 때 세존께서 아수라를 위해 주문을 외우셨다.
  
  지타발자하뎨 삼물뎨 아수라 아실타 바연디 바삼바사 이뎨아타 뎨바 마쳔
  祇陀跋闍呵諦 三物第 阿修羅 阿失陀 婆延地 婆三婆四 伊弟阿陀 提婆 摩天
  디 가려묘 마하비마 아수라 다나비라타 비마질도루 수질뎨리 바라하례 모
  地 伽黎妙 摩呵祕摩 阿修羅 陀那祕羅陀 鞞摩質兜樓 修質諦麗 婆羅呵黎 無
  이련나바 사례아셰 바리 불다라나 살볘 볘루야나몌 사나몌뎨 바리 셰예 라
  夷連那婆 舍黎阿細 跋黎 弗多羅那 薩鞞 鞞樓耶那迷 薩那迷諦 婆黎 細如 羅
  야바도루 이하암바라몌 사마유이 다나 바타야 비구나 삼미톄 니발
  耶跋兜樓 伊呵菴婆羅迷 三摩由伊 陀那 跋陀若 比丘那 三彌涕 泥拔
  
  그 때 세존께서 다시 모든 하늘을 위해 주문을 외우셨다.
  
  아부 뎨바 비리혜볘 뎨예 바유 다타누 바루누 바루니 셰뎨소미 야사아두
  阿浮 提婆 萆犁醯陛 提豫 婆由 多陀★ 跋樓★ 婆樓尼 世帝蘇彌 耶舍阿頭
  미다라바 가라나이바 아라 뎨바 마쳔뎨야 타샤뎨샤 가예 살볘 나난다라바
  彌多羅婆 伽羅那移婆 阿邏 提婆 摩天梯與 陀舍提舍 伽予 薩鞞 那難多羅婆
  발나 이디반대 수디 반나반대 야사볘누 모타바나 아혜건대 비구나 바주뎨
  跋那 伊地槃大 讎地 槃那槃大 耶舍卑★ 暮陀婆那 阿醯揵大 比丘那 婆朱弟
  바니 볘노 뎨보 사가리 아혜 디 용몌나찰 뎨례부라시기대 아타만다라 바
  婆尼 鞞弩 提步 舍伽利 阿醯 地 勇迷那刹 帝隸富羅息幾大 阿陀蔓陀羅 婆
[423 / 740] 쪽
  라볘뎐대수 바니소 뎨바 아타 뎐타 부라시기대 수리야 수바니소 뎨바 아타
  羅鞞栴大蘇 婆尼捎 提婆 阿陀 ★陀 富羅翅支大 蘇黎耶 蘇婆尼捎 提婆 阿陀
  수뎨야 부라시대 마가타 바수인 도로아두 석구 부라대로 삭가 가라마라나
  蘇提耶 富羅翅大 摩伽陀 婆蘇因 圖攎阿頭 釋拘 富羅大攎 叔伽 伽羅摩羅那
  아대 볘마니바 오바뎨 기하 바라모하 볘바라 미아니 살타마다 아하례 미
  阿大 鞞摩尼婆 嗚婆提 奇呵 波羅無呵 鞞婆羅 微阿尼 薩陀摩多 阿呵黎 彌
  사아니 바수도 탄노아로예 뎨샤 아혜바사 사마 마하 사마 마도사아 마도
  沙阿尼 鉢讎菟 歎奴阿攎余 提舍 阿醯跋沙 賖摩 摩呵 賖摩 摩菟沙阿 摩菟
  
  수다마 글타 파두셰아타마도 파두셰아혜 아라야 뎨바 아타 례타야 바사
  䟽多摩 乞陀 波頭灑阿陀摩菟 波頭灑阿醯 阿羅夜 提婆 阿陀 黎陀夜 婆私
  파라 마하 파라아타 뎨바 마쳔뎨야 차마 도솔타 야마 가사니아니 람비 람
  波羅 摩訶 波羅阿陀 提婆 摩天梯夜 差摩 兜率陀 夜摩 伽沙尼阿尼 藍鞞 提
  
