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대담 법어(對談 法語)

通達無我法者 2008. 4. 28. 11:46
    대담 법어(對談 法語)


47년 눕지 않고 한끼 공양으로 수행

인물 탐구, 47년 눕지 않고 한끼 공양

참선하는 스님(선승)하면 알듯 모를 듯한 선문답, 괴팍한 화두, 기행등이 먼저 떠오른다. 이는 아마도 대중들이 용맹정진하는 수도승에 대한 '외경'에서 비롯될 법하다. 그런데 불문에든 지 47년을 산중 선방에서 수행에만 힘써온 전남 곡성 태안사 조실 청화(71) 스님은 이런 '기대'를 비켜간다. 보통 키에 깡마른 체구, 해맑은 얼굴에 자비로운 미소, 담담 한 말투는 천상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다만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형형한 눈빛이 수도승으로서의 세월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선법수행체계 확립

눕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자며 좌선하는 '장좌불와'의 수행법을 지켜온 청화 스님은 또한 수년 동안 말을 하지 않는 묵언수도를 해온 당대의 우뚝한 선승으로 꼽힌다. 그런가 하면 47년간 줄곳 하루 한 끼 공양(식사) 만을 고수한 채, 철저한 참선수행을 해 청빈한 '고행자상' 의 스님으로 선법수행 체계를 이룬 독보적 존재로 알려져 있다. 여느 스님과 신도들은 그를 친견할 때면 으레껏 삼배의 예를 갖춘다.

"중생들이 만유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가짜 모습만을 집착해 탐착하고 분노하고 아귀다툼을 벌여 파멸의 구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불탄일을 앞둔 요즘 청화 스님은 전국 곳곳에서 법회 요청이 잇따라 한창 바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본래 나와 남이 없고 천지와 더불어 하나의 생명인 부처님이 되는 길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셨기에 인간은 비로소 억겁으로 쌓인 무명과 번뇌를 벗어나서 참다운 인간이 되는 길을 알았으며, 진정한 자유와 행복, 평화롭고 안온한 영생의 고향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을 맞아 인생의 본래의 모습인 '참나' (진아)의 존엄성을 깨달을 때만이 바른 가치관이 서고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함에도 어두운 번뇌에 가린 중생들이 그러한 자기 근원을 모르고 만유의 실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잠시 인연 따라 이루어진 무상한 가짜 모습만을 집착해 너요, 나요, 내것이요 하며 탐착하고 분노하고 아귀다툼을 벌여 파멸의 구렁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으로 민족계몽

전남 무안군 운남면에서 태어난 청화 스님의 속명은 강호성. 그는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한 뒤 민족 자각의식을 깨우치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국내에 들어와 친구들과 함께 고향에 고등공립학교(현 망운중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다. 평소 동양철학에 심취했고 진보적 의식을 갖고 있던 그는 극한적인 좌, 우익의 대립을 목도하고 심적갈등을 겪으며 보다 큰 진리공부를 위해 출가하기로 뜻을 굳힌다.

24살 때 속세를 등지고 장성 백양사 운문암을 찾아가 송만암 대종사의 상좌인 금타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문에 들었다 그에게서 '청화' 라는 법명을 받고 가없는 구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금타화상은 하루 한끼를 공양하고 짚신을 손수 삼아 신는 등 청빈이 몸에 밴 스님으로 좌선을 해온 선승이다. 또한 현대물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금타화상은 한국불교의 정통인 통불교(統佛敎)를 주창해왔는데, 그의 이런 수행법과 사상은 청화 스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밤낮으로 수행을 하며 탁발을 돌면서도 스승의 참뜻을 따라 그때부터 하루 한 끼 공양과 좌선수행을 위한 장좌불와를 평생의 신조로 삼는다.

