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37. 무자진경(無字眞經)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8:32

 

 

무자진경(無字眞經)

“신광을 건지려 했으나 아직 연분이 없구나”

급기야 이성 잃은 신광
들고있던 철제염주로
달마 얼굴을 내리쳤다.



신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마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달마는 얼굴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이윽고 달마가 입을 열었다.

“날더러 불법을 가벼이 보고 천대했다는 말은 당치도 않소. 오히려 그 반대라 생각하오. 대사야말로 불법을 경시하고 천박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구려.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말을 해서야 되겠소이까. 내,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을 설명해 주리다. 대사께서 경전이나 설법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부처님의 심인(心印)과 심법(心法)이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오. 그렇기 때문에 경전의 자구나 제목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오. 이것은 결과적으로 대사께서 참불법을 알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소이까?”이 말에 신광은 펄쩍 뛰었다. 앞에 있는 경상을 주먹을 내리치며 큰 소리로 힐문했다.

“무엇이라고? 내가 불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그대가 아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 보라. 나 대신 이 법단에 올라와 제대로 설법하지 못한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달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나에게는 설법할 것이 없소이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一)’의 글자, ‘하나(一)’의 진법(眞法)뿐이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이 진법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 주기 위해 그 먼 서역에서 이곳 까지 찾아온 것이외다.”신광은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머뭇거렸다.

“하나(一)의 글자라고?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오?”
“그 하나(一)의 글자는 수미산(須彌山)을 붓으로 하고 사해의 물을 먹으로 갈아서 천하를 종이로 삼더라도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오. 그 하나(一)의 글자는 모양조차 그려낼 수 없는 것이오. 모양도 없고 그림자도 없기 때문에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그리려 해도 그려낼 수 없는 것이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하나(一)의 글자를 알아 그것을 그릴 수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생과 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본래 그 하나(一)는 형상이 없지만 춘하추동 사계절을 통해 항상 광명의 빛을 뿜어내고 있소. 이런 현중(玄中)의 묘(妙)와 묘중(妙中)의 현(玄)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모든 것을 깨달아 아는 사람일 것이외다.”신광은 도대체 달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농락당하는 느낌이 들어 몸까지 부들부들 떨었다. 폭발 직전에 이른 신광의 태도엔 아랑곳하지 않고 달마는 큰 목소리로 게송을 읊었다.

“달마는 원래 하늘 밖의 사람(達摩原來天外人) 불법을 강설함이 없이도 선을 이루었네(不講 法也成仙). 만 권의 경서가 모두 쓰임이 없고(萬卷經書諸不用) 단지 생사를 한 획의 끝에 매달았네(單提生死一毫端). 신광은 본래 강경을 좋아해(神光原來好講經) 지혜와 총명을 널리 사람에게 전했네(知慧聰明廣傳人). 오늘 달마를 만나 제도되지 않았다면(今朝不遇達摩渡) 삼계를 뛰어넘어 생사를 마치기 어려웠어라(難超三界了生死). 달마는 서쪽에서 글자 하나도 갖고 오지 않았으니(達摩西來無一字) 오로지 마음으로 공부를 하여라(全憑心意用功夫). 만약 종이 위에서 불법을 찾으려 한다면(若從紙上尋 法) 붓끝으로 동정호를 찍어 말려도 소용이 없네(筆尖 乾洞庭湖).”달마의 게송을 들은 신광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신광으로서는 일찍 이런 모멸감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 신광은 급기야 이성을 잃고 말았다. 손에 들고 있던 철제 염주로 달마의 얼굴을 내리쳤다. 경전 한 글자도 강설하지 못하는 주제에 자기 같은 고승을 농락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광을 받들던 승려들 역시 노기 띤 얼굴로 스승의 거동 하나하나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쇠염주로 얼굴을 강타당한 달마는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태연한 자세로 여전히 자비의 눈길을 신광에게 보냈다. 하지만 달마의 입 속은 피로 흥건했다. 앞니가 두 개나 부러졌기 때문이다. 달마는 입에서 배어 나오는 피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소맷자락으로 닦아냈다. 범인(凡人)이라면 당연히 입 속의 피를 뱉어내던가, 아니면 삼켰을 것이다. 그러나 달마는 입 속의 피를 고스란히 머금고 있었다.

만약 피를 내뱉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달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선 무엇보다 피를 본 신광과 승려들이 흥분할까 염려스러웠다. 이만한 일로 피를 내보임으로써 스스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만약 달마가 피를 보이면 그것 때문에 이 곳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옛날부터 도인이나 성인이 무고하게 피를 흘리게 되면 그 고장에 3년 동안 가뭄이 닥친다는 속설이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달마는 바로 이 점이 걱정스러워 피를 입 속에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빠진 이와 피를 뱃속으로 삼킬 수도 없었다. 비록 자기의 피와 치아이긴 하지만 그것을 뱃속으로 넘기는 것은 오장(五臟)의 계(戒)를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조사인 달마라고 해도 이런 경우엔 그야말로 진퇴양난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입을 벌려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침묵을 지킨 채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최상책은 삼십육계의 도망치기인 듯싶었다. 달마는 쏜살같이 향산사를 빠져 나왔다.

