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야화(山房夜話)

산방야화(山房夜話). 4

通達無我法者 2008. 2. 29. 10:17
 

 

 

산방야화(山房夜話). 4

 

 

 

주지의 소임은 무엇입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스님의 도는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련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시절 인연에 따라,

한 절의 주지 소임을 맡아 교화를 펴서 佛祖께서 세우신 心法을 널리 펴려 하시지 않으십니까?

편안히 변변찮은 절개만을 지키며 고집하고 돌이키지 않는다면 불법 안에서 죄인이 되는 것을 면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말했다.

"생각지도 않은 명성을 얻어서 매일같이 이런 질문을 받고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까닭은 그런 요청에 설명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정말로 사람을 위하는 도가 있다고 합시다.

 

고상한 절개를 흉내내어 굳게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불법 가운데 죄인이 된다는 질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위하는 법은 실제로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세를 타고 명예를 얻으려고 억지로 이치를 어그러뜨린다면,

죄인이라는 낙인을 면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면하지 못할 경우의 죄는 굳게 절개만을 지키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몇배나 무거울 것입니다.

 

나는 이 이치를 약간은 알았고,

그 때문에 구태여 외람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가 말한 住持의 직책에 필요한 덕목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음 세 가지의 능력이 있어야만 일을 그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 주지의 소임을 말은 사람은 道力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緣力이 있어야 하고,

세째는 智力이 있어야 합니다.

 

도력은 근본(體)이고,

연력과 지력은 활용력(用)입니다.

근본이 있기만 하면 설사 활용력이 없을지라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경우는 교화하는 방편이 엉성하고,

관리기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도의 근본이 이지러진 상태라면 백천 가지의 神異한 방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서로 맞아떨어지질 않습니다.

비록 연력과 지력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더구나 근본과 활용력이 모두 없는데도 외람되게 주지의 소임을 맡는다고 합시다.

인과외 법칙이 없다면 얘기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지 자격이 없으면서도 속 편하게 그 소임을 말겠습니까?

 

나는 불조의 도를 깨달아 증득하지는 못했습니다.

평소에 내가 했던 말과 글은 단지 믿어서 아는(信解)것뿐입니다.

옛 사람은 일단 종지를 얻은 후에는 다시는 자신의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2,30년 동안 부목이나 공양주로 있으면서 깨달은 자취를 물리치고,

증오한 이치도 씻어버리려 하였습니다.

 

그런 뒤에는 眞. 俗 어느 알음알이에도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즉 그의 온 몸은 날카로운 칼이나 오랫동안 닦아온 거울과 같아서 機緣에 머무는 것이 없었고,

군더더기 말도 없었습니다.

 

위엄있게 수만 대중 위에 군림하편서도 자신이 존귀한 줄도,

영화로운  줄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갖추고 있더라도 혹 人天의 眼目을 만날 경우는 뒤로 물러나야만 욕됨이 없습니다.

이 경지를 어찌 미혹한 생각(情見)을 벗어나지 못한 자가 흉내낼 수 있겠습니까?

 

깨달아 증득(悟證)한 자취를 살펴볼 때,

혹시라도 번뇌를 모두 씻어버리지 못했다면 주관.객관의 견해(能所之見)가 걸핏하면 어지럽게 일어납니다.

주관(能)이니 객관(所)이니 하는 것은 모두가 미혹한 생각(情見)입니다. 

 

또한 깨달아 증득한 자취도 마음에 간직해서는 안되는데,

하물며 순전히 믿어서 이해한(信解) 미혹한 생각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극한 도의 근본은 가까이하면 할수록 멀어집니다.

 

또 자신도 아직 도에 회합하질 못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에 하나가 되게 하겠습니까?

나는 도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감히 망령되게 큰 평상에 앉아 도를 널리 펴는 스승이라고 자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객승이 말하였다.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고금에 즐비하게 들어선 사찰의 주병(주柄)을 잡은 큰스님들이 지금껏 끊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정말이지 근본(體)과 활용력(用)을 잃은 분들이 아닐는지요?"

 

나는 말했다.

"그대의 질문은 매우 자세합니다.

그런데 그대는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각자의 三昧는 남이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 옳고 그름을 논한다면 내 허물만 커지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주고 받으면서 객과 마주보며 한바탕 웃었다.

 

명예욕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객승이 또 질문하였다.

"저는 반평생이나 空寂한 도량에서 수행을 했는데도,

명성과 영리의 세계로 감정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돕지 않는다고 造物主만 원망하던 차에 주지의 소임을 맡게 되어 기쁘게 이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 주지라는 직책을 걸머진 이래로는 도리어 그 이전보다도 편안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의 잘잘못과 여러 대중들의 기쁨과 노여움이 모두 제 마음에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조금 이라도 생각에 빈틈이 생기면 재앙과 욕이 몰려들었습니다.

어찌 옛날의 불조들께서도 이러셨겠습니까?"

 

나는 말했다.

"그대는 생각지 못했습니까?

소임을 맡은 그때부터 책망이 시작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이름은 까닭없이 생긴 것이 없습니다.

모두 실상이 있어서 생기는 것입니다.

 

명칭과 그에 따르는 실상의 관계는 마치 물체와 그림자의 사이와 같고,

옷감으로 옷을 만드는 것과 같고,

식량으로 밥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책망하는 것은 실상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림자를 말할 때는 형체의 상제를 찾는 것과 같으며,

衣食의 명칭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곡식과 비단의 실제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처음 주지라는 소임을 걸머질 때에는 반드시 우선적으로 깨달음의 바른 씨앗(正因)을 지녀,

법을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자세가 있는가 없는가를 스스로 따져봐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없다면 이것은 본체를 떠나서 그림자를 좇는 것이고,

곡식과 비단을 버리고 의복과 음식을 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껍데기에 대한 말이 많으면 그 본질과는 더더욱 멀어지며,

心機가 촘촘할수록 大用은 더욱 어긋나고,

攀緣이 많아질수록 깨달음의 바른 씨앗(正因)은 더욱 없어집니다.

