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발문

通達無我法者 2008. 3. 7. 08:55
 

 

 

발문 1


天禧住山 守仁


“산암록”은 산암(山菴)스님이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것이다.

기록 중에는 좋은 일 좋지 못한 일들을 숨김없이 그대로 썼으니 불교문중의 좋은 역사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에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모두 쓰지 않을 수 없되 그것이 천하의 공론과 일치한다면 더욱 훌륭한 일이다.

이 책이 세상에 퍼지면 “임간록(林間錄)” “초암록(草菴錄)” 등 여러 저술과 함께 끝없이 전해질 것이다.


홍무 경오년(1390) 봄 2월 16일에 천희산주(天禧山主) 수인(守仁)은 쓰다


발문 2



내 젊은 시절 스승 묘명(妙明)스님을 시봉하면서 경산사에 머물 무렵 항상 몽양실(夢養室)에 계시던 공실(空至) 노스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들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노스님께서는 선배 큰스님을 두루 참방하여 바른 지견을 갖추셨고 해박한 학문으로 묘한 법문을 하셨다.

또한 피로한 줄 모르고 부지런히 학인을 가르쳤으며 향상(向上)의 수단을 쓰는 일에 대해서도 그의 곁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후에 두 차례나 절동(東) 지방 명찰의 주지를 지낸 뒤 한가히 태백산에 은거하셨다.

나는 그 당시 계속 사명(四明)에 있었기에 명절이 되면 반드시 스님을 찾아가 문안을 드릴 수 있었으나, 종산(鐘山)으로 온 지 3년 만에 스님의 상좌 취산사(翠山寺) 전 주지 현극정(玄極頂)스님이 사명에서 나를 찾아와 노스님이 입적하신 지 4년이 지났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어느 날 나에게 “산암잡록” 한 편을 꺼내 보여주었는데,

읽어보니 모두가 지난 날 노스님께서 내게 일러주셨던 이야기들이었다.

아! 노스님을 다시 찾아뵈려고 하여도 다시 만날 수 없는데 노스님께서 평소 쓰신 논저를 읽어보니 감개가 무량할 뿐이다.

노스님이 설법하신 어록은 따로 세상에 전해오고 있다.

어떤 이들은, 어록에는 향상 법문 [向上菩提]이 많고 이 책은 고인의 옛 말씀과 지난 행적을 들어 학인의 견문을 넓혀주려는 글이니 난해한 어록에 비하면 이 책이 쉽다고 한다.

 

그러나 애당초 다른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본디 세존께서도 근기를 보고 맞게 가르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역대 조사의 종문에서 백추를 들고 불자를 세운다든가,

눈썹을 날리고 눈을 깜빡인다든가 하는 일들은 하나하나 학인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학인을 위한 향상의 방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학인들은 반드시 안목을 갖추어야 하리라.


홍무(洪武) 경오년(1390)에 영곡주산(靈谷住山) 청예(淸穢)는 절하고 쓰다.


 ̄*덕산스님이 어느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으로 갔다.

공양주이던 설봉스님이 이것을 보고 ”이 노장이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를 들고 어디로 가는가?”하니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곧장 방장실로 돌아갔다.

암두스님이 이 말을 듣고 ”보잘것 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를 몰랐다”하였다.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을 불러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하니 암두스님은 은밀히 자기생각을 말했다.

 

그 다음날 덕산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과 달랐다.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아는구나.

앞으로 천하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3년 뿐이로다.”하였다.

과연 3년 후 돌아가셨다.

*구정(九鼎):하(夏)나라 우(禹)임금이 주조했다는 큰 솥.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보배.

*선정원:원(元)나라 때 불교의 승속과 티벳, 트루판을 관리하던 관청.

*여기의 철우, 해문, 고순, 식암은 스님들의 이름이다.

*원문의 “雲'은 “露'의 오기인 듯하다.

*원문의 “淸'은 “睛'인 듯하다.

*진회(秦檜):남송 고종 때의 재상으로 충신 악비(岳賑)를 무고로 죽이고 주전파(主戰派)를 탄압하여 금(金)나라와 굴욕적인 화친을 맺었다.

당시 대혜스님 등의 승려들은 주전파의 입장을 동조하여 귀양보내졌다.

*당사(堂司):절의 당우를 관리하는 소임.

*“일목(一木)'이란 끝 말(末:一十木)자를 의미하며 “영상(嶺上)'이란 산(山)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를 합하면 “말산(末山)'이 된다.

*세존께서 어느 날 자리에 오르시자 대중이 모였다.

문수가 백추(白槌)를 치고 말하되 ”법왕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니 법왕의 법이 이러하나이다”하니 세존께서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수료학:비나야잡사(毘那耶雜事)에 나오는 고사.

아난이 비구들과 죽림원에 갔을 때 수료학(水寮鶴)이라는 비구가 게송을 읊고 있었다. ”백세를 누리면서 수료학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하루를 살더라도 수료학을 보는 것만 못하리”라고.

 

아난은 그것을 듣고 비구들에게 전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백세를 누리면서 생멸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하루를 살면서 생멸을 밝히는 것만 못하리' 하셨느니라.”

아난이 잘못 기억했다가 정법을 그르쳤다는 뜻으로 쓰임.

*제점(提點):상주물 관리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