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록(懶翁錄)

3. 결제 (結制) 에 상당하여

通達無我法者 2008. 3. 19. 14:34

 

 

 

3. 결제 (結制) 에 상당하여

 

스님은 법좌 앞에 가서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 한 물건은 많은 사람이 오르지 못하였고 밟지 못하였다. 산승은 여기 와서 흐르는 물소리를 무심히 밟고 나는 새의 자취를 자유로이 보아서 그려낸다."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요 (堯) 임금의 자비가 널리 퍼져 아주 밝은 일월과 같고, 탕 (湯) 임금의 덕은 더욱더욱 새로워 영원한 천지와 같다. 산승이 이것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다만 성상폐하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축수하는 것이다."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쇠뇌 〔弩〕의 고동 〔機:방아쇠〕 을 당기는 것은 눈으로 판단해야 하고 화살이 과녁을 맞히는 것은 손에 익어야 한다.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손에 익지 않아도 고동을 당기고 과녁을 맞히는 것이 있는가? 꺼내 보아라."
한 스님이 나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다가 문턱 중간에 서서 물었다.
"스님은 법좌에 앉아 계시고 학인은 올라왔는데 이것은 어떤 경계입니까?"
"동쪽이든 서쪽이든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스님은 방장실에서 이 보좌 (寶座) 에 나오셨고 학인은 적묵당 (寂默堂) 에서 여기 왔습니다. 저기에도 몸이 있습니까?"
"있다."
"털끝에 바다세계를 간직하고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
"종문 (宗門) 의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북숭봉 (北崇峰)  앞의 경계입니까?"
"산문은 여전히 남쪽으로 열려 있다."
"그 경계 속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다."
"사람이든 경계든 이미 스님께서 지적해 주신 향상 (向上) 의 한 길을 알았는데 그래도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떻게 하면 향상의 한 길로서, `지극한 말과 묘한 이치는 어떤 종 (宗) 인가. 이 말을 천리 밖으로 없애버려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종의 제일기 (第一機) 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그 제일의 (第一義) 입니까?"
"그대가 묻는 그것은 제이의 (第二義) 이다."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어서 여래가 간 길을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어찌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오늘 여러 관리와 선비들이 특별히 상당법문을 청하니 스님께서는 여기 와서 설법하고 향을 사뤄 축원한 뒤에 법상에 올라가 자유자재로 법을 쓰십니다. 이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무엇이 스님의 본분사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우셨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오랑캐 난리 30년에도 소금과 간장이 모자랐던 적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
"학인이 듣기로는 스님께서 평산 (平山) 스님을 친견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무엇이 천축산 (天竺山) 에서 친히 전한 한마디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셨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영남 (嶺南)  땅에 천고 (千古) 의 희소식이 있으니, 오늘 맑은 바람이 온 누리에 불어옵니다. 이것은 그만두고 오늘 보좌에 높이 오른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니라 축성 (祝聖) 하는 일이니, 스님께서는 한마디 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만년의 성일 (聖日)  속에 복이 영원하니 문무의 사법 (四法) 이 태양을 따르도다" 하시니 그 스님은 "온 누리에 퍼지는 임금의 덕화 속에 촌 늙은이가 태평을 축하하기 수고롭지 않구나" 하고는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나와 물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옷 입고 밥 먹는 것이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다 분명한데, 무엇이 분명한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드시니 그 스님이 물었다.
"향상의 한 길은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는데, 무엇이 전하지 못한 그 일입니까?"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이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빛깔을 보고 마음을 밝히고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친다 하는데, 무엇이 밝힐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들어 세우시니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깨칠 그 도입니까?"
스님께서 대뜸 악! 하고 할을 하시자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이어서 스님께 말씀하셨다.
"본래 맺음이 없는데 무엇을 풀겠는가. 풂이 없이 때를 따라 도의 흐름을 보인다. 허공을 쳐부수어 조각조각 내어도, 독한 막대기의 그 독은 거두기 어렵도다. 언젠가 어깨에 메고 산으로 가서 그대로 천봉 만령 꼭대기에 들어가면 부처와 조사는 보고 두려워 달아나리니, 자유로이 죽이고 살리기 실수가 없다.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물건이 아니며, 천지를 뒤흔드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 소리를 꽉 밟고 있다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주장자를 들고 "보는가!" 하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듣는가! 만일 분명히 보고 환히 들을 수만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 (四聖六凡) , 유정무정 (有情無情) 이 모두 얼음녹듯 기왓장 부숴지듯 할 것이니,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선 (禪) 인가 도 (道) 인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마음인가 성품인가, 현 (玄) 인가 묘 (妙) 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또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선이라고도 할 수 없고 도라고도 할 수 없으며, 범부라고도 할 수 없고 성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성품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현이라고도 할 수 없고 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도 될 수 없으니 모두 아니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알겠는가. 안다면 부처님 은혜와 임금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가 있겠지만 혹 그렇지 못하다면 한마디 더 하리라. 즉 참성품은 반연 (攀緣) 을 끊었고, 참봄 〔眞見〕 은 경계를 의지하지 않으며, 참지혜는 본래 걸림이 없고, 참슬기는 본래 끝이 없어서 위로는 모든 부처의 근원에 합하고 밑으로는 중생들의 마음에 합한다. 그러므로 `곳곳이 진실하여 티끌마다 본래의 사람이다. 실제로 말할 때는 소리에 나타나지 않고 정체는 당당하나 그 몸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중스님네들이여, 무엇이 그 당당한 정체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이것이 당당한 정체라면 어느 것이 주장자인가?" 하시고 다시 한 번 내리친 뒤 "이것이 주장자라면 어느 것이 당당한 정체인가?" 하시고는 드디어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말씀하셨다.
"쌀 한 톨을 탐내다가 반년 양식을 잃어버렸다. 대중들이여, 오래 서 있었으니, 몸조심들 하여라."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