 

이 껍데기에 대한 말을 빨리 버린다면 그래도 막을 방법이 있겠지만,

그 상태가 계속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도대체 명예란 무엇이길래 이토록 숭상을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예 그 자체보다도 자기 자신(我)에게 집착합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愛見이 발생하게 되고,

이 애견 중에 가장 심한 것이 바로 명예욕입니다.

그러므로 명예욕은 五欲 중에서도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욕망(欲)이 마음에 깊숙이 들어있을 때는 아직 미미해서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外緣을 만나 욕심이 움직이면 그때는 그 힘이 강해져 수만 명의 장정도 대적할 수 없고,

수천 명의 성인이 있어도 그것을 제지하지 못합니다.

 

또한 도끼와 톱으로 위협하고,

뜨거운 가마솥의 형벌이 기다린다 해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당장에 볼 수 없는 인과를 두려워 하겠습니까?

 

그런데 명예 중에서도 가장 제일가는 명예는 聖賢과 道德이란 명예입니다.

그 다음은 功利라는 명예이며,

그 다음은 技能이란 명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현을 속여서 명예를 얻으려 하고 도덕을 빙자해서 명예를 얻으려 하고,

기능을 멋대로 부려 명예를 얻으려 하고,

공리를 훔쳐 명예를 얻으려 합니다.

 

진정한 명예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思念에서 생겨난 妄識에 매달려서 행동거지와 언어에 이르기까지 명예만 얻으려고 힘씁니다.

그러면서도 명예의 참된 본질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으며 되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종일토록 바쁘게 애를 쓰지만,

크게 패가망신할 것이 분명합니다.

 

반면 그러는 사람 중에 더러는 報緣이 맞아 구하던 것이 우연히 적중하여 훌륭한 명성을 죽은 뒤에까지 남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보연이 다하면 지난 날의 명예는 도리어 오늘의 치욕이 되고 맙니다.

지난날의 명예가 높았을수록 치욕 또한 더욱 심합니다.

그러므로 실속 없는 명예(名)는 패배와 치욕을 가져올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옛 성인들의 거취를 살펴보면,

그분들은 이치의 근원을 통철히 꿰뚫어보시고,

가슴 속에 참다운 본질을 간직하여 잠시라도 그것을 잊어버릴까 두려워했습니다.

이 때문에 한량없는 세월이 지나도록 지극한 도만을 구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生死의 마구니를 타파하여 본래의 신령한 자리로 돌아가려는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6바라밀을 세밀하게 실천하고 四無量心을 널리 베푼 이유는 大慈한 마음을 내어 四大悲心을 여는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3백여 회동안 半.滿,偏.圓의 가르침을 설했던 것은 중생의 근기에 알맞게 병에 따라서 치료하고 지도하는 참된 본질이었습니다.

후에 손수 한 송이 꽃을 들어 보이시고 衣鉢을 가섭존자에게 부촉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마음을 印可하고,

그릇으로써  그릇을 전하는 참된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백천의 훌륭한 수행과 황하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공덕도 참된 깨우침의 자리 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를 말하여 純一眞實이라고 합니다.

안으로는 억지로 하는 인위적인 행위가 없었고,

밖으로는 명예를 사모하는 욕망이 없었으며,

자기 자신을 뽐내지도 않았으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도 않았습니다.

 

용맹건장한 모습도 보이지 않고,

다만 실제와 진실을 실천하는 올바른 생각만을 당연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성실한 행동이 具足圓滿했기 때문에 調御師.

天人尊이라든가 優曇華.

光明藏 등과 같은 갖가지 아름다운 호칭과 갖가지 훌륭한 명예들을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얻게 되었습니다.

 

만일 성인이 외적으로 명예를 홈모하는 마음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었다면 온갖 선행을 열심으로 수행했어도 훌륭한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리어 허망을 좇는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처럼 참다운 본질이 없을까봐 근심했을 뿐,

결코 명예를 얻지 못할까 근심하진 않았습니다.

그것은 참다운 실상이 명예를 부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하 고금에 참다운 실상도 없으면서 명예를 얻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른바 住持라는 소임의 참다운 본질은 무엇일까요?

멀리는 선불(先佛)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가까이는 조사들의 교화방편을 지녔으며,

안으로는 자기의 眞誠을 간직했고,

밖으로는 인간과 天上이 의지할 믿음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총명하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리석다고 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순종한다고 해서 사랑하지도 않고,

자기 뜻을 거역한다고 해서 미워하지도 않으며 모든 만물을 평등하게 자비로써 대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화를 드날리고,

높은 자리에서 스승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실상입니다.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 직위에서 물러나 수행을 할지언정 구차하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혹 조금이라도 수단을 써서 참된 실상을 흉내내려 한다면,

밝은 대낮에 반딧불처럼 전혀 도움이 안될 것입니다.

성인께서는 참된 실상만을 실천해야 된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참 된 실상을 실천하는 것 외에 다시 무슨 명예를 생각하셨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곡식과 비단을 많이 쌓아두면 의복과 음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총림이 생긴 이래로 주지라는 소임에 대한 아름다운 명예는 마치 허공에 걸린 과녁과도 같았습니다.

 

총명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筆舌과 변론의 날카로운 화살을 그 과녁에 쏘아 댈 적에도 모두 참된 실상은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서는 과녁을 적중시켰다고 했으나,

어찌 그렇다고 하겠습니까?

 

교화가 잘되고 못되고,

법도가 제대로 서고  못서고 하는 원인은 주지 자리를 탐내는 명예 때문이냐 아니면 주지의 본래 임무겠습니까? 

