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금강경(金剛經)

한형조교수/2부/56강/장엄정토분 제10

通達無我法者 2008. 8. 23. 17:29

 

 

누가 불국토를 장엄하는가

10장에서 다시 이야기는 변주된다. 새로운 내용은 없다. 다른 장면, 다른 무대를 설정하고, 문답이 계속되지만, 메시지는 앞에서 거듭거듭 강조했던 것을 반복하고 있다.
경문 전체를 우선 제시하고, 각 구절에 붙인 혜능의 구결을 붙여주었다. 구결의 원문은 이번에는 좀 격식을 달리하여, 전통적 현토를 골랐다. 번역과 대조해보면 어디가 같고 다른지 출입(出入)을 짐작할 것이다.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경문 번역
- 佛告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昔在然燈佛所,於法有所得不. 不也,世尊, 如來在然燈佛所,於法實無所得.
부처가 수보리에게 일렀다. “네 생각에 어떠냐, 여래가 연등불의 거소에서, 진리를 얻은 바가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연등불의 거소에서, 진리를 실제로는 얻으신 바가 없습니다.”
- 須菩提, 於意云何. 菩薩莊嚴佛土不.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卽非莊嚴,是名莊嚴.
“수보리야, 네 생각에 어떠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 장엄은 실제로는 장엄이라 할 수 없기에, 그래서 ‘장엄’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 是故,須菩提,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不應住色生心,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應無所住,而生其心.
“그래서 수보리야, 보살 마하살은 그렇게 청정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형태’에 끄달리지 말고, ‘소리’와 ‘냄새’와, ‘맛’과 ‘접촉’, 그리고 ‘편견’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라. 그 어떤 토대에도 의존함이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
- 須菩提. 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提言, 甚大, 世尊. 何以故. 佛說非身,是名大身.
“수보리야, 예컨대, 허우대가 수미산만한 사람이 있다 하자. 이 사람의 몸은 크다고 해야겠지.” 수보리가 말했다. “아주 큽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그 몸은 실제 크다고 말할 수 없는데, 그 조건 하에서 ‘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혜능의 구결 (1): 연등불의 수기
- 佛告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昔在然燈佛所,於法有所得不. 不也,世尊, 如來在然燈佛所,於法實無所得.
[혜능] 부처께서는 수보리가 혹 ‘법을 얻었다’고 생각할지 몰라, 확인 차 물어보았다. 수보리는 이 뜻을 알고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연등불은 석가모니 당신께 수기(授記)를 주신 분이다. 그래서 수보리에게 묻기를, “내가 스승의 처소에서 법을 들으매, 획득한 법이 있다고 보느냐”고 했더니, 수보리의 대답이 “진리(法)는 스승으로 하여 열었으되, 실제 획득한 바는 없습니다”였다. 그가 다만 깨달은 것은 자성이 본래 청정하며 본래 번뇌 장애가 없다는 것, 그리고 적이상조(寂而常照)가 곧 자성불(自成佛)이라는 이치 하나이다. 잊지 말라. 세존이 연등불의 거소에서, 법에 실로 얻은 바가 없다는 것을... 여래법은 비추는 해와 같아 천지 가이 비추지만, 그것을 취할 수는 없나니라.
[六祖] 佛이, 恐須菩提가 有得法之心일가 하사, 爲遣此疑故로, 問之어시늘, 須菩提가 知法無所得하사, 而白佛言하사대, 不也라 하시니라. 然燈佛은 是釋迦牟尼佛의 授記之師라, 故로 問須菩提하사대, 我於師處聽法에 有法可得不아 하야시늘, 須菩提가 卽謂法卽因師開示나, 而實無所得이라 하시니, 但悟自性이 本來淸淨하며, 本無塵勞하야 寂而常照하면, 卽自成佛이니, 當知世尊이 在然燈佛所하사, 於法에 實無所得也라, 如來法者는 譬如日光이 明照하야, 無有邊際나 而不可取니라.

혜능의 구결 (2): 불국토의 장엄
- 須菩提, 於意云何. 菩薩莊嚴佛土不. 不也, 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卽非莊嚴,是名莊嚴.