아무도 뒤쫓는 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달마는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입 속에 머금고 있던 이빨 두 개를 다시 제자리에 박고 숨고르기를 하면서 입정에 들었다. 순식간에 달마의 입안은 말끔히 치유되었다. 달마는 새삼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제도하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한 가닥 자책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떨궜다.

사실 양 나라의 무제를 제도할 기회를 잃은 것은 비단 무제의 무공덕(無功德)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었다. 이 점을 달마는 늘 안타깝게 여기고 반성했다. 게다가 신광과의 첫만남마저 어긋나고 말았다는 것도 못내 가슴아팠다. 물론 신광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달마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달마의 속생각이었다.

달마의 ‘무공덕’에 관한 소설(所說)로 말미암아 참선 또는 좌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란이 일었다. 무엇을 구하고자 좌선하는 것은 결국 무공덕이고 무소득(無所得)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된 것이다. 심지어는 무엇을 얻고자 좌선에 드는 것은 사도(邪道)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좌선이나 참선이 전혀 무공덕하다거나 무소득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좌선수행은 하면 할수록 그만한 소득이 따르고 공덕이 쌓이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를 제대로 앉아 있으면 하루의 부처가 되고 이틀을 앉아 있으면 이틀의 부처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좌선이나 참선에 들 때 무엇을 얻고자 집착하면 거기에 얽매이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는 참으로 얻고자 하는 것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된다. 이것이 무공덕 내지 무소득의 진정한 깨우침인 것이다.

달마는 수행하는 이들이 삿된 방문(旁門)에 빠져드는 위험과 두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신광의 그것이 너무나 두드러져 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멀리 향산사를 돌아보며 달마는 시 한 수로 소회(所懷)의 일단을 풀었다.

“방문(旁門)이란 이렇게 한심스런 것이구나. 글자에 눈이 팔려 외우는 것은 불경뿐이요, 오로지 익히는 것은 구두선(口頭禪)뿐이다. 삶과 죽음의 참경계를 어찌 알 수 있으랴. 비록 수행하는 이들은 있으나 정법인 심인(心印)을 구하지 않고, 도를 깨우치려 하면서도 정법인 무자진경(無字眞經)을 찾지 않네. 패거리를 이루어 강설하고 남몰래 이상한 짓거리를 일삼네. 유불선(儒彿仙) 삼교인(三敎人)은 거의 모두가 초생료사(超生了死)를 구하지 않도다. 그릇된 승도(僧道)에서 배우는 것은 두들기고 치고 염불이나 하는 것이라. 신광은 스스로 자랑하며 설법으로 재능을 삼는구나. 마치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듯 설법은 잘 하도다. 그것으론 성명(性命)을 마치기 어렵고 마침내 십전염군(十殿閻君)을 면하기 어렵네. 눈을 들어 방문(旁門) 안을 바라보니 무수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네. 심경(心經)을 보려 하고 진도(眞道)를 찾아 수행하는 이는 몇이나 되는고. 내 오늘 신광을 건지려 했으나 아직 연분이 없구나. 언제쯤 되어야 연분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는지….”신광의 속가성(俗家性)은 희(姬)고 이름은 광(光)이다. 희라는 성씨는 강(姜)씨와 더불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씨 가운데 하나다. 대체로 성에 계집을 뜻하는 여(女)자가 붙어 있는 것은 모계사회의 유습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만치 가계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셈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적(寂)이며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사이에 있는 영양(榮陽) 호뢰관(虎牢關)에 살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식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늘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우리 집은 대대로 선한 일을 해 왔고 적폐를 쌓은 적도 없는데 어찌하여 후사가 없단 말인가?”희적은 고민 끝에 부인에게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드리게 했다. 부인이 불공을 드리고 집에 돌아온 날 기이한 빛이 그의 집안을 비췄다고 한다.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기에 이름에 빛 광(光)자를 넣었다.

희광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영특했다. 사서삼경뿐만 아니라 도가(道家)의 경전들까지 두루 암송하여 신동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열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에게는 모진 고난이 닥쳤다.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의 힘으로는 쇠락해 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울 재간이 없었다. 가난은 마침내 그에게 질병마저 안겨 주었다. 병마에 시달리던 희광은 약을 사 먹을 돈조차 없었다.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독서로 경륜을 쌓았다해도 병약한 몸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일찌감치 벼슬길을 포기한 그는 점차 불서(佛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그는 삶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는 불가의 현리(玄理)를 알고 나서 마음이 밝아졌다. 병마와 가난은 마음의 어둠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불문에 들어가 정진하기로 결심하고 어머니에게 작별의 인사를 했다.

'달마이야기·이규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39. 독부양녀(毒婦楊女)   (0) 2008.09.22
38. 보정선사(寶靜禪師)   (0) 2008.09.22
36. 신광(新光)대사   (0) 2008.09.22
35. 소림사에 주석하시다   (0) 2008.09.22
34. 석벽에 인각된 달마   (0) 2008.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