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성전(佛敎聖典)

(八正道), (緣起法), (十二緣起說), (五蘊說), (十二處說)

通達無我法者 2008. 8. 13. 23:29

 

 









八正道




붓다가 괴로움의 현실을 종식시킬 실천적 가르침으로써 베푼 것이

여덟가지 올바른 길(八正道)이다.

① 정견(正見):올바른 이해.

경전에서는 사성제를 수행할 때

"법(法)을 잘 결택(決擇)하여 관찰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② 정사유(正思惟) :올바른 생각.

바르게 사유하고, 바르게 마음먹는다는 뜻으로써,

"생각할 바와 생각 안할 바를 마음에 잘 분간하는 것."

③ 정어(正語) :올바른 언어.

네가지 악한 구업(口業),즉 거짓말, 이간질 하는 말, 아첨하는 말,욕설 등을 하지않는 것.

④ 정업(正業):올바른 행위.

세가지 악한 신업(身業) 즉 살생, 도둑질, 도덕적으로 그릇된 성(性)행위를 하지않는 것.

⑤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

올바른 직업생활로써 적절한 방법을 통해 의식주를 구하는 것.

⑥ 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

끊임없이 노력하여 물러섬이 없이 마음을 닦는 것.

⑦ 정념(正念) :올바른 억념(憶念)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인데,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

⑧ 정정(正定):올바른 명상.

바르게 집중한다는 뜻으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아서 선정(禪定)에 드는 것.

이 여덟가지 중에서 정견(正見)과 정정(正定),

즉 지혜와 선정의 올바름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초기 불교의 성격은 지(止:Samatha)와 관(觀:◎pastina)의 병수(釜修)라든가,

정(定:Samadhi)과 혜(慾:Rrajna)의 쌍수(雙修)라고 하는

후대 불교사상에 그 근원적인 원리를 제공하고 있다. 







존재의 법칙




(1) 연기법(緣起法)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다.

'깨닫는다'는 말은 말들어 낸다는 어떤 창조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미 있어왔던 '진리에대한 발견'이라는 의미 이다.

"연기의 법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지은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나오건 나오지 않건 간에 이 법은 상주(常住)요, 법주(法住)요, 법계(法界)이니라.

여래는 다만 이 법을 자각하여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설하나니‥"(잡아함 권12)

이미 있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방법론은 귀납의 논리로써

현대 자연과학의 진리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도

바로 이 연기의 자각에 그 원인이 있다.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말미암아서(緣) 일어난다.

즉 생긴다(起)는 의미이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위해서 他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요,

그 역(逆)도 성립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연기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법칙이다.

서로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고 (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此滅故彼滅)" (잡아함 권15)



A의 존재에 반드시 B의 존재가 전제가 되며,

그 역도 성립한다는 이론은 A만으로는 존재할 수 있는 성질,

즉 자성(自性)을 A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성립시킨다.

무자성(無自性)이다. 연기이므로 자성(自性)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 자성은 인도 정통철학의 아트만(atman)이다. 아(我)이다.

이러한 아(我)가 없다는 것이다. 즉 무아(無我)이다.

대승불교의 아버지 용수(龍樹:Nagarjuna)보살은

연기-무자성-공(空)의 논리를 내세웠다. 공(空)이 곧 연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로 시작되는 위에서 언급한 게송은

후세의 학자들이 「연기의 공식」이라고 한다.

연기의 공식에 대한 공간 고찰에서

우리는 공(空:sunya)사상 이해의 실마리를 갖기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연기의 공식에 대한 시간적 고찰을 해볼 때

인과(因果)법칙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된다.

'이것'이 씨앗이라면, '저것'은 열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因), '저것'을 과(果)라고도 한다.

또는 인을 짓는 의지적 작용을 업(業:karma)이라고 하고,

그래서 생기는 필연적 반응이나 결과를 보(報:vipaka)라고 한다.

인과업보(因果業報)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긴다.

연기는 대승불교에 이르러 불교의 두가지 사상의 하나를 이름하기 臺한다.

실상론(實相論)연기론(緣起論)이다.

전자는 본체(本體)에 대한철학이며, 후자는 현상(現象)에 대한 철학이다.

그러한 연기론철학은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 아뢰야식(阿賴耶識)연기설,

진여(眞如)연기설, 법계(法界)연기설, 육대(六大)연기설 등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 모든 발전된 연기설의 기초로써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이 자리하고 있다.



 



(2) 십 이 연기 설 (十二緣起說)



사성제와 마찬가지로 십이연기 또한 '어떻게 하여서 괴로움이 생기고,

어떻게 해야 괴로움이 소멸하는가?'라는 주제를 같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물론 사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실천적 행위규범의 제시에

더 큰 강조점이 주어져 있고,

십이연기는 다만 현실의 생기(生起)와 사멸(死滅)의 논리적 이해에

더 큰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는 비교가 가능하다.

사성제에서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과 갈애라고 했다.

무명(無明)은 明(vidya)이 아닌 상태이다.

