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일체동관분/1/눈썹 밑 눈, 청정으로 돌이켜 오안 갖추라

通達無我法者 2008. 10. 8. 16:59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경내 범영루.

앞에서 설해진 구경무아분은 일체가 무아(無我)라고 강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도 무아일테니 사물을 볼 수 없는 봉사가 아니냐는 의심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구경무아분 다음에 이어지는 일체동관분은 이런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즉, 부처님은 봉사가 아니고 오히려 다섯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다섯 개의 눈도 청탁이 사라진 절대평등의 하나로서 사물을 관찰하는 바른 눈이라고 설명됩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慧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慧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法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法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佛眼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여래가 육안(肉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도 육안을 가지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여래가 천안(天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을 가지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여래가 혜안(慧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을 가지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여래가 법안(法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을 가지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여래가 불안(佛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을 가지셨습니다.”

 

〈보충설명〉 육안은 육질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부처나 중생이나 평등하게 지니고 있는 우리의 눈입니다. 우리가 본래부터 지니고 청정한 마음은 이 육질로 구성된 눈을 빌려 사물을 관찰합니다. 그러나 육안은 아주 얇은 종이 한 겹으로 앞이 가려지다라도 아무 것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천안(天眼)은 수행을 통해 체득한 초능력으로 모든 하늘의 세밀한 일까지 다 보는 눈을 말합니다. 혜안(慧眼)은 청정하고 밝은 거울에 비유되는 절대 평등의 근본 지혜(根本智)를 말합니다. 법안(法眼)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근본지를 깨달아서 중생을 근기 따라 인도하는 후득지(後得智)입니다. 불안(佛眼)은 앞의 네 가지 눈이 부처님께 갖추어져 있는 것을 총괄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六祖]一切人 盡有五眼 爲迷所覆 不能自見 故 佛 敎除却迷心 卽五眼 圓明 念念修行般若波羅蜜法 初除迷心 名爲肉眼 見一切衆生 皆有佛性 起憐憫心 是名天眼 癡心不生 名爲慧眼 着法心除 名爲法眼 細惑永盡 圓明照 名爲佛眼
모든 사람들이 모두 오안(五眼)을 갖추고 있지만 미혹으로 덮여져서 스스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미혹한 마음을 털어버리면 곧 오안이 원만히 밝아져 생각마다 반야바라밀법을 수행하게 가르치시니, 처음 미혹한 마음을 제거하는 것을 육안이라 한다.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천안이라 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내지 않는 것을 혜안이라 하며, 법에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을 법안이라 하고, 미세한 미혹이라도 영원히 제거하여 원만하고 밝게 두루 비추는 것을 불안이라고 한다.

 

[冶父]盡在眉毛下
모두가 눈썹 밑에 있도다.

〈보충설명〉 부처나 중생이나 눈은 다 눈썹 밑에 있습니다. 한 생각 돌이켜 청정해지면 바로 부처님의 오안을 두루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如來有五眼 張三只一雙 一般分白 的的別靑黃 其間些子爻訛處 六月炎天下雪霜
여래는 오안이 있고 일반인은 단지 한 쌍의 육안 뿐. 똑같이 검은 눈동자와 흰 자위로 나뉘어져 확실하게 푸르고 누런 것을 분별하나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六月의 찌는 더위에 눈서리가 내리는 것이라네.

 

〈보충설명〉 부처님의 눈이나 중생의 눈은 눈썹 밑에 한 쌍이 있으면서 사물을 구별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찌는 더위에 눈이 내리는 것과 같은 불가사의한 이치가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부처님의 눈과 중생의 눈은 다릅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恒河中所有沙 佛說是沙不 如是 世尊 如來說是沙 須菩提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 有如是沙等恒河 是諸恒河所有沙數佛世界 如是寧爲多不 甚多 世尊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항하 가운데의 모래와 같이, 이 모래에 대해 부처가 설한 적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이 모래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한 항하 가운데의 모래 수처럼, 이 모래 수만큼의 항하가 있다면, 이 모든 항하의 모래 수에 해당하는 부처님 세계는 많다고 하겠는가?”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佛告 須菩提 爾所國土中所有衆生 若干種心 如來悉知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바 국토 가운데에 있는 중생의 여러 가지 마음을 여래는 모두 다 아느니라.”

 

[冶父]曾爲蕩子偏憐客 慣愛貪盃惜醉人
일찍이 탕자(蕩子)로 살았기에 나그네를 가련해 하고, 술잔을 아끼고 탐했기에 취한 이를 애석히 여기도다.

 

〈보충설명〉 오안(五眼)으로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부처님의 살림을 선적(禪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깨닫기 전에는 나그네의 살림살이였습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로 사는 중생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眼觀東南 意在西北 將謂白 更有黑 一切衆生一切心 盡逐無窮聲與色 喝
눈으로는 동남쪽을 살피면서 서북쪽도 신경 쓰네. 후백을 말했는데 다시 또 후흑도 있네. 일체중생의 일체의 마음이여! 모두가 한 없이 소리와 색깔만 쫓는구나. 할!

 

〈보충설명1〉 중국의 소설류를 수집해 묶은 ‘태평광기(太平廣記)’에 후백과 후흑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5호16국 시절의 진나라에 후백이란 정치인이 수나라에 외교사절로 갔습니다. 수나라에도 후흑이란 유명한 정치인이 있었는데 수더분하게 후백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후백은 후흑을 올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궂은 심부름도 시키도 그의 앞에서 방귀도 뀌는 등 품위 없는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후백이 후흑에게 “수나라에는 귀한 말이 많다고 하는데 좋은 말을 구해서 내가 진나라로 갖고 가면 안 되겠나?”하고 묻습니다. 후흑이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방귀나 푹푹 뀌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닙니다.”라고 답하니까 그때야 후백이 그를 알아보고 창피스러워하면서 진나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보충설명2〉 위의 시(詩)는 오안(五眼)을 두루 갖추는 것에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그 진리의 눈으로 중생을 두루 살피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