모두가 주지의 본래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후진 교화에 대한 처신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그러면 후진 교화를 맡아야 합니까 맡지 말아야합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四大 육신 껍데기를 三界 바다 가운데 띄웠으니,

이것은 마치 드넓은 바다에 떠도는 한 알의 좁쌀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재빨리 나아가고 용맹하게 물러나는 일을 매일 천만회씩 한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일정하지 않아서,

공직에 나아가도 시비거리가 되고 물러나도 시비거리가 됩니다.

사람들은 긴 안목으로 지극한 이치를 살펴보지 못하고,

걸핏하면 시비에 미혹되어 생각나는대로 一進一退할뿐, 전혀 줏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현은 그렇지를 않으셨습니다.

나아가면 반드시 바른 道를 펴서 사람들을 구제할 것을 생각했으며,

물러나도 여전히 바른 道를 펴서 자신의 잘못을 보완할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진퇴를 하는 동안 수백 번 좌절해도 호연한 기상으로 근심이라곤 전혀 없으셨습니다.

 

어찌 도의 근본자리를 깨닫지 못한 자들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혹 영화를 누리고 총애를 얻으려고 자기 한 몸을 위해 일을 꾸미는 자들은 나아갔다 하면 갖가지 業을 짓고,

물러났다 하면 속이 상해서 걸핏하면 시비가 분분하니,

인과가 뚜렷하여 그 과보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道人이라면 어찌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을 조심하지 않겠습니까?"

公과 私는 어떻게 다릅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

 

"公과 私는 서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私는 알겠습니다만,

公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요?"

 

나는 말했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기에 감히 그것을 논하겠습니까?

다만 옛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公이란 말은 바로 佛祖聖賢의 본심입니다.

 

지극히 위대하고 지극히 맑아 늠름하게 흘로 서서 천지로도 그것을 가릴 수 없고,

귀신도 엿볼 수 없는 것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에는 至公이 있고,

大公이 있으며,

小公이 있습니다.

지공은 道이고, 대공은 敎이고, 소공은 행정을 잘하는 것〔物務〕입니다.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새벽녘에 샛별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기이하구나. 모든 중생들이 다같이 여래의 지혜와 德相을 구비하였구나"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성인과 범부가 신령함을 동일하게 받았다는 점을 밝히시고,

무궁토록 전하게 하였습니다.

바로 지공의 도는 여기에 근원한 것입니다.

이윽고 300여회 동안 상대의 근기와 그릇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가르쳤던 문자와 말씀은 산과 바다와 같이 넓었는데,

바로 대공의 가르침이 여기에 근본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교화가 五天竺國을 덮고,

부처님의 광명이 증국 땅에 들어가고 나서는 절의 살림살이가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공으로써 살림살이를 잘하는 것〔物務〕입니다.

 

도가 아니면 敎를 드러낼 수 없고,

교가 아니면 살림살이를 잘할 수 없고,

또 살림살이를 잘못하고서는 도를 널리 전할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의존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모두 불조성현의 본심에서 나온 公인 것입니다.

하늘이 온 세상을 두루 덮어주고,

땅이 온 세상을 받쳐주며,

바닷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고 봄이 모든 생물을 길러주는 것은 대단히 지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불조의 公이 지극함과 두루한 것에는 비교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불조의 道로 말하자면,

원만함은 三界를 싸고도 남고,

훤출함은 十虛를 관철합니다.

 

그리하여 한 생명체라도 그것을 證悟하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또 불조의 敎로 말해보면,

三承 十地 및 六度萬行 등의 수행 단계를 자세하고도 널리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한 중생도 문호에 들어가는데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살림살이 잘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높고 큰 전각을 만들어 강당과 실내를 꾸며놓고 한 그릇의 밥을 먹을 때에도 반드시 종과 북을 울려 저승과  이승의 중생들을 경책하여 은택을 고르게 베풀고 덮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불조성현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마음 속에 公을 간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로 公을 간직하지 못하면 혼자 있을 때는 근심만 생기고,

하는 행동마다 재앙에 빠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궁색해지면 더욱 어리석어지고 혹 영달할지라도 하면 죄악만을 짓게 됩니다.

그러다가 끝내는 三惡道와 6도에 윤회하여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끝내 스스로 풀려날 길이 없게 됩니다.

 

이것은 실로 마음에 公을 간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루(離婁)처럼 눈밝은 사람이라도 잘못된 길에 빠지기만 하면,

천리 밖을 아는 빼어난 지혜가 있어도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현들께서는 차마 교화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안락한 삶을 바라면서도 참된 안락이 公에서 나오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또 복과 지혜는 사람마다 숭상하는 것이지만 복과 지혜의 근본이 되는 것이 곧 公인 줄은 알지 못하는 듯 합니다.

 

또 성현은 사람들마다 우러러보는 바이면서도 스스로가 성현이 되려면 公이 바로 지름길인 줄은 모르며,

모든 사람들이 불조는 공경할 줄 알면서도 불조가 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 公인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公은 바로 그대로 본심입니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至公의 도를 그대로 가리켜 중생의 마음을 밝히고,

大公의 敎를 베풀어서 중생의 마음을 비췄으며,

小公에 해당하는 살림살이〔物務〕를 베풀어 증생의 마음을 바로잡으셨던 것입니다.

 

마음과 公은 비록 그 명칭은 서로 다르지만 그 본체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公의 이치는 일시적인 미봉책으로써 실현되는 것도 아니며,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인위적인 조작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오직 한결같이 그대로  바로 가리켜야만〔直指〕얻을 수 있는 도입니다.

아주 진실한 마음만이 이 도에 계합될 수 있으며,

조금이라도 사량분별하면 公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현은 도를 수행할 때에 조금도 위의 사실을 어기지 않았읍니다.