즉 진리에 대해 밝게 인식하지 못함을 이른다.

괴로움의 최초의 근본원인은 무명이다.

십이연기설은 무명에서부터 어떻게

생·노 병·사·우·비·고·뇌가 생기는가에 대한 자세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무명으로 말미암아서(緣) 행(行)이 있게 되고,

행으로 말미암아서 식(識)이 있게 되고,

식으로 말미암아서 명색(名色)이 있게 되고,

명색으로 말미암아서 육입(六入)이 있게 되고,

육입으로 말미암아서 촉(觸)이 있게 되고,

촉을 말미암아서 수(受)가 있게 되고,

수를 말미암아서 애(愛)가 있게 되고,

애를 말미암아서 취(取)가 있게 되고,

취를 말미암아서 유(有)가 있게 되고,

유를 말미암아서 생(生)이 있게 되고,

생을 말미암아서 노(老), 사(死), 우(憂), 비(悲), 고(苦), 뇌(惱)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蘿)의 집(集)이 있게 된다"(잡아함 권15)



따라서 불교의 이상인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서는,

즉 노·사·우·비·고·뇌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생이 소멸되어야 하고,

생이 소멸되기 위해서는 유가 소멸되어야 하고,

유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취가 소멸되어야하고,

취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애가 소멸되어야 하고,

애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수가 소멸되어야 하고,

수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촉이 소멸되어야 하고,

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육입을 소멸해야 하고,

육입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명색을 소멸해야 하고,

명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식을 소멸해야 하고,

식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행이 소멸되어야 하고,

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무명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무명에서 노사까지의 생기(生起)의 십이연기법을 관찰하는 것을

순관(順觀)이라고 하고,

후자의 노사에서 무명까지의 사멸(死滅)을관찰하는 것을 역관(逆觀)이라 한다.

이 두가지 사고의 유형은

후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연기(還滅緣起)에 각각 논리적 대응을 이루고 있다. 







십이연기의 각 지(支)설명




①무명 (無明 :avidya)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이다.

연기적 존재이므로 '나'라고 집착할 만한것이 없는데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오온에 대한 집착(五取蘿普)의 고통에서 설명하였다.

②행(行:Samskara)

무명이 있으면, 그 무명의 힘이 현재화(現在化)된다.

그러한 무명의현실적 작용을 행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impulse,즉 충동이라고 옮기고 있다.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충동(衝動)이라고 볼 수 있다.

③ 식 (識:vijnana)

식(識)은 후대의 대승불교에 오면,가장 중요한 술어 중의 하나인데

식별(識別),분별(分別) 또는 요별(了別)의 뜻이다.

이 식을 더욱 세분화 해서 6식, 7식, 8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④명색(名色:Nama-Hpa)

명은 정신적인 것을 가리키고 색은 물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명색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를 말한다.

오온(玉蘿)에서는 색온(色蘿)이 색(色)이 되고,

수 · 상 · 행 ·식의 온(蘿)들은 명(名)이 된다.

⑤육입(六入:Sad-ayatana)

외부세계의 객관적 사상(事象)을 인식하게 되는 여섯개의 감각기관을의미한다.

눈(眼), 귀(耳),코(鼻), 혀(舌),몸(身),뜻(意)의 여섯이다.

흔히 육처(六處), 육근(六根)이라고도 한다.

⑥촉(觸:Samparsa)

촉은 '접촉하다, 충돌하다'의 뜻이 있다.

위의 육입(六入:안·이·비 설·신·의)

육식(六識:육입에 의지해서 발생한 개별적인 여섯가지의 의식)이 화합하여서

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⑦수(受 :Vedana)

수는 느낌,즉 감수(感受)작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괴로움(苦),즐거움(樂), 괴롭지도 아니하고, 즐겁지도 아니한 평등한 느낌(捨)의 세가지로 크게 나눈다.

⑧애(愛:trsna)

사성제에서 집제의 내용은 무명과 갈애라고 했다.

갈애는 바로 이'애'이다. 이 애는 감정적인 번뇌로서 가장 치성하다고 한다.

후대에는이러한 마음의 장애를 번뇌장(煩惱障)이라 하고,

무명이 지혜에 장애가된다고 할 때의 소지장(所知障)과 함께

가장 큰 두가지장애(二陣)라고했다.

⑨취(取:upadana)

애의 상태만 하더라도 좋고, 싫다는 감정을 느낄 뿐이지,

그에 대해서 극심하게 집착하는 경지는 아니다.

강하게 집착하는 것을 취(取)라고 한다.

이 취라는 술어는 오취온고(五取蘿苦指) = 오음성고(五陰盛苦);

(5감으로 들어와 쌓여있는 모든 것)서도 쓰이고 있다.

⑩ 유(有:bhava)

bhava라는 말은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의 동사어로bhu라는 말에서 나온 명사형이다.

'존재'의 의미와 '생성'의 의미의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생사하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된 것이라고 보면된다.

경전에서는 이 삼계(三弄)가 有의 세계라고 해서

욕유(欲有), 색유(色有), 무색유(無色有)를 언급하고 있다.

