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강의를 시작하며/불국사 승가대학 학장 덕민스님

通達無我法者 2008. 9. 24. 19:19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쓸고 말고 따질게 있나”
 


<사진설명>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한 기원정사내 금강경 설법터. 사진 왼쪽에 부처님이 앉았던 것으로 보이는 강단이 있다.

강의를 시작하며

오늘 여기의 안과 밖이 불국의 꽃으로 장엄되어있는데 비가 내립니다. 질펀하게 핀 꽃들이 비를 맞으니 아쉬움에 젖어들고, 두보의 곡강시(曲江詩)가 생각납니다.

“一片花飛減却春 風飄萬点正愁人 且看欲盡花經眼 莫厭傷多酒入唇”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을 볼 때마다 봄이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이 서글픈데 마지막 꽃송이 떨어질 때는 찌꺼기 술이라도 마시며 사라지는 봄에 취하고 싶다.)

두보의 시에서도 자신과 외물(外物)이 한 몸이 되어 있음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아함·방등부 10년, 법화부 8년을 포함하여 49년 설법 가운데 21년 동안 금강경을 설하셨습니다. 이는 금강경이 그 만큼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일본, 한국의 불교는 대부분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강경 주석서는 천 여 개도 넘습니다. 누구나 이 소중한 금강경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모두가 너 나 없는 한 모습이 됩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을 오염시키는 명상(名相)을 부정하면 주관과 객관이 사라져 공(空)이 드러나고, 이 공 조차 텅 비워 ‘공공(空空)’이 드러나면 그대로 금강경이고 큰 해탈인 것입니다. 금강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대자유인이 되면 보시도 업장참회도 마치 꽃 피고 물 흐르듯 진리의 리듬에 맞는 묘유(妙有)의 살림이 됩니다.

우리가 배울 금강경은 반야부 경전 600권 중 577권에 해당되는 능단(能斷)금강경입니다. 능단이란 말은 유상(有相)과 무상(無相)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고 재마저 없애 버린다는 뜻입니다. 이 금강경이 오랜 세월을 두고 널리 유통되는 이유는 문장이 간결하고 말세 수행인으로 하여금 무상의 이치를 거듭거듭 반추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1) 육조 혜능스님은 금강경을 선적으로 구결(口訣)해 주셨고, 2) 야보스님은 실상을 깨우치도록 선시를 지었으며, 3) 양무제 어전에서 평생토록 금강경을 강의한 부대사는 찬(贊)을 달았고, 4) 선과 경을 집대성한 송대의 대학자 종경스님은 요점을 중심으로 한 제강(提綱)을 지었습니다. 또, 대승논사(大乘論師) 무착과 천친은 미륵보살의 능단금강경 80게송을 토대로 반야론을 지었는데 이 반야론을 근거하여 다시 5) 규봉스님이 금강경소를 지었습니다. 그 밖에 송나라 장수스님은 규봉 스님의 금강경소를 토대로 8권의 간정기를 지었습니다.

선적인 의미에서의 금강경은 단조로운 듯 여겨지지만, 금강경의 깊은 뜻은 너무 어렵고 되새김이 필요하여 고래로 넝쿨반야라 일컬어졌습니다. 그러나 규봉 스님의 금강경소, 장수 스님의 간정기를 참고하면 어려운 금강경의 뜻이 풀려집니다.

저는 혜능 스님을 비롯하여 다섯 분 선지식의 가르침이 집약된 ‘금강경오가해’를 통해 금강경을 소개하려 합니다. 또, 금강경의 이해를 돕기 위해 때때로 역대 조사의 선시,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 주역 등의 고전을 곁들여 소개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금강경의 핵심내용은 공(空)사상입니다. 공사상은 시간과 공간에 얽매인 겉모습의 자기(我相)를 철저하게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서로간의 분별없이 모든 사물과 더불어 한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 모습이라는 생각까지 털어 버리는 이중부정을 통해 대긍정의 진공묘유(眞空妙有)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의 공은 우리 자신도, 삼라만상도 모두 그 실상이 텅 비어 있다는 말이지만, 윤회전생을 거듭하면서 누적된 업식으로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갇혀있는 나를 진실한 나라고 잘못 인식하는 고정관념부터 과감히 떨쳐내야 합니다.

오늘은 강의가 처음 열리는 날이니 금강경분위기에 젖어들기 쉬운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금강경 수지독송의 공도 크지만 금강경 분위기를 고무하는 시를 통해 마음 비우기를 훈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1) 與黃師是
塵埃楓葉滿室 隨掃隨有 然而不可敗掃 以爲賢於不掃也 (티끌 묻은 낙엽이 토굴에 가득한데 쓸어도 쓸어도 자꾸만 쌓입니다. 그러나 자꾸 쓸어냄은 쓸어내지 않음보다 나은 까닭입니다.)
若本無一物又何加焉 有詩錄呈(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쓸고말고 따질게 어찌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시가 떠올라 적어 보내드립니다.)
簾捲穿窓戶不 隙塵風葉任縱橫 老僧睡足誰呼覺 倚枕床前有月明(말아 올린 발, 뚫린 창, 빗장 없는 문틈 사이 바람 따라 낙엽은 제멋대로 잠결 흡족한 노승을 누가 깨우는가. 기대었던 침상에 달빛이 쏟아지네) - 蘇軾 -

〈보충설명〉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가 녹균헌의 스님으로부터 금강경을 배우고, 그 느낌이 있어 詩를 적어 친구에게 띄운 편지의 내용. 이 편지는 세종대왕도 만번을 읽었다는 구소서간(歐蘇書簡·구양수와 소동파가 자주 주고받은 편지글들의 모음)에서 발췌했다. 곡식을 여물게 하는 가을바람처럼 금강경의 진공묘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준다.