 

수행할 때에 조금도 사량분별하지 않고,

오로지 분명하고도 公明해서 억지로 조장하여 깨달음이 나타나기를 바라지 않아도, 그것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곤 합니다.

 

세속에서 그 公을 속이는 자들은,

그 公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마음은 속여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면,

公은 저절로 확립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敎와 道를 통달하고,

나아가 살림살이를 하는 것까지도 모두 公에 어긋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일생을 살아가면서도,

혹 公을 잘 모르고 미혹되는 것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더러는 그 공을 알면서도 고의로 위배하며,

도리어 至公의 도를 기만하여 명예를 얻으려고도 하며,

또 小公에 해당하는 살림살이를 횡령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너무 깊이 악의 구덩이에 빠져 들어가,

남들이 자기를 본받는다는 사실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런 행위는 자기 자신을 속일 뿐 만 아니라 남까지도 속이는 일입니다.

 

옛날에 조정에서 어느 사찰을 개조하여 창고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스님이 이것을 반대하여 따르지 않자,

이 사실이 왕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왕은 해당 관리에게 칼을 내주면서 은밀히 말하기를,

'지금 또 항거하면 목을 쳐라.

그러나 만일 죽기를 무릅쓰고 항거하면 절을 그대로 두거라'

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그 관리가 임금께서 이 절을 창고로 고쳐 쓰라고 한 명령을 전하자,

스님은 웃으면서 목을 쑥 내밀고 말하기를,

'불법을 지키다 죽는다면 실로 시퍼런 칼날을 혀로 핥으라고 해도 달게 받겠다'

라고 했답니다.

 

스님은 목을 내밀고서도 끝내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구차하게 억지로 그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眞誠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 마음을 추측해 보건대 어찌 절간의 살림살이에 해당하는 小公만이겠읍니까.

敎와 道에도 깊은 깨달음이 있는 스님이 분명합니다.

 

隋나라의 太守였던 堯君素가 명령하기를,

'모든 승려들은 성곽에 올라가서 부역을 하라.

감히 이 명령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

라고 했습니다.

 

이 때에 道遜이라는 스님이 태수한테 가서 항의하자,

요군소가 도손스님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르기를,

'스님께서는 담력과 기상이 대단히 씩씩하십니다'라고 말하며,

마침내 부역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이것은 大公에 해당하는 敎를 지키기 위하여 창칼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찌 구차하게 억지로 그랬겠습니까.

東山演祖스님의 편지를 대략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금년 여름에는 모든 들판에 가뭄이 들어 손해를  많이 보았습니다만,

나는 그것을 조금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 대중 스님들이<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라는 화두를 들고 있는데,

하나도 깨치는 사람이 없을까봐 오히려 그것이 근심일 뿐입니다'라고 했읍니다.

 

연조스님께서는 至公의 도에 항상 뜻을 두어,

늘 그것을 걱정하며 잠시라도 그것을 잊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들판에서 가뭄으로 손해본 것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까닭이 따로 있는 것입니다.

소소한 살림살이야 지극한 도에 비교한다면,

그 근심이야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절(僧園)의 살림살이는 敎를 일으키고 道를 전하는 데 그 필요성이 있습니다.

교가 널리 퍼지지 못하고 도가 후대에 전수되지 않는다면,

나를듯한 누각이며 용솟음치는 듯한 전각이며 남아도는 황금과 곡식이 대천세계에 가득하다 해도 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교와 도의 허물만 늘어나게 할 뿐입니다.

公이 제대로 드러나느냐 못  드러나느냐는 오직 불법이 융성하느냐 아니면 침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조심하지 않겠으며,

어찌 삼가하지 않겠습니까! "

 

제자들을 지도하는데 위엄이 필요합니까?

 

객승이 물었다.

후진 교화에 위엄이 필요합니까?

 

나는 말했다.

"세상에는 위의의 종류가 둘이 있습니다.

즉 하나는 도덕이 높아서 생기는 위의이고,

또 하나는 권세가 높아서 생기는 위의입니다.

도덕이 높아서 생기는 위의는 자연스럽지만,

권세 때문에 생긴 위의는 인위적으로 생긴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나온 위엄과 존경은 상대의 미음까지 복종시킬 수 있지만,

인위적으로 생긴 위엄과 존경은 그저 외형만을 복종시킬 뿐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까지 복종시키는 위엄과 존경은 자기의 눈앞에서만 위엄스럽게 할뿐만 아니라,

만리 밖에서도 위엄과 존경을 받습니다.

 

뿐만아니라 현재는 물론 백세가 지나도록 그 명성은 알려져 존경과 위엄을 받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

옛날에 도덕이 뛰어난 분들에 대해 요즈음 사람들은 그 遺風에 머리 숙이며,

깊이 존경하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분들의 모습을 직접 뵙고 말씀을 몸소 들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야 어찌 경외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분들의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키는 위엄은 한결같이 至誠에서 나왔습니다.

모두가 자연스러워서 털끝만큼의 인위적인 조작도 없었습니다.

 

도덕 때문에 생기는 위엄이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키는 것은 실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현들께서 임시 미봉책으로 도덕을 문란하게 하면서 사람을 복종시키려 했다면,

사람들이 어찌 그분들에게 복종했겠습니까?

또 도덕이 갖고있는 훌륭한 가치는,

성현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문란하게 하여 사람들을 복종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도덕을 버리고 권세에 아부하면서도 그 위태로움을 스스로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시끄럽게 떠들며 종일토록 남돌이 나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만을 원망합니다. 잘못 되어도 어찌 이토록 잘못될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 권세의 위엄이란 사람을 겉으로는 복종시킬 수는 있다해도 잠시일 뿐입니다. 눈 앞에서 돌아서기만하면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가 죽은 이후까지 위엄스럽게 존경받을 것을 기대하겠습니까.