⑪생(生:jati)

유는 생사하는 그 자체라는 의미이고, 생은 생사한 것이라는 뜻이다.

불교의 입장은 생(生)조차도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⑫노사우비고뇌 (老死憂悲普惱)

여기의 생과 사는 육체적 생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괴로움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가르침이 십이연기설이다.

초기경전에서 설해진 가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가르침이다.

그 안에는 사성제, 오온, 십이처등의 교설이 종합적으로 정리·조직되어 있다.







존재의 인식




( 1 )오온설(五蘊說)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독송(讀誦)하는 반야심경의 처음에 보면 이런말이 있다.

"관자재보살이 오온이 팅 비어있는 것을 보고, 모든 괴로움을 건넜느니라."

여기서 오온이 모두 공(空)이라고 했는데 오온(五蘊, panca-skandha)은 무엇인가?

오온은 모든 존재이다.

따라서 '오온개공'은 '제법개공' 또는 '일체개공'이다.

즉 오온(五蘊)이라는 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는 존재에 대한 인식,

모든 것에 대한 불교적 해석의 결과 생긴 이해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는 오온으로 구성되어 졌다고 한다.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오온(五蘊) 즉 다섯가지 측면에서 인간이나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다섯가지가 무엇 인가?

색(色:rupa), 수(受:vedana), 상(想:samjna), 행(行:samskara), 식(識:Vijnana)이다.



① 색(色:rupa)

십이연기에서 이미 설명한 바다.

지(地), 수(氷), 화(火), 풍(鳳)의 네가지 요소가 화합한 것을 이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의 유물론철학자들은

인간은 단순히 이 사대(四大)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붓다는 색이라는 것은 하나의 측면일 뿐이지 정신적인 차원의 다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수·상·행·식 사온(四蘿)이다.

② 수(受:vedana)느낌, 감각이다.

③ 상(想:samjna)생각, 表象이다.

④ 행(行:samskara)

행위, 작용이다.

무명이 드러남인 맹목적인 의지이다.

⑤식(識:vijnana)식별, 분별, 의식 이다.

어떤 존재도 이 오온의 화합(和合)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다른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오온개공(五蘿皆空)의 의미이다.



(2) 십이처설



십이처설은 불교가 세계를, 일체를, 현실을, 존재를 인식하는

오온설과 함께 또 다른방법이다.

경전에 의하면 한때 생문(生聞)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질문을 했다.

"일체(一切)라고 하는 그 일체는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일체는 십이처(十二處) 에 포섭되는 것이니,

곧 눈과 색,귀와 소리,코와 냄새, 혀와 맛,몸과 촉감, 의지와 법이다.

만일 이 십이처를 떠나 다른 일체를 시설코자 한다면

그것은 다만 언설(言說)일 뿐 물어봐야 모르고, 의혹만 더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다. "

눈·귀·코·혀·몸·뜻을 여섯가지 감각기관이라 한다.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색·소리·냄새 ·맛·촉감·법(法)이 여섯가지의 인식대상이다.

모든 존재는 이 열두가지에 포섭된다는 것이다.

처(處:ayatana)라고 하는 것은 '들어간다'는 뜻이다.

십이처설은 6근이 6경을 인식하는 것,

바꾸어 말하면 6근에 의해서 인식되는 6경 이외의 어떤 존재도 성립할 수 없다.

인식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논리이다.

인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십이처설로써 해멸될 수 없다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볼교의 입장이 드러나 있다.

따라서 십이처설이야말로 불교의 우주관,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십이처설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심외무물(心外無物)의 대승사상을 낳게 된다.



참조 : http://cafe.daum.net/amtb



석가의 가르침이 緣起說 이라면 성경에서도 그 緣起의 말씀이 있다.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란 의미는

'어떤 것을 緣하여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는 의미로 일체의 사물은 다양한

원인과 조건으로 인해 성립한다고 하는 말이다.

이른 바 '씨앗의 비유'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시편 126:5,6)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리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그 이외에도 (고후 9:6), (갈6:8), (고후6:7) 등 많은 비유가 있다.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보내신 바 되신 성인들의 손가락은 한 곳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宗敎 - 종교란 큰 가르침이다. 인간이 걸어가는 道(길)이다.

후손 스스로 벽을 만들고 '오신 이'(성인)들의 뜻을 왜곡하는 것은

진정한 그 분들의 사랑을 흐리게 할 뿐이다.

굳이 인과(因果)법칙을 거명하지 않더라도

종교를 떠나 좋은 씨앗, 선한 씨앗을 뿌려 좋은 열매, 훌륭한 곡식

거두어란 말씀을 받들어야 하는 것이 오늘 호흡하는 우리들의 현주소 이다.

말씀은 法이요 참 생명이요 모든 우주의 Nirvana (니르바나) 인 것이다.

성인들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서로 사랑하지 않고 제자들 후손들

스스로 만든 경계로 부터의 혹 反目(반목)을 행한다면 - 결코 이미 오신 거룩한 님들의 뜻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