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본성(本性), 현상(現相) - 2. 육도중생(六道衆生)

通達無我法者 2008. 3. 7. 14:02
    본성(本性), 현상(現相)


② 육도중생(六道衆生)

십법계(十法界) 가운데서 가장 낮은 법계가 지옥법계(地獄法界)입니다. 마치 땅속에 갇혀 있는 감옥이나 같다는 말입니다. 지옥법계는 우리 중생은 안보이니까 부인합니다. '그것은 권선징악으로 사람들한데 나쁜 짓을 못하게 하고 좋은 짓을 하게 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말했겠지' 하며 부인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합니다.
천지우주가 텅 비어있다는 즉, 제법공(諸法空)이란 경계에서 보면은 사람도 없다고 봐야 합니다. 공에서 본다면 사람도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람도 임시 동안 가짜로 있다고 생각할 때는 지옥도 분명히 있습니다.

현상계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천지우주가 텅 비어서 부처님의 광명 뿐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리(理)에서, 불성(佛性)에서 안 보고, 차별적으로 본다고 할 때는 분명히 사람도 있고 지옥도 있습니다. 다만 인간의 한정된 안목으로써 못 볼 뿐입니다. 우리가 전자(電子)나 또는 양자(陽子)를 눈으로 볼 수 있습니까? 못 보지요, 그와 똑같이, 인간의 한정된 안목으로 안 보일뿐이지 분명히 지옥은 존재합니다.

1. 지 옥 법 계 (地 獄 法 界)

상품(上品)의 오역(五逆) 십악(十惡)을 범(犯)하여 한열규환(寒熱叫喚)의 고(苦)를 수(受)하는 최하의 경계(境界)

지옥은 상품(上品)의 오역십악(五逆十惡)을 범하여 받는 경계입니다.
오역죄(五逆罪)는 죄 가운데 가장 무거운 죄라는 것입니다.

살부(殺父)라, 아버지를 죽이고,
살모(殺母)라, 어머니를 죽이고,
살아라한(殺阿羅漢)이라, 아라한은 성자를 의미합니다. 즉 말하자면 번뇌의 종자를 다 끊어버린 사람이 아라한입니다. 따라서 성자와 같지요, 이런 성자를 죽이고,
파화합승(破和合僧)이라, 진리를 위해서 공부하는 단체가 화합승인데, 이간질이나 하고 화합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불신출혈(佛身出血)이라,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낸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부처님이 안 계시니까 부처님 법을 훼방하고 헐뜯거나 또는 없애려고 하면,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내는거나 똑같습니다. 이런 것이 오역죄에 해당합니다.

십선(十善)은 열 가지 선이데,

불살생(不殺生)이라, 살생하지 않고,
불투도(不偸盜)라, 도적질하지 않고,
불사음(不邪淫)이라, 자기의 배필 이외의 음행, 삿된 음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출가승은 일체 음행을 금하고 재가승은 자기 배필 이외의 음행을 금합니다.
이러한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사음 않는 것이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에 해당하고,
불망어(不妄語)라, 거짓말 않고,
불양설(不兩舌)이라, 이간하는 말 않고,
불악구(不惡口)라, 욕설 않고,
불기어(不綺語)라, 꾸미는 말로 궤변이나 음탕한 말을 하지 않고,
이러한 것은 우리의 구업(口業)에 해당합니다.
불탐욕(不貪慾)이라, 탐욕 부리지 않고,
불진에(不瞋에)라, 성내지 않고,
불사견(不邪見)이라, 삿된 견해가 없는 것인데, 이것은 불치(不痴)라, 어리석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런것은 우리의 뜻으로 짓는 의업(意業)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은 것이 우리 중생이 신(身), 구(口), 의(意)로 짓는 나쁜 소 행(所行) 즉, 악업(惡業)입니다.

이러한 오역을 범하고 십악을 짓는다 하더라도, 낮은 단계가 아니라 상품(上品)의 높은 단계로 아주 극심한 것을 말합니다. 중품(中品)은 조금 덜 극심하고 하품(下品)은 조금 어렴풋이 짓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지옥은 상품의, 아주 극심한 오역죄나 십악을 범해서 한열규환(寒熱叫喚)이라, 너무 춥고 너무 뜨거워 아파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팔한지옥(八寒地獄), 팔열지옥(八熱地獄)이라, 여덟 가지 아주 추운 지옥, 여덟 가지 아주 뜨거운 지옥이 있는데 이런 고(苦)를 받는 최하의 경계(境界)가 지옥입니다.

2. 축 생 법 계 (畜 生 法 界)

중품(中品)의 오역(五逆), 십악(十惡)을 범(犯)하여 탄담살륙(呑啖殺戮)의 고(苦)를 수(受)하는 축류(畜類)의 경계(境界)

그 다음은 축생법계(畜生法界)입니다.
이것은 일반 동물계를 말하는데, 소나 개나 돼지나 새나 곤충이나 총망라한 말입니다.
상품보다 조금 정도가 낮은 중품(中品)의 오역(五逆) 십악(十惡)을 범(犯)하여 탄담살륙(呑啖殺戮)의 즉, 서로 먹히고 잡아먹는 고(苦)를 받는 축류, 축생경계라는 말입니다.