죽은 뒤에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가슴에 한을 품고 그 권세에 무릎 꿇었던 과거를 들추어서 보복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권세가 훗날에 재앙이 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의 존경과 위엄이 후일에 가서는 재앙이 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다행히도 우리들은 四無量心의 큰 훈계를 저 멀리 西域의 부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위엄과 권세 같은 것은 한순간이라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객승이 또 질문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는데는 상벌보다 더 효과가 좋은 것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은혜가 없으면 상을 내릴 수 없고,

위엄이 없으면 벌을 줄 수가 없습니다.

스님의 말씀은 보통 세상의 물정과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사찰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스님이 혹 직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

위엄을 부려 꾸짖지 않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분명하고도 엄연한 인과의 법칙이 실로 그대의 몸에 있습니다.

성현께서 후세에 보여주신 모범을 누구라서 감히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위엄을 부려도 뉘우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은 오히려 내 스스로가 도덕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제 스스로 도덕을 실천하여 至誠이 안팎으로 충만한데도,

다른 사람들이 그를 믿고 추종하지 않는다는 소리는 듣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위엄을 부리고 그러겠습니까?

또 세상에는 임금님이 위엄을 부리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횡포를 부리며 악을 행하는 자들은 그 위엄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는 것이 모두 위엄이 악한 자에게 미치지 못해서 그러했겠습니까? 실로 도덕이 자기 몸에 충만하지 않은데도 직위에서 물러나 수양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위엄과 권세를 가지고 군림하려고만 애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설사 지금은  재앙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그 재앙을 죽은 뒤에라도 반드시 받을 것입니다."

객승이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다.

 

불법과 外護衆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객승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불법은 국가로부터 外護가 있어야만 시행될 수 있다고 하여,

불법을 국왕과 대신에게 부촉했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事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그 말이 옳을 수도 있겠지만,

理의 측면에서도 그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隨侯라는 사람이 가졌던 구슬(珠)은 아주 존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구하려 했으며,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소유했던 구슬(璧)은 전혀 티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성곽도 아끼지 않고 그것과 바꾸려고 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그러나 가령 그의 옷 속에 구슬이 없고 품 속에 옥이 없다면,

아부하고 굽신거려 그들과 가까이하려 해도 사람들은 멀리할 것입니다.

 

또 무엇 때문에 수많은 성곽도 가볍게 여기고 그 구슬과 바꾸려 하겠으며,

갖가지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을 구하려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佛祖께서는 도덕을 수양하느라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몸과 부귀영화를 모두 잊으신 것입니다.

그러한데 무슨 外護를 받으려고 억지로 애를 썼겠습니까!

 

자기 자신이 도덕을 함양하지 못했는데도 국왕이나 대신이 정성껏 대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어리석은 스님들은 자기 자신의 도덕이 어떠한지는 되돌아보지도 않고,

그저 영화와 총애만을 얻으려고 권세있는 집의 문턱을 드나들면서 외호 세력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잘 안되기라도 하면 원망하고 탄식하며 우울하고 성난 얼굴을 하다가 끝내는 재앙과 치욕을 당하고 맙니다.

어찌 도를 수행하는 자가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

 

사찰의 살림살이하는 법은 무엇입니까?

 

또 객승이 물었다.

"혹시 사찰(僧園)의 경제적인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면,

몸을 돌보지 않고 노력하여 보완해도 되는지요?"

 

나는 대답했다.                                       

"모든 藥은 반드시 훌륭한 의사의 문으로 모이게 마련이고,

돈은 큰 상인의 점포로 투자되기 마련입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면 산새들이 모여들고,

연못에 물이 가득하게 차면 달빛이 찾아드는 것입니다.

 

옛날 雪山의 부처님께서는 萬乘의 부귀영화도 모두 버리시고 6년 동안 춥고 배고픈 고생을 감수했습니다.

大千世界 보기를 한 물거품 처럼 하잖게 여길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세간에 무슨 有爲가 있으셨겠습니까?

 

그러나 훌륭한 덕을 갖추시자 화려한 누각과 모든 장엄한 살림살이가 두루 쌓였습니다.

비록 열반하신 지 2,000여년이 지났지만 그 영향력은 온 천하에 가득했습니다.

이야말로 '자기가 버린 것을 도로 자기가 거두어 들인다'라는 속담과도 통합니다.

보살이 세상을 교화할 때에 혹 具足하지 못할 경우라도 상대방이 나를 돕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않고,

 

오직 6바라밀을 철저하게 수행하고 나아가 四無量心을 널리 베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화의 기연(化機)이 원만해져서 시주하는 사람들이 재물을 봉헌하면 담담하게 그것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시주한 사람들이 뛸듯이 기뻐하곤 했습니다.

自利와 利他를 고르게 하는 것을 解脫이라 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이 바로 절간의 살림살이를 돌보는 福田인 것입니다.

 

요즈음 스님들은 무슨 일을 할 때면 참된 이치를 위배하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만 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가령 한 조각의 땅덩어리라도 마련하지 않으면 도리어 많은 재물을 모으며,

혹은 엄청난 권세로 군림하키도 하고,

혹은 죄를 얽어 매어 남을 두렵게 하기도 하며,

혹은 잔재주를 부려 남을 해치기도 합니다.

 

한 때에 잠시 권세를 성취했다고는 하나 모두가 번뇌의 근본이 될 뿐입니다.

福田에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해 놓고도 둘러대기를,

'사찰은 천 년의 十方常住物이며,

스님은 하루 아침 이슬처럼 잠시 머물렀다 갈 뿐이다'

라고 변명합니다.

 

그러나 천년 상주물이 定慧를 바탕으로 하고 自利利他를 동시에 행하지 않았다면,

어찌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그 근본(定慧)을 잊는다면 이것은 마치 연못을 버리고 밝은 달을 부르는 격이며,

나무를 버리고 뭇새들을 모으려는 격입니다.