[혜능] 불국토는 청정하여 이미지도 형태도 없으니, 어떤 물건으로 능히 장엄(莊嚴)하리오. 다만 이 정혜(定慧)의 보물로 임시로 장엄이라 일컫느니라. 장엄에 셋이 있으니 제1은 ‘세간의 불토(世間佛土)’를 장엄함이니, 절을 짓고 경을 베끼며 보시하고 공양하는 것이 이것이요, 제2는 ‘몸의 불토(身佛土)’를 장엄함이니, 모든 사람을 보되 널리 공경을 행하는 것이 이것이요, 제3은 ‘마음의 불토(心佛土)’를 장엄함이니, 마음이 깨끗하면 곧 불토가 깨끗해지기에, 념념(念念)이 언제나 무소득심(無所得心)을 행하는 것이 이것이다.
[六祖] 佛土淸淨하야, 無相無形하니, 何物이 而能莊嚴耶아, 唯以定慧之寶로, 假名莊嚴이라, 莊嚴이 有三하니, 第一莊嚴은 世間佛土니, 造寺寫經과 布施供養이 是也요, 第二莊嚴은 身佛土니, 見一切人에 普行恭敬이 是也요, 第三莊嚴은 心佛土니, 心淨하면 卽佛土淨이라, 念念常行無所得心이 是也니라.

혜능의 구결 (3): 청정심, 토대 없는 마음
- 是故,須菩提, 諸菩薩摩訶薩,應如是生淸淨心,不應住色生心,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應無所住,而生其心.
[혜능] 수행인은 다른 사람을 시비해선 안 되며, 또 자신이 유능하고 똑똑하다고 까불며 공부를 않는 것은 청정한 마음이 아니다. 자성(自性)이 늘 지혜를 발하며, 평등한 자비를 행하며, 하심(下心)하여 일체 중생을 공경하는 것이 수행인의 청정심이다. 만약 스스로 그 마음을 정결히 하지 않고, 청정한 장소를 애착하여, 마음에 토대(住)를 가진다면, 이는 법상(法相)에 집착하는 것이다. 색(色)을 보고 그에 접착하여 그 토대로 마음을 내게 되면 ‘헤매는 사람(迷人)’이요, 색을 보되 색을 떠나 거기 토대치 않고 마음을 내면 ‘깨달은 사람(悟人)’이다. 색에 토대하여 마음을 내는 것은 구름이 하늘을 덮는 것과 같고, 색에 토대치 않고 마음을 내는 것은 하늘에 구름이 없어 일월(日月)이 길게 비치는 것과 같다. 색에 토대해서 내는 마음은 망념(妄念)이고, 색에 토대치 않고 내는 마음은 진지(眞智)이다. 망념이 나면 즉 어둠에 덮이고, 진지가 비추면 즉 천지가 밝아진다. 밝으면 번뇌가 생기지 않는데, 어두우면 육진(六塵)이 우르르 일어난다.
[六祖] 諸修行人이 不應說他是非니, 自言我能我解라 하야, 心輕未學이면, 此非淸淨心也니, 自性에 常生智慧하야, 行平等慈하야 下心恭敬一切衆生이, 是修行人의 淸淨心也니라. 若不自淨其心하고, 愛著淸淨處하야 心有所住하면, 卽是著法相이라. 見色著色하야 住色生心은 卽是迷人이요, 見色離色하야 不住色生心은 卽是悟人이니, 住色生心은 如雲蔽天이요, 不住色生心은 如空無雲하야, 日月이 長照며, 住色生心은 卽是妄念이요, 不住色生心은 卽是眞智니, 妄念이 生하면 卽暗이요, 眞智가 照하면 卽明이라, 明하면 卽煩惱가 不生이요, 暗하면 卽六塵이 競起니라. (未學之未字는 恐當作末字)

혜능의 구결 (4): 위대한 몸이란
- 須菩提. 譬如有人,身如須彌山王,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提言, 甚大, 世尊. 何以故. 佛說非身,是名大身.
[혜능] 육신이 비록 커도, 마음이 쪼잔하면 ‘큰 몸’이라 할 수 없고, 안 마음의 국량이 우주처럼 넓어야 비로소 ‘큰 몸’이라 할 수 있다. 이 몸뚱이는 수미산만큼 커도 마침내 ‘크다’고 하기 어렵다.
[六祖] 色身이 雖大나, 內心量小하면 不名大身이요, 內心量大하야 等虛空界하야사 方名大身이니, 色身은 縱如須彌라도 終不爲大니라.

 

■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 붓다뉴스 http://news.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