3. 아 귀 법 계 (餓 鬼 法 界)

하품(下品)의 오역(五逆) 십악(十惡)을 범(犯)하여 기갈(飢渴)의 고(苦)를 수(受)하는 악귀(惡鬼)의 경계(境界)

그 다음은 아귀법계(餓鬼法界)입니다.
하품(下品)의 오역, 십악을 범하여 주리고 목마른 기갈(飢渴)의 고통을 받는 나쁜 귀신인 악귀의 경계라는 말입니다. 귀신은 등급도 많고 수도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귀신은 또 역시 몸이 없는 의식(意識)만 있어서 신통(神通)을 합니다. 의생신(意生身)이라 마음만 먹으면 그냥 광파(光波)보다도 더 빨리 순식간에 미국도 갔다가 한국도 갔다가 하는 것 입니다. 이런 귀신이 우리 사람 수보다도 훨씬 더 많은 가운데 특히 자기 배를 못 채워서 고통하는 그런 귀신이 아귀(餓鬼)인 셈입니다.

4. 아수라법계(阿修羅法界)

하품(下品)의 십선(十善)을 행(行)하고 통력자재(通力自在)를 득(得)한 비인(非人)의 경계(境界) 그 다음은 아수라법계(阿修羅法界)입니다.

이것도 역시 사람 눈에는 안 보입니다.
이것은 귀신보다는 등급이 조금 더 높지만 성자의 지위도 못되고 천상도 미처 못 되지만 하여튼, 신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경계가 아수라법계입니다. 보통, 자칭(自稱) 도사라 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 아수라에 집혀서 그러는 경우가 있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아수라는 하품(下品)의 십선(十善) 곧, 십선의 정도가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별로 덜 지키는 하품의 십선을 행(行)하고 통력자재(通力自在)라, 신통을 자재롭게 하는 것을 얻은 비인(非人)인, 사람이 아닌 경계라 는 말입니다. 아수라들은 어떤 때는 우리들 앞에 극락세계 모양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야말로 찬란한 경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러한 신통을 다 해서 자기도 보고 또 남에게 보여주기도 하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5. 인 법 계 (人 法 界)

오계(五戒) 또는 중품(中品)의 십선(十善)을 수(修)하여 인중(人中)의 고락(苦樂)을 수(修)하는 경계(境界).

그 다음은 인법계(人法界)라, 이것은 사람 법계입니다.
오계(五戒)를 지키고 곧, 죽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사음하지 않고, 망령된 말 하지 않고, 술 먹지 않는 오계를 지키고 또는 중품(中品)의 십선을 닦아서, 비록 통력(通力) 신통도 못하고 좀 어정쩡 할망정 그래도 역시 아수라 보다는 더 정도가 높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랑으로 해야 합니다. 같은 십선도 아수라보다는 더 높은 십선을 닦아야만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와 같이 오계를 지킨다거나, 중품의 십선을 닦아서 사람 가운데 고락(苦樂)을 받는 경계가 사람 법계입니다.

따라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뭐라해도 역시 과거 전생에 오계나 십선을 닦았기에 사람으로 이렇게 태어나 있는 것입니다.

6. 천 법 계 (天 法 界)

상품(上品)의 십선(十善)을 수(修)하고 아울러 선정(禪定)을 수(修)하여 천계(天界)에 생(生)하고 정묘(靜妙)의 락(樂)을 수(受)하는 경계(境界).

그 다음은 천법계(天法界)라, 이것은 하늘 나라 즉, 천상계를 말하는 셈이지요.
상품(上品)의 십선을 닦고, 사람보다도 더 정도가 높게 지킨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고요한 데를 골라서 마음을 오로지 한 경계에 머물게 하는 정신통일의 참선으로 선정(禪定)을 많이 닦아 천계(天界)에 나서 정묘(靜妙)한, 고요하고 묘한 안락(安樂)을 얻는 경계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러면 천상이 사람보다 훨씬 좋겠구나' 이렇게 생각도 됩니다만 물론, 고요하고 묘한 안락을 받으니까 좋겠습니다만, 천상은 고요하고 안락스러우니까 거기에 집착하고 안주하여 거기에서 벗어 날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고통도 있고 안락도 있으니까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성불도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상계는 안락스러워서 거기에 머물려고 하지 나올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천상사람들은 좀처럼 성불을 못하는 것입니다. 해탈(解脫)은 못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해탈한다는 견지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천상은 우리 사람만도 못 한 것입니다. 사람은 그와 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비록 고락(苦樂)으로, 고도 있고 락도 있고 또는 자재롭게 신통도 못한다 할지라도 역시, 그런 고통 때문에 고통이 역연(逆緣)이라, 그것이 나쁜 연이지만 거기에 거슬러서 벗어날려고 애쓰는 그 마음 때문에 오히려 해탈(解脫) 하려는 인연이 되고 결국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더러 사업에 실패하는 것을 슬퍼도 하고 여러가지로 좌절도 합니다만 실은, 그런 좌절을 당하고 고생하는 그것이 우리한테는 어느 면으로 봐서는 참 좋은 것입니다.

따라서, 도인들은 누가 고생한다고 그러면 그 사람 말 따라서 '참,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은, 거시적(巨視的)으로 그 사람 해탈을 생각해서는 고생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고생이 기연(機緣)이 되어서 무상(無相) 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악같은 것도 명곡을 들어 보십시요. 명곡에는 어떤 것이나 애조가 띠어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나 무상을 음률적으로 나타내지 않은 명곡은 없습니다. 그런것을 본다 하더라도 무상을 느끼는 것이 인간에게 굉장히 귀중한 것입니다. 무상을 느끼므로서 별것도 아닌 현실의 안락을 떠나 영생의 행복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