어찌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도대체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

 

설법하는 형식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객승이 질문했다.

"說法儀式에는 반드시 雨花堂과 須彌座를 갖추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합니까?"

 

나는 대답했다.

"儀式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법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어찌 그렇게 꼭 해야만 하겠습니까.

무릇 法은 일정한 모양이 없으며,

설법 또한 일정한 형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백주(白주)의 拂子를 휘두르고 입술을 나불거리는 것은 사상(事相: 걸모습)의 설법입니다.

부처님의 경우는 菩提座에서 일어 나시지도 않으며,

나가정(那伽定: 부처님의 선정)에서 나오시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한 법의 모양도 보이시지 않으셨지만,

불이 치솟듯이 항상 설법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어찌 굳이 49년 동안 삼백여회를 국한하여 말씀하셨겠습니까.

모든 보살들의 경우는 보통사람이 버리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버리는 布施로써 설법을 삼으셨으며,

또 남들이 지키기 어려운 것을 능히 지키는 忍辱으로써 설법을 했습니다.

 

나아가 6바라밀과 4무량심을 닦는 것도 모두 설법이었던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32종류의 모습으로 應身할 적에,

天. 龍. 鬼神. 사람. 사람처럼 생겼으나 사람은 아닌 존재(人非人) 등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을 나투는 것이 모두 설법인 것입니다.

 

그러니 따로 뭐 설법할 것이 있겠습니까!

위로부터 여러 조사스님들이 나무집게를 들어 보이고(擎叉) 공을 굴리던 것(곤迷)과, 기름을 팔던 것(提油)과,

흘을 흔들었던 것(舞笏)과,

강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으려 했던 것(隔江招手)과,

눈 속에서도 마음을 편한히 했던 것(立雪安心)과,

초가집에서 빈주먹을 세웠던 것(竪空拳於草盧)과,

두 다리를 꼬고 바위굴 속에 앉았던 것(疊雙趺於巖穴)과,

어지러운 세상에서 목탁을 울렸던 것(감木석鐸於紫陌江塵之隙)과,

누런 갈대 덮힌 물가에서 낚싯줄을 드리우던 것(於絲綸於白覡黃葦之濱)과,

땅을 치고 뱃전드렸던 것(打地叩舷)과,

화살을 눈앞에 꽂아놓고 참선을 했던 것(張弓面壁)과,

외로운 봉우리에서 홀로 잠자던 것(孤峰獨宿)과,

외길에서 서로 만났던 것(狹路相逢)과,

소를 받아 놓고도 말을 돌려주며 平常이라고 말했던 것(得牛還馬而道出平常)과,

옹기를 鐘이라 부르는(喚甕作鐘) 등

말 밖의 말들이 수만가지가 있었다.

 

이것이 모두 玉振金聲이 어찌 반드시 우화당과 수미좌에서 한 것이겠습니까!

도만 깨우친다면 비록 바위굴 속에서 명아주풀을 먹고 살더라도 분명히 여러 대중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호사스럽게 좋은 옷을 입고 매우 존엄하게 큰 법상에 올라가, 질문이 구름처럼 몰려오고 그에 대한 대답이 병 속의 물을 쏟듯이 막힘없이 줄줄 나온다 해도 말만 많아지고 뽑내는 마음만 더욱 늘어날 뿐입니다.

 

世情에 아첨하여 세속의 풍속을 좇으면서도 스스로 말하기를,

'불법을 설하여 만 중생을 이롭게 하며,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화를 한다'

라고 하니,

그 잘못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깨달은 스님마다 그 행적이 왜 다릅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옛 사람들은 종지를 체득한 뒤에는,

혹 외로운 봉우리에서 흘로 머물기도 하였고,

혹은 시장바닥으로 들어가 포교하기도 했으며,

혹은 제 마음대로 교화의 방편을 펄치기도 했고,

혹은 오로지 佛祖의 正令만을 다루기도 했으며,

혹은 문전 가득히 제자들을 제접하기도 했으며,

혹은 아무도 만나지 않기도 했으며,

혹은 자취를 끊고 은거하기도 했으며,

혹은 명성이 온천하에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으며,

혹은 직접 세상의 환란에 뛰어들기도 했으며,

혹은 고질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달마스님의 제자들이면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달마스님이 곧바로 가리킨(直指) 뒤 참된 自心을 깨달은 점은 모두 동일합니다.

그러나 三世의 虛幻으로 맺어진 業을 받는 점에서는 서로 다릅니다.

업보의 報緣에 따라 살아간 측면에서 본다면,

 

그저 고요함을 즐기기 위해서 외로운 봉우리에 흘로 머물렀던 것도 아닙니다.

또 그저 시끄러운 것을 좋아해서 시장터에 들어가 교화를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교화의 방편을 베풀었다고 해서 이단에 빠지는 것도 아니며,

한편 불조의 정령만을 다룬다 해서 정통인 것도 아닙니다.

 

또 제자가 문전에 가득했다하여 구차하게 세속에 영합한 것도 아니며,

친구라고는 자기 자신의 그림자뿐일 정도로 흘로 살았다 해서 外物을 끊은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은거했다해서 고상하게 여길 것도 없으며,

명성이 온 우주를 떠들썩하게 했다해서 자랑할 것도 못됩니다.

 

榮枯禍福은 모두가 각자의 인연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金剛正眼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세상 일이란 작은 티끌이 눈앞을 스치는 정도도 못되는데,

어찌 어지럽게 愛憎取捨의 쓸데없는 생각을 내겠습니까!

