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36. 우연찮은 경우에 환희심을 맛보다 / 육왕사 면(勉)시자

通達無我法者 2008. 3. 5. 18:21
 


 

36. 우연찮은 경우에 환희심을 맛보다 / 육왕사 면(勉)시자


육왕사의 면(勉)시자는 나의 친척 조카인데 어려서부터 참선에 뜻이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요절하였다. 그는 천태산(天台山)과 안탕산(雁宕山)으로 떠나가는 한 시자에게 송별 게송을 지어 보냈다.


조과스님이 실오라기를 불어

시자는 깨치고 떠나갔네

그러나 말에 떨어지진 않았어도

이미 고정된 형식을 이루었네

천태산 마루턱의 저 구름과

안탕산 속의 나무 숲을

이번 떠나는 길에 잘 헤아려 보고

그 곳 주지의 이름일랑 함부로 건들지 말아라.

鳥窠吹布毛  侍者便悟去

雖不涉言詮  早已成露布

天台嶺上雲  雁宕山中樹

此去好商量  莫觸當頭諱


임종할 때 다시 게송을 지었다.


남(生)도 본래 남이 아니오

죽음 또한 죽음이 아니로다

비마스님은 나무집게를 만들어 가르쳤고

구지화상은 손가락을 바로 세웠었지.

生本不生  死赤非死

秘魔擎叉  俱Ꞣ氐堅指


내가 한번은 그에게 어떻게 해서 깨닫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지난날 옥궤사(玉几寺) 전단나무 숲 속의 경안(經案) 옆에 앉아 있다가 우연찮게 규(珪)장주가 스님들과 함께 강론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스님이 “향상사(向上事)가 무엇이냐고 묻자, 규장주는 두 손으로 그의 주먹을 비틀어 머리 위에 얹어놓은 후 합장하고 “소로소로…' 하였습니다. 나는 이를 계기로 어떤 기쁨을 얻었고, 정신없이 몽당(蒙堂)으로 뛰어와 달(達)수좌에게 말하니 달수좌가 미소를 지으며 “너 왔느냐?'라고 하였는데, 그 뒤 가슴 속이 후련한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뒤에 규장주를 만나 그 이야기를 물어 보았더니 그는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질 뿐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다시 서서히 물어 보았더니, 그는 당시 그런 흉내를 낸 것은 그 스님을 놀려주려고 하였을 뿐, 사실 어떻게 해야했는지 몰랐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 일이 말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람이 불고 티끌이 일어나고 구름이 가고 새가 나는 것까지 모두가 사람을 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 뒤로 얼굴을 마주치면 그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지금보면 규장주는 그 스님을 놀려주려고 한 일이었지만 면시자는 여기에서 어떤 기쁨을 얻었다. 생각컨대 이는 부처님 생존 시 어느 법회에서 어린 사미승이 가죽공을 가지고 장난삼아 늙은 비구의 머리를 때려 사과(四果)를 깨치게 만들었던 고사와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