  바절뎨 수뎨 나마이 셰념마라뎨 아타혜 파라념미대 아혜 뎨바 뎨바 자란뎨
  藍婆折帝 樹提 那摩伊 灑念摩羅提 阿陀醯 波羅念彌大 阿醯 提婆 提婆 闍蘭
  아기 시오파 마아리타로야 오마 부부 니바사 차바 타모 아주타 아니 수두
  阿奇 尸吁波 摩阿栗吒攎耶 嗚摩 浮浮 尼婆私 遮婆 陀暮 阿周陀 阿尼 輸豆
  단 야도 아두 아라 비사문이셰
  檀 耶菟 阿頭 阿邏 毗沙門伊灑
  
  
  이것이 이 60종의 하늘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68명의 5통(通) 바라문을 위해 주문을 외우셨다.
  
  라야리사야 아혜건대바니 가비라 바도 비디사도 아두차모살뎨앙기비디모
  羅耶梨沙耶 何醯揵大婆尼 伽毗羅 跋兜 鞞地闍菟 阿頭差暮薩提鴦祇鞞地牟
  니 아두 볘리야차가시리 사바하 야도 아두 범마뎨바 뎨나바비디모니 아두
  尼 阿頭 閉犛耶差伽尸梨 沙婆呵 若菟 阿頭 梵摩提婆 提那婆鞞地牟尼 阿頭
  구사리이니로마자라앙기라 야반자 아루오원두 마하라야아 구뎨 루이 도아
  拘薩梨伊尼攎摩闍邏鴦祇邏 野般闍 阿樓嗚猿頭 摩訶羅野阿 拘提 樓杙 菟阿
  두 루볘 구사리 아루 가릉의가이라단혜죄 부부야 복도 로리세신타보 아두
  頭 六閉 俱薩梨 阿樓 伽陵倚伽夷羅檀醯罪 否符野 福都 盧梨灑先陀步 阿頭
[424 / 740] 쪽
  뎨나가부바 하이가야라야 다타아가도 바라만타도 가목라야 아두 인다라루
  提那伽否婆 呵移伽耶羅野 多陀阿伽度 婆羅蔓陀菟 迦牧羅野 阿頭 因陀羅樓
  몌 가부타로모마가혜아소샹구베예 아두혜란 야가부비리미사리다타아가도
  迷 迦符陀攎暮摩伽醯阿敕傷俱卑予 阿頭醯蘭 若伽否鞞梨味余梨多他阿伽度
  아혜 바호라자 미도로다타아가도 바시 부리수다라라예다타아가도 이리야
  阿醯 婆好羅子 彌都盧多陀阿伽度 婆斯 佛離首陀羅羅予多陀阿伽度 伊梨耶
  차마하라예선아보다타아가도 반자바예바리디시아라예다타아가도 울아란
  差摩訶羅予先阿步多陀阿伽度 般闍婆予婆梨地翅阿羅予多陀阿伽度 鬱阿蘭
  
  마하라예변피바리마리수바혜 대나마아반디고마리라예아구시리타나바디
  摩訶羅予便被婆梨摩梨輸婆醯 大那摩阿槃地苦摩梨羅予阿具斯利陀那婆地
  아두 시볘라예 시예니 미니마하라예부 바루다타아가도 바타바리마하라예
  阿頭 翅鞞羅予 尸伊昵 彌昵摩呵羅予復 婆樓多陀阿伽度 跋陀婆利摩呵羅予
  구사리마뎨슈시한뎨점바리라예수다라 루다타아가도아하 인두루 아두 마
  俱薩梨摩提輸尸漢提苫婆梨羅予修陀羅 樓多他阿伽度阿呵 因頭樓 阿頭 摩
  라예예 수리야 타비리뎨보아하비리사 아두항아 야루바라 목차나모아이도
  羅予余 蘇利與 他鞞地提步阿呵鞞利四 阿頭恒阿 耶樓婆羅 目遮耶暮阿夷菟
  아두일마야사비나바차마라예아리건도예비도발지예시수파나로마수라예야
  阿頭一摩耶舍枇那婆差摩羅予阿梨揵度余枇度鉢支余是數波那路摩蘇羅予耶
  시다유혜란야소반나 비수도티야수라사파라볘타 울타바하바셰바하바바모
  賜多由醯蘭若蘇槃那 祕愁度致夜數羅舍波羅鞞陀 鬱陀婆呵婆灑婆呵婆婆謀
  사하사탐부사대사법 자사리라 타나마반지수다다라 건답바사하 바사다 뎨
  娑呵沙貪覆賖大賖法 闍沙麗羅 陀那摩般枝瘦多哆羅 乾沓婆沙呵 婆薩多 提
  수리라예 아혜건수 비구 사미디바니디바니
  蘇鞞羅予 阿醯揵瘦 比丘 三彌地婆尼地婆尼
  
