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요즘 총림의 도반관계와 사자관계
호구사 동주(東州困永)스님과 영은사 독고 붕(獨孤淳朋)스님은 같은 고향에 동문수학한 사이로서 우의가 매우 두터웠다. 동주스님이 호구사 주지로 있던 어느 날 때마침 성 안에 있었는데 만수사(萬壽寺) 주지자리가 비었다고 제방의 주지가 독고스님을 그곳에 추천하자 하였다. 당시 독고스님은 호주(湖州) 천령사(天寧寺)의 주지로 있었으므로(만수사의 주지가 되는 일은) 단계를 밟아 승진하는 것이지 결코 단계를 뛰어넘는 일이 아닌데도 동주스님은 힘을 다해 저지하였다. 그러나 독고스님은 이 말을 듣고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해가 지나 동주스님은 화주(化主)할 일이 있어 호주에 갔다. 그는 이에 독고스님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에 만나지 않았고, 또한 그가 자기를 헐뜯어 모연하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까 두려워하여 일부러 그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천령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독고스님은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속히 돌아와 예를 다하여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돈을 털어 모연을 돕고 그를 위하여 앞장서서 주선하며 조금도 전과 다를 바 없이 편히 대하면서 옛 우정을 나누었다. 동주스님이 호구사로 돌아온 후 깊은 밤에 방장실 치상각(致爽閣)에서 서성대며 스스로를 돌이켜, “독고는 군자이고 수영(壽永)은 소인'이라고 하였다.
내 요즘 총림에서 도반이라고 하는 자들을 살펴보니 말 한마디나 작은 잇끝으로 서로 다투며 나아가서는 서로 헐뜯고 모함하여 상대방의 명줄을 끊어놓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자들이 있다. 독고스님의 너그러운 우정과 동주스님의 반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제자가 스승의 잘못을 덮어주고 스승의 훌륭함을 드러내며 옳은 일을 따르고 잘못을 저버리는 것을 효도라 하고, 스승의 선을 가리우고 잘못만을 들춰내며 옳은 일에 등을 돌리고 잘못된 일은 따르는 것을 불효라 한다. 만일 스승에게 드러낼 만한 선이 없다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억지로 선이 있는 것처럼 꾸며 다른 사람들이 쑥덕거리게 만들어 도리어 스승의 불선을 들춰내게 한다거나, 순종할 수 없을 경우에는 스승에게 간언해야 옳은데도 어거지로 옳은 일이라 여기고 순종하여 다른 사람들이 쑥덕거리게 만들어 도리어 스승의 비리를 들춰내게 하는 일 또한 불효라 하겠다.
내가 요사이 여러 곳의 큰스님들이 열반하는 일을 살펴보니 그 제자들이 행장을 잘 갖추어 유명한 자에게 비명을 부탁하되, 거기에는 반드시 그가 태어날 때 부모의 남다른 현몽을 기록한다거나 죽어서 화장하였을 때 치아와 염주 등이 부숴지지 않았고, 사리가 수없이 나왔노라 기록하고, 이러한 몇 줄의 문장이 없으면 큰스님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변변치 못한 제자들이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거짓말을 꾸며 자기 스승에게 욕을 끼치는 일이니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 “전등록(傳燈錄)”에 실려 있는 1,700명의 선지식 가운데 사리가 나왔던 분은 겨우 14명이었으며, 적음(寂音)존자가 저술한 “승보전(僧寶傳)”에 실려 있는 81명의 선사 가운데 사리가 있었던 분은 몇 사람에 불과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선문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오로지 종지를 통달하고 설법을 잘하는 일이다. 향상(向上)의 수단으로 사람들의 속박을 풀어 없애주는 일을,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지엽과 말단이다. 화장하여 간혹 육신 [諸根] 이 부서지지 않고 구슬같은 사리가 나오는 것은 평소 그의 수행이 청정했다는 증험이니 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내 두려워하는 것은 후세의 승려들이 서로서로 이러한 일을 모방하여 거짓말을 조작하고 부질없이 자기 스승을 미화하느라 그 사실을 비석에 새겨, 다른 종교 사람들이 읽어 보고 도리어 남다른 기적이 있는 스님들까지 거짓으로 의심하는 일이 생길까 하는 바로 그 점이다. 이러한 일들이 불문에 끼친 폐해는 참으로 적지 않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산암잡록(山艤雜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동상종(洞上宗)을 지키고 전하다 / 운외(雲外)스님 (0) | 2008.03.05 |
---|---|
13. 용감히 물러선 두 스님 / 동양(東暘)스님과 초석(楚石)스님 (0) | 2008.03.05 |
11. “선문종요(禪門宗要)”의 저자에 관하여 (0) | 2008.03.05 |
10. 불경과 장자에 나오는 몸 큰 물고기 (0) | 2008.03.05 |
9. 봉산 일원(鳳山一源)스님의 염고(拈古) (0) | 2008.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