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명구·무비스님

열반송

通達無我法者 2008. 8. 13. 20:26

 

 

 

열반송

 

한평생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간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이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구나.

生平欺狂男女群  彌天罪業過須彌

생평기광남녀군    미천죄업과수미

活陷阿鼻恨萬端  一輪吐紅掛碧山

활함아비한만단    일륜토홍괘벽산

- 성철(性徹) 스님

 

 

   이 글은 성철(性徹, 1912~1993) 스님의 열반게송이다. 스님께서 이 게송을 남기고 열반에 들자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 되었다. 불자들은 항상 접하는 내용이라서 별 관심이 없었으나, 비불자들이나 이웃 종교인들은 대단히 의아해 하였다. 나아가 일부 이웃 종교인들은 불교를 폄하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고 하여 이리저리 글자대로만 해석하여 크게 비방하고 나섰다. 그래도 불자들은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소리라 생각하고, 그러다가 말려니 여겼다. 그런데 10년이 훨씬 지난 요즘에 더 극성이란다. 성철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선전을 하며 불교를 형편없는 종교라고 비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올바른 뜻을 풀이해서 모르는 이들을 좀 가르쳐 주면 좋겠다고 부탁하는 분이 있어서, 새삼 이 명구 난에 그 해석을 남기게 되었다.

   불교에서 존재 일체를 보는 견해가 교리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대체적으로 중도(中道)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성철 스님은 일생의 불교공부를 백일법문이라는 법회를 통해서 거의 모두를 피력하였다. 백일법문의 일관된 사상은 중도다. 그것은 스님 역시 일체 존재를 중도로 보았고, 불교를 중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스스로를 중도광(中道狂)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중도를 강조하셨다. 일체의 존재원리가 중도며, 그것을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도 중도로 일관되어 왔다고 보았다. 백일법문 속에는 근본불교에서부터 대승불교,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중도의 가르침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정리하였다. 중도는 공식이다. 경전과 어록도 중도 공식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의 이론은 아무리 짧은 글이라 하더라도 중도가 표현되지 않으면 온전한 글이라고 보지 않는다. 열반송도 또한 예외는 아니다. 성철 스님의 열반송은 철저히 중도로써 자신의 일생을 표현하였다. 중도란 간단히 말하면 절대부정에서 절대긍정을 나타내는 이론이다. 사물이나 인간의 의식체계를 중도적으로 표현하면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말을 쓰지만, 성철 스님은 자신의 일생을 “한평생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가득한 죄업이 수미산을 지나간다.”라고 철저히 부정하였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성자이기에 그 부정이 더욱 빛난다. 자기 존재의 그 진공성의 표현은 참으로 숨이 막힐 정도이다.

   경전이나 어록에는 공(空)이나 무(無)를 사용해서 중도를 표현한다. 참고로 금강경의 무득무설분(無得無說分)은 세존이 자신의 깨달음과 일생 동안의 설법을 철저히 부정한 내용이며, 또 일상무상분(一相無常分)은 제자들의 수행성과(修行聖果)마저 철저히 부정한 내용이다.

   다시 절대긍정으로서의 내용은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태양[一輪]이 붉은 빛을 토하면서 푸른 산에 걸렸구나.”라고 하였다. 절대긍정의 지극한 표현이다. 선불교에서의 지옥은 극락의 다른 표현이며 한은 기쁨의 또 다른 표현이다. 큰 죽음은 큰 삶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옥과 극락을 소요자재하면서 모든 생명들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한다. 여기서 ‘태양’이란 무엇인가? 성철 스님 자신이다. 태양이 높이 떠서 세상을 비추다가 지금 이렇게 아름답고도 장엄한 저녁노을을 드리운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지나친 자기 자랑인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이 이상의 자신에 대한 절대긍정은 없다.

   한편 태양은 우리들 자신이며, 지금 이렇게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바로 이 사실이다. 모든 존재와 모든 생명의 근본이며 성철 스님의 본래진면목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크게 긍정하여 가히 중도광답게 철저히 중도로써 표현하였다. 천고(千古)의 절창이다. 부디 바른 이해가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