 

그래서 龍門寺의 청원(淸遠 : 1067∼1120) 스님께서는,

각자가 겪는 업보의 인연들은 모두가 헛된 그림자에 불과한데 억지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하겠는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演祖스님께서는, '모든 것에 道가 들어있는데도 그저 과거의 인연만을 믿고 그것만 따른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실로 지극한 이치로 비춰보지 않으면 세상의 갖가지 일에 휘말려서 미혹되고 말 것입니다."

 

임제스님의 법손들만이 번성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스승의 위치에 있는 스님들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화를 드날리는 목적은 제자들을 길러 부처님의 慧命을 전승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五宗의 문중에서 오직 임제스님의 계열만이 북쪽에서 내려와 혈맥을 계승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가 法嗣가 끊겨 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법을 전수하고 받을 즈음에 부촉을 안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인연이 그렇게 되도록 된 것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성인의 도는 시절 인연에 따라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습니다.

그 시대의 상황 인물의 성쇠와 교화하는 방편의 방편침체는,

한 털끝만큼이라도 인위적으로 더 보태거나 덜 수가 없습니다.

옛날 우리 달마조사께서는 인도땅을 떠나지 않고서도 般若多羅존자께서 미리 하신 예언을 받으셨으니,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靑原스님과 南嶽스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때에도 五家는 이미 정해진 이치가 있었습니다.

五家가 한창 성대할 당시에 길고 짧은 운수에 어찌 일정한 이치가 없었겠습니까.

다만 서로가 어리석어서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임제스님은 자상하여서 자세하고도 간절하게 제자들을 지도하고 또 機緣도 뚜렷하였고 말씀은 活句였다.

스님이 제자들을 단련하는 것은 마치 손을 뒤집는 것처럼 신속하였다.

그래서 임제가풍의 명성이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스님들은 이와는 달랐기 때문에 그 법이 세상에 오래 가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先哲을 속이고 비방하며 잘못된 견해로 시비거리만을 삼을뿐만 아니라,

나아가 바른 이치까지도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 스승의 위치에 있는 스님들이 평등한 마음으로 교화를 베풀어 불법이 이 땅에 오래 가도록 할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합니다.

대부분이 제자〔法嗣〕구하는 일에만 급급하여 세속의 못된 풍습만을 본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력과 이익으로써 결탁하고,

명예와 지위로써 서로를 유혹하며,

物欲에 끄달리고,

나쁜 생각으로 상대를 속입니다.

 

이렇게 하면 제딴에는 수천백년 동안이나 그 法嗣가 끊기지 않고 전승되리라고 믿지만,

진리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어찌 이익만 없겠습니까?

실로 엄청난 피해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월당(月堂 : 1089∼1171)스님은,

'한 낮에 오이밭에 물을 주어서 도리어 오이덩굴을 죽이는 격이다'라고

비유하시기도했고,

 

석실(석실 : 1293~1389)스님의,

'겨드랑이를 부비고 신선이 되려고 깃털을 꽂는 격이다'라는

나무람이 僧伽의 속담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되려고 스스로 뉘우치지 않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옛날 雲門스님은 목주(睦州)땅의 道明스님으로부터 法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도명스님은 운문스님을 끝내 雪峰스님의 법을 계승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총림에서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습니다.

또 慈受스님은 莊山 땅에서 불감(佛鑑 : 1059∼1117)스님을 친견했는데 집안에서 기이한 만남이라 하여 그 法嗣를 바꾸려 하자,

불감스님은 끝내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총림에서는 이것을 매우 아름다운 일로 돌리고 있습니다.

 

나의 도가 다른 사람에게 널리 전파되지 못할까를 염려할 뿐,

法嗣가 바뀐다고 해서 무슨 흔들림이 있었겠습니까?

비유하면 동쪽에 있는 집의 등불을 붙여다가 서쪽에 있는 등불에 점화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오직 어둠을 타파하여 밝게 하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일 뿐입니다.

어찌 나의 등불이 홀러 들어온 유래에 대해서 상대방이 잘 모른다고 속좁게 그것을 따지겠습니까! "

 

깨달은 내용을 설법할 수 있습니까?

 

객승이 질문하였다.

"「능엄경」에서 말하기를,

'내가 멸도한 후 보살이나 아라한이 말법 세상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들과 同事攝을 하면서도, 내가 진실한 보살이며 참된 아라한이다'라고 스스로 말하고,

'부처님의 密因을 누설하고 말세의 학자들에게 경솔하게 말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오직 생명이 끝날 때에 은밀하게 부촉하는 것만은 제외된다'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스승의 위치에 앉아있는 스님들을 살펴보니 여러 무리 앞에서 깨달은 연유를 말하고,

혹 배우는 시람들이 믿지 않으면 정말이라고 거듭 맹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마치 옛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기고 후세 사람의 허망한 습속을 조장하는 듯합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이 말에는 그 유래가 있읍니다. 

「五燈會元」에서,

모든 조사스님들의 本傳을 뽑아 편찬할 때 반드시 그가 깨달은 연유를 우선적으로 실었습니다.

그가 깨닫던 때에는 마치 오랫동안 잊었던 것을 갑자기 기억한 것 같기도 했으며,

벙어리가 꿈을 꾸는 듯도 했으며,

오직 자신만이 알뿐 그 밖의 사람들은 알 수 조차 없었습니다.

 

이야말로 스스로 몸소 증득한 三昧이기 때문에 입을 막고 말을 못하게 했습니다.

어찌 들오리(野鴨)에게 묻고,

布毛를 불며,

桃花를 보고,

뿔로 만든 피리(畵角)를 듣는다는

따위의 허깨비 같은 말이 있을 수조차 있겠습니까! "

 

대체로 이런 말이 있게된 데에도 그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승이 따져 물어서 마지못해 그렇게 대답한 경우도 있고,

혹은 어떤 경계를 굳이 설명하자니 그렇게 한 것이며,

혹은 증오한 깨달음이 전혀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오랜 뒤에 그렇게 대답하기도 했으며,

혹은 그 당시에 나쁜 소문이 나돌지 못하도록 하려고 그런 말을 하기도 했으니,

모두가 어쩔 수 없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깨달은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이미 깨달은 대열에 들어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뒷받침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아주 비밀스럽게 감추어 곁으로 드러나게 하지 않으려고 했을 뿐입니다.