  그 때 또 1천 명의 5통 바라문이 있었는데 여래께서는 다시 그들을 위하여 주문을 외우셨다. 이 세계의 제일인 범왕과 모든 범천은 다 신통이 있었다. 어떤 범동자(梵童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을 제사라 하였는데 그도 또한 큰 신통이 있었다. 또 시방의 다른 범천왕들도 각각 권속에게 둘러싸여 찾아 왔다. 또 1천 세계를 지나서 큰 범왕이 있었는데 많은 대중이 세존의 곁에 있는 것을 보고 그도 곧 권속에게 둘러싸여 찾아 왔다.
[425 / 740] 쪽
  그 때 마왕은 모든 대중이 세존의 처소에 있는 것을 보고 해칠 마음을 품고 스스로 생각했다.
  '내 마땅히 모든 귀병(鬼兵)을 거느리고 가서 저 대중을 파멸시키리라. 주위를 에워싸고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모조리 죽이리라.'
  그가 4병(兵)을 거느리고 손으로 수레를 치니 벼락치는 소리와 같았다. 그래서 그것을 보는 모든 무리들은 다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큰 바람과 비를 일으키고 번개와 천둥을 치면서 가라(迦羅) 숲으로 와서는 대중을 에워쌌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와 이 대중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오늘 악마의 무리들이 나쁜 마음을 먹고 찾아왔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제 마땅히 공손히 따라
  부처의 가르침을 굳건히 세워서
  마치 코끼리가 꽃덤불을 부수듯
  이 악마 무리들을 무찌르라.
  
  생각을 오로지해 방일하지 말고
  깨끗한 계율을 두루 갖추며
  고요한 마음으로 스스로 생각하여
  그 의지(意志)를 잘 보호하여라.
  
  만일 바른 법 가운데에서
  능히 방일하지 않는다면
  곧 늙음과 죽음의 땅을 벗어나
  모든 괴로움의 근본을 영원히 없애라.
  
  모든 제자는 이 말을 듣고
  부지런히 더욱 정진하라.
[426 / 740] 쪽
  온갖 탐욕을 뛰어 넘어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말라.
  
  이 무리들 가장 훌륭하나니
  큰 지혜와 명성이 있고
  그 제자들도 다 용맹스러워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으리라.
  
  그 때 모든 하늘과 귀신과 5통(通) 선인(仙人)들은 다 가유(迦維) 동산에 모여 악마의 소행을 보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며 괴상하게 여겼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말씀하실 때 8만 4천 모든 하늘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리고 모든 하늘ㆍ 용ㆍ귀신ㆍ아수라ㆍ가루라(迦樓羅)ㆍ진다라(眞陀羅)ㆍ마후라가(摩睺羅伽)ㆍ사람ㆍ사람 아닌 이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經典 > 장아함경(長阿含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설장아함경 제14권  (0) 2008.01.26
불설장아함경 제13권  (0) 2008.01.26
불설장아함경 제11권  (0) 2008.01.26
불설장아함경 제10권  (0) 2008.01.26
불설장아함경 제9권  (0) 2008.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