*진애풍엽만실: 흙먼지를 잔뜩 머금은 낙엽이 스님의 토굴에 가득찬 상태.
*수소수유: 쓸어내도 자꾸만 낙엽이 쌓이는 상태. 세간의 번뇌와 망상의 쌓임을 비유함.
*연이불가패소 이위현어불소야: 허공같은 마음의 수행자는 낙엽을 쓸든 말든 근본적인 의미에는 차별이 없지만 그래도 낙엽이 자꾸만 쌓이는 것보다 쓸어내는 것이 나아서 그렇게 한다는 뜻.
*약본무일물 우하가언: 삼라만상의 본래성품이 공한 것이어서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지만 낙엽을 인연에 맡겨서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뜻. 순임금의 물각부물(‘物各付物)’과 같은 의미.

〈참고〉 순임금의 태평성대에, 요임금때 권력을 누렸던 변방의 4흉이 병사를 일으키려하는데 순임금은 거문고만 타고 있었다. 신하가 답답해서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순임금은 ‘물각부물(物各付物·사물은 사물 있는 그대로 놔둬야 한다)이다. 나는 나의 덕성이 멀리 알려지도록 노력하면 된다’라 대답했고, 순임금의 충만한 인(仁)의 모습에 교화된 오랑캐들은 결국 돌아갔다.
*염권천창호불경: 여름에 말아올린 발, 비바람이 들이쳐 구멍 뚫린 창문이 겨울 준비를 안 해 그대로 있고, 잠글 빗장도 없는 사립문이 열려진 상태. 있는 모습, 없는 모습 다 떨어진 공적의 상태.
*극진풍엽임종횡: 틈새로 부는 바람 따라 제멋대로 일어나는 먼지나 종횡으로 나부끼는 낙엽들. 선악과 시비분별을 초월한 자유로운 경지.
*교(覺): 잠을 깬다는 뜻일 때는 ‘교’라고 읽는다.
*의침상전유월명: 유정과 무정이 한 모습으로 어울리고, 비워진 마음에서 지혜의 빛(진공묘유)이 살아움직임을 비유함.

2)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마지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한용운 -

금강경의 비어있는 마음은 저 강나루에 매어 있는 나룻배와 같습니다. 나룻배는 비어있기 때문에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스님도 목사도 다 태우고 갑니다. 저 언덕(해탈의 경지)으로 실어 나르지만 실어 나른다는 그 의식도 없이 실어 나르니 바라밀을 실천하는 대승보살입니다. 한용운 스님은 금강경의 空사상으로 독립운동을 한 거예요. 기다리는 나룻배는 정(靜)적인 의미이고, 행인은 동(動)적인 의미지만 정과 동이 두 모습이 아닙니다.

3) 두목(杜牧)의 유춘시(偸春詩)
有梅無雪不精神 有雪無詩俗了人(매화 곁에 눈 없으면 마음의 정갈함이 모자라고 /눈 내려도 시 없으면 俗스러운데)
薄暮詩成天又雪 與梅倂作十分春(노을 지고 시 짓고 눈까지 내리니/매화와 더불어 원만한 봄에 젖어보리.) - 杜牧 -

눈밭에 서서 삭풍을 견뎌내고 바짝 여윈 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매화는 향기가 아주 맑아서 속진(俗塵)에서 벗어난 산중 수행인을 비유합니다. 두목(杜牧)의 이 시는 매화와, 흰눈과, 노을과, 시흥(詩興)이 한 모습입니다.
*여매병작십분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눈과 매화와 내가 하나를 이루는 것이 ‘십분춘’. 중국 화엄의 초조 두순선사가 화엄법계의 이치를 노래한 法身頌과 같은 의미.
〈참고 1〉 杜順和尙은 ‘어떻게 화엄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회주의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익주의 말이 배가 터졌다. 그러면 천하의 명의를 찾아 돼지 왼쪽 허벅지에 뜸 떠주어라. (懷州牛喫穗 益州馬腹漲 天下覓名醫 灸猪左膊上)’ 라고 답했다.
〈참고 2〉 杜牧: 자는 목지(牧之) 호는 번천(樊川). 名臣으로 이름났으며, 만당(晩唐)의 문단에서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불리었다. 작품이 두보(杜甫)와 비슷하여 소두(小杜)라고도 불리움.

4) 淸明
淸明時節雨紛紛 路上行人欲斷魂(청명절 빗줄기 추적추적 내리니/길 가는 나그네 혼 끊어질 듯)
借問酒家何處在 牧童笑指杏花村(묻노니 술집이 어디메뇨?/목동이 미소 짓고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 - 杜牧 -

중국에서는 청명이 명절이어서 모두 고향에 돌아갑니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나그네는 술집에라도 모여서 고향의 추억들을 되새기곤 합니다. 금강경을 공부하는 수행인들은 두목이 찾아가고 싶어 하는 고향이 바로 우리가 안주해야할 ‘공(空)’의 자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계속)

불국사 승가대학 학장 덕민스님


 
출처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