 

정말 도를 체득한 분들은 일찌기 깨달았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산 속에 훌륭한 玉이 묻혀 있는데도 겉에는 그저 초목만 무성하게 자라나는 것과도 같고,

또 연못에 보배 구슬이 들어 있는데도 곁으로는 그저 파도와 물결만 출렁이는 것처럼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진짜 깨달은 스님(本色宗匠)은 자신이 체득했다는 사실을 구차하게 끌어들여 남들이 믿어주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마음을 내고 사념을 요동하면서까지 機緣을 교묘하게 만들어서,

그 당대의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나아가 후배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을 결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의 능력에 알맞게 자세히 지도하다가 혹 제자들이 믿지 않더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실로 생멸심을 망령되이 내어서는 절대로 三昧를 바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깨닫는 이치를 어찌 비밀스럽다고만 하겠으며,

또 어찌 누설했다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열반하는 모습으로 도의 깊이를 따질 수 있습니까?

 

객승이 질문했다.

"참선하는 스님은 임종할 때에 앉은 채로 입적하기도 하며,

혹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임종할 때에 앉은 채로 입적하는 분은 무엇을 지켜서 그렇게 되는지요?"

 

나는 대답했다.

"지킬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業緣에 관계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굳이 그것에 구애될 필요는 없습니다.

보통 마음을 깨달은 사람은 알음알이가 소멸하여 바깥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견해(見)가 물러나고,

집착이 없어져서 앉은 채로 열반하는 것(座脫)같은 것은 애초부터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혹 임종할 때에 질병의 고통이나 다른 근심 걱정에 걸리지 않으면 了了分明하여 초연히 흘로 육신의 껍질을 벗어납니다.

 

그리하여 육신을 벗어버리고 활개치고 가버리는데 무슨 앉은 채로 열반에 든다는 것 따위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또 세상에는 더러 도를 배우거나 수행하지 않았던 사람도 가끔은 앉은 채로 열반하는 자도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죽으려 할 즈음에 광채를 드날리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報緣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도를 익히는 사람들이 心要를 힘써 궁구하지 않고,

죽을 때에 초연히 해탈하지 못하면 남들이 흉볼까만을 염려하여 앉은 채로 열반하려고 애씁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외도 마구니가 그대가 座脫을 지중하게 여기는 틈을 타고 들어와, 그대에게 죽는 시기를 미리 알게하여 갖가지 기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할 것입니다.

이는 자못 마구니에게 붙들려 三惡道를 돌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찌 바른 이치에 보탬이 되겠습니까.

더러 진실하게 마음을 깨달은 사람 중에도 임종할 때에,

혹독한 독에 중독되기도 하고,

혹은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혹은 오랫동안 이상한 질병에 걸려 온몸을 지탱하지도 못하여 한마디의 말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평소에 道力을 잃지 않은 사람은 正念을 굳게 지키며 명이 다하기를 기다릴 뿐,

일찌기 지극한 이치에서 조금도 떠나질 않습니다.

임종할 때에 혹 죽지 않으려고 하거나,

혹은 산 사람에게 비위를 거슬리는 말을 하거나,

혹은 억지로 한 생각을 내어 어떻게 해야겠다고 한다면 그 해로움이란 대단히 큽니다.

 

어떤 큰스님 중에는 좌탈할 것을 미리 알리기도 하며,

몸에서 향기를 내기도 하며,

혹은 짐승들이 슬피 울기도 하며,

혹은 초목이 시들기도 하며,

화장할 때에 불빛은 휘영청하고 舍利에서는 광채가 나며,

갖가지 생각지도 못할 神異한 일이 四部大衆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세세생생에 선지식이 되어 定慧를 닦아온 勝因이 좋아서,

이와 같이 특이한 과보를 낸 것일 뿐입니다.

결코 스님께서 억지로 집착하여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면 혹 수행이 높은 보살이 세상에 나와 교화의 방편을 펴고,

그와 같은 훌륭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한 生을 參學해서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報緣에 관계된다는 말이 오히려 적절할 것입니다."

 

이제껏 스님의 말씀도 死句가 아닙니까?

 

객승이 질문했다.

"제방에서 하는 설법은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는 알 수조차 없도록 하니,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설법(活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내용이 있는 법(實法)으로써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으니 이야말로 죽은 설법(死句)이 아닐는지요?"

 

나는 대답했다.

"그대는 제방의 살아있는 설법 중에서도 살아있는 말만을 본받으려 하고,

죽은 설법(死句) 중에서 죽은 말은 조금도 본받으려 하지 않으니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대같은 분이야말로 설혹 죽은 말(死句)을 본받아 죽게 되더라도,

오랜 뒤에는 반드시 그 죽음에서 흘연히 살아나 그 活句만을 또렷하게 볼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한밤 내내 했던 대화가 이쯤되자, 

숲속에서 새벽 닭은 울고 동방이 점점 밝아왔다.

나는 그만 잠이 들고 그 객승 또한 말을 잊었다.

잠깐 있다가 깨어나서 밤새 담론했던 내용을 생각해 보았더니,

끝내 한 글자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우연히도 동자가 붓으로 종이에 내용을 수록하여 나에게 보여 주길래,

나는 화를 내면서 물리치고 꾸짖었다.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야말로 총림에서 죽과 밥 먹는 그 기운이 뻗쳐서 한 헛소리이니 마땅히 물리쳐야 하느니라"

 

ㅡ終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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