"장좌불와의 수련법은 나 뿐만 아니라 수행자라면 모든 사람들이 취하고 있어 특별히 신기한 게 아닙니다. 원래 각종 참선자세에서 좌선이 가장 안정감을 주는데 이 자세가 삼각형을 그려내는 형태이지요. 똑바로 앉아서 두 손을 무릎에 얹어 놓으면 편하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중도실상(中道實相) 안목 가져야,

47년을 하루 한끼만을 공양하고 있는 청화 스님은 음식이란 사람의 신체와 정신을 유지시켜주는 최소한의 수단일 뿐,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음식을 많이 먹는 것보다 적게 먹는 것이 건강 유지에도 좋고 배설량이 적어 수행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정견은 바른 인생, 바른 가치관, 바른 철학과 같은 뜻입니다. 무명으로 인한 진리에 맞지 않는 업으로 우리가 고통을 받으니까 행복을 위해서는 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거기에 따른 행동도 실천해야 합니다. 중도실상의 안목을 가지고 바른 생활을 해야만 바른 깨달음이 생긴다는 뜻이죠."

청화 스님은 40여년 동안 두륜산 대흥사, 월출산 상견성암, 지리산 백장암 등 전국 각지의 사찰과 암자의 토굴에서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수도 정진했다. 지금도 새벽 2시 30분에 참선에서 일어나 3시에 예불을 드리고 곧바로 2시간 동안 참선에 들어간다. 아침좌선은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며, 오전 11시에 공양을 마치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좌선을 하고 저녁 예불을 한 뒤 또다시 참선에 들어간다.

그의 탁발수행과 떠돌이 선방좌선은 지난 83년 태안사에 주석하면서 끝난다. 신라 말까지만 해도 9산선문의 하나였던 고찰 태안사는 당시 6.25전란 때 불타버려 폐허를 방불케 했다.

이런 퇴락한 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그는 그해 10월, 20여명의 도반과 함께 3년 동안 묵언수도 하며 일주문 밖에 나가지 않는 3년결사를 벌였다. 이 결사는 당시 수도정진을 게을리했던 불가에 신성한 충격을 주었으며, 전국 곳곳에서 시주가 들어와 태안사를 중흥시키는 원동력이 돼선풍도량으로 옛 명성을 되찾게 해주었다.

진리 알맹이 모아 통종교(通宗敎) 가능

"선이란 우리 마음을 중도실상인 생명의 본질에 머물게 해 산란하게 하지 않는 수행법입니다. 이런 수행을 계속하면 마치 흐림 물이 쉴새없이 흘러 그 자정작용에 의해 저절로 맑아지는 것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가뭇없이 스러지고 필경은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생명의 근본목적을 이루게 해줍니다."

선을 닦아 삼명육통이 되면 과거나 현재, 미래를 알고 천지우주를 두루 통관하는 안목과 자기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통을 얻어 최상의 영생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불타의 경지다.

참선을 많이 했다는 사람들이 도인연하며 함부로 음식을 먹고 계행을 파괴하는 것은 진정한 참선을 하지 않았다는 증좌라며 청화 스님은 언짢아 한다. 그는 참선을 할 때는 심지어 석달 열흘동안 물만 먹고 정진한 일이 있다.

선법 수행체계를 확립한 청화 스님은 모든 수행을 정견을 바탕으로 불성체험에 역점을 두는 선오후수(先悟後修: 먼저 개념적으로 깨닫는 것)로 정진해 불성에 안주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해 11월 미국에 건너가 미주 금강선원이라는 선방을 개설하고 3개월 동안 동안거에 들어갔는데, 이는 미주 한국불교사상 처음 있는 일로 수행독려와 포교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당시 법회는 대성황을 이뤘는데 일반 선승들이 불교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법문도 비논리적인 데 반해 교리에 기본을 두고 논리적인 사고와 풍부한 자연과학 지식, 그리고 깊은 통찰을 통한 청화 스님의 법문에 찬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종파성 지양하고 통불교(通佛敎)로
"중도실상에 입각하면 회통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가 원통무애한 모든 것을 종합지향하는 것으로 마땅히 종파성을 지양한 원통불교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청화 스님은 하느님이든 알라신이든 부처님이든 관계없이 진리의 알맹 이만 통합한다면 불교인들이 갈망하는 통불교뿐 아니라 타종교와의 벽도 무너뜨려 통종교까지도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정진하고 있다.

1993년 5월 24일 한겨레신문 게재 - 현이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